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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vs 이란, 그 앙숙의 역사
09/30/201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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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미국을 그토록 싫어하는 이유?





* 말세의 7징조

 유대인들의 고토(이스라엘) 귀환 → 거짓 선지자와 이단 만발(배교) →  제3성전 재건(7년 대환난 시작)

휴거(공중 재림) → 적그리스도와 음녀의 득세(후3년 반, 아마겟돈 전쟁)  메시아 재림(지상 재림) 

최후의 심판



[브래드 브리핑] 김종철 감독이 전하는 이스라엘과 중동 브리핑 Brad TV 주간 뉴스

게시일: 2019. 9. 17.

최근 이란과 미국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오늘이라도 군사 충돌이 일어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미국은 이란과 왜 이렇게 사이가 안 좋을까요?

또 이란은 왜 미국을 그토록 싫어할까요?

오늘 브래드 브리핑에서 살펴보겠습니다.



- 바른 요약해설 -  by Peter Hong

현재의 현재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제정치는 이란과 아주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다. 특히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및 비핵화 요구는 바로 이란의 핵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국과 이란과의 앙숙의 근대사를 반드시 이해해야 미북문제와 남북문제와 한·이스라엘 관계 등의 핵심사안과 그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비록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은 도통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을 테지만...)

 

< 이란의 근대사를 통한 미국과의 갈등의 원인 >

* 무하마드 팔레비 국왕 즉위

19419, 2차 세계대전 당시 부친의 뒤를 이어 이란의 황제로 즉위한 무하마드 레자 팔레비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상황에서 놀랍게도 미국의 편에 서게 된다. 팔레비는 11세에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 4년간 유학하면서 이미 서양문화와 민주주의 교육을 받았기에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 속에서 당연히 미국 편에 설 것을 결정하게 된다.

 

심지어 1948. 5. 14.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했을 때, 이란은 중동에서 유일하게 이스라엘 건국을 승인했다.

 

* 팔레비 VS 모사데크의 정쟁

1951, 이란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로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총리로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팔레비는 엄청난 시련의 길을 걷게 된다.

 

2차 대전 후, 유럽에는 2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유럽국가들은 아랍의 유전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그래서 영국은 자국의 석유회사를 통해 이란에서 원유를 생산해내어 영국으로 석유를 가져갔다.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이란의 모사데크 총리는 원유를 영국에 빼앗기지 말고, 우리가 직접 생산하고 관리하면 이란경제에 훨씬 이득이 될 것이다라고 선언하며, 이란 내 모든 원유를 국유화시키는 작업을 하게 된다. 그래서 영국을 비롯한 모든 유럽국가들은 모사데크에 강력히 반발했지만, 모사데크는 영국의 원유생산 전문가들을 모두 내쫓아버렸다.

 

또한 모사데크는 황제의 권력까지 아주 축소시켜버렸다. 총리제도를 만든 팔레비 황제와 모세데크 총리의 엄청난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결국 이 권력타툼에서 밀린 팔레비는 이탈리아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모사데크가 석유회사를 국유화하다 보니 영국의 숙련된 기술인력이 빠져나가 관련시설들의 운용능력이 크게 하락하면서 경제적 효과를 내지 못하자 국민 여론이 극도로 나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영국은 미국 CIA의 도움을 받아 모사데크 축줄작전을 실시하게 된다. 결국 모사데크는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게 된다.

 

이때 이탈리아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던 팔레비 국왕이 다시 돌아온 다음 팔레비 정권이 제대로 서게 된다. 미국의 절대적 지원 아래 다시 권력을 잡게 된 팔레비는 본격적으로 친미정책을 펼치면서 이때부터 30년간을 통치하게 된다. 그동안 국유화했던 석유회사들을 다시 기업들에게 넘겨주고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개혁을 펼친다

  

* 팔레비의 세속적 사고방식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이란 종교인들

1963, 팔레비는 이란 토지개혁을 감행하면서 이슬람 사원의 토지를 축소했고, 여성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해왔던 이슬람 전통문화에 대항하여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시키고 여성의 참정권을 허락하는 여성해방운동까지 불을 붙였다.

 

팔레비의 이런 정책은 이란의 시아파 성직자들의 지지를 상실하기 시작했고,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과 상인들의 지지도 상실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스라엘 건국지지도 국민들의 큰 반발을 산 원인 중의 하나 되었다. 거기다가 왕실과 지배 엘리트 계층의 부정부패도 이란 국민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그래서 이란 국민들의 팔레비를 향한 반대시위가 형성되었고, 팔레비는 이란의 정부기관이자 비밀경찰인 사바크를 이용해 광범위한 정치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 호메이니의 등장

1978, 이란의 정치범은 최소 2,200명 정도였는데, 이러한 팔레비의 억압정책을 강력히 반대하고 나선 인물이 바로 이란의 시아파 종교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이다.

 

호메이니는 팔레비가 미국과 한편이 되어 미국의 조정을 받으며 이란을 망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란 국민의 정신적 기둥인 이슬람을 허물어뜨리고 있다라고 주장을 하며, “이란을 왕정체제가 아닌 이슬람 체제로 바꿔야 한다라고 외쳤다. 그래서 결국 팔레비는 호메이니를 터키로 강제추방시켜버린다.

 

그 후, 호메이니는 프랑스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이란의 팔레비 반대파를 조종하며 계속하여 팔레비 정부 저항운동을 지속하게 된다. 그래서 이란의 국민들에게도 호메이니는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로 부상하게 된다. 이때부터 강렬해진 반팔레비 시위운동에 위협을 느낀 팔레비는 19791, 신병치료를 이유로 이집트로 망명길에 오른다.

 

1979. 2. 1. 드디어 15년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던 호메이니가 이란 국민들의 대환영을 받으며 화려하게 귀국을 하고, 이슬람의, 이슬람을 위한, 이슬람에 의한 이슬람공화국을 수립하게 된다. “이슬람 교리를 정치사회질서의 기본으로 삼아 이슬람교의 원점으로 돌아가겠다이른바, 이슬람혁명을 단행하게 된다

      

이란으로 돌아온 호메이니는 이슬람의 시아파교리에 의해서 미국을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악마의 국가로 규정하면서 이때부터 미국은 이란의 적이 되어버리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 이란에서의 미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지워버리겠다는 것이다.

 

우선 이란 내의 은행들에 있던 미국 기업의 자금을 전액 압수한다. 그리고 이란에 있던 미국 투자회사들을 모두 국가에 귀속시켜버린다. 그리고 석유수출을 중단해버린다. 이것이 2차 오일 쇼크의 시작이다.

 

또한 호메이니는 팔레비의 측근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피의 잔치가 펼쳐지게 되는데, 특히 이집트에서 미국으로 도망간 팔레비를 궐석재판으로 이미 사형을 선고해버린다.

 

그리고 호메이니는 당시 미국에서 암으로 투병 중이었던 팔레비를 이란으로 돌려보내라고 미국을 압박했지만,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이란의 이러한 요구를 무시해버린다. 이러한 미국에 대한 분노가 가득해진 이란 국민들... 결국 1979. 11. 4. 이란의 대학생 3백여 명은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점거하고 미국대사관 직원 52명을 인질로 삼아 팔레비를 이란으로 돌려보내라고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된다.

 

지미 카터가 은퇴하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되어 19811, 444일 만에 인질 전원이 무사히 미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인질사건의 주범이 나중인 2005, 이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8년 동안 이란의 정권을 잡았던 아흐마디네자드였다.

 

* 미국과 이란과 사이가 벌어진 또 다른 사태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더 벌어지게 만든 또 다른 사태가 있었다. 이란의 호메이니가 이슬람 혁명을 일으키고 집권할 당시, 그 옆 나라 이라크에서는 사담 후세인이 집권하고 있었다. 1981년 이라크는 국경문제로 이란을 향해 전쟁 도발을 한다. 당시 이란에서 영향력을 상실한 미국은 당연히 이란의 사담 후세인 편에서 군사적 지원을 한 것이다. 8년간 진행된 이 전쟁에서 이란은 70만 명, 이라크는 30만 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3천억 달러 이상의 전쟁비용이 소비되는 쌍방간의 큰 피해를 보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이란은 또다시 미국을 향해 분노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사담 후세인은 큰 착각을 하게 된다. 미국이 당연히 자신의 편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은 후세인이 이번에는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이다. 그러자 미국은 3개월 동안 이라크를 집중공격하면서 이라크를 처참하게 무너뜨려버린다. 이 전쟁이 바로 ‘1차 걸프전이다.

 

이란과의 전쟁에서 이라크는 8년간 이란을 향해 화학무기를 350여 차례 사용하였다. 어떤 날은 하루에만 5천여 명이 희생당하기도 하였다. 그 후부터 이란의 호메이니는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에 나서게 된다. 팔레비를 내쫓은 호메이니의 뒤를 이어 2005년 이란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아흐마디네자드(미국대사관 인질사건의 주범) 강력한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를 후원자로 두고 본격적인 핵개발과 반미 반이스라엘 체제를 구성하게 된다.

 

이란이 핵을 개발하려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그들은 민간 에너지 확보를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국제사회는 그 많은 원유를 두고 새로운 에너지 개발을 시작하려는 이란의 의도를 이미 알고 있었다. 바로 핵개발이었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이란에 대해 각종 제재를 가했고, 이란은 또다시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이란의 국민들은 아흐마디네자드의 핵개발 정책보다는 우선 먹고 살자며 강력한 반대를 하자 결국 2013, 이란은 강경파 아흐마디네자드 다음의 11대 대통령으로 표면적 온건파(거짓 온건파) 하산 로하니를 선택하게 되고 마침내 2015. 7. 14. 버락 오바마가 주도했던 UN 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독일은 이란 사이에 JCPOA(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핵협상 타결을 하게 된다. 이때 하산 로하니는 다시는 이란이 핵개발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포하게 되고, 국제사회는 그동안 묶여 있었던 이란의 경제제재를 풀어주어 이란은 원유를 다른 나라에 판매할 수 있게 되었고, 외국의 은행들에 묶여 있었던 예전의 원유판매금들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하산 로하니의 숨겨진 계략(비밀 핵개발)을 눈치채고 2018. 5. 8. ‘JCPOA(이란 핵합의) 파기를 선언해버린다. 그리고 2019. 4. 8. 미국은 이란의 정규군인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면서 이란의 하산 로하니 정부를 불법정권으로 선언하고, 혁명수비대와 관련된 모든 인사들을 미국입국금지 시키고, 이들과 거래하는 외국기업들이 제재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였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올 422, 한국 등 8개국에 이란산 원유수입금지 제재 유예기간을 연장하며, 모든 이란산 원유 수입국에 경제제재를 하겠다라고 선언한다. 그러자 같은 날, 이란은 당장 페르시아만과 오만만 사이의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을 하고 나섰다. 이곳은 세계 원유의 20%를 실은 전 세계 유조선의 1/3이 지나다니는 아주 중요한 좁은 길목이다

  

이란은 1979년 이후로 미국과의 갈등이 극에 치달을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시키겠다고 미국에 협박을 하고 있다.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때, 이란이 석유수출을 중단하면서 오일쇼크라는 엄청난 충격을 경험했던 미국으로서는 늘 이 지역에 항공모함을 배치하면서 여차하면 이란에 선제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달라졌다.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으로 이란에 대한 석유의존도가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유럽 나라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과 이란의 갈등에 대해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이란 vs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

또 한가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슬람 혁명을 일으켰던 호메이니는 미국을 악마(Great Satan)’라고 지칭한 것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도 사탄의 무리로 규정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한 통속으로 본 것이다. 메흐르 뉴스에 따르면, 이란 의회의 국가보안 및 외교정책위원회의 의장인 모즈타바 졸누르는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시, 이스라엘의 수명은 30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미국이 공격하면 당연히 이란의 미사일 방향은 이스라엘을 향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미국이 이란을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거짓의 영, 거짓의 종교 이슬람이 장악한 이란이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과 미국을 악마의 국가로 규정했기 때문이며, 이란이 미국·이스라엘과 전쟁을 선포한 것은 결국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이란 국민이 알라(초승달)의 영에서 벗어나도록 기도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 어느 나라도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으셨다. 이란 국민들도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기도드려야 한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 이란의 지하교회에서 예수님을 섬기는 이란의 크리스천 수가 약 45만에서 100만 명 정도 된다. 만약 이것이 발각되면 엄청난 핍박과 순교를 당하게 된다. 그들의 마지막 비명소리를 기억하자!

 


마라나타(Marana Tha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



트럼프는 정말 '중동평화조약'을 성사시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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