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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술의 르네상스는? [권두 시론]  | 청사 비평 칼럼
12/14/201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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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시원] 겨울호 <권두시론> 원고


예술의 길, 문학의 희망

-기청(시인, 문예비평가)


르네상스(Renaissance)는 14세기 이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일어난

문예부흥운동이다 예술이 인류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열어준 역사적 사건이다.


예술의 길

먼저 미술(건축 조각)부문에서 시작되어 문학 음악 연극 등 예술전반으로

확산되었다 나중에는 예술뿐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전반의 의식변화를

가져오는 혁신적 신문화운동으로 예술이 인류 역사에 공헌한 크나큰 감동의

시대로 남았다.


하지만 르네상스란 용어는 역설적으로 그리스 로마시대 문화의 부활,

재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왜 그럴까? 진보가 아닌 퇴행이란 말인가?

그런 염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르네상스는 중세 신본주의에 반기를 드는

인간중심의 휴머니즘(humanism) 원동력이 된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예술을 꽃피우고 인간을 인간다운 주체로 만들었다

속박(신이든 권력이든 물질이든)과 절망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의 가치를 실현 한다 그것은 바로 미(美)와

선(善)의 질서가 융합된 완성의 세계다.


걸림 없는 자유, 인간성 회복의 구원(救援)이 르네상스의 본질이다.

한국예술의 르네상스는 언제인가? 그런 일이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토양이 성숙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문화예술

은 독자적 생존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우선 분단이라는 민족적 비극, 이로 인한 이념의 대립, 정치권력에 의한

과도한 간섭, 뿌리 깊은 사회 윤리적 인습. 물질주의에 짓눌린 소외와 패배의식,

이 모든 것은 예술을 비웃는 장애가 되었다 또한 예술계 내부의 장애도

만만치 않았다 대립과 분열, 궁핍과 자괴는 생태계 자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오랜 폐습으로 작용했다.


한국예술의 르네상스

하지만 한국은 그 잠재력을 충분히 가진 위대한 유산을 가지고 있다

신라의 찬란한 불교미술, 신라의 향가, 고려 말에서 조선조 융성기를 거쳐

신문학기 까지 우리문학의 뿌리가 된 시조문학, 판소리 등은 한국적

특성을 지니면서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한국의 르네상스였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시대에 따라 가치기준도 많이 변하고 사회가

냉랭해 졌다 특히 남북 간의 긴장상태가 지속되면서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불안심리가 가중되고 있다 이런 때가 오히려 예술의 진면목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허탈과 절망을 위무하고 재생과 희망의 노래를

예술이 불어넣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상황은 정반대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때맞추어 정치적 변혁기를 맞으면서 물길의 흐름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출렁이고 뒤엎으면서 가치가 충돌하고 대립의 골은 더 깊어만 간다

예술이 이념을 포용할 것인가? 이념이 예술을 혁신할 것인가?


예술의 목적은 궁극적 미의 추구, 선의 추구에 있다 하지만 본질에

벗어난 이념논쟁 대립으로 예술 자체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는 오늘,

실로 참담한 현실이지만 여기서 다시 길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한국 문화예술은 기로에 서 있다 지난 정권의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국정농단과 문화부 수탈공작(?)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간부는 실세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공적 예산은 ‘눈먼 돈‘이 되어

도적의 곳간을 채워주는 사금고가 되었다.


이제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폐허가 된 ‘난장판‘을 수습해야하는

새 정부는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아래 과거지우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니 문예 진흥 이라는 과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문화시계는 멈추었다

북핵 위기까지 생존을 위협하는, 시계제로의 암초를 만나 또 한 번의

빙하기에 접어든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문학의 길

지금까지 한국문학은 미완의 문학, 분단 갈등 저항 부정의 문학 이었다

이제 진정한 본질의 문학,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 공생 평화 자유를

추구하는 완성의 문학으로 가야한다.


문학의 길은 우선 문학이 예술인가? 하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요즘 세태는 문학은 교양이요 예술 범주에 못 들어간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문학이 다른 장르 예술에 비해 푸대접 받고 있는

현실을 잘 반영하는 의미도 포함된 듯하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문학이 예술의 반열에 서려면 몇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한다 그것은 영감(靈感) 혹은 깊은 사유(思惟)에서 출발하고

상상력 독창성의 과정을 거쳐 독자성, 종국의 자유로 완성되어야 한다.


그런 아픔의 산고를 겪지 않고 손끝에서 습관적으로 쓰여 지는 글을

문학이라 우길 수 없다 비평가나 독자의 눈치를 보지 말고 스스로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래야 진정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문학창작활동이 노동인가? 하는 문제에 진지한 접근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직업선택권과 행복추구권이 있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하지만 그런 기본권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곳이 문단이 아닌가 한다.


가정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해서도 법적 노동개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문단은 어떤가? 창작활동은 피를 말리는 고도의

정신활동이다 때문에 그 결과물이 창작품인 이상 그 과정의 노력은

분명 노동이다 그런데 법적 개념의 노동으로 인정하느냐의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작품 활동으로 최소한의 생계를 해결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무노동 무임금’이란 말이 있지만 ‘유노동 무임금’이란

불합리가 상식이 되어버린 사각지대가 바로 문단이다

때문에 생존권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고 적정 문화예산의 확보가 시급하지만

정부는 그 심각성을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지원의 기술

지원을 하는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지원의 궁극목표는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돕고 예술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있다

그런데 자칫 지원이란 명분으로 자긍심을 오히려 뭉개는 그런

무례행위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문화기관의 지원체계를 보면 문화부 문화예술위원회 예술인복지재단

시도 문화재단 등으로 다원화 되어있는 문화기관의 특성 때문에 오히려

손발이 맞지 않는 경우를 본다.

특히 시도 문화재단의 경우 지원은 문화예술위원회에서, 감독권은

지방자치단체에 있기 때문에 공정성 위반이나 심각한

문제가 생겨도 제대로 감사 시정 무효화 회수 등 행정조치를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오히려 책임회피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있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법적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지원대상인 예술인의 지위문제다 예술인은 문화기관의

고객에 불과하다 기관이 갑이라면 예술인은 을의 지위다

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을은 마음대로 조작 가능한 것이다

공정성 문제는 약방에 감초지만 대책은 늘 임시방편이다

.

지원하되 간섭은 최소화하고 과정의 절차도 간소화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자문해본다 한국예술의 르네상스는 올 것인가?

앞서 지적한 장애가 풀린다면, 반드시 그날은 올 것이다

분단과 분열, 궁핍과 소외, 냉소와 자괴의 빙하가 녹아내리면

훈풍이 불어오고 그 품안 어딘가 희망의 씨앗이 실려 올

것이다.


하지만 그 대로 내버려두면 결코 저 혼자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빙하를 녹이기 위한 아픔이 전제되어야 한다 결연한 의지로

인내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결)







문학, 예술, 르네상스,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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