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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뉴욕 New York New York  | 트럭 드라이버 단편 모음
08/10/2020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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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은 영원하다. 바람 소리, 낙엽 한 잎, 별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 연결하여 기억 속에 강력하게 새겨 두고 세월이 흐를수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으로 미화시켜 간직한다. 인간은 이루지 못한 일을 완성하고자 하는 욕망이 작용하여 오래 기억에 남게 된다. 따라서 끝나지 않은 첫사랑을 평생 잊지 못한다.

 

뉴욕  뉴욕

New York New York

(단편소설 200자 원고지 104장)

Wolfkang Lim

 


나는 첫사랑을 모른다. 첫사랑은 어떤 기분일까?

그토록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면서도 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일까?

첫사랑을 해보지 못한 나는 막연히 환상적인 꿈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뉴욕 모녀 자살…’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다가 큼지막한 활자로 찍혀진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살하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로 삶을 스스로 포기한다. 젊고 아름다운 영화배우가 갑자기 자살했고, 한국을 떠난 지 30년이 넘는 나도 잘 기억하고 있는 유명 연예인도 자살했고 그리고 가수들, 최근에는 세계정상을 달리는 일류 모델, 아무리 봐도 부러울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재벌의 딸도, 심지어는 국가 최고위직에 올랐던 분마저도 서슴없이 몸을 던졌다.

자살 동기에 관한 추측과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성하게 번질 뿐 경찰 조사는 형식적이고 뉴스매체의 보도는 단편적이고 떠도는 소문은 음모론을 부추긴다.

진실은 오직 본인의 몫이며 죽음과 함께 영원히 묻혀버리고 만다.

‘어린 딸을 질식사시키고 자신도 목숨을 끊어,

머리맡에 ‘사랑한다. 엄마가’ 쪽지 남겨…‘

건성으로 읽어 가다가 이 부분에서 순간적으로 나는 심장이 멎는 충격으로 아득한 어지러움을 일으키고 눈앞이 캄캄했다. 내가 아는 사람일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불현듯 솟구쳤다. 나는 뉴욕의 트럭 휴게소 레스토랑에서 한 모녀를 만난 적이 있다. 

트럭으로 세계 최대의 도시 뉴욕의 높은 빌딩과 거리의 현란한 조명 그리고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며 달리는 영화장면 같은 회상은 과거의 잊지못할 사건으로 나를 이끌었다. 뉴욕이 트럭 운전과 함께 끈질긴 인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는 트럭 운전사로 취업하여 첫 운행지가 뉴욕 맨하탄이었다. 그 후 뉴욕은 갈 때마다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로 얼룩졌고, 마침내 일어난 마지막 사건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오직 나 혼자만이 가슴속 깊은 곳에 꼭꼭 묻어두고 고이 간직한 특별한 비밀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3년 전, 친구 부부가 우리 집을 예고 없이 방문함으로써 시작된다.

M은 캐나다에 이민 온 지 10년이 된 조용하고 내성적인 타입으로 나와 함께 둘이 마주 앉아 이야기로 밤을 새울 정도로 대화가 통하고 의기가 투합되는 친구였다.

나와 M의 가족은 캠핑도 함께 가고 자주 만났었지만 내가 트럭운전을 시작하고부터는 거의 만나지 못했었는데 어느 날 다짜고짜 부부가 함께 홍합 두 봉지와 포도주 한 병을 사들고 밤늦은 시간에 우리 집으로 쳐들어 왔다. 아메리카에 살면서 누군가 스스럼없이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가 꺼낸 본론은 뜻밖에도 트럭 운전을 하고 싶으니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M은 결코 트럭 운전사 타입이 아니었다. M은 토론토에서 1시간 거리의 조그만 마을에서 편의점을 오랫동안 하고 있었고 장사도 잘 되는 편이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도 아니므로 힘들고 어렵다는 트럭 운전을 할 뚜렷한 이유도 없었다.

“미국에서의 장거리 트럭 운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야, 꿈도 꾸지 말고 하던 편의점이나 열심히 해!”

“울프, 너는 몇 년째 하고 있으면서 나는 왜 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해서 지금까지 해 왔지만, 만약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일인 줄 알았더라면 트럭 운전을 하지 않았을 거야. 우선 대한민국 땅에서 운전하는 것과는 스케일이 완전히 달라. 마치 외항선 타는 뱃사람처럼 한번 떠나면 2주일 또는 한 달 동안 트럭 안에서 먹고 자고 운전만 하고 돌아다니다가 겨우 집에 돌아와 한 이틀 쉬고 또다시 길을 떠나는 생활은 본인뿐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견디기 어려운 삶이다. 비단 하루에 10시간 이상 운전하는 것만 힘든 것이 아니다. 여기 북미에서도 트럭 운전은 3D 업종으로 인정되어 있는 데다 우리는 영어 소통도 원할하지 못하고 교통 시스템에도 익숙하지 못해. 날마다 예상하지 못한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데 도와주는 사람 없이 오직 혼자서 해결해 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 생길지 모르는 안전사고의 위험은 온 가족을 불안에 떨게 한다.”

한 시간이 넘도록 나는 동료 트럭 운전사의 예를 들어가며 열심히 설명하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M은 단단히 결심한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편의점를 운영하는 일도 지쳤고, 매상도 해마다 줄어들고, 강도 위험도 있고 해서 편의점을 곧 처분할 것이며 자기는 트럭 운전을 하고 와이프는 틈틈이 다른 편의점에 헬퍼로 일 하면서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싶어서 결정했다는 것이다.

“하고 싶으면 해! 하지만 나는 반대야. 안 돼!”

내가 마지막으로 빗장을 찔러 박듯이 강하게 손을 내저었다.

M은 대답대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 앞에 내밀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M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빙그레 웃고 있다. 그가 내민 것은 트랙터 트레일러 운전 면허증이었다.

“어떻게? 언제 땄어?”

“말도 마, 이것 따느라고 엄청 고생했어. 필기시험은 한 번에 합격했는데 그놈의 실기 주행테스트에서 무려 여섯 번이나 떨어진 끝에 겨우 딴 거야.”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단호한 결심을 확인 한 이상 그를 만류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바로 서류 준비해서 회사로 찾아와! 내가 매니저에게 부탁해 볼게!”

그제야 M은 승리를 쟁취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의 와이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후, 그는 내가 다니는 트럭 회사에 입사하였다. 첫 일주일은 클래스 교육을 받고, 두 번 째 주는 시내 운전 교습을 받고, 셋 째 주부터 나와 함께 장거리 트럭 운전 실습을 나갈 수 있었다. M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트럭 운전사의 길로 접어든 최초의 친구였고, M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그 누구도 나로 인해 트럭 운전사가 되게끔 권유하지도 소개하지도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토론토에서 출발하여 일리노이주 시카고, 죠지아주 애틀란타, 텍사스주 휴스톤, 매리랜드주 볼티모어를 돌아오고 다시 퀘벡 몬트리올, 매사추셋, 온타리오, 펜실배니아, 미시간 등 장장 12,000킬로미터의 거리를 18일 동안 운행하였다. 트럭 안에서의 생활은 불편했고 내가 가르치는 입장에서 그를 서운하게 할 때도 있었다. 북미를 횡단하는 트럭은 회사에서 위성통신으로 화물과 목적지를 보내 준다 운전사는 그에 따라 움직인다.

“이번 목적지는 뉴욕이네!” 내가 위성 통신으로 온 메시지를 보면서 말했다.

“진짜? 뉴욕으로 가는 거야?” 그가 되물었다. “뉴욕 어디?”

“응, 뉴욕 브롱스인데 다행히 시내까지 들어가지 않고 하이웨이에서 가깝네.” 나는 지도를 보면서 대답했다. 순간 M의 표정이 밝아졌다.

“뉴욕 간다니까 아주 좋아하네? 운전사들은 뉴욕을 가기 싫어하는데…,”

“친한 친구가 뉴욕에 사는데 십여 년 동안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어. 뉴욕에 가면 전화나 한번 해 볼까 해.”

“그래? 만나면 굉장히 반갑겠네!”

 

하이웨이 17에 위치한 트럭 스탑에 도착했다. 뉴욕시내에서 한 시간 거리이므로 내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 배달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럭을 주차하고 나서 M은 전화를 걸기 위해서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이라고 해봐야 햇반을 데우고 참치 깡통 하나 따고 아내가 싸준 김치와 멸치 이게 전부다. 먹는 문제는 장거리 트럭 운전사들에게는 가장 골치 아픈 일이다. “친구가 나를 데리러 오겠다는데 어떡하지?” M은 돌아오자마자 내게 말했다.

“그래? 그럼 만나 봐야지 오랜만에 만난다니 무척 반갑겠다. 나는 트럭에 있을 테니까 가서 만나 봐.”

“그래도 괜찮겠어?”

“걱정 마. 나는 여기서 밥 먹고 트럭이나 지키고 있을 테니, 가서 친구와 저녁이라고 함께 하든지.” 그의 얼굴이 한결 환해졌다.

“울프도 함께 갈 수도 있는데…” 그는 말 꼬리를 흐리면서 나의 눈치를 살폈다.

“글쎄 나도 가면 좋겠지만 트럭을 이 험한 곳에 그냥 둘 수 없고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닌데 중간에 끼기도 좀 그렇잖아.”

“오케이 알았어. 언제 출발할 거야?”

“새벽 4시에 출발해야 해, 이제 초저녁이니까 시간은 충분해.”

“고마워, 그럼 갔다 올게. 친구가 트럭 스탑 앞으로 온다고 했으니까 앞에 가서 기다려야겠다.”

그는 종종걸음으로 트럭 스탑 앞 큰길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혼자 저녁을 끝내고 트럭 안에 마련된 벙크 베드에 누워 책을 읽다가 이내 잠들었다.

새벽 3시 30분, 삐삐삐~,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M 생각이 나서 얼른 위 침대를 보았다. 슬리핑백만 널브러져 있을 뿐 그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걱정됐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 할 이야기가 많았겠지 생각하였다. 4시까지는 오겠지 생각하고 트럭과 트레일러의 안전 점검을 마치고 준비했던 지도를 보며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여러 차례 확인했다.

트럭 휴게소에 가서 커피 한잔을 사 왔다. 새벽에 마시는 커피는 맛이 아주 특별하다. 정신을 맑게 해 주고 허전한 속을 뜨겁게 해주는 이상한 마력이 있다. 그는 4시가 돼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 떨어졌을까? 아냐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고 있을지도 몰라. 조금 더 기다렸다. 친구의 전화번호를 받아 두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됐다. 4시 30분, 어떻게 해야 하나? 만약 그가 나타나지 않으면 나 혼자라도 배달을 가야 하나? 아니면 그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꽉 차 있던 트럭들이 아직도 어두운 새벽 찬 공기를 깨며 줄지어 트럭 스탑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초조한 마음은 자꾸 시계를 쳐다보게 된다. 신경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도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거나 아닌지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다가도 그냥 떠나 버리고 싶기도 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트럭 밖에 나와 트럭 스탑 입구 쪽으로 자꾸 눈길을 주시하면서 서성댔다. 들고 있던 커피를 마시려고 보니까 이미 빈 컵이었다. 시간은 이미 5시를 지나고 있었다.

이때 승용차 한 대가 입구에 들어서는 게 보였다. 혹 그가 타고 오나 기대하였는데 트럭 쪽으로 오지 않고 입구에 섰다. 그가 아니구나 하고 실망하였는데 그 승용차에서 내리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바로 M이었다.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솟아오르던 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는 승용차 창문에 대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는 바로 트럭 쪽으로 달려왔다.

“미안, 미안, 친구가 길을 잘못 들어서서 헤맸어.”

내가 뭐라고 묻기도 전에 그는 변명했다.

“자, 빨리 가자!”

나는 할 말이 많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우선은 약속시간 안에 도착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 친구의 승용차는 우리가 만나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그때까지 서 있다가 천천히 돌아서 건물 사이로 사라졌다.

우리는 배달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 도착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고객은 아무 불평 없이 화물을 내려 주었다. 이렇게 3주 동안의 실습 기간을 마치고 토론토로 돌아오는 길, 옆자리에 앉아 있는 M은 별로 말이 없었다. 뉴욕에서 아침 늦게 온 이후로 심각하게 조용했다. 내게 미안해서 그런 거라고는 생각하기에는 좀 지나치다. 그렇다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싸웠거나 언짢은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자칫하면 서로 감정 상하는 일이 생길 것이 염려스러워 그냥 잠자코 있었다. M은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해 보였다.

M은 그가 그토록 원하던 북아메리카의 트럭 운전사가 됐다. 나는 그에게 최소한 1년 정도는 회사에 있으면서 경력을 쌓으라고 충고해 주었지만 그는 6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후 그를 만나거나 연락한 적이 없이 지냈지만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뉴욕을 전문적으로 왕복하는 트럭회사로 옮겼다고 하였다.

토론토에서 뉴욕까지는 500마일(800km)이다. 하루 운전하고 가서 자고 그다음 날 돌아올 수 있다. 일주일이면 3회 정도 왕복할 수 있다. 한 달에 12000마일이 되고 고정적인 수입이 되므로 피곤하고 위험한 것만 없다면 훌륭한 고정 루트이다.

그렇지만 나는 고정 루트가 싫다. 한 달도 못 돼서 지쳐버릴 것 같았다.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특히 안 가본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모험적인 성격이라서 그렇다. 장거리 트럭 운전이 내 적성에 잘 맞는다.

 



어느덧 다시 계절이 지나가고 해가 바뀌었다. 북미대륙을 횡단하는 트럭 운전사에게는 시간만 존재하고 날은 없다. 온종일 운전대에 매달려 약속시각에 맞추다 보면 날짜를 잊고 산다. 바쁜 트럭 운전을 하다 보면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고 한 달, 한 해가 금방 지나버린다. 몇 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가버리고 나는 오랜만에 다시 뉴욕을 가게 되었다. 롱아일랜드로 가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고 더구나 배달시간이 내일 아침 10시라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항상 들리던 하이웨이 17번의 트럭 스탑에 도착했다. 아직 해가 남아 있는 초저녁이라 주차 공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치킨 수프를 데워 베이글 한 조각과 함께 간단히 저녁을 끝내고 운전석에 앉아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을 감상하면서 오가는 트럭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한 여자가 어린아이와 함께 멀리 트럭 스탑 입구 쪽에서 걸어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트럭 스탑에 여자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는 일은 드문 일이다. 그저 무심코 시선을 주고 있다가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 동양 여자임을 알고 호기심이 나서 계속 지켜보았다. 그 여자는 트럭 스탑 한가운데를 향하여 정면으로 오는데 어린아이의 느린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궁금증은 커졌다. 도대체 무슨 일로 이 험한 트럭 스탑을 걸어 들어오고 있을까?

이런 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옷차림으로 보아 한국 여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 들 쯤이었다. 그들은 내 트럭을 향하여 정면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내 트럭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누굴까? 혹시 내가 아는 얼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든 기억을 되살려봤지만 내가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뉴욕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울프님이시지요?”

“......”

순간적으로 할 말을 찾아내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비단 한국말을 해서가 아니다.

지금 이 시간, 여기 뉴욕의 어느 트럭 스탑에 내가 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런데 모르는 여인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내 이름을 부르다니... 기절초풍할 일이란 바로 이런 때를 말하는 것이리라.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다.

“예 그렇습니다만…”

허공에 뜬 내 목소리에는 한국 여인을 만난 반가움보다는 도대체 누굴까? 하는 의심이 잔뜩 묻어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대학교 때 본 ‘사랑 만들기’라는 한국영화에 나온 여주인공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 여인이 바로 그 여주인공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트럭에서 내려와 그녀와 마주 섰다. 그녀의 키는 트럭에서 볼 때보다 훨씬 컸다. 나보다도 더 큰 키에 몸매 또한 날씬했다. 정말로 일류모델이나 영화배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M을 아시지요?” 또 한 번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그때서야 이 여인에 관한 의문 조각들을 짜 맞출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다

“아, 그러면 그 M의 친구 분….?”

나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M과 이 아름다운 여인을 친구로 연결시키기에는 뭔가 어색하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감을 느낀 것이다.

“그이가 그렇게 말했나요?”

“몇 년 전에 M과 함께 뉴욕에 왔을 때 친구 만났다고 했는데…”

그 친구가 여자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꺼낼 수 없었다. 그녀는 가벼운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그이로부터 울프님 이름을 들어서 알고 있고 또 처음 그가 왔을 때 트럭 스탑 저쪽 멀리서 울프님을 잠깐 보았었습니다. 트럭이 독특한 연두색이라 기억에 남았지요. 물론 울프님은 저를 못 보셨겠지만….”

M과 함께 여기 온 지가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내 머릿속은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가 M을 그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그냥 친구사이는 아니다. 그럼 뭐지?

“그이의 소식이 궁금해서 울프님을 만나려고 기다렸어요. 매일 저녁마다 여기 트럭 스탑에 와서 울프님 트럭이 있나 살펴보곤 했어요.”

“그러셨어요?” 나는 놀란 듯이 대답했다.

“예, 마침내 오늘 만나 뵙게 됐네요.”

“아! 그랬군요!…”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녀도 계면쩍었는지 손을 잡고 있는 어린 꼬마 아가씨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소은아,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아빠 친구 분이셔.”

“안녕?”

두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이는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나에게 인사했다.

“그래 안녕, 아주 예쁘구나!”

엉겁결에 대답하는 내 머릿속에는 ‘아빠 친구’라는 단어가 강렬하게 들어와 박혔다. M이 이 여자아이의 ‘아빠’라면 캐나다에 있는 M의 와이프와 두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내가 아는 M을 생각하면 절대 그럴 수 없다. 내가 아는 M은 정직하고 고지식하다.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울 그런 타입의 남자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는 M을 그이라고 부르는 여인과 M을 아빠라고 하는 딸이 있다. 오랜 세월을 알고 지내온 친구 M의 진면목은 어떤 사람일까? 갑자기 그가 모르는 타인처럼 여겨졌다. M은 키가 작고 그저 평범한 보통 남자이다. 이 영화배우처럼 아름답게 생긴 이 여인과 전혀 격이 달라 보여 어울리지 않는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이 여자가 나를 놀리는 것인가도 의심해 보았지만 처음 보는 나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 진정 M은 지난 3년 동안 캐나다에서 뉴욕을 오가며 이중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실로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캐나다에는 두 자녀와 아내를 두고 뉴욕에는 이 여인과 그리고 어린 딸 소은의 아빠였다니….

“사실은 그이가 한 달 또는 두 달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왔었는데 한 6개월쯤 전부터 한 번도 오지 않고 연락도 없어서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했어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에 나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레스토랑 안으로 안내하였다. 트럭 스탑 안의 레스토랑 테이블에서 마주 앉은 모녀를 앞에 두고 나는 적절한 핑계를 찾느라고 궁리하고 있었다. 나의 애간장이 타들어가는 심지처럼 뜨거워진 것을 모르는 듯, 그녀는 그녀의 이야기를 독백하듯 풀어놓았다.

“그이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매력적인 미소를 가진 남자였습니다.”

 

 

E 대학의 5월 축제에 선배의 권유로 가게 된 M은 선배의 여자 친구로부터 H를 소개받았다. 물론 5월 축제의 파트너를 위한 일시적인 만남이었다.

대학교 앞 커피숍에서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M은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로 이 여자다. 막연히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이상형의 여자가 눈앞의 현실로 나타났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첫 느낌으로 알 수 있다는 뜻이다.

토끼같이 큰 눈에 까만 눈동자, 도톰하고 붉은 입술, 숨이 콱 막힐 정도의 아름다운 그녀의 미모는 M을 그 자리에 얼어붙게 했다. 키도 커서 같이 옆에 서 있으면 한 뼘 정도 차이가 나는 완벽한 몸매를 가졌다. 키만큼이나 성격도 활발하고 순수하며 집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여자였고,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여대생답게 세련되고 우아한 자태를 지녔다.

M은 그녀를 위해서라면 지옥의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수 있고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시작된 만남이 사랑이 되어 둘의 교제는 1년 넘게 이어졌다. 그야말로 M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의 생활은 그녀를 위해서만 존재하였다. 첫사랑, 그 달콤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M은 강의가 일찍 끝나는 날은 E 대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론 그녀가 J 대 앞에서 기다리고. 둘의 만남은 365일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이 매일 이루어졌다.

영화도 보고, 공원에도 가고 음악 감상실에서 온종일 파묻혀 있기도 했다.

둘이 함께 거리를 걸으면 그들을 다시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단연 영화배우 또는 모델 같은 H의 눈부신 미모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매력이 넘쳤다. 그녀의 돋보이는 아름다움은 특출한 것 없는 평범한 M에 비하여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M은 사랑이 비극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불같은 사랑은 눈을 멀게 하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였는지, 혹은 둘 다 순진한 탓이었는지 불쑥 H의 집에 찾아갔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사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면…으윽!”

M은 말을 미처 끝내지 못하고 가슴을 움켜쥔 채로 뒤로 벌렁 나뒹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소파에서 달려 나와 M의 앞가슴을 걷어찼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발길질 했다.

“감히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아직 어린 내 딸을 유혹해?”

사정없이 휘두르는 발길질과 주먹에 M은 정신의 반은 잃었다. 아픔보다도 사랑하는 그녀의 아버지가 이런 폭력을 행사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한 충격이었다. 그녀는 쓰러져 있는 M을 온몸으로 감싸고 울부짖었다. M과 그녀는 한 덩어리가 돼 바닥에 구르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말렸다. 그녀도 울고 엄마도 울었다. 입술이 터져 피가 나고 뺨은 벌겋게 부풀었고 온몸이 아프고 첫 발길질에 맞은 가슴이 저려와 제대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가장 아프게 멍든 곳은 그의 가슴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행동에 아픔을 느낄 정신이 없었다. 어머니가 M의 손을 잡아끌었다.

“학생, 빨리 가! 더 있다가는 큰일 나겠네. 어서 가게!”

M은 엉금엉금 기었다. 어머니가 끌고 H가 부축하였지만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이럴 수는 없는 거야!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밤하늘의 허공에 대고 외쳤다. 사랑하는 그녀가 갑자기 아득하게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우리 사랑이 이루어 질 수 있을까? 그동안 함께 꿈꾸어 왔던 미래의 행복이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순간이었다. 그의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몸에 멍든 상처보다 더 큰 아픔이 밀려왔다. 그리고는 어두운 밤 골목을 비틀거리며 한발 한발 걸어 나왔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쳤다.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너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다. 어차피 나는 너에게 어울리지도 않는다. 부디 행복해다오!' 그는 그녀에게서 한발 한발 멀어지고 있었다.

이날이 그녀와 M이 만난 마지막 날이었다. 그 후 둘은 다시 만나는 일이 없었다. 20년이 지나도록…. 세월이 흐르면 잊히겠지만 사랑했던 두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변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M에게는 아픔의 시간이 계속됐다.

그리움이 밀물처럼 밀려오면 보고 싶고 괴로워서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달려가 아무도 모르는 먼 곳으로 도망가서 살자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 아버지의 화난 얼굴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용기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녀를 포기한 것이 그녀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기도 했다. 그녀는 아름답고 E대생이고 또한 화려한 가문의 외동딸이다. 당연히 M 자신보다도 훨씬 훌륭하고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다. M은 특별히 잘난 것 없는 2류대 학생에다가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집안의 아들이다.

‘그래 그녀의 행복을 위해 미련을 버리자’

스스로 그녀를 잊자고 다짐하고 노력했지만 한번 깊게 난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이라도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집 앞 골목에 숨어서 행여 그녀를 볼 수 있을까 서성대기도 했다. 끝내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볼 수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아픔은 이어졌지만, 졸업 후에 고향으로 내려가 제약회사에 취직하고 고향처녀와 결혼을 하고 나니 젊은 날의 추억이라고 부를 만큼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마음 한구석에 늘 그녀의 소식이 궁금했지만, 상처가 다시 깊어질까 봐 참고 지낸 세월이었고 과연 세월은 놀라운 치유력을 가졌다. 삶이 바쁘고 두 자녀를 낳아 키우다 보니 그녀를 거의 잊고 살아갈 수 있었다.

몇 년 후, IMF 경제 위기가 닥치자 M은 가족을 데리고 캐나다에 독립이민을 떠났다. 부부가 편의점 알바로 일을 시작하여 매니저로 경험을 쌓고 토론토 근교의 조그만 마을의 편의점을 구입하여 운영하며 열심히 살았다. 이제 큰아들이 대학에 다니고 딸은 고등학생이다. 이민 생활 10여 년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물론 H에 대한 추억은 깊게 묻어 둔 기억 속에서 점점 퇴색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교 때 같이 하숙했던 선배와 연락이 닿아 이메일을 주고받던 중 그녀의 소식을 얼핏 들었다. 그 소식은 M에게는 충격이었다. 20년이 지났으니 지금쯤은 그녀도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서 가정을 꾸미고 잘 살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이혼한 후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그것도 여기 토론토에서 10시간이면 갈 수 있는 뉴욕에 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불현듯 옛날 첫사랑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그의 가슴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때 그녀를 포기한 것을 후회했다. 끝까지 그녀를 지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녀를 포기하면 다른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 줄 알았다.

지금이라도 그녀를 행복하게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지금의 아내도 사랑한다. 착하고 마음씨까지 고운 아내다. 여기 캐나다까지 와 편의점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손이 터지도록 함께 고생한 조강지처인데 저버릴 수가 없다. 두 자녀도 이제 다 컸다. 지난여름 캠핑 때 트럭 운전하는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북미를 2주일씩 돌아다니는데 가끔 뉴욕도 간다고 했다. 만약 트럭 운전을 해서 뉴욕을 가게 되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지금의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만나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없지만 만나야겠다는 열망이 활활 불타오르듯 솟아올랐다.

 

“여기까지가 그이가 제게 말해 준 전부예요.”

그녀는 이미 잠이 든 소은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독백하듯이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마지막 그날 이후 저는 6개월 동안 꼼짝 못 하고 집에 갇혀 있었어요.”

그녀는 이미 식어버린 커피잔을 어루만지며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계속했다. “물론 대학교도 1년간 휴학해야 했지요, 그때는 아버지를 거역할 수 없었어요, 제가 19살이었네요… 한 번도 연락 없는 M 씨가 야속하기도 하였지만, 그이도 어쩔 수 없었겠지요.”

“그럼, 그 후 결혼은 하셨나요?”

“물론, 했지요. 아버지가 정해준 그 의사 남자와.”

그녀는 말을 중단하고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지만 3일 만에 끝나버린 아주 짧은 결혼이었습니다."

“네에?”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3일 만에 끝나다니요? 어떻게?”

그녀는 잠든 소은이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운명이지요, 결혼식 끝나고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갔는데 셋째 날 밤에 남편이 고백했어요. 사실은 그 사람도 오랫동안 사귀던 여자가 있었고 그녀와 사이에 이미 한 살짜리 아들이 있답니다. 하지만 집안에서 결혼은 반대했고 그의 부모가 그녀를 회유하고 협박하고 달래서 헤어지기로 하고 저와 결혼식을 올린 거랍니다. 물론 그 여자에게 금전적으로 충분히 보상을 해 줬답니다. 그 여자는 우리의 결혼식 날에도 아기를 안고 왔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못 봤지만…, 그 여자의 심정이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 자리에서 그이에게 그녀에게 돌아가라고 말하고, 혼자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양쪽 집이 한바탕 난리가 났었죠, 나로 인해 또 다른 여자가 불행해진다고 생각하니 평생 그 고통을 참고 살 자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저는 첼로 유학을 핑계 삼아 미국 필라델피아로 왔습니다. 그 후 뉴욕으로 와서 첼로 개인지도를 하면서 살고 있었어요.”

“그럼 M을 다시 만난 것은 그러니까…….”

“예 맞아요. 그이와 다시 만난 것은 바로 3년 전에 울프님하고 함께 트럭 스탑에 온 날이었습니다. 실로 20여년 만에 재회였습니다.”

“그럼 M이 결혼했고 두 자녀가 있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네, 어렴풋이 짐작으로만 알고 있어요. M 씨는 토론토 가족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꺼낸 적이 없었어요, 저 역시 물어보지 않았고요. 과거는 과거이고 현실은 현실이잖아요, 또 나 때문에 M 씨의 가정에 무슨 일이 생기기를 바라지 않았고요.

다만 M 씨는 나와 헤어진 것을 몹시 후회하고 또 내가 결혼에 실패하고 혼자 있는 것에 대해 굉장한 자책감을 가지고 있는 눈치였어요. 뉴욕에 오면 하루 이틀씩 머물게 되는데 저를 기쁘게 해주려고 무척 노력하였어요. 아마도 제가 이렇게 된 것이 본인 탓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보상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사실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그이가 오면 저도 즐겁고 행복하였어요. 다만 토론토에 있는 그이 아내와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감도 있었지만, 그이의 가정을 깨트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답니다. 그냥 그이가 가끔 와주는 것만으로도 저는 기쁘고 행복했어요. 그만 임신을 했고 저는 낳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제 그냥 혼자 살아가고 싶어요. 아이가 있으니까요. 아세요? M 씨의 이름 중간 글자와 제 이름을 마지막 자를 따서 소은이라고 이름 지어 준거예요.”

“아 그래서 소은이군요. 소은이가 엄마 닮아서 아주 예뻐요.”

내 말에 그녀는 처음으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머 벌써 시간이 늦었네요, 내일 또 운전하셔야 할 텐데 제가 너무 오래 이야기하였네요.”

“아니 괜찮습니다. 항상 늦게 자니까…, 저를 어렵게 만나셨는데 도리어 제가 미안합니다."

“저는 M 씨의 전화번호도 모르고, 주소도 모르고 있었어요. 항상 그이가 전화했고 또 뉴욕에는 한 달에 한 번씩은 왔었는데 최근 여러 달 동안 전화도 없고 한 번도 오지를 않아서 무슨 일이 있는가. 궁금했어요. 달리 연락할 방법이 없고 M 씨가 뉴욕에 오면 항상 여기에 트럭을 세워두니까 매일 매일 밤마다 한 번씩 와서 기다렸어요. 울프님도 여기 트럭 스탑에 가끔 오신다고 해서 혹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오늘 정말 울프님을 만나게 된 거죠.”

“정말로 M의 소식을 모르세요?”

내 말에 그녀가 놀랐는지 두 눈망울이 커졌다. 그냥 보아도 슬픔이 뚝뚝 묻어나올 듯한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의아스러움의 빛이 스쳤다.

이미 6개월 전에 사고를 당한 M의 소식을 내게 묻다니 정말 M의 사고 소식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그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 그녀의 검은 눈썹꼬리가 가늘게 올라갔다.”

“사고가 있었습니다. 한 6개월 전에.”

“네에? 뭐라고요? 어떻게?... 그이는?”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그녀는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M은 그 사고로 죽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불쑥 내뱉은 내 자신을 후회했다. 그녀는 숨을 반 호흡 짤막하게 들이키다 그대로 멈추었다. 내 얼굴에서 거짓말이라는 표정을 찾아보듯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녀가 그이라고 부르는, 그리고 딸의 아빠라고 하는 남자의 죽음의 소식을 모르고 있다가 처음 만난 나에게로부터 들어야 하는 그녀의 심정은 내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다만 그 흐느낌의 시간이 억겁처럼 길게만 느껴지고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고개 숙인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천천히 올라왔다 내려가면서 울음을 삼키는 그녀의 아픔만 바라보았다.

 

6개월 전, 끔찍한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망연자실했다. 정말로 세상이 허무했다.

뉴스에 따르면, 그가 하이웨이에서 고속으로 달리던 중, 그의 트럭이 갑자기 중심을 잃고 흔들리다가 왼쪽으로 급회전해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다시 돌아서 오른쪽 하이웨이 밖으로 돌진하여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져 뒤집힌 채 처박혀 M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목격자들은 하이웨이에서 과속으로 질주하던 스포츠카가 갑자기 트럭 앞으로 끼어들자 이를 피하려다 사고가 난 것이라고 증언하였고, 또한 주위에 차들을 부딪치지 않으려고 길 밖으로 핸들을 돌린 것 같다고 부언했다. 만약 그가 길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면 수십 대의 차량이 충돌하는 대형사고가 날 뻔했다고 하며 그의 희생이 여러 명의 목숨을 구한 영웅적인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슬픈 소식은 한동안 트럭운전에 대하여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

 

그녀의 소리 없는 흐느낌은 가슴이 시리도록 슬픈 아픔으로 저며 왔다. 목 놓아 통곡해도 서러울 텐데 울음을 삼키는 그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그 슬픔의 깊이를 감히 상상조차 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가 지금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M의 죽음을 전해 준 죄인으로 함께 슬퍼해 줄 일밖에 없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 다시 침묵의 시간이 그만큼 흐르고 나서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에 눈시울이 발갛게 부어오른 그녀는 여리고 힘없는 토끼처럼 보였다.

“M의 일은 정말 안 됐습니다. 저 때문입니다. 제가 아니었으면 그이가 트럭운전을 하지 않았을 텐데...... 제 잘못입니다.”

“아니요 울프님 잘못이 아닙니다. 제가, 제가 그 날 그렇게......”

그녀는 말을 마치지 않고 소은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하얀 손이 가냘프게 떨고 있었다. 나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빈 커피잔만 만지작거렸다.

“가봐야겠어요. 이제.” 그녀의 슬픈 얼굴이 조명에 더 하얗게 보였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소용없는 질문 같아 그만두었다.

“소은아, 일어나! 집에 가야지, 옳지! 소은이 예쁘지, 일어나.” 소은이는 잠깐 눈을 뜨더니 다시 스르르 감고 잠들어 버린다. 그녀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소은이를 품에 안아 올렸다.

“차까지 제가 안아다 드릴까요?”

“그래 주시겠어요? 고맙습니다."

나는 소은이를 받아 안았다. 나도 어린아이를 안아본 지가 오래되었다고 생각했다. M의 입장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내가 바로 M이라면 심정이 어떠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레스토랑을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 그녀가 종이쪽지에 전화번호를 적어 내게 건넸다.

“혹시, 뉴욕에 또 오시거든 한번 전화 주세요."

“그러지요.” 대답은 하였지만 내가 전화할 특별한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안녕히…” 그녀의 승용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 가로등 사이 길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하염없이 서 있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있구나! 수많은 사랑 이야기가 있지만 이들처럼 애처로운 경우가 있을까? 20년 전에 잃어버린 첫사랑이 재회의 기쁨으로 맺어졌고 그 행복한 순간도 잠깐, 이제는 전보다 더 큰 아픔으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저 여인의 뒷모습은 내 가슴속에 뚜렷하게 각인 되었다.

 

그 누구를 원망하랴? 도대체 첫사랑이 무엇이기에?

사랑의 기쁨을 모르는 내가 사랑의 아픔을 어찌 알 수 있으리오.

끝나지 않은 첫사랑은 비극이다.

그 누가 말하였는가? 첫사랑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노라고.

사랑의 아픔을 모르면 사랑의 기쁨도 모른다.

한 번도 사랑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여 사랑을 말하지 마라.

죽도록 사랑하는 이들을 비련이라고 부르지 마라.

그들에게는 이별마저도 사랑의 환희였다.

 

세월이 흐르면 기억은 퇴색된다. 기억을 그리워해야 추억으로 남는다. 인간은 망각이라는 편리한 본성을 가졌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리움으로 남은 일을 잊겠는가? 나는 해보지도 못한 첫사랑이 내 가슴 속에 시리도록 깊은 아픔으로 새겨졌다.

 

이것이 3년 전에 트럭 스탑에서 만났던 모녀의 애절한 이야기였고 뉴스에서 ‘뉴욕 모녀 자살’ 제목을 본 순간 그 아픔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어린 딸을 질식사시키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머리맡에 ‘사랑한다. 엄마가’ 쪽지 남겨….‘

활자를 읽는데 손이 떨렸다.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던 홍 씨는….’

뉴스를 천천히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무엇인가 잘못된 내용이기를 바라면서 내가 만났던 그 예쁜 소은이가 아니라는 증거를 찾기라도 하듯이 읽고 또 읽었다.

나는 그녀의 성도 이름도 모른다. 다만 그녀가 딸에게 하던 말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소은아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아빠 친구분이셔.’

또박또박한 말씨로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안녕?’ 인사하던 예쁜 여자애였다.

이름이 나와 있지 않으니 내가 만난 소은이와 그 엄마가 아닐 수도 있거나, 또는 잘못된 보도일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어 보지만 불안한 예감은 내 심장을 박동을 따라 빠르게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가고 있었다.

뉴욕의 트럭 스탑에서 처음 만나 M의 죽음 소식을 전해 줄 때 소은이를 안고 허물어지듯 절망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한 번도 절절한 첫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라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그렇게 만났던 그녀가 딸과 함께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거로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리며 불안이 엄습해 왔다.

‘혹시 뉴욕에 오시거든 전화 한번 주세요.’ 그녀가 내게 쪽지를 건네며 한 마지막 말이었다. 그 후 여러 차례 뉴욕을 갔으면서도 나는 왜 한 번도 그녀에게 전화하지 않았을까? 내가 만약 그녀에게 전화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을까?

1년 전에 받은 쪽지가 지금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고 어떻게든 연락처를 수소문해봐야 한다. 뉴욕에 한국인이 몇십만 명이 넘을 텐데 이름도 모르고 전화도 모르고 주소도 모르니 어떻게 찾아야 할지 참으로 한심하고 암담한 일이었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내기 위하여 차근차근 기억을 되새겨 봤다.

필라델피아 유학, 첼로! 그래 바로 이거다! 첼로 개인지도 광고를 찾아보는 거야. 그리고 중간 이름이 ‘소‘자를 찾는 거야. 딸 소은이라는 이름이 M과 그녀의 이름 중간글자를 따서 지었다고 했으니까.

뉴욕 한인 업소록에서 마침내 비슷한 이름의 전화번호를 하나 찾아냈다. 과연 그녀가 맞을까? 혹시 받지 않으면 어떡하나? 아니 받으면 또 뭐라고 말할까? 천심 만고 생각의 갈래는 끝없이 이어졌다.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서 떨리는 마음으로 다이얼을 돌렸다.

“여보세요“ 어린 여자아이의 또렷한 음성이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 왔다.

“소은이?”

“예, 저는 소은인데요, 누구세요?” 또박또박 맑은 목소리였다.

“음......, 엄마 친구.“

차마 아빠 친구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심장을 무겁게 짓누르던 불안과 초조감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무거운 짐을 한시름 내려놓는 안도감으로 충만했다. 그리고 그녀가 반가워하는 진심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 번의 전화가 두 번 세 번 이어지고 뉴욕에 갈 때마다 또는 지나칠 때도 전화를 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얼마 후, 나는 트럭회사를 옮겼다. 토론토에서 뉴욕을 전문적으로 왕복하는 트럭 회사로 매주 2회 정기적으로 뉴욕을 가고 이틀은 뉴욕에서 보낸다.

인생의 중반을 훨씬 넘긴 나이에 첫사랑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었다. 짜릿한 긴장감은 삶에 새로운 환희를 주고 황홀함은 세상의 모든 시름과 고난을 잊게 한다. 세상의 그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나만의 비밀을 간직하니 주변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오늘도 나의 트럭은 뉴욕을 향해 바람처럼 달린다. 

라디오에서 흑인 가수 앨리시아 키의 고음의 목소리가 뉴욕의 하늘에 메아리친다.

 

뉴욕~ 뉴욕~ 뉴~~욕

뉴욕에서는 당신이 해낼 수 없는 일이 없어요

뉴욕의 거리는 당신을 새로 태어나게 해 줄 거예요

빛들은 당신에게 영감을 줄 것입니다

여기에서 살아남으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어요

뉴욕~ 뉴욕~ 뉴~~욕

 

 

뉴욕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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