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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잃어가는 한국사회
12/10/2019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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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잃어가는 한국사회

 

방용호

 

열정(熱情, Passion)이란 원하는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의 자세이다. 열정은 엄마(Mother) 다음으로 흔히 그리고 즐겨 쓰는 낱말이라고 한다. 열정은 우리들의 엄마들처럼 부를 때 그리고 원하는 곳에 항상 있는 인생의 불가결한 원동력이다. 그리하여 열정은 우리의 매일생활에 생기(生氣)와 풍요로운 영혼까지 나누어 준다. 그래서 금은보배를 잃을망정 열정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천고의 명언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열정이라는 싹이 트면서 시작한 인간의 희망찬 삶은 그 열이 사라지면서 끝을 맺게 된다.

 

인간에게만 주워졌다는 열정은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싶은 절실한 의지(意志, Will)와 전심전력의 노력(努力, Effort)의 결합체이다. 무엇이든 하면 얻을 수 있다는 열정에는 두 조건이 우선되어야한다. 그 첫째는 결심한 의지에 따라 한 곳에 정신이 집중되어야 하고, 둘째는 실패를 거듭하는 쓰라린 피땀의 노력이다.

 

그러한 열정이 스스로의 생각과 자의(自意)에 따라 무엇인가가 생산함으로서 자아실현(Self-realization)이라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충족된다. 욕구란 각기 지니고 태어난 잠재적인 가능성이 무엇이든 그 자체를 스스로가 사랑하며 철저하게 가꾸어 현실화하고 실현하려는 인간된 도전인 것이다. 그 도전으로 우리는 위험과 덕망을 갖추어 사회에는 덕이 되고 국가에는 시민으로서의 임무와 책임을 다하게 된다. 그러한 열정이 있기에 오늘의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물질사회가 형성되어, 서로가 정을 나누면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열정의 주춧돌인 의지는 무엇으로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서부터 솟아난다. 그 무엇이란 인생의 필연적인 생업(Vocation)이다. 그 생존수단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시간과 가산까지 투입하여 단련과 인내 그리고 실패와 성취를 되풀이하면서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천리를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인간사회는 심는 대로 거둔다는성언에 따라 빈부라는 불평등이 생긴다.

 

고통과 불평등으로 엮여진 인생 본연의 처지를 무시하고 반기를 들다가, 더러는 평등이라는 실현성이 전무한 공상(Utopia)에 빠져든다. 그 좋은 예는 아마도 사회주의사상으로 장기 집권하는 북한 전체주의체제를 신봉하는 주사파로 알려진 한국의 종북 엘리트들일 것이다. 그들에게 포섭되면 사람들은 피땀의 수고 없이 풍요한 사회에서 평등하게 사는 환상의 나라에 대한 달콤한 꿈을 꾸게 된다.


길고도 피곤한 생업수업에서 열정이 본연의 구실을 하려면 자극제(Incentive)가 불가결 하다. 가장 효율적인 자극제는 연속되는 각종시험들과 학력평가이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공정하고 엄격한 상벌제도일 것이다. 이 원칙이 얼마나 엄격하게 실현되느냐에 따라 세계적으로는 선진국과 후진국이 구분되어 간다.


무시험제도 다음으로 특이한 후진국의 교육은 취업을 위한 경쟁에만 치중되고, 등한시된 창의력 개발육성을 위한 열정에는 아무런 자극제가 별로 없는가 싶다. 그래서인지 한국대학에는 수많은 교수님들이 있지만 노벨상을 받을만한 창의적인 학자는 아직 없다. 그들의 제자들은 공무원이 되는 취업을 위해 다시 학원을 찾아간다. 그것이 아니면 양질의 일자리는 국가기관 밖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생업수단과 능력을 육성하는 데는 첫째로는 창의력이고 둘째는 경쟁력이다. 전자는 창업(創業)을 창출하여 양질의 일거리를 속출한다면 후자는 창업자의 생산수단을 반복해서 복사해야하는 품팔이 고용인들이다. 창의적인 기업이 없거나 기존 기업들이 활성을 잃으면, 오늘의 한국처럼 그 사회에는 정부기관에서 열정도 창의력도 불필요한 심부름하는 공무원이라는 일자리가 고작일 수밖에 없다.

 

열정이 결여된 일터에는 생산성(Productivity)이 저열하다고 한다. 자발적인 의지나 도전이 없는, 시계바늘만 쳐다보는 머슴근성 때문일 것이다. 그런 탓인지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2회 회원국 중 17위로, 1위인 아일랜드의 38%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OECD 기준으로(2016) 한국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OECD 평균(1764)에 비하면 305시간 더 많다.

 

소유(私有)에 대한 애착심도 열정을 고무(鼓舞)한다. 사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기에는 언제나 특별하다. 자기 백성들을 굶어 죽게 하는 북한의 세습폭군도 자기자식들에는 유별하다. 전셋집에 비하여 내 집에 애착심이 더 가듯이 모교나 모국에도 그러하다. 개인의 소유권이 무시되면 애착심의 상대가 사라짐으로, 주인이 시키는 대로 눈치만 보는 머슴근성의 소유자가 된다. 그러면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이매일을 살게 된다.


나는 70년대의 8년을 평등사회를 갈망하는 아프리카대륙의 적도나라들을 오고가면서 지냈다. 그 첫 나라가 탄자니아였다. 초대 대통령(Julius Nyerere)은 농가들을 한곳에 모아 우자마(Ujamaa)’라는 집단농장을 설치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 농장에사유에 대한 애착심 모두를 빼앗긴 탓인지 어느 농장에도 허리를 꾸부린 일꾼은 볼 수 없었고, 언제보아도 여럿이 서서 환담을 나누는 모습만 있었다. 우자마수는 증가하여 1978년에는 7,500개에 달했으나 결국 식량수입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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