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huette
san francisco fog(sillhuette)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1.05.2017

전체     67466
오늘방문     7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친구 새글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달력
 
서울 북한산이 죽었다.
10/20/2017 15:58
조회  433   |  추천   9   |  스크랩   0
IP 115.xx.xx.70

 

내가 잠실에서 살다가 생뚱맞은 일산 백석동 오피스텔로 이사하게 된 까닭은

북한산 때문이다.

안 팔리는 새 오피스텔이 있다고 해서 한번 구경이나 해 보자고 갔다가 창문을

통해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바람에 반해버렸다.

즉석에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으로 북한산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북한산은 그대로 있는데 해가 북한산을 등지고 떠오르면서 변화를 보여준다.

태양은 늘 같은 곳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태양이 사계절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북한산의 면모를 다르게 보여준다.

아침 태양을 등지고 앉아 있는 북한산은 봄에 다르고 여름이 지나 가을에 보이는

보습 역시 완연히 다르다. 내가 보는 북한산은 태양이 비치는 뒷면을 바라보는 것이다.

태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서서히 떠오르면 잠에서 깨어나는 북한산은 어둠을

걷어내기 시작한다.

북한산은 늦잠을 즐기는 편이어서 해가 중천에 떠야 그제서 모습을 드러낸다.

태양이 오정을 넘어서면 그때부터 북한산의 위용은 장엄하고 웅장하다.

흰색 치마를 두른 것 같은 백운대 화강암 바위가 자태를 뽑 낼쯤이면 나는 찻잔을 들고

창가에 서서 북한산을 바라본다.

계절에 따라 북한산 어깨 넘어 하늘이 바뀌면서 북한산도 달리 보인다.

창가에 서서 북한산을 바라보며 찻잔을 기우리는 즐거움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행복이다.

늘 북한산이 창밖에 있어서 든든하고 행복했다.

 

내가 처음 북한산을 등반한 때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지금 수원에 사는 친구와 정릉에서 태어나 아직도 그곳에 사는 친구 셋이서 배낭을 메고 북한산에 올랐다.

그때는 등산용구가 없어서 모두 군용이었다. 등산하는 사람도 없어서 북한산이라고 해도 텅텅 비어있었다.

온종일 걸어 북한산에 올라가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잤다. 야영이니만치 밥도 해 먹었다.

그러던 산이 지금은 동네 뒷산 오르듯 오전에 잠깐 올라갔다 내려오는 산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명성은 여전해서 전국에서 몰려온다.

한번은 여인네들 한 패거리가 경상도 사투리를 써대기에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았다.

부산에서 북한산 등반 여행 상품이 있어서 같이들 온 거란다.

그만큼 북한산은 서울에 있지만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산이다.

유구한 역사와 함께 우리 곁에 친숙하게 살아있는 산이 북한산이다.

 

이럭저럭 십 년도 넘게 살았다.

어느 날 Y City가 뿌리를 박더니 하루가 멀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파트를 또 짓는 모양이구나

했다.

한번 뿌리를 내린 Y City는 우후죽순으로 자라나더니 드디어 주상복합 아파트로 그것도 55층 높이로

세워졌다.

죽순이 돋아나면 혼자가 아니고 여럿이듯이 Y City도 한 동도 아닌 다섯 동이나 한꺼번에 세워졌다.

하늘을 찌를 듯 홀로 높이 솟은 아파트 빌딩은 도시 미관상 보기에도 흉측하지만,

그것은 내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다만 그 흉측한 빌딩은 나의 꿈이며 자랑인 북한산 경치를 앗아갔다.

더는 북한산이 보이지 않는다.

내 눈에서 사라진 북한산은 내게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산이 주는 꿈과 희망도 함께 사라졌다.

 

얼마 전에 작은 누님이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면 영영 내 눈에 다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움만 남아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나타나 복장을 찍다가 사라진다.

세월은 늘 변화하는 것이어서 없던 손자들이 태어나 작은 누님의 자리를 대신한다.

새사람은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옛것을 잊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손자들이 지지고 볶는 바람에 헌 세월은 나도 모르게 잊혀져간다.

북한산이 영영 보이지 않는 것은 내게서 죽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찻잔을 들고 창가에 서면 그리움만 더 한다.

꿈과 자랑이 사라진 자리에 아쉬움만 남아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떠오를 때면 Y City

원망스럽다.

가는 세월에 따라 변한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발전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걸 낸들 어찌할 수 없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심금을 괴롭힌다.

오늘도 찻잔을 들고 창가에 서서 마음을 달래다가 멀지 않은 곳에 행주산성이 보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나지막한 동산처럼 보이지만 저것이 행주산성이라는 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위엄 있고 장엄한 북한산이 있는데 그까짓 동산이 눈에 띌 리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북한산은 사라지고 오직 남아 있는 건 동산이나마 행주산성뿐이다.

넓은 벌판에 작으나마 산 모양을 하고 있는 행주산성이 있어서 다행이다.

한번 시간 내서 행주산성에 다녀오면 너도 아름답게 보이리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1 ㆍ 2 ㆍ 3 ㆍ 4 ㆍ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