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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는 어떤 왕이었을까?
04/22/202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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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시간의 여행. 그런데 그 여행을 함에 있어 이정표는 물론 민둥산을 '천하절경'이라 적어서 여행자에게 건네준다든지, 유네스크코 문화 유적지를 별 볼 일 없는 관광지로 말한다든지 하면 그 여행자의 여행은 개고생만 하고 실패한다.


왕가엔 전통적으로 혈통, 적장자, 당파의 도전 등에 관한 스트레스가 엄청 컸다.

예컨데 명종의 양자로 선조가 등판 하는데, 이 때 부터 본격적으로 '혈통 콤플렉스'가 시작된다. 그 후 선조-> 광해-> 인조-> 효종-> 현종-> 숙종으로 이어지며 혈통(적장자-정실소생)부분은 인조 이후 (효)종/(현)종/(숙)종 3대를 거치며 혈통 콤플렉스가 1차 마무리가 된다.


'종' 또는 '조'를 붙이는데 있어 차이점이란 '종'은 후계자가 적장자 일 경우고, 조는 반대다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선택적으로 붙이기도 했다. 아 그럼 적장자인 '종'이 붙은 왕은 왕권이 강했겠네? 그런가? 정확히 말하면 왕권을 강화 하려고 할 땐 외려 '조'를 붙였다. 영조, 정조식으로.


주인공인 영조에 대해 어찌 생각하슈들?


조선왕조 최장 집권 52년간 백성과 나라의 운명을 짊어졌던 왕. 역사책은 덮자. 5천년 역사를 한 권의 교과서에 담는 취사선택에 있어 영조에 대해 설명하면 얼마나 했겠는가? 그리고 자아가 완성되지 않은 초중고생 역사 교과서는 '긍정의 역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들이 보고 배우는 역사책에 허구성 양민학살 같은 것을 적시하여 국군을 개차반으로 만들고, 노상 왕들의 병신 같은 모습만 사실대로 적시 한다고 생각 해보라. 미국 역사책도 초중고 과정엔 긍정의 역사다. 그 게 아니라 인디안 학살하고, 머리 가죽, 코 베는 사실을 적시 해야나?


그런건 성인이 되는 대학 과정 부터 배우고, 가르치고, 스스로 판단하게 하면 된다.

그렇지만 한국의 역사 교과서는 좌파 사가들, 역자들에 의해 부정의 역사가 어린 아이들 단계 때 부터 주입되고 있다. 특히 근, 현대사는 비참한 수준이다. 예컨데 박정희의 산업화 과정과 눈부신 성장에 대해선 한 마디도 안 나오지만 5.16 쿠테타, 헌정질서 파괴, 독재 운운 같은건 상술하고 있다.

이렇게 가르친다. 그러니 내가 역사책은 덮으라고 하는 것이다.


52년 간 집권한 영조에 대해 필설로써 하자면 2만 페이지는 족히 나오겠다. 그리고 교과서엔 길어봐야 반 페이지 이상도 할애되기 어렵다. 그래서 알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함축화 하여, 가장 상징적인 점을 꾸집어 내 소개 할 것인가가 문제다.


자칫 길어지면 안 그래도 지겨울 수 있는 역사 얘기가 더 재미없어 질 수도 있기에 재미라는 요소도 배제 할 수 없다. 들어 본 얘기는 그래서 노 재미다.


실록을 기반으로 보자. 보통 사람들은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왕조실록을 볼 기회나 계기는 거의 없어서 본 도둑이 대신 읽으며, 해석한다고 치자구.


영조가 누구야? 한글을 창제한 왕인가?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미지 쿠킹 때문이다.



영화와 드라마가 역사 왜곡의 최대 범죄자다. 캐스팅 부터 그렇다. 이순재, 송강호 식이다. 검소했고, 탕평을 했으며, 자신에게 엄격한 가운데 어쩌고 저쩌고..결론적으로 다 개소리다. 180도 반대로 보면 정답인 건 뒤로 읽어 내려가 보면 알게된다. 


사극 류를 제작함에 있어 고증과 영화적 재미, 이 두 가지면 80프로 성공한다. 그 중에도 고증의 문제, 군인들의  <철릭갑주>나 세시풍속 등등 고증에 성공해야 하는데..


고증에 대해 너무 안일하다. 예컨데 조선 군마를 생산하는 전국의 목장으로 부터 납품되는 군마는 '과하마'(과일나무 밑으로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체고가 낮은 말)이란 의미로 체고가 145센티 정도, 조랑말 보단 조금 크고, 몽골 군마 보다는 조금 작았다. 


고려 때는 대량으로 생산 되어져 중국으로 수 천 필이 수출되기도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나온다. 목장들이 사라진 건 임진왜란 때 등장한 조총 때문이었다. 그 이 전의 조선군은 기마부대 중심이었다.


그런데 모든 드라마에 나오는 군마는 체고가 160센티가 넘고 장구, 등빨, 힘, 스피드가 어마어마 한 경주마 출신 '서러브렛' 종이다. 이 종의 시조인 '고돌핀 아라비아'등의 아라비아산 씨수말과 영국계 암말을 교배시켜 개량된 종이다. 이런 말들을 승마장으로 부터 임대해서 쓰는거다.


반면 중국 무협, 사극 영화에 나오는 말들은 해당 시대 전통마가 맞다.(이런건 전문 분야니깐 관객이 눈치 못채긴 한다) 영화를 얘기하잔 건 아니니 여기서 접자.


자, 영조를 단 한 줄로 정의 해보겠다.


나는 그를 "교묘함이 추가된 연산군 + 문재인"이라고 본다.  - 해란강 -


큰 사건을 위주로 가급적 함축적으로 살피자. 하고픈 말 다 하자면 만리장성 이다.


인터넷에서 어 떤 넘이 영조에 대해 썰을 풀길래 뭐하는 넘이지? 하고 보는데 갑자기 김 을동씨(김두한 딸)를 언급하며,


"아니 장군의 손녀가 왜 거길(아마도 자유한국당) 간 거야"하며 말도 안된단 투로 너불대길래..몇 시간 분량이 될 걸  보다가 5분 만에 꺼버렸다. 


김두한과 송일국의 엄니이자 전 의원인 김을동이다.


두한이 성님은 빨갱이를 극도로 싫어했던 막강 우파 성님이셨다. 그런 성님의 딸이 친노종북 빨갱이 당으로 가는 게 맞는거냐? 역사 강의를 한단 놈이 수준 하고는..



62년 3.1절 기념식을 마치고 원조 각하와 함께 힘껏 손잡은 김두한 의원.



더우기! 용정 어느 정미소 앞에서 공산당 놈에 의해 권총으로 저격 당한 김좌진 장군의 손녀가 더블어미친오입쮜랄종북당에 가서 공천 받아야 겠냐?



청산리 전투 대승 후


'봉오동 전투'란 좌좀 영화가 나왔다가 폭삭 망했지? 왜? 항일 전쟁사를 영화화 하려면 청산리 대첩과 김좌진을 빼고는 논해봤자, 만들어 봤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좌좀들은 김좌진이 싫은거다. 공산당 총에 맞아서, 김두한이 우파라서, 김을동이 토착왜구당 출신 이라서. 딴 이유없다.


역사책에 언급도 없어 이젠. 대신 김원봉이 같은 뿔갱이 자슥을 부단히 띄우는 식이지. 맘 같아선 백두혈통 김일성 장군의 빨치산 투쟁을 영화화 하고 싶겠지만 그랬다간 더 망한다.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


곁다리니깐 여기까지.



영조 52년 집권기 동안 있었던 소소한 얘길 다 하자면 이불 펴고 3박4일을 들어도 모자라니 큰 틀에서 보자.


그의 외교 정책 중 대 중/일 부분은 문재인 처럼 중국엔 끝없는 굴욕, 허구헌날 왜구들에게 민초들이 개털리는데도 일본(요즘으로 치면 문재앙과 북한)과의 끝없는 평화 타령만 했다.


그가 내놨던 가장 상징적인 법안이 바로 '균역법(均役法)'이다. 이 거 뭐 좋은 법 같지? 그렇게 가르처 왔으니깐. 그도 그런게 세금을 1000원 받던걸 500원 만 내도 된다고 했으니깐 말이다. 그럼 그 부족분은 어디서 충당하나?  


네에 그렇습니다 조선시대 문재앙 다운 영조. 돈 막뿌리고 난 다음 포에서 미(쌀로) 바꿔서 다시 다 걷어갔다. 결국 국방비, 군대를 줄이는 효과만 났을 뿐이다. 소는 누가 지키나? 누구 좋으라고? 중국/일본 이겠지. 그럼 나라가, 안보가 위험 하잖아? 


'평화!!'


응 난 그런거 몰라. 백성들 한테 인기만 받으면 그만이야 식 이었다.(진짜임) 문재인, 노무현은 영조의 환생인 갑다.


개인적인 인성은 선왕에게 독이 든 간장게장과 상극인 감을 동시에 바처 독사하게 만들고 왕위에 올랐다는 의심 때문에 편할 날이 없어서 성격 자체가 대단히 좀스러운데다, 히스테리에다 잔인하기 까지 했다.


그러던 중 1755년 엄청난 사건이 하나 터져서 영조의 극악스러운 모습을 여과없이 보게된다.


목숨을 건 노론/소론 간의 전쟁의 일환으로  나주 지역에서 '괘서'사건 발생했다.


노론은 정권을 잡은 여당이었고, 영조도 노론에 적을 둔 자나 마찬가지 였다. 괘서엔 대략 다음과 같이 적시되어 있었다.(나주 괘서 사건에 대한 자료는 검색해도 거의 없었다)




'간신배들이 득세하는 이놈의 나라와 조정엔 임금으로 부터 아래로 쓸 만한 새끼가 없다. 임금이 임금 다워야 임금이지'라는 류의 내용이 내걸렸다. '괘서'란 걸게 글이란 의미다. 큰 지도를 걸어 펼처놓은 것을 '괘도'라고 하듯이.


쉽게 말해서 영조는 집권 후 30여 년이 지난 그 순간까지도 여전히 ‘이복 형을 독살하고 왕위를 찬탈한 노론 당적의 천민(무수리 출신 어미) 출신 임금이고, 숙종의 아들이 아닌 최 무수리와 가까이 지내던 가객 '김춘택'의 아들이다 ’  라는 비난과 의혹이 사그라들지 않았음을 '괘서'에서 확인 하고서는 연산군과 같은 반미치광이 처럼 행동했다.


노론에 의해 학살 당했던 소론이 벌인 일 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영조는 빡이 극도로 오르지만 손을 댈 단계는 아니었던 것으로 실록에선 읽혀진다. 하지만 이 사건을 조사해야 할 나주목사 이정하가 뭐라고 말했는가 하면..ㅋ 


"뭐? 맞는 소리 했구만..내가 와 처벌해야 하노?" 해버린 것이다. 이에 영조의 혈압은 여기서 터지고 말았다.


'나주목사 그 새끼 당장 잡아와!' 이리 된거다.



 잡아다 이렇게 죽이고.

하여 나주목사 이정하는 물론이요 친가, 처가, 4촌, 고모 , 당숙 가릴 것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 것도 모조리 <입>을 찢어 죽였다. 입조심 안하면 간다는 걸 보여줬다.


저렇게 죽이고


소론(사도세자 세력)관련자들은 능지처참(팔과 다리를 말에게 밧줄로 묵어 뽑아 버리는 형벌)도 아닌 <오지처참>을 가했다. 쉽게 말해서 팔다리 뿐 아니라 목에도 줄을 걸어 다섯 군데를 뽑아 버리는 것 이었고, 영조가 이 것을 직접 참관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정도면 4신 기관총으로 고모부 장성택이를 쏴죽인 김정은인 명함도 못 내밀겠지?


저 때 때려죽인 사람이 무려 700여명 이었고,,얼마나 징했던지 나중엔 능지처참을 행하던 마필들이 지처서 움직이지 못했다고 할 정도다. 이런거 역사책이나 영화엔 못 써먹겠지.


그 전 후로도 천민출신, 선왕 독살 등의 콤플렉스로 인해 무수히 사람을 때려 죽였다.


자식까지 뒤주에 가둬 죽이는 자가 뭔 짓을 못하겠는가? 이제까지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던 영조에 대한 인상이 확 깰 것이다. 실록은 역사책 마냥 승자의 기록 따위가 아니다. 


왕이 죽고나면 '실록청'에서 임금과 궐 내부에 관해 년, 월, 시, 분 단위로 깨알같이 기록되어 보관된 '승정원일기'. '의정부등록' 등의 사초를 모아서 저작해 낸 것 이기에 팩트 그 자체다. 인류문화유산에 등록된 왕조실록이다. 


임금도 함부로 편집에 개입 못했다. 심지어 폭군 연산군도 사초를 기록하는 관리에겐 '잘 좀 써달라'고 할 정도 였음이니..마..


영조는 아주 소인배 였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태생이 천출인데다 콤플렉스도 그러하거니와 야당인 '소론' 새끼들은 꼴도 보기 싫어했다. 그런데 뭐? 탕평을 했다고? 가당찮은 얘기다. 영조는 하루 5시간 이상 자지도 않았고, 고기도 안 먹었으며, 금주령 까지 내렸었다.


5시간 이상 잠자는 이는 사람도 아니다 라고 까지 했다. 더욱 가관인 건 자식들 마져도 딱 한 둘만 편애하고 나머진 사람 취급도, 눈길도 안줬다.


사도의 누이인 '화완옹주'만 물고빨았지 나머지 자식들은 줒어온 애들 만도 못하게 취급했다. 궐내엔 화완옹주만 다닐 수 있는 길을 내질 않나, 결혼을 하면 궐 밖 사가로 나가야 하는 궐규칙 까지 어겨가며 궐내에 머물게 했다.


사도 세자는 궐내에서 빚어지는, 아버지 와의 사이에서 잉태된 스트레스는 상상초월 이었다. 정말 미치지 않고선, 술에 만취되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다.




영화 사도에서도 어느정도 보이지만 영조는 사도를 어떻게 하면 꼬투리 잡아서 못살게 굴까만 연구하는 인간 이었다. 예컨데 섭정을 하는데 있어서..사도가 어떤 결제 사안에 대해 선결을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 걸 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니 맘대로 했느냐!"며 멕이고, 그래서 "이 거 결재해도 될까요?"물으면 "그런 것도 하나 못해서 일일이 나한테 물어보느냐!'하고 또 쪼인트를 깐다.

사도가 '미처 돌아서 사람을 죽이고, 심지어 목을 잘라서 들고 다녔다'는 식으로 회자 되는데,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설령 사실일 지언정 700여명을 때려죽인 영조에 비할손가? 미안 하지만 추정컨데 노론에서 만들어 낸 말이고, 뒤주에 가둬죽인 영조를 정당화, 면죄부를 주려는 시도였다란 판단이다.


사도는 그럴 인간이 못되고,,유일하게 그런 언급이 있긴한데, 바로 사도의 부인, 세자빈이자 성군 정조의 어머니인 헤경궁홍씨가 지었다는 <한중록>에만 살짝 나온다. 이 건 말 그대로 사인이 지멋대로 쓴 일기 수준이니 이를 사초로 쓸 순 없는 노릇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연출되는 영조와 사도에 관한 스토리는 철저히 노론과 혜경궁의 한중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란 것이다.


한중록 혜경궁홍씨는 사도 부인으로써 입장 보다는 친정집 가문의 일원으로써 사유했다. 영의정 홍봉환, 홍인환 등 전부 삼촌이고, 친정 아버지고 그런다. 첨부터 그랬다. 


남편 보다는 친정 가문의 일원으로써 모든 사태를 관조했다고 나는 본다.(이 문제에 관한한 별의 별 추측과 정파 입장에 따라 여러갈래 의견이 분분한 건 맞지만)


남편이야 뒤지건 말건 아부지, 가문, 삼촌, 정파가 우선 이었다고 본단 의미다. 어린 이 산(정조)의 눈물나는 구명 운동과 달리 홍씨의 그런 적극적 모습은 기록에서 본 기억이 없다. 그렇게 드라마나 영화란 일정 부분 입에 침도 안바른 거짖뿌렁들이 많다.


암튼 조선왕조 폭군 삼대장은 영조 - 광해 - 연산이고, 만득이 삼대장은 인조 - 선조 - 고종이다.


추앙 받아 마땅 할 성군은 세종과 정조 외엔 찾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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