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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상 사는 어떤 발자취 (제6편)
02/17/2019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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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김목사가 정식으로 우리 교회에 취임하는 날이었다. 우리 교회로 초빙을 받고서도 여러달 그쪽 교회 사람들과의 인연을 끊지 못한다면서 시간을 끌다가 결국 이날에 많은 하객과 인근의 목사들과 미국 장로교 교단(우리는 PC USA가 세운 유일한 정식 한인교회)의 책임자들을 단상에 모셔 놓고 기도에 기도를 거듭하는 행사를 치르고 있었다. 특기해야 할 것이 있다면 이씨 왕조의 마지막 후손이 되는 '덕혜옹주'라는 분이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이분으로 말한다면 이조의 마지막 왕인 순종이 나라를 뺏기면서 일본으로 끌려갔었는데, 엄씨라던가 하는 상궁에서 태어난 공주가 바로 이 여인이었다. 늙으막 까지 일본에 그냥 살다가 이곳 유명대학의 무슨 행사에 초청을 받았던 차에 이곳에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김목사 취임식이 임박한 때에 내가 어떤 경로로 이 소식을 접하고, 이 덕혜옹주를 당신 행사에 초청하면 어떻겠냐고 김목사에게 넌즈시 귀띔을 했었다. 그런데 이 공주가 정말 시무식에 나타난 것이었다. 인사말로 "한국민들이 미국 땅에 세운 한인교회에 자기가 초대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기쁘고 감격스러운 기억으로 오래 간직하겠다"는 요지의 인사를 했다. 행사장에 나타나게 한 목사의 적극적 수완이 마음에 들었다만, "취임행사에 일부러 와주신 옹주의 성의에 감사한다"는 김 목사의 답사를 듣는 순간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마치 자기행사 만을 위하여 일부러 멀리서 와주셨다는 얘기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여 정식 목사로 우리 교회에 부임하였다. 그 당시에 그의 나이는 40이 채 않됐었다. 그 전의 목사들이 다들 정년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던 노인들이었던 지라, 새로 모실 분은 젊은 사람이기를 원해던 바였다. 과연 청년의 활기가 교회에 넘치기 시작했다. 한 예를 들자면, 예배가 끝나자 마자 그 자리에서 곧 바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길고 긴 설교와 끝없는 기도 끝에 이제 겨우 자유인이 되는가 싶은 순간에 성경공부라고요.....? 그러나 결국 곧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뒤에 알게 되지만, 항상 창세기부터 시작했었다. 몇주가 지속되는가 하면 흐지부지 하고 말더라. 몇년에 걸처서 그러하기를 수차례 거듭했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야곱이 형 ‘에서’의 장자권을 속였다가 목숨을 구하여 외삼촌에게로 도망갔었던 얘기가 이런 공부의 끝에 나왔었다. ‘라헬’이란 외사촌 여동생을 야곱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외삼춘이 7년을 종살이 하면 네게 주겠다고 약속해서 열심히 일하게 됐었다. 막상 7년 째의 첫날밤에 그 언니 ‘레아’를 대신에 살짝 동침시키게 하였다. 작은 아버지 ‘라반’이 하는 말이, 7년을 더 일하면 결국 ‘라헬’을 아내로 맞아 드리게 하겠다고 다시 약속했다. 야곱이 괘심하게 생각했지만 7년을 더 더부살이를 해야 했었다. 


이러다가는 않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이제 처자를 거느리게 된 처지에서 제 살 궁리를 했어야 했다. 기발한 ‘아이디아’가 이 牧者(목자)의 머리에 슬며시 떠올랐다. 그가 치던 양과 염소들의 무리 중에 줄지거나 점박이와 그리고 갈색의 것들을 자기의 품삯으로 삼고 그리고 순수한 白色(백색)의 것은 삼춘꺼로 구별하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라반’이 쾌히 승락하고 7년을 더 섬기는데, 이런 색갈진 무리가 엄청나게 불어나면서 삼춘의 白色(백색)의 순전한 것은 얼마되지 않게 됐다는 애기가 나온다.


내가 김목사에게 말하기를, ‘멘델’이란 승려가 이 이야기를 실제로 있었던 일화로 믿고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오랬동안에 실험했던(1856-1863) 결과를 1865년에 세상에 책으로 펴내게 됐다고...,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멘델의 법칙’으로 알려져서 유전(hereditary)의 신비 혹은 “염색체(DNA)의 유전적 이론”으로 까지 유래됐던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김목사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새롭고 신기했었던 모양이었다. 구약공부를 다른 모임에서 인도할적 마다 이 이야기를 빼놓지 않더라는 말이 나중에 내 귀에 들려왔다. 


이 이야기에 첨언하자면, 그가 그 수도원의 책임자의 자리를 다음 승려에게 물려주었더니, 이 친구가 '멘델'의 유전에 관한 연구자료를 모조리 불살라 버리고 말았다. 성경의 거룩한 얘기를 세상적인 흥밋꺼리로 희롱했다나...? 이런 독실한 녀석들이 진천으로 까려있으니 살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외골수의 꼴통들이 세상을 망가를 만든다고 해야 할지!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가정 집에서 타계한 부모의 추도 예배를 끝내자, 김목사가 나 한테로 돌아앉으면서 "이번 주 부터는 구역장을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목사님, 그것은 무었을 하는 직책입니까"하고 내가 다시 물었다. 지역과 연령별로 구분해서 성경 공부반을 만들었는데, 내가 그 하나를 맡으라는 것이다. "구역장이 무었을 하는 지도 모르는 사람 보고 어떻게 그것을 맡으라 하십니까? 더구나 나를 의중에 두셨다면 진작 내 의견을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고 물었다. 목사가 당황하던 말던 나는 사양하고 말았다. 나를 어떻게 봤느지 모르겠다. 아마도 무슨 감투라면 침을 흘릴 것으로 봤는지, 아니면 신도의 의사는 아랑곳 없이 밀고 나가도 괜찮다는 것인지... 하여간 내 마음에 들지 않었다.


설교도 마음에 않들었다. 내 생각으로는 신학교를 다녔고 그 만큼 목회 활동을 했으면 자기대로 어떤 깨우침이 있었을 것 같은데, 이 사람의 설교는 어떤 뚜렸한 믿음의 방향이 없어 보였다. 어느날에 서풍이 부는가 하면 다음 주에는 동풍이 불어제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어느 곳에를 가던지 남의 말이 그럴듯하면 그것을 메모로 남기기 위하여 받아적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 정보에 충실하다 보니 설교내용이 장황했었고, 관련도 없어 보이는 일화들을 이것 저것 여기 저기서 두서없이 꾀어 맞추고 있는 설교를 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자기 도취에 빠졌다는 건지, 설교 도중에 느닷없이 독창을 신나게 불러댔다. 아침에 천사를 봤다는 以前(이전)의 이 아무개 목사와 같이 한국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기독재단의 대학에서 신학과를 수료했었다. 나는 이 대학출신들과는 오래 전부터 별로 인연이 없었던 사람이다. 쓴 경험이 참으로 많았던 사람이다. 그 학교출신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 하긴 이 대학교 출신만을 나무랠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 사람들 풍토가 대체로 그러했던 것을 내가 몰랐다고 봐야 하겠지. 이번 기회로 또 한번의 추억꺼리가 생기게 된 셈이다. (제7편에서 계속함)


禪涅槃

2/17/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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