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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미션의 이끼
10/20/2017 06:00
조회  187   |  추천   6   |  스크랩   0
IP 104.xx.xx.204

    

오래된 미션에 가면 해묵어 퀴퀴한 먼지 냄새와 풍우의 세월이 남긴 녹처럼 습습한 이끼를 만날 수 있다.  

  고색창연한 카멜미션 역시 

흙벽 낡아 모퉁이 무너지고 비 샌 얼룩이 노병의 상처 흔척같이 아릿하게 남아있었다.

담황색 기와지붕은 녹두빛으로 변했고 석축 추상화 화폭에 폭신 싸여 근사했다. 

다 이끼가 부린 조화였다.

사시장철 건조하고 해바른 마을에 살다보니 지붕골이나 나무 밑둥에 낀 이끼가 유독 생광스럽게 다가왔다. 

외갓집 찰랑거리던 돌샘, 바가지로 물을 뜨면 돌에 붙어 하느작대던 이끼가 일제히 왈츠를 추었지

개낀 대흥사에서 본 이끼는 부도밭에서, 석탑에서 푸른 생명을 꽃피우고 있었지.  

후미진 산사 돌담 아래 깔린 새파란 우산이끼는 산토끼처럼 발빠르게 영역을 넓혀나갔지. 

뉴저지 밀밀한 숲속 고목 무릎짬까지 더께진 이끼 깊고도 두터웠지.

 지난 겨울에 이어 다시 찾은 카멜미션 후원에서 이끼에 관한 기억들이 두서없이 한꺼번에 풀려나왔다.








이끼를 세월의 녹으로 풀어 쓴 문장이 아직껏 기억에 남겨진 어떤 분이 동시에 떠올랐다.

중세건축을 접한 다음 구라파 문화에는 역사의 먼지가 차곡차곡 앉아있다, 라고 표현한 대목도 생각났다.

당시 연세 높은 분들은 유럽을 구라파라 표기했다.

한참 윗어른이신 것이, 내가 사십이 채 안됐을 때 1920년 생이신 그분은 정년퇴직 후 법대 명예교수였다. 

'목필'이라는 동인지는 해마다 책을 묶었으니 80년대부터 십수년 한달에 한차례, 동인으로 자리를 함께한 분이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88년 여름 첫 산문집을 낼때 그분으로부터 과분한 발문을 받은 인연도 있는데 

높이 쌓아올린 학문의 탑 남겨두고 오래전 작고하셨다.

 동아대 법대학장대학원장을 역임하신 그분은 목탄으로 그린 인생론’, ‘문학과 철학 사이’ 등 수필집을 낸 

법철학자 현석 김병규박사님이시다.

평소 들어주는 역할을 주로 하시는 그분이 느릿느릿한 말씀으로 수만권 서책이 함축된 해박한 논조를 펼칠땐 

얄팍한 지식으로야 감히 한마디 보태거나 나설 수도 없었다.  

연륜과 경륜을 갖추신 그분은 우리 모두의 멘토로 동인들 중심에 바위처럼 묵묵히 자리해 계셨다. 

오랜 기간 만난 분이지만 여전히 어렵던 어른, 무엇보다 진중하고 겸손한 인품으로 존경을 더 받았다.

  동인끼리 갖는 식사자리에서도 가벼이 허튼 농 한마디 안하시던 점잖은 모습 떠올리니  

 지금은 어언, 그때 그분보다 나이가 더 들었건만 여전 경조부박한 자신이 민망스레 돌아다보인다.

그렇다, 타고난 성정도 성정이지만 품격은 오랜기간 삶 가운데서 자신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다.

주어진 하루를 여하히 살 것인가, 그리하여 먼훗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1700년대 중반, 두번째 선교 전초기지로 세워진 카멜미션에서 세월의 향기 흠향하며 거닐던 중이었다.

이끼 주제로 한 문장과 토씨 하나 소홀히 다루지 않던 어른이 홀연 떠올라

잠시 자기성찰과 회억에 잠겨들게 되었다.  

羞惡之心 義之端也 (수오지심 의지단야) 부끄러움을 아니 그나마 다행이라 위안삼으며 이끼 눅진 카멜미션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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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미션, 세월의 이끼, 역사의 먼지, 현석 김병규박사님, 동인지 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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