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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박물관, 루브르 Louvre  | 블로그 Go Go 뉴스
07/13/201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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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근처, 빵 맛이 세계 최고라는 파리의 한 베이커리에서, 막 구어낸 빵과 커피 

한잔으로 행복한 아침을 열었다. 색감 좋은 복숭아 한 조각을 마치 달걀 노른자 

처럼 빵 위에 올려 구어낸 아이디어는, 맛의 경지를 넘어 비쥬얼로 승부하는 

파리 예술의 진수를 보는 듯 하였다.




 

오르세는 수요일에, 루브르 Musee Louvre 박물관은 매주 화요일 휴관하기에, 화요일에

먼저 오르세 관람을 끝내고, 수요일 루브르를 찾았다. 긴 줄을 서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9시에 문을 여는 그 곳에, 30분 일찍 도착하였다





 

세계 최고의 보물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이 곳에 입장하기 위해, 유리 피라미드

입구 앞에서 소지품 검사를 마친 후, 줄이 짧은 뮤지엄 패스 입구를 통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루브르의 상징이 된 유리 피라미드는, 1989년 중국계 미국인 

에이오 밍 페이에 의해 설계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은 1190년 요새로 지어졌다가 16세기 중반 왕궁으로 재건축되었다

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거처를 옮긴 후, 왕실의 보물들을 보관하면서 

1793년 박물관이 되었다. 1798년 이집트 원정에서 수집된 55천점의 유물들이 

전시되면서나폴레옹 시절에는 이 곳이 나폴레옹 박물관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리슐리외 Richelieu, 드농 Denon, 쉴리 Sully , 쉴리관으로 먼저 들어가, 이 곳이 

요새로 지어졌던 흔적이 있는 지하층을 돌아, 그리스 로마 시대의 작품들을 둘러

보았다. 
















리슐리외관에서 프랑스 작품들을 감상하고 한층을 올라가, 

나폴레옹 3(1852-1870년)의 아파트를 방문하였다.






 

그는 나폴레옹 1세 동생의 셋째 아들로, 나폴레옹 1세의 정권이 무너지자 스위스로

망명하였다가 프랑스 6월 혁명 후, 귀국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가 베르사이유

궁에 가지 않고 루브르 궁전을 재정비하여 살았기에, 가구는 물론 샹들리에도

그 당시 가장 크고 화려한 것으로, 파리 최고의 홈패션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고전주의 화가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연작 마리 드 메디치의

생애가 걸려 있는 리슐리외관 메디치 갤러리를 찾았다. 그곳 전시실 벽은 앙리 4

(1553~1610)의 왕비 마리 드 메디치(1573~1642)의 일생이 21개의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태리 피렌체 메디치가의 딸 마리는 프랑스 마르세이유에 도착하여, 1600년 앙리

4세와 결혼을 한다. 1610년 마리가 프랑스 여왕 대관식을 치룬 다음날, 사치벽과

여성 편력이 많았던 앙리는 의문의 암살을 당한다. 그녀가 암살 음모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나 공모 여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프랑스 마르세이유 도착



앙리 4세와의 결혼


 

프랑스 통치 야심이 있었던 마리는, 1617년 어린 아들 루이 13세를 대신하여, 이태리

출신 신하들의 도움으로 7년 동안 섭정을 한다. 아들이 성인이 되었는데도 권력을

내놓지 않았던 마리는, 결국 프랑스 출신 신하들을 등에 업은 아들에 의해 유배된다.




 

이후 파리에 돌아온 그녀는,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기 위해, 사진이 없었던 시절

루벤스를 통해, 21점의 자신의 정치적 선전물인 역사화 등을 만들었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브뤼셀로 망명하여 퀼른에서 사망한다.  




 

메두사의 뗏목 Raft of the Medusa (1819), 테오도르 제리코 Theodore Gericault 

1819년 1816년 약 4백명을 태운 메두사호는 아프리카 식민지로 향해 가던 중 암초에 

걸려 좌초된다. 구명정이 모자라 149명은 커다란 뗏목에 타고 있었으나 밧줄이 

끊어져 뗏목 위에서는 한모금의 물과 음식물 때문에 피로 물든 싸움이 벌어진다.


구조선이 나타났을 때, 생존자 15명은 모두 빈사상태였다. 제리코는 생존자를 방문, 

같은 모양의 뗏목 모형을 만들고, 시체를 화실로 가져다가 그 경직 상태를 

조사하고병원을 방문하여 빈사의 인체를 연구하였다.



 

구조선이 나타났을 때의 흥분된 순간을 잘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당시의 평면적 

전개를 피하고 피라미드형 구도를 잡아, 희망과 감동을 멋지고 강하게 표현하였다

제작할 때 들라크루아가 선배를 위하여 포즈를 취해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사모트라케의 니케 Winged Victory of Samothrace

기원전 220-190년에 제작된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조각상 가운데 

하나인 사모트라케의 니케는, 기원전 190년 로도스섬의 주민들이 에게해에서 

일어난 해전 승리를 기념하여, 사모트라키섬에 세운 조각상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그리스 신화에서 승리의 여신인 니케를 묘사한 길이 328cm의 대리석

상으로, 머리와 양팔이 잘려진 채로 남아있다. 이 조각상은 1863년 프랑스의 영사 

겸 고고학자인 샤를 샴푸아소가 발견했으며, 1884년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승리의 여신상은 왼쪽 가슴 부분과 오른쪽 날개 부분을 석고로 복원되어 있다

니케상으로 불리는 이 여신상은 사모트라케섬에서 150개의 대리석 조각으로 발견

되었으나, 후에 양쪽 날개를 달아 힘차게 비상하는 모습을 만들었다

전면 우측에서 보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밀로의 비너스 Venus de Milo
1820년 그리스의 밀로스섬 아프로디테 신전 부근에서 발견된 밀로의 비너스는

리비에르 백작이, 당시 밀로스섬을 식민지로 소유한 터키 정부로 부터 사들인 후,

루브르에 오게 되었다.

 



남아 있는 형태를 연구한 결과 비너스의 왼손은 사과를 들고 있고, 오른손은 왼쪽

허벅지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여져, 복원은 고려하기로 하였으나, 지금의 형태로도

충분히 아름다워, 관람자의 상상으로 더욱 멋있게 보라고 그냥 두었다고 한다.



모나리자 Mona Lisa, 네오나르드 다 빈치 Leonardo da Vinci(1452-1519)

사모트라케의 니케, 밀로의 비너스와 함께 루브르의 3대 보물로 불리는 모나리자가 

전시된 방은 문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방탄 유리 속에 갇혀있는 

모나리자는 관람객들이 몰려드는 이유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옅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가나의 혼인잔치 The Wedding Feast at Cana (1563), Paolo Veronese, Italian artist

신약 성경에서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처음으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베푼 혼인 잔치를 그린 작품이다. 가로 994cm 세로 667cm 크기의

루브르에서 가장 큰 작품으로 모나리자와 마주하고 있다.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The Death of Sardanapalus, Eugene Delacroix

지금의 이라크 북부,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왕 사르다나팔루스는 반란군에게 

패한 뒤, 그들에게 항복하지 않고 명예롭게 죽기로 결심한다. 부하들에게 침대 

밑에 장작 더미를 쌓아올리게 한 후, 그 침대 위에 오른다.




부하들은 왕의 명령대로 장작더미에 불을 붙인다. 궁정의 근위병들에게 왕의 애첩과

노예들 그리고 개와 말들 까지 모조리 목을 자르라고 명령하였다. 이는 왕의 쾌락에

함께 하였던 그 어떤 것도 살아남아서는 안된다는 그의 집착에 의한 것이었다.

 


사비니 여인의 중재 'The Intervention of the Sabine Women (1799), David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는 영토 확장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게 되자, 종족 번식과

나라 부강을 위해 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느꼈다. 이웃의 사비니에 접근해서

남성들에게 술을 마셔 취하게 만든 후, 여인들을 납치하였다. 이 약탈 장면 그림

중에 푸생의사비니 여인의 겁탈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다비드는 약탈 장면이 아니라 약탈 후에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하였다. 로마인들에게

납치된 지 수년이 지나, 사비니의 군인들은 여인들을 되찾기 위해 로마로 쳐들어갔다.  

이미 로마인의 아내가 된 여인들이 로마군과 사비니군 사이에 끼어들어, 이미 부부의

인연을 맺고 아이들까지 낳았으니, 싸우지 말 것을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간곡히

호소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림에서는 중재하는 여인을 사이에 두고 암늑대 문장이 새겨진 방패를 들고 있는

로물루스와 대치한 사비니 장수의 모습이 펼쳐져 있다. 먼 원경의 한쪽에 보이는

고대 로마의 건물들이 사비니 병사들이 로마에 쳐들어왔음을 나타내고 있다.

 

양편 장수가 좌우 대칭으로 맞서고 있는 사이에, 이제는 로물루스의 아내가 된 

적장의 여동생이 팔을 뻗고 당당하게 막아섰다. 왼쪽 한 여인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쳐들어 보이며, 로마군을 죽이면 이 어린것은 아비 없는 자식이 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 여인은 아이를 부둥켜안고 사비니 장수의 발을 붙들고 

싸움을 말리고 있다.

 

중앙의 반나체가 된 여인은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어린애들을 보이며, 싸우면 

이 어린것들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호소하고 있다. 로물루스도 하는 수 

없이 싸움을 중단하고 그들을 로마의 형제국으로 인정한다.

 

이 그림은 전쟁과 약탈 속에서도 평화와 가족애는 소중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을 벌이는 남성들로서는 느끼지 못하는 여성의 자식 사랑과 그 때문에 

발벗고 나서는 모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호라티의 선서 Oath of the Horatii,  Jacques-Louis David

고대 로마의 전설을 토대로한 작품으로, 두려운 기색없이 필승의 의지로 출전 전에 

아버지로부터 검을 받고 있는 3형제의 결연한 모습을 그려냈다. 비통해 하는 여인

들과 겁먹은 아이들의 심경이 가슴 떨리게 느껴지는 이 작품은, 1785년 살롱전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어, 다비드를 프랑스 궁전 최고 화가로 만들었다.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Le Sacre de Napoleon, Jacques-Louis David

로마 유학 후, 신고전주의를 프랑스에 소개하고 정착시킨 다비드(1748-1825)

1804 12월 노트르담 사원에서 거행된 나폴레옹의 대관식 장면을 그렸다

참석자 200여명의 초상을 먼저 그려본 그는, 마네킹 배치로 구도를 잡아

1805년 부터 3년에 걸쳐, 가로 979cm 세로 629cm 대작을 완성하였다.




로마에서 온 교황 비오 7세가 오른손으로 황제를 축복하고 있는 가운데황제는 

월계관을 먼저 쓰고 앞으로 나와서, 꿇어 앉은 조제핀에게 왕관을 내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가운데 깊숙이 들어간 높은 곳에는 황제의 모친이 그려져 있고

한 단 낮게 장군과 고관들이 줄지어 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과 달리, 황제급 고집을 부린 나폴레옹의 모친은, 황제인 

아들이 8살 연상에 두 아이가 딸린 조세핀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여, 대관식에 

불참하였다

시민들을 의식한 나폴레옹이 모친을 그려 넣으라 지시하자, 궁전 화가 다비드는 

조세핀의 아이들과, 목탄으로 대관식 현장을 스케치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함께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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