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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샌프란시스코 칼럼
10/12/2018 06:17
조회  373   |  추천   4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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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리가 죽었다. 
작년 12월 12일 이었다. 
밤 10 시 경 아내와 같이 마켓에서 장을 보다가  심장마비로 쓸어졌다.
샌프란시스코 제네랄 병원으로 급히 실려갔지만, 이미 숨을 거두었다. 
당년 65세, 그렇게 급히 갈 이유가 없었는데......
왜 그렇게 급히 갔을까?
5 피트 체구에 얼굴에 늘 홍조를 띄고 있었지만
그 작은 몸 속에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가  감당할수 없는
수많은 괴로움이 도사리고 있었나보다.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지.
마음 약한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벅찬것이었던가?

1952 년 시애틀에서 태어나 15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웨이트리스 어머니와 살다가
고등학교 졸업후 전액 장학금으로 동부 끝에 있는 보두인 칼리지로 갔다. 
베이 에리아로 돌아와 버클리 법과대학원을 마친후,
그는 인권옹호 변호사가 되었다.
넉넉하지 않은 삶인데도 이민자들을 위한 그의 끊임없는 노력을 보고
당시 시장 아트 아그노스는 에드 리를 시 산하 인권위원회의 부국장으로 끌어들였다.
다음 시장으로 들어선 윌리 브라운은  문제가 많았던 시 구매국장으로 그를
임명했고, 게빈 뉴섬 사장은 그를 시 행정을 책임지는 총무국장으로 승진시켰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아직 정치적으로 깊이 관여한 때가 아니었다.

게빈 뉴섬 시장이 평소에 노리던 캘리포니아주 부지사에 당선됨으로서
샌프란시스코 시장직은 공석이 되었다. 
시장 자리가 비게되어 서로가 사장을 하겠다고 나서니까 시정은 마비가 되고
정적들은 서로를 향하여 매일 공격을 하고 있었다.
이 때에 중재에 나선 인물이 바로 윌리 브라운 도사(?)였다.
“그렇게들 다투지말고 그냥 제 삼자를 임시 시장으로 정하는게 어떤가?”
듣고보니 그럴듯했다. 윌리 브라운의 권유에 따라 그 들은 싸움을 중지하고
에드 리를 임시시장으로 선출했다. 
그 때가 2011 년, 시 역사상 150 년 만에 아시안계가 시장으로 들어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 비로소 평화가 돌아왔다. 
워낙 정치색이 없는지라 모두들 에드 리 시장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시 정책들은  무리없이 진행되었다.
모두의 협조아래 정책이 펼쳐지니 샌프란시스코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시를 가로지르는 마켙 스트리트 소마지역 (South of  Market)을 중심으로한 
미드마켙 지역에 트위트, 우버, 스퀘어, 돌비 등이 대거들어서서 첨단 IT 기업군이 형성되었고
영 프로페셔널들은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죽어가던 동네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일이 이쯤되자, 주변에서 에드 리 시장 만들기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Run Ed Run!!” 샌프란시스코 시정에 관여한 그룹들은  에드 리에게
“시장 선거 불출마 선언”을 뒤집어라고 주장했다. 
차이나타운 파워 브로커 로사 박, 윌리 브라운 전 시장, 파인슈타인 상원의원을 비롯한
핵심세력은 에드 리의 시장직 출마를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자 정적들은 에드 리의 약속 파기에 분노했지만 
대세를 따라갈수  밖에 없었다.
재선은 치러졌고  에드 리는 56 퍼센트의 지지율로 당선이 되었다.

문제는 그 때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의 약속을 믿고 그가 내놓은 안건마다 지원했었지만, 사태는 달라지게 되었다.
본격적인 재동을 걸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지만 에드 리는 본격적인 정치행태에
깊숙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노스비치, 리치먼드, 이널 선셑.  케스트로 게이지역 등 평방 49 마일의 적은 지역이지만,
진보세력, 우파 진보세력, 중도파, 동성연애자 지역, 차이니즈 파워, 각기 정치세력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다툼을 벌리자 에드 리 시장은 본인의 원과는 관련없이,
그 한가운데 서서 당할수 밖에 없었다. 
에드 리는 애당초 시장이 될 욕심이 없었다.
임시 시장직을 맡겼을 때만 해도 “ 임기가 끝나면 시 총무국장 자리로 다시 돌아와 남은 몇 년
더 채워서 풀 은퇴연금을 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로 정치와는 무관한 (?) 인물이었다.
괜히 정치한다고 뛰어들었다가 심장마비 걸려서 세상을 떠났으니, 자기의 분수를 
잘못 채운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성격이 모질지 못하고 약해서 싫은 소리 한 번도 못하고 속으로만 그게 쌓여
결국 그게 터져서 죽은것은 아닐까”하는 윌리 브라운의 진단이 틀린것 같지는 않다.
동양인 최초의 샌프란시스코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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