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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사람이라오.
04/04/201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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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교회 - 비록 의자 하나 없이 서서 예배를 드려도 우린 행복하다오.

한국 고기 구이집에 초대받았거든요.   우리가 바로 홈리스라는 이름의 사나이들이라우.


나는 한 손에 상경을, 한 손에 신문을” Karl Barth (1886-1968)의 외침을 소개하며 말보다 실천하는 목회자의 길을 가라던 문희석 박사의 입학환영사를 기억한다. 또한 서광선 박사의 민중신학 명강의는 오리무중이던 나의 삶의 지표를 제시해주었다. 그 때부터 변두리 사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자그마한 선교단체를 설립하고 변두리 계층을 돌보다가 변두리 중에 변두리 계층인 노숙자(Homeless) 사역에 머물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다운타운(Downtown) 빈민(Skid Row) 지역 도로변에서 무료급식 봉사를 하면서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과 독특한 문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10여년의 긴 세월을 그들을 돕는다는 자부심으로 지냈지만 습관처럼 그들을 대했을 뿐 진정한 예수의 시선은 갖지 못했다.


2007년에 그들만을 위한 교회를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변두리 지역에서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 매주 예배를 드리면서 간단한 아침 식사 그리고 푸짐한 점심을 제공해왔다. 시시때때로 이발봉사, 침술봉사, 독감예방접종, 틀니 해주기 등의 특별 사역도 열심히 해왔다. 그리고 음식과 옷가지와 생활용품 등 필요한 것들을 열심히 제공하며 그들의 삶의 질을 바꾸어 보려 노력해 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사역의 한계를 느끼며 나 자신이 지쳐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지금까지는 이 모습 이대로가 좋았는데 이대로는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구멍가게 수준으로는 바닷물을 국자로 퍼내는 모양새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즈음 노숙자들의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2015922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지진 같은 재해 때문도, 난민 유입이나 폭동 때문도 아니다. 이유는 노숙자 때문이다. 에릭 가세티 (Eric Garcetti) 시장은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노숙자 주거지원에 1억 달러(12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City Homeless Service에 따르면 현재 Los Angeles와 부속 County의 노숙자는 44000명에 이른다. 주민(400만명) 100명 중 1명은 거리에서 자는 셈이다. 당국이 올 초 단기 주거지원에 1300만 달러를 썼으나 역부족이었으며 고속도로와 공원, 보도를 가리지 않고 Homeless들의 야영지가 생겨났다. 노숙자들은 박스나 천막을 치고 살거나, 버려진 자동차를 점거해 살아간다고 중앙일보 기자는 말한다.

    또한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 등 도시 난개발, 렌트(Rent) 등 부동산 고공행진, 교도소 재소 조`기 출소, 전직 군인 증가, 실업자 증가, 2세대 노숙자, 위탁가정(Foster Family Home) 등 노숙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나는 셀 수 없이 날마다 늘어만 가는 홈리스들의 상황과 그들의 생활을 살피고 그들을 구제할 수 있는 정책적인 대책을 연구해 보고싶다.   첫째, 노숙의 원인은 무엇이며, 본 연구자의 선교의 장이라 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 노숙자의 현황에 대해 살펴보고, 둘째, 노숙자들의 유형을 분류한다. 셋째, 노숙자들이 된 다음에 어떻게 하면 사회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그 대처 방안이다.

나는 사회와 교회공동체로부터의 돌봄의 부재 속에 버려진 노숙자(Homeless)들의 모습 옆에 앉아있는 예수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예수의 곁에는 늘 거지와 절름발이, 소경, 문둥병자, 앉은뱅이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노숙자들에게는 예수가 없다. 그들은 그래도 된다는 식의 마치 그들의 잘못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그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그들은 더럽고, 냄새 나고, 마약이나 알코올에 중독되어 있다고 낙인 찍혀 있다.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그들은 거짓을 말하고, 도둑질이나 강도짓을 일삼는 자들이란 오해와 편견이 덧입혀져 있다.

오해와 편견의 겉모습이 그들을 외면하고 피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걸쳐진 오해와 편견의 겉옷을 벗겨주어야 하는 것이 교회의 과제요, 교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교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을 갖도록 동기부여를 해야 하지 않을까강도 만난 사람을 구하는 것은 누구에게 미룰 일이 아니다교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오직 구제의 대상일 뿐, 그들을 하나님의 소중한 피조물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하는 교회는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하여 못 본 척 지나가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대역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교회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문제의 실마리는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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