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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사랑이 좋으나 죽는 사랑
09/06/201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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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사랑이 좋으나 죽는 사랑

 

오늘날 사람들은 정신 작용의 과학이 발전됨에 따라서 옛날보다는 무엇이나 자유롭고 평화롭게 나가야만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으로 따라오는 사랑이라는 것은 성서를 입각하여 볼 때에 죽는 사랑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오락적인 사랑

 

이것은 사람을 방탕하게 만드는 열매를 가져오게 됩니다. 과거보다도 화려한 옷을 입게 되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고, 평안히 살 수 있게 된 자리에서 도취가 되어 거기에 만족을 누리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는 대적이 되는 사랑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는 부족함이 없다는 자만심이 생기는 동시에 이 외에는 생각조차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상 다른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어리석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러운 피의 작용을 따라서 음란, 사치, 방탕으로 그 소욕을 채워보려는 사람이 될 때에는 하루아침에 멸망을 당하는 죽음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가운데서 서로 사랑하고 교제한다는 것은 인간이 보기에는 좋은 것 같으나 죽는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도취된 생활에서 어떤 사상이나 어떤 진리를 가진 것이 없이 그 시간에 오는 만족과 쾌락을 일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이러한 생활을 만족히 여기는 사랑입니다.

 

2. 타협적인 사랑

 

사람의 정신 작용이 발달됨에 따라서 서로 이해를 해가면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인간을 대할 때에는 좋은 것 같으나 인간이 하나님을 대할 때에는 타협적인 사랑이므로 대적이 됩니다. 왜냐하면 타협적인 사랑의 노선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든다면 어떤 여자가 한 남자와 결혼을 해서 그 남자밖에는 없다고 생각을 하고 괴로워도 즐거워도 평생토록 살아 나가기를 결심했지만 시일이 흘러감에 따라 그 사랑은 식어지고 다른 남자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만난 남자가 그 여자를 볼 때에 원수가 될 것은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양심에서 죽어도 그 사랑밖에는 없다고 싸워 나가던 교회가 그 마음이 식어지고 다른 주의와 사상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사랑하자는 것은 십자가의 사랑과는 원수가 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사랑은 죄를 위하여 죽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죄의 사상을 가진 주의를 이해하고 교제한다면 자동적으로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맙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소위 통합이라는 간판을 가지고 십자가 사랑 중심으로 하나를 이루지 못하고 타협적인 사랑으로 흐른다는 것은 사랑 같으나 죽는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께서 죄를 용납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십자가의 사랑이 죄를 용납하는 사랑으로 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일 십자가가 죄를 용납한다면 죄를 위하여 죽은 사랑은 완전히 무효가 되고 맙니다. 어느 때에는 죄 때문에 죽고 어느 때에는 죄를 용납한다면 죄를 위하여 죽은 십자가의 사랑은 폐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협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이니 실지는 심판 날에 죽는 사랑입니다.

 

3. 편벽적인 사랑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사랑하시되 아무리 창기며 세리며 강도라도 죄를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꼭 같이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랑을 가지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형제를 편벽 되게 사랑한다면 이것은 생명을 주는 사랑이 아니요, 오히려 생명을 죽이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어떤 목자가 자기를 대접하는 사람은 사랑하고 대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가진 자는 양 떼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요 자기의 이용물로 삼는 것이니, 이용을 하는 자도 죽게 되고 이용을 당하는 자도 죽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서 남에게 주는 자라면 조금이라도 편벽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사랑을 전해야 될 빚을 졌다고 하면서 아무리 괴로움이 오고 핍박이 와도 기뻐서 복음을 전한 것은 십자가의 사랑을 남에게 전해 준다는 것밖에는 아무런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십자가의 사랑을 그대로 남에게 전해 준다면 그 사람을 통하여 십자가의 능력이 얼마든지 공급되므로 남을 살릴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능력의 종이 되려면 편벽이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대로 남에게 전해주는 일을 하여야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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