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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교회로 돌아가며
06/02/201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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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200)    다시 교회로 돌아가며

 

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목회를 떠나 지난 3년간 일반사회 생활을 보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듯이, 제가 3년간 일반 직장인 소시지 공장, 치즈 공장에서 일을 것은 나름의 영적인 체험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봅니다. 가령, 모세가 궁궐을 떠나 사막에서 목동 생활을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성경의 이야기가 있듯이, 저는 위스칸신의 치즈공장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Elizabeth Barret Browning 이라는 여류 시인이 이런 시를 적이 있었습니다:

 

“Earth is crammed with heaven,

 And every common bush afire with God,                           

 But only he who sees takes off his shoes;

 The rest sit round and pluck blackberries.”

 

 한국말로 옮겨 본다면,

세상은 하늘나라로 가득 있도다.

 평범한 풀에도 하나님의 불꽃이 타고 있고요.

그러나 사실에 눈을 사람만이 거룩한 존재 앞에 신발을 벗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산딸기 따느라 정신이 없구나.”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는다고 표현하겠지만,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만난다는 말로 표현되는 영적인 체험은 열린 마음으로 찾으면 평범한 일상 어디에서나 가능하다는 말을 여류시인은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사막의 떨기나무에서 불꽃처럼 나타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지만,  보통 사람인 우리도 열린 마음을 갖고 겸손히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갑니다. 그래서 “God speaks to those who are willing to listen.” (하나님은 듣고자 하는 사람에게 말씀 하신다.)하는 말도 있고, Ralph Waldo Emerson, “Let us be silent, that we may hear the whisper of God.” (마음을 조용히 하면, 하나님의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있을지도 모른다.) 한 것 같습니다.

 

저는 교회를 떠나 살면서 그동안 목회하면서 겪었던 신학적인 갈등, 목회의 의미란 무엇일까 하는 문제와 씨름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정을 걸으며 여러 사람을 만나서 대화도 나누고 회의도 보고 반성도 보고 가르침과 깨우침을 얻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미국인 목사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목회를 떠났을 뿐만 아니라 아예 기독교 신앙을 깨끗하게 버리고 지금은 무신론자가 되어 대학의 학생처 직원으로 일하는 사람의 말도 들어 보았고, Robert M. Price라는 전직 침례교 목사는 Drew University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전공으로 Ph.D. 받은 다시 신약신학 전공으로 두번째 Ph.D 받은 뛰어난 학자이지만, “예수는 역사적인 실존인물이 아니고 신학적으로 가공된 가상인물이라는 주장을 하며 자신은 기독교 무신론자” (Christian Atheist)라고 말하는 것도 들어 보았습니다.


그동안  동방 정교회, 모라비안 교회, 몰몬 교회, 여호와 증인의 교회, 메노나이트 교회, 퀘이크 교회, 유니테리안 교회의 예배에 참석해 보기도 했고, 티벳 불교 사원, 힌두교 사원, 시크교 사원, 무슬림 모스크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무슬림 과격파 지도자의 광신적인 신념에 대한 다큐멘타리도 보았고, 폐쇄적인 극단 보수파 하시딕 유대인들의 공동체 생활에 대한 다큐멘타리도 보았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환자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진실한 불교 신자인 정신과 의사의 말도 들어 보았고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서울대를 졸업했다고 이력서에 적어 넣은  서울대 출신 지성파 스님이라고 대중을 속여 평생 명예와 인기를 누리며 조계종의 총무원장이 된 사람 이야기도 들어 보았습니다.

 

김수환 추기경과 이해인 수녀로 빛나던 청정한 카톨릭 교회의 젊은 신부가 여대생을 여러번 강간 했는데도 카톨릭 지도자들이 우리가 남이가?”하며 감싸주거나 목사가 여신도를 강간해도 큰 교회 목사라 교단에서 손을 대지 못해 그냥 넘어 가는 일도 보았습니다. 종교계가 오히려 세속사회의 도덕과 준법 수준 보다 더 못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이 되고, 젖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와 치즈가 되는 것처럼, 종교도 선용하면 개인과 사회를 살리는 지혜의 샘터가 되지만, 악용하면 광신과 폭력의 원천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최근 화가 Pablo Piccaso 말에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Art is the lie that enables us to realize the truth.” (예술이란 거짓말이다. 거짓말이지만 진리를 깨닫게 주는 거짓말이다.) 저는, 기독교 신앙이란 예술처럼, 때로는 모순과 허위도 있지만, 그래도 궁극적으로는 기독교 신앙에 개인과 사회에 빛을 비추어 주는 진리와 지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기독교 신앙은 기독교인들이 만장일치로 통일한 교리가 있는 같지만, 신학자들마다 이론이 다양하고 목사들끼리도 신앙과 신학의 차이가 다소 있는  같습니다. 가령,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위해서 죽었다고 알려져 있는 대속의 죽음에 대해서도 ransom theory (보속 이론), penal substitution theory (형벌대속 이론), Christus Victor theory (그리스도 승리자 이론)등으로 분분하고,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론도 신학자들마다 이론이 이론보다 낫다.” 하는 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 한국에 계신 은사 선생님이 이런 말을 것이 제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인들의 현실과 동떨어진 신학논쟁은 교인들의 삶에 도움이 안된다. 대신에 교인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교인들의 생활 도움이 되는 목사가 되어라.” 지혜로운 스승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저는 목회란 목사가 교회를 운영하고 교인들을 이끌어서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인 교회에서는 교인들 스스로가 지도력을 발휘하여 교회 살림을 꾸려 나가고 교인들 스스로 교회생활을 즐겁고 활력있게 하도록 목사가 옆에서 지원해 주고 설교를 통해 교인들이 이미 알고 있지만 잊고 지내기 쉬운 성경의 지혜와 덕목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의 종교들 중에서 최대의 신자 수를 가진 최대 종교인 기독교는 여러 모순을 안고 있어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랑과 박애주의를 추구하고, 정의와 평화를 지향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어 어둔 세상에 빛을 비추어 주는 좋은 종교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조정래의 세상사는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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