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교리 분별 시리즈 (16) : 믿음의 근본 교리는 성경 자체에서 나오고 오직 성경에만 나옵니다.
10/15/201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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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자체의 증거에 따르면, “성경”(the sacred writings, 디모데후서 3:15) 이외의 그 어떤 영적 권위도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없다. 그 어떤 교황의 법령이나 구전(口傳) 그리고 성경 이후에 주어졌다고 주장하는 그 어떤 예언도 기록된 성경을 벗어나서는 참으로 근본적인 진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바른 교리 분별(16) : 믿음의 근본 교리 (1, 2)


“성경자체가 특별한 교리들을 근본적인 교리로 다루고 있는가? 그렇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참된 기독교에 있어서 본질적인 믿음의 신조들이 어떤 것들인지 분별하는데 필요한 성경적인 원칙들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실, 모든 신약성경에서 가장 강한 어조의 정죄는 복음을 더럽히는 거짓 교사들을 향한 것임을 생각할 때, 복음의 메시지야말로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교리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메시지가 우리의 증거의 내용을 결정하는가?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추론이나 견해 사이에서, 그리고 유일한 권위로서의 성경과 로마 가톨릭 체제와 교회의 전통 사이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는가의 문제이다. 두 가지 선택의 결과로부터 나오는 두 가지 복음은 완전히 상충되며 상호 배타적이다.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의 내용과 그 메시지가 과연 기독교의 참된 복음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성경이 근본적인 진리라고 증거하고 있는 바로 그 중심적인 교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문제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 위하여 성경 자체로 돌아가서 참된 기독교에 있어서 본질적인 믿음의 신조들이 어떤 것들인지 분별하는데 필요한 성경적인 원칙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근본적인 교리들은 성경 자체에서 나온다.”


첫째로, 만약 어떤 교리가 진정으로 근본적인 진리라면, 그것은 반드시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만 한다. 교회의 전통이나 교황의 법령, 다른 어떤 권위의 근원은 있을 수 없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디모데후서 3:15) 라고 말함으로써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임을 상기시켰다. 다시 말해 성경이 구원에 필수적이라면, 우리는 구원에 대해 성경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는 근본적인 모든 교리들이 포함되어 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디모데후서 3:17) 하기에 충분하다. 만약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은 교리가 있다면, 그것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시편 19:7)한다고 기록했다. 이 말은 성경만으로 충분하다는 의미이다.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된 진리를 제외하고는 우리 영혼을 소성케 하는 근본적인 영적 진리나 교리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근본적인 교리를 찾기 위하여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벗어나 다른 무엇이 있나 기웃거릴 필요가 전혀 없다. 오직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 이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없다. 이것은 또한 성경만을 유일한 권위로 인정하는 종교개혁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교황의 법령과 로마교회의 종교회의에서 정한 교리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된다고 위협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관습은 이와 완전히 대조된다. 예를 들어 트랜트 종교회의의 일곱 번째 회의 제 1 법령은, 트랜트 회의에서 제정한 가톨릭의 일곱 가지 성사의식에 하나라도 더하거나 빼는 사람에게는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것은 만약 가톨릭신도 중 누구라도 성경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견진성사, 고해성사 또는 병자성사에 의문을 표시하는 자는 파문을 당하게 되고 가톨릭교회의 이름으로 영원한 정죄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랜트 종교회의의 법령들은 이와 유사한 정죄들로 점철되어 있으며, 이것은 실질적으로 종교회의에서 정한 모든 법령들을 근본적인 교리로 간주하는 것이다. 프란시스 튜레틴(Francis Turretin)의 말을 빌리면, “로마 가톨릭은 그들 자신이 쌓은 나무나 풀이나 짚더미 그리고 그들이 만든 모든 교리들을 근본적인 진리라고 주장할 정도로 후안무치한 자들”이다[Francis Turre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vol. 1, George Musgrave Giger, trans.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 Reformed, 1992),53].


성경자체의 증거에 따르면, “성경”(the sacred writings, 디모데후서 3:15) 이외의 그 어떤 영적 권위도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줄 수 없다. 그 어떤 교황의 법령이나 구전(口傳) 그리고 성경 이후에 주어졌다고 주장하는 그 어떤 예언도 기록된 성경을 벗어나서는 참으로 근본적인 진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근본적인 교리는 성경에만 명백히 나타나 있다.”


둘째로, 만약 어떤 믿음의 신조를 근본적인 진리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반드시 성경에 명백히 설명되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어떤 “비밀 지식”또는 “감추어진 진리”등이 근본적인 믿음의 신조로 인정된 적은 없다. 성경의 교훈을 열어보기 위한 특별한 열쇠는 없다. 하나님의 진리는 지적인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린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하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태복음 11:25). 하나님의 말씀은 퍼즐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수수께끼처럼 어렵게 말하지 않는다. 또한 신비롭고 감추어진 것이 아니다. 반대로 들을 귀가 있는 자들에게는 분명하고 명확하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시편 19:7).


요컨대, 모든 근본적인 믿음의 신조는 분명한 확증적인 증거구절에 의해 지지를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의 교리는 참된 기독교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진리로서 성경에 매우 명확히 나와 있다. 물론 이 진리가 성경의 단 한 구절에 의해 포괄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위치우스(Witsius)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성경에 명백하게 포함되어 있는 신조들 가운데…(중략).. 우리는 명시적으로 표현된 신조들뿐 아니라 당연한 귀결에 의해 추론이 가능한 신조들도 포함시켜야 한다. 우리 주님과 사도들은 매우 빈번히 근본적인 믿음의 신조들을 성경에서 유추한 결론을 통해 확증했다(누가복음 20:37,38 참조)…. 근본적인 신조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성경의 본문 몇 개를 피상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진리자체에 익숙함을 의미한다. 그 진리는 성경의 어느 한 부분에서는 다소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을 수 있지만 다른 부분과 종합적으로 관찰할 때 보다 분명하게 빛 가운데서처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Herman Witsius, Sacred Dissertations on the Apostles’ Creed, 2 vols.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 Reformed, 1993 reprint), 1:21].


이것은 하나의 교리가 근본적인 신조로 인정되기까지 논쟁을 전혀 거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참된 기독교에 있어서 무언가 본질적인 것으로 인정되기 위한 유일한 기준은 그것이 기독교의 주요한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적법하다고 인정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위치우스(Witsius)가 지적한대로, 만약 그러한 기준에 의해서라면, 기독교의 복음이 이방인의 도덕성 또는 이슬람교 신학에 의한 “구원”과 본질적인 면에서 아무런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망의 말 속에 풍성한 진실이 담겨 있다. ‘내가 이해하기로, 성경은 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반박을 당하지 않을 만큼 우호적으로 취급을 받은 적이 없다.’”(Witsius, 1:21).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 본 것 외에 근본적인 교리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도록 도와주는 세 가지 지침이 더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보기로 하자. 지금은, ‘만약 근본적인 교리가 성경에 명백히 나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또 그렇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만 집중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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