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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때문에 망쳐버린 이민 초기와 생에 첫번째 자동차(5편)  | 남기고 싶은 이민 이야기
08/14/2020 11:44
조회  271   |  추천   10   |  스크랩   0
IP 73.xx.xx.93
라과이 생활 중 가장 상식을 깨버린 사건은 운전하지 못했는데 면허증을 받은 거와
차를 먼저 사고 운전을 배웠다는 거였다,

운전 면허증을 내주는 건물 안은 많이 분비고 복잡했던 곳이었는데
그곳에 발을 디뎌 놓는 순간 수많은 정체 모를 사람들이 다가와
 면허증을 해 줄 테니 만 과라니(당시 파라과이 화폐)를 내라고 해서 얼떨결에 돈을 냈다,
1시간도 안 되어 면허증을 만들어서 왔는데
 정식으로 정부의 인증을 받은 면허증이었다,
상식적으로 면허증은 운전을 테스트해 보고 시험도 보고해서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친구가 차를 몰고 다니기 전 면허증 시험을 보러 당시 흑석동으로 몇 번 같이 다닌 적이 있었다,
배우고 공부하고 필기와 실기시험을 보고 면허증이 나오는 게 거의 상식이었는데.,,,
파라과이는 면허증은 돈만 내니 나오고 말았다,

그 당시 1983년도엔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파라과이로 몰려들었는데
한국 이태원에 있는 파라과이 대사관에 돈 300불만 주면 
파라과이 비자를 내주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나보다 한 달 두 달 전후해서 많은 사람이 나처럼 돈만 주고 면허증을 따내는 게
 유행일 정도로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면허증을 내 주는 건물에 자주 다녔고 많이들 보이기 시작했었는데
 거의 한국에서 운전해 본 경험이 없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면허증을 먼저 받아놓고 얼마 후 차를 갖게 되었다,
독일산 폭스바겐에서 나온 파삿찌였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운전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처음으로 차를 가져봤던 순간이기도 했다,

차는 길거리에 몇 달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새워두기만 했는데 이유는 운전하지 못 한다는 거였다,
매일 일주일에 몇 시간을 운전을 배우기 위해 운전 학원을 다니기도 했지만 
참 겁이 많이 났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 차를 가지고 나갈 경우에는 내가 아니고 같이 나갈 친구나 이웃이
 그 차를 대신 몰고 가는 것이 거의 다일 정도로 그 독일 차는 몇 달을 그렇게
 주인인 나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차를 조금씩 몰기 시작했고
그 차를 이용해 그 당시 그곳에 처음 온 한국 사람들이 많이 했던
 벤데를 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vends라는 말은 스페인어로 판다라는 말인데 그곳 한인들 사이에서
 벤데, 라는 새로운 일이 만들어 지고 있었다
보따리를 짊어지고  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파는 것을 줄여서 vends 한다는 표현으로 굳어졌다
난 벤데를 하기 시작했다,
차 안에 물건을 싣고 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옷이나 시계나 전자제품을 팔며
 일주일마다 요일을 정해 놓고 수금을 하는거다,
잼있었고,, 적성에도 맞는거 같았다,,

그렇게 차와 나의 인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이민을 받아들이며 
 점점 그 사회에 물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점점 차를 이용하는 시간이 많아진 이후 결국 나의 생에 첫 번째 차였던 이 독일 자동차를
 나는 거의 매주일이면 분해를 해 보기 시작했다,
시작은 오일 체인지로 시작되었지만 나중엔 엔진 근처에 있던
카브레타까지 바꾸는데 겁이 나지 않았다,
모든 호스와 전깃줄 같은 것을 전부 직접 바꿔보는건 기본이었다,
 나중에는 브레이크도 직접 교체까지 했다 
내가 몰고 다녔던 그 빠샀찌 자동차는 엔진만 빼고 거의 모든 것을
 직접 해체 조립하는 것을 취미로 삼기 시작했다,, 
결국 그렇게 그 차는 거의 일 년도 안되어 내 손에 의해 완전 고장이 나고 수많은 부속품이 없어진 상태에서
 거의 고철값으로 팔게 된다,

이것이 나의 이민생활 첫번째 자동차의 추억이다,

무턱대고 벤데라는 것을 한답시고 봉제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옷가지들을 가지고 막상 밖으로 나와 처음 마주하는 파라과이 주민의 초인증 없는 집 앞에서

손뼉을 치며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 옷을 사라고 소리치는 내 모습도 이상하지만

그런 것이 타고난 기질처럼 아무런 창피함을 느끼지 못하고 소리치는 나도 참 이상스러웠다,

아주 자연스럽게 행하고 있는 내 모습은 왠지 이민 생활을 아주 많이 한 고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남들은 너무나 창피해서 도저히 이들의 집 앞에서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고 하는데

난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무 집이나 들어가고 소리 지르며 내가 갖고 온 옷을 팔기 시작했는데

거의 스페인어를 하지 못했지만 손짓 만으로 옷을 많이 팔았다,

그렇지만 파라과이의 날씨는 그 당시 나에겐 그 어떤 장애물보다 더한 고통이기도 했다,

평균 온도 섭씨 38도 나와 있지만 실제로 45도 정도를 오를 정도로

아주 심한 더위를 맞이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습도가 없어 그늘진 곳에 좀 쉬고 있으면 그 무서운 더운 햇살은 좀 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나라는 아마도 그 더위를 피하고자 씨에스타 시간이 있었나 보다,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그 시간이 되었을 때 내가 옷을 팔자고 아무 집을 방문하는 것도

그들의 일과 중 가장 행복한 휴식 시간을 뺏는 거라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늘진 곳에 들어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렇게 나 역시 씨에스타 시간을 점점 즐기는 쪽으로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

그런데,,,

3시간의 씨에 스타 시간에 잠을 자거나 집에 들어가 쉬고 있기만 했으면 좋았을 터인데..

점점 그 시간에 시원한 장소를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찾아서 쉬러 들어 간 곳이 카지노였다,

당시 한국에 사는 내 친구들이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 것이 몇 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카지노 경험이었을 것이다,

나의 카지노 출입은 이렇게 남미 파라과이에서 일하는 도중 씨에스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출입을 하게 되었다,

카지노 출입의 결과는 안 봐도 뻔한 것이었다,

결국 그날 번 모든 돈은 카지노로 입금이 되기 시작했고

그 입금된 돈을 찾기 위해 그다음 날 또 가야 하는 일이 반복되기 시작했으며

밥을 먹을 때나 운전을 할 때나,,,사람들과 만나고 있을때나,,,

카지노의 블랙젝 판과 그리고 룰렛 판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게 되었다,

이렇게 1년 동안의 이민 생활은 카지노로 망쳐버렸다,

이때의 경험으로 다행히 미국에선 거의 카지노 출입을 하지 않고 있는데

가끔 들린다 해도 도박은 하지 않는다,,

어쩌면 다행 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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