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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이 만난사람]돌아갈 수 있는 궤도에서 너무 이탈
08/20/20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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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이 만난 사람] "文 대통령은 '영웅 심리'에 빠졌나… 돌아갈 수 있는 軌道서 너무 이탈"

['객주'의 작가 김주영]

"자신이 딛고 있는 현실을 뒤돌아보지 않는 게 문제
理想 아닌 훼방꾼과 손잡고 나랏일을 하는 것 같다"

"만나기 싫은 사람 앞에서 헛웃음도 많이 웃었다
내 인생 얼마 남지 않았는데 너무 퍼질러 놓고 살았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4시간을 부지런히 달렸다. 경북 청송(靑松)의 '객주문학관'에는 여름비가 뿌리고 있었다. 작가 김주영(78)은 한 달 넘게 여기서 머물고 있는 중이다.

몇 달 전 '뜻밖의 생(生)'이라는 작품을 냈다는 소식을 빼면 그는 세상 뉴스에서 멀어졌다. 불현듯 그런 그를 '문재인 정부 100일'에 떠올린 데는 연유가 있다. '객주' '활빈도'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홍어' 등에서 민초(民草)의 삶을 풀어냈던 그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 설명한 적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궁핍을 겪는 사람들이나, 역사의 행간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 하루 두 끼 식사로도 감지덕지하는 사람들, 빗방울이 새는 움집에 사는 사람들의 편에서 글을 쓴다.'

이는 서민과 약자, 소외 계층을 대변하는 듯한 문재인 정부와 상통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부동산 대책, 부자 증세, 선심성 사업, 의료 복지 확대 등 '혁명급' 정책이 쏟아졌으니 말이다. '고마워요 문재인'이 합창(合唱)처럼 방방곡곡 울려 퍼지고 있다.

     
―선생은 당연히 '문재인 찬성'이겠지요?

"앞날이 걱정됩니다. 정규직 전환하고 최저임금을 올려주겠다는 마음은 좋은데, 뒤에 어떤 문제가 따르는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5년 뒤 본인이 퇴임한 다음의 문제를 뒤돌아보는 것이 부족합니다. 나라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돌아보지 않고, '한번 바꿔보겠다'는 욕구만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약자와 소외계층의 편에서 글을 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문재인 정부는 이를 정책으로 실천에 옮기고 있고요.

"글은 단지 정신적 위로를 주는 겁니다. '삶이 그대롤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푸시킨의 시처럼 말입니다. 정치는 현실적인 위로를 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여러 계층 간 조율, 경제 능력, 국가 장래, 역사 등 여러 면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 정부는 입으로는 '통합' '협치'니 하지만, 실제로는 좌파 성향의 자기 사람들로 채웠습니다."

―문 대통령이 우파 정책을 쓸 것으로 기대하고 뽑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김대중·노무현만이 아닌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 있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하는 것을 보면 좌파 일색의 가치와 정책뿐입니다. 가령 대기업이 돈을 벌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싹 무시합니다. 이 나라가 이만큼 먹고살게 해온 전(前) 정권의 업적을 지워버리려는 것도 그렇지, 한 예로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 우표'를 못 내게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연설할 때마다 '통합'이라는 말을 합니다. 차라리 '내 사람 데리고 좌파 정책을 쓰겠다'고 하는 게 정직하지요."

―문 대통령은 정의와 상식, 국민 주권으로 가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들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이분은 촛불집회로 갑자기 대통령이 되면서, 영웅 심리에 빠진 게 아닌가요. 평상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궤도에서 너무 이탈해버렸습니다. 좌파 정책을 보면 초가삼간에 들여놓을 수 없는 큰 장롱을 들여놓겠다는 격입니다."

―약자를 위한 문 대통령의 선의(善意)에는 동의하지 않습니까?

"방법에서 달라야 합니다. 뒤돌아볼 줄 알아야 해요. 박근혜 전 대통령도 뒤돌아볼 줄 몰라서 이런 사태를 맞았지 않았습니까.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면서 '내가 최선이고 비판하는 사람은 악(惡)'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습니다. 좌파 이상주의에 빠진 것 같습니다."

―이상(理想)도 필요하지요. 이상 없는 현실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딛고 있는 현실을 뒤돌아보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상이 아니라 마치 훼방꾼과 손잡고 나랏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훼방꾼과 손잡는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좌파 시민·사회단체들이 청구서를 내밀며 얻어내기 위해 훼방을 한다는 겁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들로서는 그동안 못 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있는데, 문제는 그게 받아들여지니 끼니때마다 운다는 겁니다. 문 대통령이 이들의 손을 놓지 못하거나 이들에게 밀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런 비판은 보수의 관점인데, 선생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 옳았다는 겁니까?

"박근혜 정부가 제대로 한 게 있습니까. 박 대통령 시절 편 가르기가 심했고 권한을 남용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박 정부와 색깔과 논리는 다르지만 똑같이 편중돼 있습니다. 결국은 비슷한 길로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사 준비위원으로 참여했지요?

"그때는 노무현의 서민 정책에 호감을 가졌습니다. 처음에 기대를 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갈팡질팡했습니다. 이들 정치 세력은 무슨 원수를 갚으러 나온 사람 같았습니다. 노무현 탄핵 직후인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공천심사위원도 했지요. 공천 심사 때 탈영 이력이 있는 사람을 내세우기에 내가 기어코 반대했습니다. 공천 심사를 끝으로 그쪽과 작별했습니다."

―선생의 이념적 정체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시 한 인터뷰에서 '솔직히 무엇이 보수고 진보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념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가치관에 비춰 양심적인 길인지 아닌지 판단한다. 그게 보수가 볼 때 진보일 수도, 진보가 볼 때 보수일 수도 있다. 어떨 때는 회색분자로 비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뒤 청와대에서 명절이면 보내주던 대통령 선물을 끊더군요(웃음). 이제 나는 '보수'라고 해야겠지요."

―왜 보수(保守)가 된 겁니까? 흔히 나이가 들면 보수가 되는 것처럼 말인가요?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시야가 넓어졌고 나라 장래 걱정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문 대통령은 '우리 동의 없이 한반도에서 군사행동 결정할 수 없다'고 했지만, 6·25 때 김일성이 우리 동의를 받고 우리에게 물어보고 쳐 내려왔습니까. 대통령 외교 안보 특보라는 사람(문정인)도 마치 김정은이 가만히 있는데 트럼프가 험한 말을 한다는 식으로 미국 언론매체에 말하더군요. 청와대에서 이런 사람을 그냥 놔두는 것도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선생은 좌파 정치 세력과 더 인연이 있었던 게 아닌가요.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과 국민과의 대담'을 세 차례나 진행했지요?

"김대중 대통령이 나를 직접 지명했어요. 촬영 두 시간 전 청와대에 도착해 따로 환담했습니다. 이분은 그 자리에서 커피 석 잔을 연거푸 마시며 '감옥에 있을 때 객주를 두 번이나 읽었다'며 나를 만난 것에 흥분했어요. 내 손을 계속 쥐고 있었어요. '정치 9단'이라는 양반도 이렇게 순진하고 정이 많구나 싶었어요. 사실 김대중 대통령은 편중된 인사를 안 했습니다. 경북 출신 우파인 김중권을 비서실장으로 썼으니까요."

―선생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민대통합위원으로 활동했는데요.

"국민대통합위원회에 파견된 공무원만 70명 가까이 됐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되는 게 없었습니다. 대단한 낭비였습니다. 한번은 박 대통령과 환담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내가 '우파 정권이 너무 경직돼 있다. 울타리를 치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한다. 이래서 통합되겠나'라고 말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반응이 없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논란이 됐습니다. 선생은 이를 어떻게 봅니까?

"정권마다 이런 분류는 다 있었습니다. 문서로 된 명단이 안 나왔을 뿐이지. 이명박 정권 시절 문화예술지원 심사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윤이상 음악제'를 위해 2억원의 예산 신청서가 올라왔습니다. 사무국 직원이 심사도 하기 전에 '윤이상은 좌파라서 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당신들 언제까지 좌파·우파 따질래'라며 통과시켰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문제로 지금 보수 정당은 이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뒤 그와 함께한 정치인들이 가만히 있는 걸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자기의 정치 생명과 이익을 지키는 것에 만족하지, 국가를 생각하는 게 없습니다. 마땅히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조용히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좀생이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계속 정치 얘기만 하고 있군요"

―화제를 옮기겠습니다. 몇 달 전 장편소설 '뜻밖의 생'을 내고는 "1만부만 팔리면 다음 소설을 또 쓸 것"이라고 했지요. 시장의 평가는 어땠습니까?

"잘 안 팔렸습니다만, 1만부는 나갔습니다. 팔십 가까이 돼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은 소외계층이 위로받을 수 있는 소설을 써야겠다는 겁니다. 문학이 이들에게 돈도 밥도 못 주지만 위로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요즘 수면 장애를 앓는다고요?

"잠자리에 들어도 '이 문장이 좋을까 저 문장이 좋을까'하고 뇌 활동이 계속됩니다. 잠이 안 오는 겁니다."

―나이 팔십이 됐는데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하는 회의감은 없습니까?

"하하, 글의 굴레에서 못 벗어납니다. 이번 소설은 1년이 걸렸습니다.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고. 데뷔 초기에는 베개를 가슴에 받치고 엎드려 밤 꼬박 새우며 단편 하나를 썼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쓸 수가 없고 설사하듯 써도 안 되지요."

―언제까지 쓸 겁니까?

"창작집 한두 권 분량의 단편소설을 더 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과 만나는 걸 덜하게 됩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를 대략 아니까요."

―제 지인(知人)은 "노년이 되면 주위의 사람과 물건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번잡한 관계와 소유욕을 경계한 것이지요.

"과거에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먼저 술값을 못 내 안달이 났습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기분을 위해서였지요.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 헛웃음도 많이 웃었습니다. 칠십 초반부터 조바심이랄까, 내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가 너무 퍼질러 놓고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삶'은 '사람'이라는 글자의 축약입니다. 삶은 사람과의 관계지요. 이제 간추리고 싶은 겁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0/20170820017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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