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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동산에서
05/23/2017 10:33
조회  75   |  추천   1   |  스크랩   0
IP 73.xx.xx.47

 

 

그 옛날에도 진달래꽃은 봄에 피었고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진달래꽃은 봄에 핀다.

세월이 빨리 돌아간다고 해서 진달래꽃이 일월에 피지는 않는다.

까발려진 세상에 누가 소식을 느려터지게 기다리고 있겠느냐만, 진달래꽃이 피기까지는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한 겨울 긴 동면을 겪고 나야 진정한 꽃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꽃은 선택의 자유가 없다.

피고 지는 것도 그렇고 꽃을 피워야할 장소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이 스스로 창조해 가는 것임에 비하면

꽃은 선택되기만을 기다리는 서글픈 운명이다.

그렇다고 꽃에서 서글픈 표정은 읽을 수 없다.

꽃은 선택 받기 위해서 온갖 아양을 다 떤다.

아양 떠는 꽃을 미워할 사람 누가 있겠는가?

 

한번 지고나면 말 짧은 생을 선택의 여신 앞에 불사르고 만다.

아마 불사르는 삶이어서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도 불사르는 삶이 아름답다.

신명나게 타오르는 삶처럼 아름다운 삶이 어디 있겠는가?

꽃처럼 불타는 생을 살다 간 사람들은 모두 아름답다.

 

인간이란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자기의식을 갖춘 존재다.

더욱이 한국인은 마음()을 가진 존재이다.

한국인의 마음은 인()이 핵심을 이룬다.

어질 , 자애로울 , 사랑스러울 인 것이다.

결국, 전통적 인본주의의 계승인데,

불쌍한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 한국인의 마음이다.

 

꽃에도 영혼이 있다.

아니 혼(:)보다는 오로지 영()뿐이다. 영과 백(:형체)이 존재한다.

정신까지야 말할 수 없지만 단순한 영은 존재한다.

산에서 본 진달래꽃은 나를 따라와 내 기억 속에 머물고 있다.

꽃의 영이 고정 되어 있는 영상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는 영상으로

돌아가신 내 어머니와 함께 나타난다.

천경자 화백의 꽃을 든 여인처럼 그렇게 나타나 존재감을 과시한다.

어찌 꽃에게 영이 없다 하겠는가?

 

진달래꽃 잎 따서 먹어본다.

아무 맛도 없다. ()맛이 맛인 진달래꽃을 소년은 많이도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진달래꽃을 혹시나 배부르지 않을까 잔뜩 먹었다.

입술이며 입안이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부케처럼 한 묶음 꺾어들고 집으로 가면서도 먹었다.

꽃으로는 배가 부를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하던 소년.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산에는 진달래꽃 박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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