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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김혜자(nancy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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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기 뜨거운 바람
04/24/201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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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자             


마음이 급하다. 시간이 없는 것 같다

혼자 사시는 어머니를 만나러 하와이로 가고 있다

날아가는 비행기 속에서 마라톤 뛰는 사람처럼 나도 달리고 있다. 

지난 여름 어머니 생신 때 뵈었으니 8개월이 넘었다

생활이 바쁜 탓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지만 

솔직히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어머니를 잊어버린 사람은 없다

선택이 아닌 필연으로 만난 소중한 이름

불러만 보아도 눈시울이 적셔오는 귀중한 이름


한줄기 뜨거운 바람이 내 마음을 울리고 지나간다




오 년 전, 혼자 사시는 어머니의 거처(居處) 문제를 남편과 의논했다

사위도 자식이라며 함께 사는 것을 동의했다

고마운 남편이다

급하게 일을 진행하기 전에 얼마간 같이 생활하며 

결정하려고 엄마를 모셔왔다

처음에는 무척 즐거워하시던 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잠도 못 자고 식사도 제대로 못 한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비가 계속 내리고 눈도 내렸다

한 달 동안 맑은 하늘을 하루도 볼 수 없었다

침울한 날씨는 어머니의 정신과 건강을 밑바닥으로 곤 도박 치게 했고

쓸쓸함과 허무함은 키재기를 하듯 하루하루 커졌다

나이 들수록 찾아오는 게 외로움이고 고독이다

어머니는 추수가 끝난 텅 빈 들판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인 것 같이 보였다





사위, 딸의 눈치를 보며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생활하시던 

어머니는 한 달이 조금 지난 후, 하와이로 되돌아가신다는 결정을 내렸다

친구도 없고, 길도 모르고 단지 딸의 얼굴만 바라봐야 하는 

생활과 기후 적응이 안 된다고 하셨다

누가 그랬지?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다고?





상쾌한 바람이 금빛 파도를 타고 햇살이 좋은 하와이로 가신다

지평선을 향해 뻗어 내린 깊은 산의 곡선과 절벽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물줄기를 볼 수 있는 하와이

탐스러운 열매를 보고 기쁨을 얻는 것처럼 나이와 무관치 않은 

자연이 주는 즐거움은 어머니가 얻을 수 있는 소박한 행복이다


인간은 생소한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낯익지 않은 것에 불편해진다는 

이드리스 샤흐(Idris Shah)의 말처럼 

반평생을 뿌리를 내린 하와이에서 이사를 강요한 것은 

누가 봐도 어머니에겐 무리한 요구였다.








딸과 가까운 거리에서 살고 싶은 희망도 하나의 꿈으로 돌아갔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인간의 가장 놀라운 특성의 

한 가지는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힘이 있다는 말처럼 

어머니는 모든 것은 다 접고 혼자 사신다고 다짐하신 것 같다. 




딸과 함께 사는 안락보다는 남은 시각을 사시사철 꽃피고 새가 노래하는 

신비로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고 싶으신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괴로워하는 이에게는 모든 날이 불행하지만

마음이 흥겨운 이에게는 매일 잔칫날이라잠언 15:15의 

성경 구절을 어머니는 마음속에 지니고 사신다




 

오랜만에 우리를 맞이하는 어머니는 봄 햇살을 받아 솟아 오른 

새싹처럼 생기를 찾았다

변화는 언제나 신선함을 안겨준다

색다른 활력으로 남편과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해맞이를 하기로 했다

새벽 5, 하루 전날 휠체어를 준비한 남편은 어머니를 모시고 

와이키키 해변으로 나갔다

밤새 가로등 불빛을 먹고 포효하던 바다가 수줍은 듯 붉은 빛으로 

천천히 다이아몬드 산 위(Diamond Head)에 떠 오르는 해님을 맞이한다


이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자연의 섭리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는 순간이다





고향을 바라보듯 어머니의 눈가에는 미소가 흘러내린다

여유롭고 평화스러운 모습이다

눈빛에는 동그랗게 사랑이 그려진다. 포근하다

참 오랜만에 느끼는 아늑함이다. 싱그러운 새벽 바람이 분다

태양은 점점 얼굴을 들어 따뜻하게 대지를 적신다

어머니를 부축한 남편의 등이 오늘 따라 무척 넓게 보인다.  





일주일 동안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컴퓨터 고장으로 중앙 블로그와 이멜을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고,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많은 것으로 신청했다

안방 침대, 응접실 살림의 위치를 바꾸고

여기저기 있는 많은 물건을 남편과 함께 정리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또다시 이별의 시간이 왔다

높푸른 하늘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어머님 생신인 8월을 약속하고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기 위해 

밤 비행기를 탄다





사람은 늘 누군가를 기다리고 산다

어머니는 8월을 기다리며 살 것이다

자식이 무언지 무더운 여름날 깊은 우물에서 퍼 올린 냉수처럼 

기쁨의 촉진제로 생각하신다


어머니가 선택한 하와이 동산에서 스스로 창조한 삶의 지혜를 연마하며 산다

기쁨으로 만든 종합 비타민을 드시며 

당신의 행복 지수의 척도를 높이며 사신다








햇살처럼 쏟아지던 하루가 지고 있다

약한 모습 서로 들키지 않으려고 미소로 눈물을 감춘다


저녁노을이 진다

지는 노을과 함께 사랑과 불효의 슬픔이 외로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어느 누가 이별은 손끝에 있다고 했던가

문밖에서 흔드는 어머니의 손놀림이 점점 멀어져 간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작은어머니의 그림자를 가슴에 담는다.

 



한 줄기 뜨거운 바람이 또다시 분다.

 

건강해 엄마 나 다시 올 때까지

 



하와이, 해맞이, 와이키키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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