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오용되는 성경 구절(11) :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나의 복인가? (요한3서 2절)
12/07/201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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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조그마한 암세포 하나가 몸 전체로 전이되듯이, 하나의 잘못된 교리가 점점 커져서 한 지체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퍼질 수 있다. 마치 큰 산불이 작은 불꽃 하나로부터 시작되듯이.” (존 맥아더, 갈라디아서, The Macarthur New Testament Commentary, Moody Press, 1987, 140.)


성경 : 요한삼서 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구하노라 



우리는 “자주 오용되는 성경 구절” 의 연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많이 잘못 이해되고 잘못 적용됐으며, 어떻게 성경 구절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거짓말과 잘못된 교리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잘못 사용됐는지 살펴보았다. 오늘 우리는 잘못 적용된 하나의 구절이(요한삼서 2절)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단적인 운동으로 번지게 되었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것이다. 그리고 그 잘못된 적용이 반세기 동안 어떻게 교회의 신실한 간증들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는지도 살펴볼 것이다.


번영신학의 뿌리


오랄 로버츠 목사(Oral Robert)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텔레비전 선교의 선구자라는 대중의 칭송의 물결 속에서 존 맥아더는 이 설교자의 삶과 사역에 대해서 이렇게 정리했다.


“오랄 로버츠의 영향과 사역은 성경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념해야만 할 것이 되지 못한다. 실제로 1950년 이후 은사주의나 오순절 운동 안의 비 성경에서 말하는 생각이나 교리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오랄 로버츠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사역이 남긴 가장 주요한 유산은 바로 번영신학이다. 존 맥아더가 그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오랄 로버츠의 번영신학은 “하나님의 복이 이 땅에서 우리 개인의 건강이나 물질적인 부를 통해서만 부어지며 이런 복들은 누구든지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은 다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런 거짓된 교리를 전하기 시작한 사람이 로버츠가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텔레비전 사역을 통해서 이런 잘못된 영향이 아주 광범위하고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고, 로버츠가 이 잘못된 번영신학을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뿌리내리게 한 장본인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로버츠의 전기를 쓴 작가 데이비드 에드윈 해럴 (David Edwin Harrell, Jr)은 이 번영신학에 대한 로버츠의 헌신은 그의 믿음의 위기 상황과 늘 봐왔던 성경 구절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부터 태동했다고 저술한다.


“로버츠의 관점에 따르면, 그의 영적인 트라우마 상태가 순간적인 통찰과 계시를 깨닫는 결과로 나타났고 그것은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그 첫 번째 사건은 바로 어느 날 아침 그가 요한 3서 2절을 읽었을 때였다 :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복음3:2) 


로버츠는 어느 날 아침, 급하게 집을 나와 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늘 습관대로 읽던 성경 말씀을 오늘 아침에 읽지 않은 것을 깨닫고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서둘러 성경을 집어서 ‘무작위로’ 펼쳤고, 요한 3서2 절을 읽게 된다. 그의 간증에 따르면 로버츠는 이미 신약성경을 수백 번 읽었었다. 하지만 그 아침, 그 구절은 그에게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그는 자기 아내 이블린 (Evelyn)을 불러서 그녀에게도 그 구절을 읽어 주었다. “이 구절은 성경에 없는 구절인 것 같은데?” 이블린이 말했다. “아니야, 성경에 있는 구절이야.” 로버츠가 대답했다. “내가 방금 읽은 거야”. “여보, 우리가 지금까지 잘못 생각했어.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설교하지 않았어. 하지만 여보, 이 구절의 말씀이 맞아.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야.” 그것은 완전히 새롭고 혁명적인 깨달음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가난해야 한다”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잘못된 것인지도 몰랐다. 


로버츠와 그의 아내 이블린은 몹시 흥분되어 그 구절이 의미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은 그들이 ‘새로운 차’, ‘새로운 집’, ‘완전히 새로운 사역’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몇 년 후, 이블린은 이날 아침을 돌아보며, 그 순간이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뀐 시작점이었다고 회상한다 : “나는 그날 아침이 바로 지금 로버츠가 하는 전 세계적인 사역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이라고 믿고 있어요. 왜냐하면, 그 사건을 통해서 로버츠의 생각이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기 때문이에요.”


로버츠의 새로운 시각은 곧바로 실제적인 적용의 연습으로 이어졌다. 로버츠가 살던 미국 중북부 이너드라는 도시에서 자동차 거래상을 소유하고 있던 딜러 구스타부스 (Mr. Gustavus) 씨가 있었다. 구스 씨는 ‘비종교인’이었지만 로버츠를 좋아했다. 때때로 자기 이웃인 로버츠의 설교를 듣기도 했고, 로버츠가 항상 강조하던 “바로 지금, 바로 여기”의 관점을 좋아했다. 어느 날 아침, 구스 씨는 로버츠의 자동차가 ‘상당히 안 좋은’ 상태임을 보고 새 차를 사기를 제안했다. 하지만 넉넉한 재정이 없었던 그로서는 그것은 터무니없는 생각 같았다. 하지만 구스 씨는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구스 씨는 그들의 낡은 차 중 하나를 제일 비싼 가격으로 팔았고, 로버츠를 위해 새로운 차를 ‘자동차 거래상의 도매 가격’으로 싸게 샀다. 구스 씨와 로버츠 그리고 그의 아내 이블린은 새로산 차를 픽업하기 위해 디트로이트로 같이 갔고, 그들의 ‘새로운 초록색의 기다란 뷰익(Buick)’ 차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며, 그들에게 불가능일 것만 같았던 일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 놀라워했다. 


이블린이 로버츠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는 지금 멈춰서 이 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해요” 로버츠에게는 이 새로운 차가 “하나님을 믿는 한 신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상징”이 되었다. 구스 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구스 씨는 로버츠에게 계속 재촉했다. 


“로버츠, 이 간증, 그리고 너의 설교는 우리 동네에서만 전해지기에는 너무 커다란 메시지인 것 같아.” “이 세상이 너의 메시지가 필요해 세상으로 나가서 설교해. 너의 설교는 분명히 이 세대를 뒤흔들 거야” (데이비드 에드워드 하렐, David Edward Harrell Jr., Oral Roberts: An American Life, Bloomington, IN: Indiana University Press, 1985, 65-66.)


물론 번영신학자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교리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많은 다른 구절들이 있다. 우리는 그중에 몇몇을 이미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다. 하지만 요한 3서 2절은 로버츠의 번영신학을 싹 틔우는데 아주 중요한 토양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이단적인 유산을 물려받은 수많은 그의 자녀들, 친척들도 이 신학을 계속해서 전해 나갔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번영신학의 거짓이 어떻게 교회에 스며들어 독이 되는지 한번 생각해 본다면, 말씀을 세세하고 정확하게 보는 것이 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다루기 시작할 때, 그에 따르는 심각한 폐해가 있다. 이렇게 한 구절의 잘못된 적용과 부주의한 말씀 읽기 방법이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거짓 선지자들 그리고 거짓 치유사들을 양산해 냈다. 이들은 영적으로도 나태하고 아주 얕은 신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계속해서 로버츠의 잘못된 가르침을 강화하면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퇴색시키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속여 왔다. 이 세상의 많은 곳에서, 기독교의 모습은 부와 건강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번영신학을 설교하면서 마치 그들을 향해 조롱하며 손을 내미는 사기꾼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성경 말씀을 해석할 때에는 그 말씀 안에 있는 하나하나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진정한 번영


그리고 요한 3서 2절의 경우에, 그 안에 있는 세부적인 정보들은 그 구절의 진정한 의미를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게 해준다. 가이오라는 사람에게 쓰인 이 짧은 편지는, 사도 요한이 썼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구절에서 사도 요한이 전하는 메시지는 복의 예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요한삼서 주석에서, 존 맥아더는 이 구절,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이 당시 보편적으로 쓰이는 인사라고 설명한다.


편지 맨 처음에 오는 인사말은 진리를 나타냄에 있어서 교리적으로도 풍부하다. (예, 로마서 1:1-7, 갈라디아서 1:1-5, 베드로전서 1:1-2). 하지만, 만약 특별한 모임이나 사람들에게 전해진 이 편지의 인사말이 모든 신자를 향한 약속으로 바뀌는 것은 신학적으로 안전하지 못하고 올바른 성경 해석 방법이 아니다.


게다가, 여기서 사도 요한이 강조하고 지지하는 점은 우리의 건강이나 부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사실은 정반대의 것이다. 요한은 가이오의 신실한 인품에 관한 간증을 듣고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드리고 있다. 존 맥아더가 설명하듯이, 요한이 강조하는 것은 영적인 번영이다.


“범사에 잘되고 (Prosper)” 는 헬라어 동사 eudoo를 번역한 것이다. 이 표현은 유일하게 로마서 1:10 그리고 고전 16:2절에서만 사용되었다. “잘 되다”, “잘 되는 일이 일어나다”, “주위의 환경을 즐기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2절에서 처음 사용된 “잘 되다”는 가이오의 건강을 가리킨다. 그리고 나중에 나오는 “잘 되다”는 영적인 번영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 명확하다. 여기서 사도 요한의 소망은 가이오가 강건하고 잘됨 같이 그가 영적으로도 잘 되는 것이다.


요한이 간구했던 것은 가이오가 어떤 제한 없이 주님과 그분의 교회를 위해 섬길 수 있도록 그가 어떤 시련이나 고통, 육체의 질병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이오의 육체적인 건강과 반대로) 가이오의 영적인 강건함이 요한을 더욱 기쁘게 했다. 요한은 가이오가 지치지 않는 강건한 영적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도들의 편지에서 표현을 빌리자면 가이오는, “믿음으로 온전하게” (디도서 1:13), 그리고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는” (베드로후서 3:18) 또한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골로새서 1:10) 자이다. (존 맥아더, The Macarthur New Testament Commentary: 1-3 John, 245-246)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복을 주실지 생각할 때, 우리는 그분의 복이 단지 우리의 이득을 위해서만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생명에게 호흡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분께서는 그분의 나라를 위해 우리를 사용하실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누리는 이 땅에서의 강건함과 물질적인 복들조차도 영원한 목적이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분의 나라와 영광 그리고 그분의 교회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 목적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차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가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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