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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이의 공장 라노 라라쿠(Rano Raraku)
08/07/202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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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45.xx.xx.78


항가로아(Hanga Roa)에서  북동쪽으로 20 km,통가리키에서 불과 1 km 떨어진 곳,Rano Raraku.

평지로부터 완만하게 언덕을 올라가 화산 분화구에 이르는 이곳이 라파누이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모아이의 생산 공장 라노 라라쿠(Rano Raraku)이다.

향기를 가진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perfumed hill” 이라는 뜻의 Maunga Eo 라고도 불린다.

전설에 의하면  멀리서 젊은 처녀 둘이서 이곳에서 나는 향기에 홀려 이곳에 온것으로 부락이 형성 되었다고 한다.

30만년전 화산이 분출한후 지금은 사화산이 된 이곳은 고고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지질학적으로도 중요하다



                                                                위에서 본 전경(Google)


영국의 어느 지질학자가 이산의 전체 모습이 마치 개에게 물을 먹이는 물통과 같다고하여 다소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말을 한적이 있는데,오롱고의 분화구 보다 크기는 절반에 불과 하지만 생성과 모습이 

매우 비슷하다.

원래 해안가에 생성되었으나,주위의 작은 화산들이 분출되면서 흘러내린 용암들이,평지를 만들고,결과적으로

Poike 화산과 연결되면서 해안선으로부터 약  1km 분리되게 되었다.


대부분의 다른 화산 분화구에서 발견되는 암석과는 달리,이곳은 화산 폭발시 분출된 회색이나 흑색의 화산재가 

급속히 냉각되어 세립질을 띠며 형성 되었다.

보통 거대한 석상을 조각할때 사용되는 현무암과는 달리,이곳 현무암의 특징는 표면 아래가 덜 단단해져 

석상 조각이 용이하다.

이런 지질학적이 특성이,천여개의 수 많은 모아이가 왜 이곳에서 생성되어 섬 전역으로 운반되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https://imaginaisladepascua.com/en/easter-island-sightseeing/easter-island-archaeology/ahu-tahai/



통가리키에서 불과 5분도 안되어 라노 라라쿠 입구  매표소 앞 에 차를 주차하고,언덕에 오르는 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맨 처음 만난 모아이.

별로 큰 특성이 없이 매우 수수하고 밋밋하게  보이지만,지금까지 보아온 모아이와는 다른 모습이다.

멀리 아후 통가리키를 배경으로,길가에 앉은 이 모아이는 Tukuturi Moai.즉 번역하면 Kneeling Moai 로

즉 무릎꿇은 자세의 모아이로  논란거리도 많은 수수께끼의 석상이다.

애초부터 섬전체에서 이런 비슷한 형상의 모아이를 본적이 없어서 본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 모아이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염소의 턱으로 앞을 뚤어져라 응시하는 모습이 카바카바 모아이와 같다.

허리에서 조각이 중단되고,무릎을 꿇고 앉은 두 다리위에 엉덩이에 얹고,손를 배 대신 허벅지에 위에 얹은 

모습이 폴리네시아사람들이 공경심을 나타날때 보여주는 모습과 닮았다.

3,7 m 의 키에 10톤이나 되는 이 모아이는 다른 모아이들이 등을 라라쿠를 향하는데 반해,반대로 

라라쿠를 향하여 등을 바깥으로 향하고 있다.

어떤학자는 이 석상이,볼리비아의 티티카카 호수에서 일어난 전반기 콜롬비아 문화를 Tiahuanaco의

무릎꿇은 모습을 닮았다고하기도 하고,어떤사람은 탕카타마누,즉 Birdman시기와 연관을 짓기도 한다

사실 이 석상은 모아이라기보다는 폴리네시아의 전형적인 일종의 토템인 Tiki로 으로 보인다고한다

길을 따라 남쪽 경사면으로부터 산 위로 올라가면, 머리만 땅속으로부터 튀어 나와 먼 하늘을 응시하는 수십개의 

모아이가 많은 상상력과 찬탄을 불러 일으킨다.

처음에는 모습들이 잘 구별이 안되지만,자세히 보면 다양한 이미지로 조각되어 어떤 일정한 규칙도 없이 

각각 다른 위치에 잇다.

이 산 안과 밖으로 모구 397개의 모아이가 흩어져있다



300여년 전 일어난 부족간의 전쟁에서 대부분의 모아이가 제단위나 땅바닥에 굴러 떨어진 모습과는 달리

이곳의 모아이들 대부분은 수직으로 선 자세에서 땅속에 파 묻힌 모습을 하고있다.

대부분의 모아이가 몸통의 반쯤은 땅속에 파 묻혀 있는데,어떤것은 어깨 혹은 거의 코의 위치까지 묻혀 있기도 한다.

이런 머리만 보이지만 사실은 땅속에까지 묻혀 있는데,이는 온전한 형태였던 석상이 세월이 흐르면서,

언덕 아래로 밀려 내려온 흙이나 퇴적물로 인해 땅속으로 묻혀지기 시작했고,더구나 이 지역 주민들이 떠나가

버리고 버려지면서 모아이를 지탱해주던 흙이나,자갈들이 조금씩 무너져 내림면서 결국 이렇게 묻힌 형상이다


어떤 학자는 모아이를 적으로부터 보호하기위해 일부러 묻기도 했다고 하기도 하는데,정확한 건 없다.

원인이 어디에 있었던간에 분명한것은,밖에 드러난 부분이 오랜 세월동안 풍화 작용에 의해  많이 훼손된 반면

땅속에 묻혀있던 부분은 오히려 더 보존 상태가 용이햇던것이다.

따라서 땅속 부분은 원래의 모습인  노란색이 나타나고 등에 새긴 조각들이 보다 선명하게 보존 되어 있다

Ahu Nau Nau나 British Museum에 있는 모아이의 등에 새긴 조각과 비슷한 문양이 나타난다.




길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가면 수직 벽에  만들다 중단된것으로 보이는 모아이가 서 있다.

길이 20m에 200 ton 정도로 비행기 무게만큼이나 무거워서 운반을 포기했거나,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떼어낼

의도가 없이 이곳에다 안치하여 모시는것을 택하였을수도 있다.


AD1000 년부터 시작해서 18세기 중엽까지 약 500년동안 이곳은 성스러운 모아이 공장 장소였던 것이다.


거대한 암벽 한쪽을 파서 통채로 만든 누어있는모아이 앞을 지나간다.


조금 더 언덕 위로 올라가면,모아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운반되었는지를 암시해주는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다음과 같은 순으로 작업을 했다고 한다.

1.작업에 합당한 돌이 있는 곳을 찾아내 

2.주위를 사각형으로 파내고

3.Toki라는 도구를 이용해 모아이 형태를 파내기 시작 하는데 등에는 문양을 만든다.

4.얼굴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얼굴 전체의 비율과 균형을 잡기위해 특별히 코를 집중해서 조각하기 시작

  목,몸통,팔,손의 순서로 작업

5.사각형의 옆면을 파내고 , 아래면을 파내어 마치 물고기의 아래 지느러미와 같은 모양을 만든다

6.나중에 아래면에 지느러미에 구멍을 뚫어 푀괴 시키면 

7.중심을 잡기위해 개울을 파고,그 사이에 모아이를 밀어넣어 밧줄과 통나무를 이용 언덕 아래로 

천천히 밀어낸다. 이 과정에서 사고가 많이 일어나,실패하새ㅓ 포기한 몸통,머리등의 조각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8.미리 정해놓은 제단이나 장소에 석상이 올려진후에는 세운 상태에서 마무리 조각이 이루어 지고,

특히 등에다 문양을 넣고,반질반질 고른다.


    


그런데 이유가 안밝혀지고 이해가 안가는 것은,

떼어낸 암석을  먼저 평지로 운반하기전에,왜 굳이 이 높고 불편한 곳에서 먼저 조각을 행햇는지 하는 점이다.

언덕위에서 많은 모아이를 생산하고 운반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현무암 잡석,조각 도구들 같은 쓰레기들이

언덕 아래까지 길게 패인 도랑위에 수세기를 두고 쌓여있다.



만들어진 모아이가 어떻게 그 먼데까지 운반 되어 졌는지에대해 자세히 알려진바는 없으나,위의 그림과 같이

수십명의 사람들이,식물성 밧줄과 통나무를 이용하였으리라 추측한다.


모아이 석상을 실제로 움직여 보는 실험을 한 영상.

아직도 많은수의 모아이가 운반되지않고 산재해 있는것은 왜일까?

작업중,깨졌거니,조각이 힘든 부분이 나와 ,잘못 조각을 해서 계속 작업을 포기 했었을수도 있었을것이다

모아이를 만드는 전성기에는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부족별로 서로 더 크고 더 바르게 만들기위한 

경쟁으로 일을하면서 부르는 노래들로 떠들썩 햇을것이다.

현재의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옛날 사람들이 모아이를 만드는데 그 많은 노력과 힘을 들여 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이 작은 섬에서 달리 할일도  많지않아 모아이를 만드는 일에 초인적인 노력으로 사력을 다해

집중했을것이라고 사료된다.

 그럼으로써 오랜기간동안 이런 많은 사람들의 활동이 이 지역의 경제를 부흥시켰을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오랜기간의 황금기도 끝이 와서 갑자기 모아이 건충이 중단되면서,더이상 석공작업이 중단되고

사람들이 떠나면서 만들다 만 모아이를 버려두고 적막한 지역으로 변해 버린다.

전설에 따르면 ,인부들이 바닷가재를 잡아 먹는데,모아이를 움직이게 하는 신통력을 가진 힘을 가진 한 여인 몫으로

남겨 놓지않고 다 먹어 버리는 바람에,화가난 그 여인이 모아이를 넘어뜨리게 하고 인부들을  마비시켜버리는 

바람에 모든 모아이 생산이 중지 되었다는 말도 있고

또다른 구전에 의하면,이곳의 모아이를 만드는 부족의 리더가 그들을 통솔했던 압제자에 반기를 들어,

Poika 전투에서 그들을 쳐부신 후,더 이상 만드는것을 중지 하였다고 한다.

또 하나의 가설은 자연적인 재해,즉 지진이나 해일이 일어나 이 지역을 휩쓸고 지난후 중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한가지 이유에서가 아니고,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모아이에 대한 믿음이 저하되고 연속되는

부족간의 전쟁으로 더이상 생산이 중지 된것으로 보인다

이곳 모아이가 다른 지역 모아이와 다른점은 머리에 푸카오을 쓴 모아이가 없고,콧날이 더 우뚝하고 눈 두덩이 없이 

눈썹에서 볼까지 평평하게 밀어부친 모습 이고 어떤 모아이는 운반을 위해 맨 아랫부분을 둥글게 하기보다는 

아예 처음부터 땅속에 박을 요량으로 막대기처럼 조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선채로 놓아 둔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진 않았다.

그리고 모아이별로 이름이 붙여지긴 했지만,조각한 사람의 이름을 따거나,이 지역의 독특한 이미지를 나타내는것

같지는 않다.

어떤 모아이의 배에는 당시 유럽 항해자들이 타고온 배가 새겨진것을 보면,당시 원주민들은 유럽 원정대들을

내세에서 보낸 전령자들 여기고 그것을 모아이에 새긴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언덕을 오르내리며,길가에 서 잇는 독특한 모양의 모아이들을 찬찬히 둘러 본다.






분화구로 올라가는중,입구에 거의 다 와서 이런 붉은 색의 화산재가 굳은 언덕을 만난다

남동쪽의 언덕 아래부터 160m 높이에,700m지름 의 반원형 분화구.안에는 3-4m깊이의 호수가 형성되어

비가 오면 비가 고여 호수를 이루었는데,비가 적게 와서인지 호수가 얕아 보인다.


호수 주면에 흩어져 있는 약 90 개의 모아이중 70개는 반쯤 땅속에 묻히고 등을 산언덕을 뒤로 한채 서 있다

저 언덕위로 올라가 전체를 조망하고 싶지만 보호를 위해 펜스를 쳐 놓았고,감시인이 서서 방문객들의 행동을 

감시하고있다.

빗물리 빠져 나갈곳이 없이 고여있어 원주민들에게 유일한 민물 식수원이 되었으리라 보지만 지금은 주위에

말들이 방목되고 있다



갈대종류의 식물과 함께 자라는 자생 식물..

페스티발때 경기를 위한 보트를 만드는데 사용 된다.

일년에 한번 2월에 열리는 Tapati 페스티벌에,참가자는 제일먼저 호수의 한쪽 끝에서 이 갈대로 만든 보트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 20kg의 바나나를 목에 걸고 호수 주위를 돈후 마지막으로 호수를 갈대에 의지해서 

헤엄쳐가는 일종의 3종경기라고 볼수있다.




이제 호수를 내려가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길..


멀리서 라노 라라쿠 전경을 한눈에 바로보는 길로 나왔다.


다시 해안선을 따라 항가로아로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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