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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이 무섭다! -김진영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 글 모음
03/28/202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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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지도 않다. 두렵지도 않다걱정은 되나 무서워서가 아니다.

 

시저가 아니라도  '올 때, 오기 마련인것을'  이라는 신조를 전장터에 나가기 전부터 가지고 있은지 벌써 50년이 넘다보니 그간의 갖가지 고난과 만나면서도  , 또 왔어’  하면서  고비를 넘기도 하고, 잘 안됬을때는 한 동안 고꾸라져 있으면서도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 근래 바꿔입은 옷 매무새처럼 편안하지 않은 느낌이 등짝에 붙어 있었습니다.

아직도 확실히 정체를 못잡은 불편함의 일부분이 지금 전재하는 김진영 교수의 글에서 조금은 보이는 듯 하여 허락도 없이 옮겨 싣습니다. 겪어보지 못한 전체주의나 사회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 이 불편한 기분을 만들어 오는지. . . .   저녁이 되며 계곡에 스멀거리며 넘어오는 밤 안개를 봅니다.



                  Gypsy Airs -Pablo de Sarasate


[ESSAY] ''이 무섭다(조선일보 에서 전재)

                                     

                    2020. 3. 24   김진영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ESSAY] '줄'이 무섭다!


일반적으로 줄은 문명의 척도이다. 줄은 강제된 질서인 동시에 자율의 질서이기도 한데 문명적 사회일수록 줄서기는 통제가 아닌 상호 배려와 신뢰의 합의로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줄이 없을 우리는 불안하고 줄이 있으면 안도하게 되어 있다. 줄은 타인이 명할 때는 위협적이지만 스스로 참여할 때는 평화적이고 때로 신이 나기도 한다. 물론 줄서기의 목표와 의미가 투명하다는 전제에서 그렇다.


1989 가을 나는 레닌그라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강제된 줄서기를 경험했다. 당시 소련은 모든 것이 결핍 상태였다. 상점 진열대는 비었고 연수생이던 나는 극소의 학생 생활비와 함께 , 설탕, 비누를 배급받았다. 배급표를 들고 근처 우체국에 바꾸는 식이었다.


외국인은 그래도 국영 외환 상점이나 지하 시장에서 달러로 물건을 구할 있었지만, 그럴 없는 일반인들의 일상은 줄서기였다. 모두 줄을 섰고 모두의 가방에는 만일을 대비한 장바구니가 들어 있었다. 가다 줄이 보이면 무조건 멈춰 일단 뒤에 서는 것도 일상이었다. 줄을 섰으나 물건이 동나서 또는 지급 정보가 잘못되어서 빈손으로 돌아서는 경우도 허다했다. 줄은 있는데 물건은 없고 사람들은 무력한데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권력으로 군림하는 격이었다.

'줄의 노예' 되어버린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함으로써 소련 몰락을 예고한 소설이 바로 블라디미르 소로킨의 1985 발표작 ''이다. 소설 후기에서 소로킨은 노예적 줄서기의 비극을 1896 니콜라이 황제 대관식 모스크바 근교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와 연결했다. 황제가 내리는 설탕, 과자, 맥주 등의 선물을 받으려고 몰려든 민중은 하사품이 소진되었다는 소문에 동요하다가 2000 가까운 압사 피해를 냈는데 정부가 이에 대해 진정성 있게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자 분노한 군중이 황제의 무능과 무감각을 규탄하면서 집단적 심판 여론이 형성되었고, 그것이 결국 혁명의 외침으로 이어졌다. 민중의 배반당한 기대감이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불신으로 폭발한 사례가 혁명 러시아 역사에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소련에는 권력에 의한 소유와 결핍의 양극화가 만연했다. 분명히 상점에 없는 물건인데 어느 집에 가면 쌓여 있었고, 줄을 서도 구할 없는 생필품을 뒤에서는 끼리끼리 선점했다. 외국으로만 수출한다던 캐비아도 미국에서 수입한 코카콜라도 노멘클라투라(권력 계층) 드나드는 레스토랑에서는 쉽게 맛볼 있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인맥' 가장 중요한 힘이었고 인맥을 유지하기 위한 크고 작은 '선물' 필수였다. 외국인 학생인 나마저도 스타킹, 담배, 초콜릿을 준비해 기숙사 관리인이나 학교 비서에게 내밀곤 했다.

다수의 혜택과 행복을 위해 탄생했던 소련은 실은 부패한 사회였다. 모두가 줄을 서야만 하는 피로한 사회였다. 줄은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협치 수단이 아니라, '' '' 가르는 배제 수단으로 전락했다. 권력이 있으면 사적 줄서기에, 없으면 공적 줄서기에 전념했다. 후자의 줄서기는 대부분 무모하고 무기력했으나 민중은 그렇게 길들여졌다.

소련이 무너지자 민중의 줄도 사라졌다! 그러나 대신 페레스트로이카 직후의 혼돈기를 틈타 부를 사유화한 올리가르히(신흥 재벌 특권 계층) 등장했고 KGB 관련 인맥의 실로비키( 가진 계층) 나타나 러시아 경제·정치를 뒤흔들었다. 그리하여 더욱더 공고해진 꼭대기 권력층의 줄은 국가 자본의 분배마저 독점하기에 이르렀다. 줄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돈의 힘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줄이 무섭다. 서는 것이 싫다. 이런 생각을 집중적으로 하게 것은 공적 마스크의 줄서기 체험 때문이다. 나는 마스크 구입을 거의 포기했다. 가는 곳마다 품절이고 줄은 갈수록 길어지고 사망하는 사람도 나온다. 전염성 바이러스와 줄서기의 조합 자체가 아이러니다. 배분 질서도 불투명하며 마스크가 하루 일상의 급선무라는 사실 자체가 스트레스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내가 강제된 줄서기에 익숙해져 간다는 점이다.

마스크 대란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급작스런 수급부족, 지급 체계의 비효율성, 정보의 불확실성에 결핍의 불안 심리가 더해져 악소문과 분노를 부추기고 결국에는 부조리한 상황의 책임 소재를 향한 극도의 실망감과 불신으로 번져간다. 풍문 속의 마스크를 찾아 헤매야 하는 같은 시민에게 줄은 희망이 아닌 불길함의 징조이다. 소련·러시아의 암울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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