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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남북이 완전 단절된 JSA,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11/17/201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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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1명이 총탄을 맞으면서 귀순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상황은 종료됐지만 긴장감은 여전하다. 북한군은 귀순자의 탈출 경로에 있는 모든 부대에 대한 경위 조사는 물론, 무더기 문책에 들어갈 전망이다. 영화 'JSA'(감독 박찬욱·2000년)에서는 총격으로 한국 병사 이수혁(이병헌 분)과 북한군 오경필(송강호 분)이 총상을 입고 군사분계선 위에 쓰러진 장면도 나온다. JSA는 어떤 곳인가.

JSA(Joint Security Area)는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공산 진영과 자유 진영이 대립하는 냉전의 현장이다. 남북 분단과 전쟁의 기억이 생생한 곳이다. 한때 JSA 구역 내에선 남북한 사이에 군사분계선(MDL)도 없이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과 북한군이 섞여 근무했다. 지금으로 보면 MDL 이남에 북한군 초소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JSA에서 근무하는 남북한 군인들이 자연스럽게 만나서 얘기도 하고 때론 물건을 나누기도 했다.

1998년 2월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변용관 상위(대위)에 대한 신문 결과에 따르면 북한군은 적공과라는 한국군 포섭조를 만들어 운영했다. 적공과에 소속된 변 상위는 JSA 경비대대의 카투사 병사 등에게 북한 김일성 생일날에 족자와 화분, 심지어 롤렉스 시계까지 몰래 주는 선물 공세로 공작활동을 벌였다. 한국군 병사도 북한군에게 포도주를 건네는 등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군 4명이 북한군의 공작에 포섭되기도 했다고 한다.

JSA는 지구상 마지막 냉전 현장
분단과 전쟁 기억이 생생한 곳

판문점 JSA 내에서 남북한 구분이 엄격하게 바뀐 건 76년 8월 18일 발생한 '도끼 만행 사건' 이후다. 당시 JSA에서 25년생 15m 높이의 미루나무가 북한군 초소를 가리고 있어 이들을 감시하는 데 지장을 주고 있었다. 이에 유엔사의 미군 경비중대장 아서 조지 보니파스 대위와 소대장 마크 토머스 배럿 중위 등 11명이 미루나무 가지 절단에 나섰다. 미군의 절단작업을 지켜보던 북한군 박철 중위 등 15명이 중지를 요구했으나 작업은 계속됐다. 그러자 북한군 20여 명이 몰려와 작업에 사용되던 도끼를 뺏고 몽둥이 등으로 난동을 부렸다. 북한군의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가 사망하고 유엔군 측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러한 북한군의 도발에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명령으로 스틸웰 주한미군사령관은 폴 버니언(Paul Bunyan) 작전을 시행했다.

영화 JSA에선 남북 군인 쓰러져
북 도끼만행 때 JSA에 남북 구분

이 작전은 북한군의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해 호위함 5척을 대동한 항공모함 미드웨이함과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F-111 폭격기 20대 및 B-52 전략폭격기 3대 등이 동원된 가운데 미루나무를 절단하는 것이었다. 전투준비태세는 데프콘 2(공격준비태세)로 격상됐다. 미국은 북한이 또 도발하면 전쟁도 불사한다는 분위기였다. 북한은 더 이상 도발하지 않았다. 당시 임진강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은 "그때 전투에 나가는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결국 미루나무 한 그루를 자르는 데 역사적으로 가장 비싼 값을 치른 셈이다. 폴 버니언 작전이 끝난 뒤 북한은 김일성 명의로 사과했고 유엔사는 JSA 내에 MDL을 그어 남북이 서로 넘지 못하게 했다. 이때 유엔사는 53년 정전협정 때 포로를 교환했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폐쇄했다. 북한은 이 다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되자 72시간 만에 다리를 다시 세웠다. 이른바 '72시간 다리'다.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 뒤 보니파스 대위를 기려 근처에 있던 캠프 키티호크를 캠프 보니파스로 명칭을 바꿨다.

북, 91년 이후 정전회의 거부
유엔사 항의·확성기로 통보

때부터 판문점에서는 남북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JSA에서 칼날처럼 세운 바지 주름과 새까만 선글라스를 착용한 JSA 유엔군 측 경비대대 병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이 회담장 건물 주위에 배치돼 인형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것은 북한군을 감시하고 방문객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몸의 절반은 건물로 가리고 나머지 절반만 노출하는 것도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때 자신을 방호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이유도 북한군이 우리 측 경계병 시야의 방향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일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도 총격 사건이 벌어졌다. 84년 11월 23일 JSA 북측 지역을 둘러보던 소련 관광객이 갑자기 MDL을 넘어와 우리 측 자유의집 아래로 온 것이다. 이에 북한군도 뒤쫓아 MDL을 넘어와 총격전을 벌였다. 이 교전으로 북한군 3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했다. 유엔군 측도 한국군 장명기 상병이 사망했다. 유엔사는 매년 이날마다 장 상병을 기리는 추도식을 하고 있다. 90년대 초반엔 JSA 내의 MDL 북쪽에 있는 밤나무의 밤송이가 남쪽으로 떨어지자 북한군이 밤을 주우러 MDL을 넘어왔다가 정전협정 위반으로 유엔사의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현재 JSA에는 남북 간 접촉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다. 91년 유엔사가 한국군 장성 황원탁 소장을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로 임명하자 북한은 정전회의를 거부했다. 이어 94년엔 군정위 중국 대표단이 철수했다. 북한은 북측 중립국감독위원회를 맡고 있던 체코와 폴란드 대표단도 95년까지 모두 몰아냈다. 하지만 아직도 유엔 측 중감위의 스위스·스웨덴 대표단은 활동 중이다. 북한군의 정전협정 무력화는 여기에 더해 정전협정 이후부터 사용해오던 우리 측 '민정경찰'에 해당하는 '경무'라는 완장을 폐지하고 '판문점 부대' 마크를 착용하고 있다.

80년대부터 JSA 업무를 맡아온 김영규 유엔사 공보관은 "북한이 정전협정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표시"라고 말했다.

JSA의 건물도 유엔사와 북한군이 엄격하게 구분해 운영하고 있다. MDL에 걸쳐 있는 7개 건물 가운데 중앙의 파란색 3개 동은 유엔사가, 그 외곽의 나머지 건물은 북한군이 관리하고 있다. 군정위 수석대표 회의는 열리지 않고 있지만 한동안 비서장(대령)·경비장교(중령)·일직장교 회의는 수시로 열려 필요시 대화가 가능했다. 이제 그마저도 중단됐다. 북한군은 유엔사와 전화통지문을 주고받는 전화조차 전혀 받지 않는다고 김 공보관이 전했다. 그래서 이번 북한군의 귀순에 따른 총격 때도 유엔사가 항의문을 MDL 앞에 서서 확성기로 북측에 통보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항의문을 MDL 위에 두고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북한은 여전히 폐쇄적이고 공산독재 세습체제다. 핵무기를 대남 적화통일에도 활용할 기세다. JSA에는 오늘도 긴장이 흐른다. 세계 유일의 냉전 유산을 철거하고 남북이 자유롭게 통행하기 위해선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이 최우선이다.

김민석·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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