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oh43
오금택(peteroh43)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4.23.2018

전체     6805
오늘방문     6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친구 새글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달력
 
남편과 아내의 영원한 청춘
11/11/2018 06:45
조회  363   |  추천   3   |  스크랩   0
IP 73.xx.xx.158


만물이 짝을 찾아 노래하고 날갯짓하는 이 계절우리네 인생도 실은 그렇게 기쁜 봄을 지나 여기 이곳까지 왔을 테지요세월은 흐르고 사람은 속절없이 늙어가지만 남편과 아내의 시간은 언제나 청춘입니다눈길 머무는 곳에 새순이 돋고손길 머무는 곳에 꽃이 피는 영원한 봄입니다.

 

지난밤의 일입니다시각은 자정 무렵딸아이는 잠자리에 들고 남편은 일이 많아 아직 귀가하지 않은 상황이었죠저는 습관처럼 텔레비전을 틀고소리는 낮춘 채별 기대 없이채널을 돌려보기 시작했습니다이런 경우 대개 저의 눈길을 붙잡는 것은 클래식 영화나교양 다큐멘터리인데어제는 전혀 엉뚱한 예능 프로그램에 붙들리고 말았죠이삼십 대 꽃미남 꽃미녀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을 사십대의 제 나이를 잊고 한참을 몰입해서 봤네요.

 

하긴 예전에 모방송사의 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 적이 있긴 합니다남편한테도 전도를 하여한동안 둘이 같이 심야 주전부리를 하며 열혈 시청했었죠그때 우리 나이가 이미 삼십대 중반이었고 운명의 짝을 궁금해 할 일도 더 이상 없었지만미혼 남녀의 화살표 전쟁이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었습니다어쩌면 남편하고 같이 봐서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릅니다하지만 그 프로그램은 얼마 뒤 종영이 되었고우리 부부도 어느새 나이를 이만큼 먹어버렸습니다.

 

서른 몇 살과 마흔 몇 살은 이렇게나 다른 걸까요이제는 젊은이들 웃고 떠드는 모습이 나와는 무관하게 느껴지고선남선녀를 보면 나 자신이 아닌 딸아이를 생각하게 되죠우리 딸은 나중에 어떤 타입이 될까우리 딸의 짝으로 저런 청년은 어떨까하지만 우연찮게 짝짓기 프로그램을 다시 보게 된 어젯밤에 저는 제 마음의 크나큰 동요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예전에는 몰입해서 재미나게 봤다면이번엔 가슴 한편이 싸하도록 부러운 겁니다그들의 젊음이 부럽고그들 앞에 놓여있는 창창한 미래가 부러웠습니다아니더 정확히 말하면시작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너무 부러웠습니다한 공간에 지내며상대방의 눈빛 하나한숨 한 번에 천국과 지옥을 맛보는 남녀그들의 탄성 넘치는 밀당에 저는 몰두하다 못해급기야 눈물을 찍어내고 말았습니다.

 

주책없는 눈물의 이유는 서글픔이었습니다그들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우리 부부의 모습에 가눌 수 없는 슬픔마저 느껴졌습니다남편과 마지막으로 눈빛을 교환한 게 언제였던가스치는 살결에 촉각을 곤두세워본 게 언제였던가남편을 의식해 옷을 고르고나한테 머무는 남편 시선을 느껴본 게 언제였던가그런 것 없이 산 지 몇 년 되는 것 같습니다우리가 짝짓기 프로그램을 보며 열을 내던 시절이 그나마 우리에게 마지막 불씨가 남아있던 시절이었죠.

 

그 뒤로우리는 대부분의 중년부부가 걸어가는 길을 걸어왔습니다차츰 무감각해지며 멀어지는 길세월이 가져오는 부식과 소모에서로에게 저지른 몇 가지 잘못들그리고 쉼 없이 우리를 갉아먹는 현실의 과제들까지...

 

그 버거운 일상 속에서 언젠가부터 우리는 각자의 방을 가지고 각자의 리듬대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싫은 건 아니지만어여쁜 구석도 모르겠는그래서 밀어내지도 끌어당기지도 않고 빙빙 겉도는그렇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터치리스의 길로 접어들었고이제 그 얼음 같은 벽을 깨자면누군가가 총대 메고 먼저 나서야 할 판입니다.

 

하지만둘 중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죠꼭 자존심 때문만은 아닙니다사실 불편할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각자의 영역을 가지고접촉 없이 살아간다는 것그것은 어쩌면 세상 만고에 편한 일이기도 합니다물론 가끔 스스로 묻게 되기는 합니다이대로 건조하게 살아가도 되는 걸까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안 될 게 뭐야?’입니다남편이 저렇게 잘 견디는데 내가 왜 못 견뎌내가 무슨 밝히는 사람도 아니고이렇게 세상 끝까지 간대도 문제없어.

 

사실은남편의 생각을 전혀 모른다는 게 문제입니다남편은 정말 괜찮은 걸까요남편의 속마음을 궁금해 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아파옵니다어쩌면 밖에 애인이라도 있는 걸까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그렇다면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일부러 나를 멀리하는 걸까그렇다면 그건 너무 안 됐습니다그러나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내가 먼저 다가와주길 바라는 걸까정말 그런 걸까?

 

그런 생각 끝에 눈물이 솟았던 것 같습니다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눈물이 마르기 전에 남편이 현관에 들어선 거죠그 바람에 저는 생전 안 하던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남편을 꼭 안고한참을 놔주지 않은 겁니다남편은 저를 목에 매단 채 가방을 던지고양복저고리를 벗어던졌습니다그러나 눈물의 이유는 굳이 묻지 않더군요그리하여 간밤에 우리는 실로 몇 년 만에 한 침대를 썼습니다.

 

내 작은 돌발 행동 하나가 우리를 거기까지 데려갔다니 몇 년의 냉랭하던 세월이 기막힐 뿐입니다그리고 정말 기막히게 좋았던 부분은 속을 터놓고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임을 알았습니다남편은 저에게 다시 방을 합치자고 하더군요저는 물론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래놓고오늘 저는 웃지 못할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각자의 편한 생활을 접고 다시 합치는 게 맞나여러모로 신경 쓰이고 불편할 텐데도로 멀어질 땐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하지만 거듭 생각해도 정답은 예스입니다왜냐하면오늘 하루 제 기분이 구름 위를 걷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아침부터 괜히 짜증내는 사춘기 딸아이를 저는 웃으며 안아줄 수 있었습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욕실에서 요란하게 콧노래를 부르더니식탁에 앉아서는 친정 식구들 소식을 자상하게 묻습니다이렇게도 살 수 있었는데우리는 왜 그렇게 살아왔을까요멀쩡한 우리 부부에게 빠져 있던 단 한 가지그것 없이 산다는 것이 결코 편한 삶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마음으로 깨달아야겠죠. (옮겨 쓴 글)




이 블로그의 인기글
1 ㆍ 2 ㆍ 3 ㆍ 4 ㆍ 5

남편과 아내의 영원한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