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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수국철
06/25/202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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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친정집에서다. 백일 지난 첫아기를 안고 수국이며 백합 흐드러지게 핀 뜰에서 찍은 흑백사진 한 장. 아버지는 볼일로 대처에 다녀올적마다 화분을 안고왔다. 지금 생각해봐도 신기한 일이지만 그렇게하여 군 단위 시골인 우리집에는 60년대에 온실이 있었다. 어느 겨울밤 연탄불이 꺼지며 신기루처럼 사라진 아열대 여린 식물들. 그 추억의 잔재로 남겨진 수국이다. 아버지가 화분 안에 백반을 묻으면 흰꽃이 푸르스름하게 변했다. 물에다 빨간 물감을 타서 물뿌리개로 뿌리짬을 적셔주기도 했다. 


이처럼 희다고 계속 하얀 것도 아니고 파랑이라고 다 파랑색만도 아니다. 순백에 핑크 연분홍 자주색 연노랑 연두색 청록 연보라 남보라 진보라 …. 미묘한 파스텔톤 배합에다 짙고옅은 농담이 한 송이에서 조화를 부린다. 흙과 물이 어찌 저리도 신비스런 빛깔을 빚어낼까. 한 그루에서도 뿌리의 길이나 수분 흡수량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색깔로 변해간다. 그래선지 색색이 다른 꽃말은 냉정, 냉담, 무정, 변덕, 변심, 진심이다. 진심이었다가 변덕이 생기면 변심도 예사롭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요즘 세태 시류같다. 


수국의 다른 이름은 태양의 꽃 자양화(紫陽花) 다. 해보다는 물과 친한 꽃인데 왠지 중국 시인은 그렇게 불렀다. 토양에 알칼리 성분이 강하면 분홍빛 꽃으로, 산성이면 남색 꽃이 피므로 생각대로 꽃 색깔을 바꿀 수 있다. 꺾꽂이와 분주로 번식시킨다. 수국밭을 이룬 이곳도 사찰 경내이지만 대체로 절에 많이 심는다. 부처님의 머리모양을 닮은 불두화와 꽃모양은 비슷하나 잎새를 보면 영 다른 종류다. 학명은 하이드랜지어(hydrangea)다. 라틴어로 물을 담는 그릇이라는 뜻. 그늘지고 습기가 있는 나무 그늘에서 무성하게 자라며 너무 건조하면 꽃이 잘 피지 않는다. 수국은 장마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꽃이니 물기많은 비의 꽃이다.


멀리서 수국 언덕을 바라보면 한 덩어리 꽃송이가 마치 각각 한송이의 꽃처럼도 보인다. 너른 터에 자리잡아서인지 전체적으로 풍성하고 넉넉하면서도 소담스럽다. 신부 부케로도 선택받는 수국꽃, 꽃 하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어느 부위가 진짜꽃인가 싶다. 원래의 꽃 자체야 작은 꽃잎은 물론 수술과 암술이 퇴화하여 몽글몽글 오글오글 모여있어 볼품이 없다. 그 모양으로는 더구나 향기도 없으니 눈여겨 볼 리 만무다. 이에 신의 섭리라는 절묘한 수가 개입한다. 생존전략상 곤충을 부르려 나비같은 가짜 꽃잎을 스스로 만들게 하는데 이는 꽃받침이 변형된 것이라 한다. 


청보라색, 자색, 분홍색, 흰색, 빨간색의 꽃이 핀다. 꽃은 처음엔 노르스름한 흰색으로 피기 시작하지만 점차 청색이 되고 다시 붉은 색을 더하여 나중에 보라색으로 변한다. 지조없다고 나무람 받아도 할말 없겠다. 아무튼 시시각각 그 조화가 변화무쌍하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수국 명소는 부산 태종사 수국이다. 삼천 그루가 넘는 수국이라니 아예 수국밭이고 수국언덕이다. 해마다 칠월이면 수국축제가 열렸다고 한다. 올해는, 이 시대를 살아온 그 누구도 경험해본 적 없는 이상야릇한 시절이라 수국축제가 열리지 않는다. 태종사 유월 수국은 아직 제철이 아니라도 꽃을 담으려는 사진작가와 관람객이 제법 많았다. 각박한 세상에도/서로 가까이 손 내밀며 / 원을 이루어 하나 되는 꽃. 이해인수녀가 남긴 수국 시다. 

 











 






 


 








꽃의 章

 

 

유달리 말수가 적고 조용했던 소녀 시절. 결벽증에 가까이 깨끗하고 반듯한 것에 집착하여 내 주위는 언제나 깔끔히 정돈되

어 있어야했다. 또한 책상머리에는 쑥갓꽃이라도 시들지않게 꽂아두곤 했었다. 꽃이 귀한 겨울철이면 조롱조롱 빨갛게 열린 

까치밥이나 하얀 갈대가 그 자리를 채웠었다. 비록 조악한 복사품이지만 나무틀에 단정히 걸려있던 모네의 '수련'은 좀더 자

라 렘브란트를 좋아하기 이전까지는 늘 내곁을 지켰다.

 

이렇듯 정결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애착은 어쩌면 보편적인 여심(女心)일런지 모른다. 특히 이러한 성격을 북돋운 것

은 우리집의 가정환경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후천적 성격 형성에 생활 환경이 차지하는 몫이 크다함은 주지의 사실이

듯.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정(靜)에 가까운 내 성품은 얼키고 설킨 인연을 짓기보다는 자연속에 묻힘을 더 기꺼이 여기는 

다. 교우 관계 역시 번다하지 않고 맘에 맞는 한 둘로 충분한 연유도 그 까닭이리라.


어릴적, 언니와 나 이렇게 단지 자매뿐인 집안은 늘 꽃그늘같은 정적이 감돌았다. 단촐한 그 세계안에서 우리는 엄마와 오손

도손 동무이듯 지냈다. 솜씨좋은 엄마는 우리에게 예쁜 섶의 저고리는 물론 손수건 가장자리에 아기자기한 꽃수도 놓아주셨

다. 재봉틀 덮개마저 맵시있게 올을 뽑아 감친 다음 앞자락에 십자수의 덩굴장미로 곱게 꾸미던 엄마. 말씨조차 조용조용, 빙

긋이 웃는게 전부였던 엄마를 보면서 자매는 그렇게 자라났다.(어제도 통화 나눈 고등학교적 친구는 조신하던 네가 어찌 이리 변했냐고 신기해한다.)

 

당시 우리가 살던 집은 기역자의 너른 초가집이었다. 그 안 마당 가득 엄마는 갖가지 꽃을 가꾸셨다. 이른 봄 개나리에서 시

작되어 서리내린 늦가을 국화에 이르기까지. 화목 사이사이로 일년초도 물론 심으셨다. 키 순서대로 채송화 과꽃 백일홍 맨

드라미……. 뿐만 아니라 정열을 토하는 다알리아나 소담스런 수국, 청순한 붓꽃과 옥잠화도 때맞춰 피고 졌다. 꽃밭의 향기

따라 온갖 곤충들이 모여 들었다. 나풀거리는 노랑나비며 태극 무늬 호랑나비. 잉잉대는 벌과 꽃등에, 무당벌레와 사마귀도 끼

어 있었다.

뜨락 한켠 장독대 주변에는 새파랗게 부추가 자랐으며 여름 한철 꽈리가 감빛으로 물드는 곳도 거기였다. 저녁놀이 쉬었다 

가는 서쪽 창에 무성하던 나팔꽃. 그게 한물 지고나면 넌출넌출 휘감아오른 유자와 수세미가 만수산 드렁칡인양 뒤얽혀 푸

른 그늘을 지어주었다. 봉선화 물 곱게 든 손톱이 반달만큼 남을 초가을 즈음이면 국화잎 고른 걸 따서 눌러두곤 했었다. 그

러다가 바람자고 볕 바른 날 가려 창호지 바를때 손잡이 쯤에 무늬 놓던 국화. 게서는 겨우내내 국향이 스며나오는 것 같았

다. 꽃모종 옮겨 심는데서 시작되는 꽃밭 가꾸기는 종류별로 씨앗 모아 봉투에 간수하고 빈 꽃대 거두어 태운 다음 재묻으며 

끝이 났다.


유년기의 정(情)이 고인 그집을 떠나 언덕위의 기와집으로 이사 한 것은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집 주변을 감싼 아카

시아가 하얀 꽃을 주렴이듯 늘이고 짙은 향기를 풀던 날 우리는 새집에 들었다. 당시 아버지는 인근 동산을 구입, 밤나무 농장

을 일구는 중이었다. 과수 재배에 관한 원예서적을 열심으로 보더니 자연스레 화훼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그와함께 꽃나무 수

이 시작되었다. 볼일로 서울 등 대처에 다녀오실 적마다 군 소재지였던 시골에선 보기드문 희귀종의 화분이 하나씩 늘어갔다. 이상한 냄새의 제라늄이 제일 먼저 양지쪽 화분대에 자리잡았고 몬스테라 군자란 소철 팔손이 종려죽 남천……. 외에도 이름모를 관엽식물이며 사보덴, 난 종류가 모여 들었다.

 

잎 지는 가을이 오고 그 발치에 겨울이 가까워지자 그들을 위한 온실이 필요했다. 중북부에 속한 충청도의 한끝 서해안 변에는 눈도 많이 오고 겨울이 길다. 전문 서적을 구하고 아버지께서 손수 설계를 한 온실이 그리하여 남향의 볕좋은 마당 가운데 들어섰다. 물론 처음 한해는 유리 대신 비닐창을 했으나 영구성도 없을뿐더러 눈 무게를 감당해내지 못해 다음해 다시 공사를 했던 것이다. 그 첫 겨울은 아침이면 긴 대빗자루로 온실위의 눈을 치워내는게 내 일과였다. 비닐위에 가마니 같은걸 겹 덮어주긴 했지만 그 일을 할때의 조심성이라니.


여름이면 우리는 또 담장밖 깻묵 단지에서 부글부글 거름이 익어가며 풍기는 고약한 악취에 시달려야했다. 꽃거름은 계분 묻

어 주는 외에 깻묵을 잘 썩혀서 우러난 웃물을 떠주었었다. 그 냄새는 무척이나 지독했다. 하지만 거름을 주고 난 며칠뒤 잎새엔 윤기와 생기가 한결 더해져 반질거렸다. 꽃망울 실해지고 새움은 부쩍 크는것 같았다. 화초들은 탐스런 꽃을 피웠으며 관엽식물마다 눈에 띄게 건강하고 싱그러워졌다. 우리의 고통을 꽃들은 그렇게 보상해주었다.


꽃을 가꾸다보니 생김새가 다르듯 생태 역시 제각각이라 몇번의 시행착오도 거쳤다. 처음에는 각기 다른 성질을 제대로 파악 못해 어느 것은 수분 과다로 뿌리가 썩기도 했다. 어떤것은 너무 메말라 이파리가 속절없이 떨어져 안타깝게도 했다. 거기다 

갑각충이니 진드기 등 해충이 붙어 시들시들 꽃나무를 말려놓기도 했다. 이렇듯 그네들은 끊임없이 관심어린 시선과 정성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생명이었다. 우리집은 정말 꽃집이란 칭호에 부끄럽지 않게 많은 종류의 꽃들을 소장하게 되었다. 관공서의 행사때나 학교의 특별한 날에는 으레이 우리집 꽃들이 식장의 단상에 올려지는 귀한 초대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섣달이 겨운 연말 무렵이었다. 눈이 한뼘 쯤은 온 아침, 온실 문을 여시던 아버지의 노기찬 음성이 나무

에 얹힌 눈조차 떨어지게 울려왔다. 잔뜩 긴장한채 온실에 들어섰을때 눈앞에 전개된 사태는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연탄불이 꺼져 싸늘히 내려간 실내온도. 영하의 기온에 꽃들은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꺼멓게 상해버린 관엽식물의 잎. 축 쳐진 다육질 사보덴. 대부분이 아열대성 식물들이라 이미 살아날 가망은 보이질 않았다.

주검. 비록 식물체의 그것이지만 섬짓함마저 들게하는 몰골이었다. 허망했다. 한때의 영화를 전설로 남기고 쇠잔해버린 왕조

의 비애같은 꽃의 유해. 그 곁에서 나는 문득 자신의 성장을 느낄 수 있었다. 생(生)에 무늬진 명암을 어렴풋이 본 것도 이때

였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의식의 눈뜸은 물론, 사는 동안 무수히 겪을 별리(別離)를 예감한 것도 이때였다.

 

이듬해 봄. 겨우겨우 살아난 화목의 밑둥치와 추위에 강한 몇몇 품종이 초라한 모습으로 온실을 지켰다. 발길이 뜸해진 온실은 차츰 등나무 그늘에 묻히고 이끼 깔린채 폐원이 되어갔다. 다만 간신히 꽃집의 명맥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온실 한 귀퉁이

에 삽목시켜 놓았던 장미며 수국 등이었다. 그곁에서 구근으로 묻혔던 수선이며 글라디오라스도 건강히 촉을 틔워 꽃대를 올렸다. 그네들의 건강한 생명력으로 온실 안은 무질서하지만 그나마 꽃향기를 품을 수 있었다. 허나 못내 채울길 없는 아쉬움으로하여 어릴적 꽃밭의 기억처럼 따스한 정감은 가져질 수 없었다. 대신 나는 내면으로 더욱 깊이 침잠되며 혼자의 세계속으로 꽃을 불러 들였다.


그렇다. 그때의 나는 분명 꽃과의 대화를 시도하다보면 그들의 응답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분은 대청에 정좌하고 나직히 금

강경을 읽노라면 한켠에 놓인 화분의 꽃이 알아듣는듯 사르르 떨린다고 하지 않던가. 비록 지금은 보잘것 없는 나의 뜨락. 꽃

밭마저 이루지못한 아파트 베란다의 몇 안되는 화목들을 바라보며 이제도 나는 오관(五官)을 씻는다. 꽃의 이야길 듣고 또 꽃

의 향훈에 제대로 취해 보려고.  <87. 5>

https://blog.naver.com/kubell  새 놀이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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