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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 유리창 하나 사이/고 장영희 교수 Column 
04/21/2018 12:05
조회  103   |  추천   4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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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 유리창 하나 사이


 지난 학기말이었다. 1층 강의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밖에서 유리창을
닦기 시작했다. 스펀지가 달린 막대기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창을 닦다가는 한동안
물끄러미 교실 안을 쳐다보고, 다시 스펀지에 물을 묻혀 창을 닦았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선가 그 사람과 내 눈이 마주쳤다. 스무 살이 갓 넘었을까, 아주 앳돼
보이는 청년이었다. 순간 나는 그 청년이 교실 안 세계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아니, 자기도 다른 학생들처럼 유리창 안쪽에 앉아 있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학회 참석차 파리에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 젊은이를 만난 적이 있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고기를 잡는 외항 선원이었는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배를 탔고 2년 만에
휴가를 얻어 부산에 있는 집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내 직업을 알고 나서 유경만이라는 그 젊은이는 말했다. “대학교 선생님이요? 저는
대학이라는 데를 꼭 가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곳은 죽어라 노력해도 제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세상 같아요.” 사고로 두 손가락이 잘려 나간 손을 내려다보며 그 젊은이는
씁쓸하게 웃었다.


안과 밖…. 물리적으로는 겨우 유리창 하나 사이를 두고 있는 같은 또래 젊은이들이지만,
안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젊은이들과 밖에서 유리창을 닦고 있는 젊은이 세계는 끝없이
멀다. 교실 안을 들여다보는 그 젊은이를 보면서 나는 어렸을 때 읽었던 심훈의 소설
‘상록수’(1935)를 떠올렸다.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은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농촌계몽운동에 참여했다가 서로 동지 겸
연인 사이가 되고, 각기 자신의 고향에서 농촌계몽운동에 헌신하기로 약속한다. 영신은
부녀회를 조직하고 교회 건물을 빌려 아이들을 가르치며 새 학원을 짓기 위해 모금운동을 한다.


그러나 학원 낙성식 날 영신은 맹장염으로 쓰러진다. 영신을 간호한 후에 동혁이 고향에
돌아와 보니 고리대금업을 하는 강기천이 동혁의 동지들을 매수하여 동혁이 각고 끝에
조성해 놓은 농우회 회장이 되고, 농우회관은 강기천 뜻대로 진흥회 회관이 된다. 이에
화가 난 동혁의 여동생이 회관에 방화를 하자 동혁이 대신 잡혀간다.


기독교계 추천으로 도일해서 공부하고 돌아온 영신은 병이 악화된다. 출옥을 해서 동혁이
영신을 찾아가 보니 영신은 애타게 동혁을 찾다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동혁은 영신의
몫까지 다해 농촌계몽운동을 할 것을 다짐하며 슬픔 속에 새로운 각오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이제는 줄거리조차 희미한 작품이지만,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교실로 쓰는 교회 건물이 좁고 낡았으니 학생을 80명만 받으라는 주재소
명령에 따라 영신은 배움에 굶주린 학생들을 억지로 내쫓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무심히 창밖을 내다본 영신은 깜짝 놀란다. 쫓겨난 아이들이 머리만
내밀고 담에 매달려 있는가 하면, 나무에 올라가 교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감격한 영신은 아예 칠판을 밖으로 옮긴다. 그리고 칠판에 커다랗게 적는다.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


나는 지금 외국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밖에서 접하는 나라 안 소식이 하나같이 다 어둡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어린 자식 셋을 데리고 동반 자살한 어머니에 관한 기사다.
무정한 모정에 대한 비난이 혹독하지만, 아마도 두고 가는 자식들도 결국은 자신처럼 ‘안’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절망감이 죽기 싫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를 밀치고 세 살짜리
어린아이까지 안고 뛰어내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끼리 모여 동그랗게 금 그어 놓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밀쳐내며 사는
이 세상에 자식들을 두고 가기가 너무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까마득하게 잊은 작품 중에서
유독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말이 주는 너그러움이,
따뜻함이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너무 낯선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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