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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화장/ 크리스마스의 추억
12/22/201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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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 크리스마스 때 일이다.

1학년 때부터 다니던 선교단체에서 구제헌금을 모은다며 축제를 준비했었다.

그것도 드라마 센터를 세내어 하기로 한 굉장한 축제였다.

각 요회별로, 회관 별로 특별 순서를 마련했는데 춤과 노래와 촌극들을 준비했었다. 

내가 속한 미대와 약대가 모이는 목요회에서는 캉캉 춤을 준비했다.

1년 후배 인숙이가 옷 만드는 재주가 비상해서

요란한 캉캉 드레스를 진초록 색으로 척척 만들었다. 

남자는 나비 넥타이, 여자는 캉캉 드레스를 단체로 입혔다. 

20-30여명의 대학생들이 이리뛰고 저리 뛰며 웃어대며 열심히 춤 연습을 하였다.

 

한편 드라마 센터의 좌석을 채우기위해,

그리고 돈을 남겨 구제헌금에 쓰려고 표를 열심히 팔았다.

나는 표 하나 밖에 팔지 못했지만 어떤 애는 김대중씨에게도 팔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분도 그 시간에 비서들을 대동하고 드라마센터에  참석을 한다고 소문이 돌았다.

그런데 큰일이났다.

축제의 밤 며칠 전에 모임의 책임자가 나를 부르더니  

2부 순서 사회를 맡으라는 것이었다. 어엉 사회라니?

1부에 예배는 간단히 보고 2부가 진짜인데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는가?  

설교보다 힘들 것이었다.

 

더구나 나는 앞에 나서는 걸 잘 못했다.

시골 국민학교 전교 어린이 회장을 어쩌다 연설 한번 잘한 죄로 뽑혔다가,

회장 노릇하기 싫어 일년 내내 회의를 한번도 안하고 끝낸

말 못할 창피한 경력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잔치 사회? 그런 일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구경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못 한다고 펄쩍 뛰었다. "나는 절대로 못해요!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 선교센터 분위기는 사양하는게 통하지 않았다.  

그 동네는 목자님 말씀만 떨어지면 예수님 말씀처럼 순종하는것 밖에는 안되었다.

나는 무얼 어떻게 해야하는 지도 모르는 가운데

설마 농담이겠지, 설마 숙맥인 내가 정말 맡을까 아닐꺼야 하며 엄벙덤벙 지냈는데

그날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리고...내 이름이 2부 사회자로 순서지에 프린트 되어 나왔다. 기가 막혀서.

오랜세월이 지나고 나는 아직도 그분이 그때 나를 뽑은게 이해가 안된다.

동기에 이화여중 고에서 6년 연속 반장만 하던 친구도 있었고 

할만한 쟁쟁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하필 시골 촌닭이던 나를 왜 뽑았을까.   

내가 판 한표를 산 이모가 구경을 하러 오셨다.

이모는 "무대에 서려면 화장을 해야하는 거야"라고 우기면서 내게 화장을 해줬다.

어두운 무대 뒤에서.

 

1부 예배를  어떻게 드렸는지 모르게 지나가고

내가 나갈 차례가 되었다.

나는 등이 떠밀려 엉겹결에 뛰어 나가서 인사를 하고
      “무대 정리를 하는 동안 볼 일들 보고 오세요”라고 말을 했다.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는 왜 그렇게나 웃는지 한참 걸려서야 알았다.  

 

각 요회 별로 순서대로 나가서 춤을 추고 노래했다.

우리 목요회 차례가 되었다.

우리는 드라마센터 무대에 서는 연습은 한번도 안했기 때문에 우왕 좌왕했다.

즉 엉망 진창 틀린 것이었다.  

 

내가 나가서 이렇게 말했다. 
       “ 제가 속한 목요회 차례였는데,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많이 틀렸어요.

         우리 억울하니까 다시 한번 더 할래요.”  

사람들이 아까보다 더 많이 웃었다.

그리고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우리는 다시 나가서 새 기분으로 한바탕 또 뛰었다.

연습한 대로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가며 캉캉 춤을 신나게 추었다.

크리스마스 캐롤 중

"덱 더 홀", "디스 더 시즌 투 비 졸리 파랄랄라 라라 랄랄라" 노래에 맞춘 춤이었다.

노래만 들어도 흥에 겨운 캐롤이었다.

두번째는 진짜 잘했다. 박수를 받을만 했다.

어찌어찌 끝냈다.

젊은 대학생들이 많이 모여서 뛰고 노래하니 틀리던 어찌던 참 재미 있었을것이었다.

많이들 웃고 신나게 한시간을 채웠다.

끝내고 이모는 화장을 지워준다고 했으나 짬이 없었다. 

 

집에 가는 길이었다.

아현동 버스를 탔는데 사람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나는 내가 예뻐서 쳐다보는 줄 알았다(!).

빛나는 대학 뺏지도 가슴에 있고, 

생전 처음 화장도 본격적으로 했지 않은가 말이다.

 

무사히 부담스럽던 일을 끝낸 기분이 그렇게 날아갈 듯 신이 날 수가 없었다.

할수 없는 일을 해내었다!

그때 "누구든 세워만 놓으면 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깨달았던 밤.

 

그런데 집에 도착하여 거울을 보니

아, 이건 얌전한 여대생 내가 아니라

술집 작부가 거울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아니 술집아가씨라도 그렇게 안했을 정도로 야한 립스틱 칠을 범벅했으니!

게다가 눈에 칠했던 검뎅이가 땀으로 문져 내려, 한대 얻어 맞은 사람 같기도 했다.

 

착각은 맘대로요, 자기 도취도 유분수지, 예뻐서 쳐다볼거라 였다니!

울고 싶었다.

나중에 이모에게 항의했더니

이모왈 "얘, 무대화장은 그렇게 하는 것이야."라나?(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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