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woman
들꽃사랑(naturalwoman)
New York 블로거

Blog Open 08.03.2011

전체     520912
오늘방문     5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102 명
Blog News Citizen Reporter
블로그 뉴스 시민 기자
2015 Koreadaily Best Blog
2014 Koreadaily Best Blog
2013 Koreadaily Best Blog

  달력
 
세명의 대통령이 다스리는 나라
06/24/2017 17:23
조회  401   |  추천   10   |  스크랩   0
IP 68.xx.xx.140



유럽 문화 속에 이슬람 문화가 깊이 숨 쉬는 매력적인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는,

인구 47만의 도시로 1984년 동계올림픽이 개최된 곳이다. 1973년 탁구대회에서 

이에리사·정현숙 선수 등이 여자 단체전을 석권하여, 처음으로 이 곳에서 한국 

탁구가 세계를 제패하였다.




 

보스니아라 부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한반도의 약 25%의 작은 영토에 

40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국가이다. 이 중 보스니아계(이슬람교) 48%, 

세르비아계(세르비아 정교) 37%, 크로아티아계(카톨릭) 14%로 복잡한 인구 

구성 만큼이나 분쟁의 역사도 길었다.




 

이렇게 복잡한 속사정과는 달리, 세르비아에서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 

이르는 동안 이어지는 강변의 자연 경관은 참 아름다웠다. 이슬람 사원이 

보이다가 고개를 넘으면 세르비아 정교회가 나타나고, 바로 카톨릭 성당이 

보이는 평화로운 마을 언덕에 올랐다.









일행들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동안, 아랫동네와 윗동네를 부지런히 돌면서 

농부들과 인사를 주고 받았다. 내전은 종교 지도자들이나 정권을 차지하려는 

우두머리들의 감투 싸움이나, 땅 갈라 먹기일 뿐, 순박한 민초들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였다.







  

국도로 느릿느릿 이어지는 일정과 국경에서의 입국 수속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오후 4시에 점심을, 8시에 저녁을 먹어야 했지만, 세르비아와 보스니아를 좀 더 

가까이에서 느껴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보스니아는 민족별 대표자로 구성된 대통령 위원회(Presidency)를 만들었다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는 연방체제의 형태로 두 명을 선출하고, 세르비아계는 

스르프스카 공화국에서 1명을 선출한다. 이 세 명이 4년 동안 8개월 마다 

돌아가면서 대통령직을 수행한다.




 

사라예보 동쪽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구시가지와, 도로에 그어져 

있는 노란선을 넘어 서쪽 합스부르크 시대에 만들어진 신시가지를 돌아 보았다

좀 더 서쪽 공산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콩크리트 건물이 많은 거리를 돌며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풍경을 흥미롭게 살펴 볼 수 있었다.






 

음식값이 엄청 착한 보스니아 전통 식당에서, 먼저 삶아 부드럽게 만든 다음, 그릴에 

구어 주는 소고기나 양고기 등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 곳을 나와 오랜 세월 

복잡한 종교와 문화 그리고 이념 까지 가세하였던 옛 유고의 변천사를 돌아보았다













1992~1995년에 걸쳐 계속된 참혹한 내전의 상처로 아직도 곳곳에는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토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과 포탄 자국을 그대로 

보존하여, 다시는 언론이나 정치가의 꼬임에 빠져 전쟁하지 말자는 다짐으로 보였다.








1989년 동유럽의 공산 정권이 붕괴되면서, 1991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비아가 주도하는 유고 연방은, 슬로베니아에 연방군을 

진격시킴으로써 유고 내란이 발발하였다. 연방군의 크로아티아 진격으로 

내란은 유고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1992년 크로아티아군은 전열을 정비하며 반격을 시작하였고, 크로아티아에 

거주하던 세르비아인들이 세르비아로 탈출하던 가운데, 남아있던 세르비아인들은 

크로아티아군에게 혹독한 보복을 당했다.






 

중립을 선언하였던 보스니아 정부는 독립파(보스니아인)와 연방 잔류파(세르비아인)

갈려 분쟁이 일자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에 연방군은 즉각 보스니아를 공격하면서 

보스니아 전쟁이 발발한다. 나토가 개입하여 내전을 주도하였던 세르비아를 폭격하고

경제 제재 등을 가해 19953년 반에 걸친 민족 내란은 그 막을 내렸다.




 

구 유고연방의 자치주인 코소보의 알바니아인들이 독립을 요구하자, 세르비아 정부는

자치권을 빼앗았다. 이에 알바니아인들은 1995년 코소보 해방군을 조직, 세르비아 

경찰에 대한 무장 저항을 시작하였다. 1998년 코소보를 순찰하던 세르비아 경찰 4명이 

알바니아 민병대에 살해되면서 세르비아 경찰의 보복 및 진압, 이에 대한 알바니아 

민병대의 저항과 보복이 거듭되었다.



 


미국은 1999년 나토군에게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와 코소보의 세르비아군 기지에

대대적인 공습을 지시하여 79일간의 전쟁을 끝냈다. 유고 연방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로 쪼개졌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는 2006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로 분리되었으며

2008년에는 코소보가 세르비아로 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구글에서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 조피가 젊은 보스니아라는 민족주의 조직에 속한 18세의 대학생이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되었다. 이 사건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요청하면 무조건 

동참하는 독일의 가세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이 곳은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암살사건(사라예보 사건)이 발생한 역사의 

현장 라틴 다리다. 시내를 흐르는 밀야츠카 강변에는 이 사건을 기념하는 작은 

박물관이 있고 시내에는 이슬람풍의 거리와 시장, 다수의 모스크, 성당 등이 있다.




 


Gazi Husrev-beg Mosque



 ?

모스타르의 상징이자 보스니아 내 민족 간 화해의 징표인 모스타리를 찾았다. 조그만 

마을 개천 위에 자리한 앙증맞은 카페를 지나, 다리로 가는 길에 린넨 등 수공예품을 

들고 나온 주민들이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관광객들의 호응을 받고 있었다.  








 

네레트바 강에 자리잡고 있는 모스타리는 네레트바 강 바로 위 다리를 지켰던 "다리 

파수꾼들"을 뜻하는 Mostari로 이름이 지어졌다. 터키의 통치 동안 건설된 다리는 

보스니아의 이슬람 풍의 중세도시 모스타르의 상징들 중 하나가 되었다.








1993년 보스니아 전쟁 동안 크로아티아군에 의해 파괴된 이 다리는,  2004년 터키의 

건축가들이 1088개의 돌을 재배치하여 건축하였다. 크로아티아 사령관 Slobodan 

Praljak은 다리 파괴를 명령한 것에 대해 구 유고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재판 중이다.






 

이 다리 위에서 한 다이버가 25m 아래로 뛰어내리기 전 모금을 하고 있었다

다리 아래에서 그를 건져 올리는 보트 비용 등으로 100유로가 모아지면, 

점프를 하겠다 했지만 점심식사 시간이 임박하여 결국 보지못했다.







 


모스타르 다리로 가는 대로 앞, 줄을 잇는 방문객들의 시선을 피해 한국식 발로 

가리게를 하여,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정자식 건물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굵은 소세지 등을 그릴한 소고기 요리와 신선한 야채를 풍성하게 먹을 수 있었다.






 

메주고리예로 이동하여, 산중턱의 성 야곱 성당을 둘러보았다. 성당의 야외 집회장은 

수천명의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었다. 아직 교황청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다고 하여 유명해진 곳이다.







예수상의 무릎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손수건 등에 적셔 환부에 바르면, 질병이 

치료된다 하여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신도들이 기도하면서 매만진 예수의 

발부분은, 많이 닳아 금빛으로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일행을 잃어버렸을 때, 가장 먼저 수색대에 자원하셨던 영세명 베드로님 부부는, 

이 곳에 도착하여 오랜 줄서기 끝에, 예수님의 청동상 앞에 무릎 꿇고 감사 기도를 

올리는 기회를 얻었다. 사연인즉, 리커스토어를 하다가 무장강도에게 당한 것이다.

 

몸싸움 중 3 strike 범인이 발사한 총알이, 오른쪽 눈과 광대뼈 사이를 뚫고 들어가 

왼쪽 어금니에 박혔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목숨을 건지고 이제는 몸도 완전히 

회복되어 7순의 나이에도 테니스를 즐기는 왕성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1인치 만 빗나갔어도 무사치 못했을 그 때 일을 생각하며, 너무도 고마운 마음에 

한참 동안 울먹이며 기도하는 모습이 진한 감동으로 몰려왔다. 생사의 기로에서 

초상권이라는 것이 한갓 사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본인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이렇게 사진을 올린.




 

Neum 해변 호텔에 짐을 풀고, 승강기로 지하층 까지 내려가 육중한 콩크리트 철문과

방공호처럼 보이는 긴 터널을 걸어나가자 아드리안해가 눈 앞에서 반짝였다. 반마일

정도 해안가 트레일을 돌며, 석양에 물들어가는 황금빛 낭만을 즐길 수 있었다.











 




보스니아, 유고의 해체, 성모발현교회,메주고리, 네움,사라예보, 한국탁구,
이 블로그의 인기글
1 ㆍ 2 ㆍ 3 ㆍ 4 ㆍ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