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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 안영일 화백의 작품세계
11/11/201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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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론>-------------------------------------------------------


  하늘과 물이 만날 때

    When sky meets water

 

     롱비치 뮤지엄 초대전, 안영일 화백의 예술과 삶

 

                                 글: 장소현 (극작가, 시인, 미술평론가)

                                 사진: 김인경


 

물의 화가안영일 화백의 대규모 초대전이 롱비치 뮤지엄(Long Beach Museum of Art)에서 열리고 있다.

LA카운티미술관(LACMA) 한국관에서도 초대전이 열리고 있으므로, 남가주의 주요 뮤지엄 2곳에서 동시에 전시회를 갖고 있는 셈이다. 올해(2017) 봄에는 서울의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니 매우 왕성한 활동이다.

미국 주류사회에서 재조명을 받는 완숙기에 맞은 2의 전성기라는 표현이 썩 잘 어울리는 활동상이다. 화가로서의 절정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생전에 미국의 유수 뮤지엄에서 대규모 초대전을 가진 한국 화가는 많지 않다. 백남준, 이우환 정도이고, 서부지역의 작가로는 안영일 화백이 유일할 것이다.


 

하늘과 물이 만날 때(When sky meets water)’라는 시적(詩的)인 제목이 붙은 롱비치 뮤지엄 초대전은 안 화백의 대표작인 <> 시리즈 최신작들을 중심으로, <캘리포니아> <뮤지션> <하버> 시리즈 등 오랫동안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48점의 작품으로 꾸며져, 화가 안영일의 작품세계를 전반적으로 골고루 감상할 수 있는 귀한 기회다.

최근에 완성한 500호 크기의 대작부터 소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이 롱비치 뮤지엄 1층과 2층의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특히 <> 시리즈의 다양한 작품들은 영롱한 빛을 발하며 바닷가에 자리 잡은 뮤지엄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뮤지엄 측은 이번 전시를 위해 파격적으로 전시공간을 할애하고, 많은 정성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뮤지엄에서 한 작가에게 50여 점을 전시할 수 있도록 공간을 할애하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라고 한다.

롱비치 뮤지엄 초대 전시회는 내년(2018) 128일까지 이어지고, LACMA 초대전은 내년 122일까지 전시된다.

롱비치 뮤지엄의 위치는 2300 E Ocean Blvd, Long Beach



 

최근 들어 안영일 화백 작품이 재조명되면서 LA의 주요 뮤지엄들이 안영일 화백의 전시를 유치하는 분위기에 맞춰 <LA타임스>116일자 캘린더 1면을 할애하여 안영일의 작품과 전시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다.

롱비치 뮤지엄 초대전에 즈음하여 안영일 작품세계를 폭넓게 소개하는 도록(圖錄)도 발간되었고, 안영일 화백의 예술세계와 인생을 오롯이 보여주는 고백이자, 그의 작품을 바르게 이해하는 친절한 안내서이기도 한 <오늘도 그림이 내게로 온다>도 발간되었다.



 

고난을 극복하고

안영일 화백은 한인사회보다 미국 주류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예술가다.

이름 앞에 최초’ ‘유일등의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실력을 보여온 그는 10대의 어린 나이에 국전 특선이라는 기록을 세워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1957년에 미국에서 초대 개인전을 열었으니, 아마도 미국에서 제대로 된 개인전을 가진 최초의 한인화가일 것이다.

또한 지난 20022005년에는 미국 정부가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를 선정하여 임명하는 미술 대사(大使)’로 임명되어, 비엔나 주재 미국대사관에 작품을 전시하는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의 미술 대사로 뽑힌 한인작가는 안영일 화백이 유일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온 그는 오랜 동안 미국 유명 화랑의 전속화가로 활동하며, 거의 해마다 개인전을 갖는 왕성한 활동으로 미국사회에 이름을 알렸다.


이처럼 미국에서 청년화가로 각광을 받던 시절을 거쳐, 뜻하지 않게 휘말린 소송과 큰 병 등으로 겪은 고난을 극복하고, <> 시리즈로 새롭게 조명을 받으며 창작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정열적으로 작품에 전념하고 있는 안영일 화백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옛 성인들의 가르침대로 좋은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안영일의 바다, 그리고 음악

널리 알려진 대로 안영일 화백의 대표작은 <> 시리즈다. 물의 출렁임은 곧 음악이다. 안영일 화백의 <> 시리즈 대작들을 보면 커다란 화면이 음악으로 가득 차 출렁인다.


한국에서 온 젊은 화가가 있었다. 장래가 촉망되는 작가였지만 타국땅에서 홀로 외로웠다. 그는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으로 바다를 자주 찾았다. 그림과 음악을 빼고 그의 유일한 취미는 바다낚시다. 살아 출렁이는 물을 보러, 파도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러 바다로 가는 것이다.

고향땅과 이어져 있는 태평양 바다! 거기서 그는 바다가 연주하는 거대한 빛의 음악을 들었다. 그 음악은 자신의 핏속에 진하게 스며있는 음악을 깨워 일으켰다. 음악!


안영일 화백의 음악성은 타고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미쳐, 늘 음악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클라리넷, 피아노 등 몇 가지 악기는 직접 연주도 한다. 그런 음악사랑이 자연스럽게 화면을 지배하면서 공간으로 재해석된 또 하나의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작가를 재조명하여 유명하게 만들어준 <> 시리즈가 탄생한 배경을 설명한 글은 매우 인상적이다.

모든 것을 잃고 막막하고 캄캄하던 시절, 태평양 바다의 반짝이는 물결이 작가를 수렁에서 건져주었고, 빛나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는 사연마치 우리 인생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 시리즈에 대해 작가는 내가 이걸 그리기 위해 지금까지 화가로 살았나 생각하며필생의 작업을 끌어냈다고 회고한다.


나는 한없이 겸허해져서 떨리는 마음으로 순간순간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바다의 신비로운 모습을 가슴속 깊이 새겨 넣었다. 그날부터 바다는 내 속에 살고 있었고, 나는 바다의 일부가 되었다.”

안영일의 <> 시리즈는 이렇게 태어나, 지금까지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물은 곧 음악이요 철학이다.

 

그는 열심히 바다가 연주하는 장엄한 음악을 화폭에 담는다. 아무리 그리고 또 그려도 지치지 않는다.

안영일 화백이 추구하는 작품세계의 핵심은 음악성, 즉 신의 목소리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창작생활 내내 우직스러울 정도로 일관되게 음악성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을 한마디로 집약하면 그림을 듣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그의 그림은 보면서 동시에 들어야 한다, 캔버스 가득 펼쳐지는 음악이기 때문에.



 

미술과 음악

그림을 통한 음악성의 추구는 곧 예술과 인간 근본에 대한 동경이다.

모든 예술을 음악의 세계를 동경한다.”

쇼펜하우어의 말은 음악은 다른 예술과는 달리 바로 가슴으로 전달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가장 순수하고 높은 경지라는 설명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어딘가 모자란다.

동양에서는 한걸음 더 나가 음악을 우주의 근본으로 여겼다. 나라와 천하가 망하려들면 음악이 먼저 썩는다고 <시경(詩經)>은 가르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에 나타나는 우주와 인간 사이의 관계입니다. 따라서 음악이 썩었을 때 정치를 쇄신하기 이전에 옛 성인들은 먼저 음악을 다시 고쳤습니다.”-김지하의 <율려> 중에서

역사적으로 음악과 미술은 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해왔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늘 음악적인 미술, 미술 같은 음악이 있어왔다. 서양에서는 작곡가 드뷔시나 화가 칸딘스키 등등의 많은 예술가들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동양에서는 훨씬 근본적이고 적극적이다. 그림 속에 노래가 있다(畵中有詩)는 말로 요약되듯 제대로 된 그림은 곧 노래요, 좋은 음악에는 한 폭의 그림이 들어있는 법이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음악이 예술의 근본적인 모습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한자 풀이를 해보면 이런 식이다.

미술이라는 낱말의 아름다울 미()자는 양()이 크다()고 풀이된다. 목축시대에는 큰 양, 즉 많은 먹잇감이 곧 아름다운 것이었다. 먹고 사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와 이어져있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신영복 선생의 책에도 나온다. 그 글을 읽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는 글자 그대로 양()자와 대()자의 회의(會意)입니다. 양이 큰 것이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고대인들의 생활에 있어서 양은 생활의 모든 것입니다. 생활의 물질적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고기는 먹고, 그 털과 가죽은 입고 신고, 그 기름은 연료로 사용하고, 그 뼈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한마디로 양은 물질적 토대 그 자체입니다. 그러한 양이 무럭무럭 크는 것을 바라볼 때의 심정이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그 흐뭇한 마음, 안도의 마음이 바로 미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영복 <강의> 4<논어> 중에서

 

이에 비해 음악은 좀 더 신과 가까이 있다.

()자를 풀어보면 해()가 선다()는 뜻이 된다. 해가 뜬다고 풀이해도 될 것이다. 먼 옛날 사람들에게 있어서 해는 곧 신이었다. 태양숭배사상이 그것이다. 물론 지금도 태양은 신앙의 대상일 수 있다.

()은 좀 더 구체적이고 시각적으로 원시신앙과 연결돼 있다. 풀이해보면 나무()에 두 줄기의 흰() ()이 걸려 있는 형상이다. 나무에 흰 천이나 실을 걸친 모습은 원시신앙에서 흔히 나타난다, 성황당 같은 것.

그러니까 음악이라는 낱말에는 해가 뜨는 곳의 나무에 흰 천이 걸려 있다는 뜻이 들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신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형상이다. 이것 역시 내 멋대로의 해석이다.

이렇게 보면 먹고 사는 문제인 미술보다 신의 모습을 기리려는 음악이 예술의 근본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안영일 화백은 이처럼 자연스러운 교류에 그치지 않고, 좀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음악과 미술을 동시에 화면에 담으려 시도한다. 물에서 자연의 음악을 듣고, 그것을 화면에 옮기려는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물의 흐름, 물의 반짝임, 출렁임, 파도의 분노와 격정 등은 곧 음악이요 생명이다. 작가는 그 음악을 통해 인생을 관조한다. 더 적극적으로는 물의 음악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한다. 합일(合一)을 열망한다.

안영일 화백의 대작 중에는 그가 좋아하는 드보르작의 첼로 콘체르토 악보를 캔버스 바탕에 깔고, 반복되는 음악적인 터치로 소리를 그려나간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작가는 계속 그 음악을 들으며, 음악에 흠뻑 젖어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음악과 작가와 그림이 하나가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작품인 것이다.




 

안영일의 작품세계

그동안 발표해온 안영일 화백의 작품 경향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번째는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들의 모습을 음악적인 활달한 필치로 그린 작품들이다.

두 번째는 추상적 화면 구성 가운데 캘리포니아의 해변풍경, 한글이나 탈 또는 미국 국기 등의 구체적인 이미지가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이런 경향의 작품들로는 성조기와 독수리 등의 형상을 통해 9.11 테러에 대한 감정을 담은 작품들이 호평을 받았고, 한글이나 탈 등의 상징으로 조국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표현한 작품들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계열의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 문화적 뿌리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나이가 들고, 외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이 작품의 주제로 떠올랐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큰 줄기를 이루는 것은 작가가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 시리즈를 비롯한 음악적 추상작품들이다.


안영일 화백의 경우 이 세 가지의 서로 다른 경향이 공존하고 있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음악성이라는 공통성이다. 음악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첫 번째 경향의 작품들은 가사가 붙은 가곡 정도가 될 것이고, 두 번째 경향은 주제가 있는 실내악 쯤에 해당하지 않을까?

대작들만 중요한 것은 물론 아니다. 안영일 화백은 전시장에 걸린 크고 작은 작품들이 전체가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커다란 교향곡을 만들어내도록 배치한다. 아름답다. 그래서 관람객들은 작가 안영일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낸 그림을 듣는기쁨에 젖는 것이다.



 

노대가의 뜨거운 목소리

이제 정상에 선 노대가의 뜨거운 목소리는 젊은 작가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것은 미주 한인사회에 주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LACMA나 롱비치 뮤지엄 같은 뮤지엄 초대 전시회는 내가 올라선 산마루의 가장 높은 지점이다. 하지만 산마루에 서고 보니 길은 막다른 곳이 아니고 계속 앞으로 이어져 있다. 그렇게 새로운 여정을 위해 다시 발걸음을 옮겨 놓는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제한에서 해방되어 내가 그림을 그리는 건지 그림이 내가 되는 건지 어느 순간 합일된 듯한 무아의 경지에 이른다, 오늘도 그림이 내게로 온다고 고백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캔버스를 마주한다.

 

나는 늘 시작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거 같았다. 그러나 이제야 겨우 뭔가 보이는 거 같다. 지금부터 정말 그리고 싶은 작품을 해볼 수 있으려나. 계속 변화하고 있는 나의 작업은 멈춤도 없고 완성도 없다. 살아있는 한 나는 매일 다른 그림을 그릴 것이다.”


 

오랜 세월 안영일 화백의 작업을 애정 어린 눈길로 지켜봐온 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글에 공감한다.

“80년 척박한 화가의 인생에도 한꺼번에 단비가 내리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쏟아지는 찬사와 열광에 안영일 화백의 오랜 침묵도 끝났다.

평생 사각의 캔버스가 그의 세상이었다. 그림밖에 모르는 아이처럼 순수한 영혼에서 이제야 말로 삶의 정수가 깃든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가 그림이요, 그림이 곧 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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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일 화백

1934년 개성에서 화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찍부터 천재 소년화가로 불리며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고, 고등학생 시절에 국전에 특선을 차지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1958년 서울미대 졸업 1957년 주한미국대사관 주최 초대전 1959년 시카고 훌 하우스(Hull House) 초대전 1962년 핀랜드 헬싱키 USIS 갤러리 초대전 1966년 서울 프레스 센터 개인전 1971LA 재커리 윌러 갤러리 초대전 1985년 베벌리힐스 아티스트 로프트 갤러리 초대전 1998년 런던 새크빌 갤러리 초대전 2002~2005년 미국 국무부 미술대사(Artist Ambassador)로 선정되어, 오스트리아 비엔나 소재 미국대사관 작품 전시 2015년 롱비치 뮤지엄 초대전 2017년 서울 현대화랑 초대전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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