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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8대 불가사의 ,배신의 성채,시기리야 (스리랑카 08 APR,2018)
07/15/2018 17:56
조회  295   |  추천   3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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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계 8 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하는 시기리야로 가는날.

시기리야는 담블라를 기점으로 해서 당일 여행이 가능한데,시기리야가 담블라 가는길에 있어,시기리야를 

먼저 본후,담블라로 갈 예정으로,버스편을 알아보니,새벽에 담블라가는 버스를 탄후,Inamaluwa Junction

삼거리에서 내려 시기리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거나,그곳에서는 가까우니 릭샤를 타거나 하라고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Clock Tower 근처 버스정류장으로 가니 서너명이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 한사람이,여기서 기다리면,승객이 많아서 좌석을 잡기 힘드니,좀더 걸어서 종점 정류장에 가는게

좋을거라고 한다.

설마 이렇게 이른 새벽에,버스좌석이 다 찰수 있을까? 하고 의문이 들었지만,현지인 말이 그렇다니 그런가보다.. 

하지만,앉아서 가자고,어두운 이 새벽에 종점까지 가는길이 오히려 더 힘들것 같아,그냥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곧 버스가 온다.

다행이 승객이 많기는 한데,그래도 한 두 좌석 비어있다.

아마도 오늘이 일요일 아침이라서 좀 자리가 빈것 같기도 한데,어쨋든 이런 새벽에 버스가 만원일 정도라면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일까 생각된다.


해뜨기전까지 어두운 길을 버스로 약 1시간 달려 Inamaluwa Junction에 내리니 비로소 멀리서 동이 터 온다


주위에 시기리야를 알리는 안내 표지판이 서있는데,마침 시기리야로 간다는 젊은이와 함께,버스를 기다리면서

돌아보았다.

바로 옆에는 호텔로 보이는 건물이 있고,

청량하고 푸른 하늘이 눈 위에 펼쳐져 있다. 

한 30 분 정도를 기다리니,담블라에서 시기리야로 가는 버스가 온다.

알고보니 승객들 대부분이 시기리야에서 청소 등 일을 하는 인부들이다.

유일한 외국인인 나를 다들 주시하며,친절하게 어디서 내릴지를 알려준다.

시기리야에는 호텔이나 식당등 관광객을 위한 편의 시설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담불라에 호텔 예약을 했는데,

버스타고 가면서 보니,굳이 담불라까지 안가더라도 시기리야 가까이에 게스트 하우스,식당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알고보니,시기리야 록 가까운 거리, Habarana Villiage 에 호텔과 식당등이 있다고 한다.


시기리야 Main Entrance 라는 사인이 보여,이곳에서 버스를 내리려고 하는데,버스에 있던 사람들이 말린다.

개인 관광객은 이곳이 아닌 조금 더 간 입구에서 내려야 한다고...

거기서 같이 내린 인부들과 함께 시기리야 록 주위를 둘러싼 해자를 따라 걸어서 티켓오피스로 갔다.

이른 시간에 홀로 배낭 여행은 나 혼자인것 같다.

아직 Ticket Office 는 문을 안 열었고... 7시 반에 Open 한다고 한다.

근처에서 아침을 사 먹은후,Musium 안에 있는 Office 에서 티켓(30 USD)을 사고,가방은 가까운 

Security Office에 맡긴후 드디어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티켓은 Water Garden 에 들어가기전 또 한번 검사하므로 잃어버리면 안된다.



이 

멀리,바위 꼭대기 너머로 이제 해가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공원 입구에서 바위 산을 향해 걸어가면서.아래에 있는 정원을 둘러본다.



바위산을 바라보면서 장방형 연못이  주욱 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서,사람들도 별로 많지않고 날씨도 선선하다.

좀 늦게가면 관광객들로 발이 채이고,날씨도 더워지는데,약 1200개의 계단을 올라 바위 꼭대기까지 올라갈려면 

힘이드니 가능하면 아침 일찍 다녀오는게 좋다는 글을 읽은적이 있는데,그말이 맞는것 같다.

다녀 오는데,보통 약 3시간 걸린다고 하니 더워지기전,관광객이 몰리기전에 아침 일찍 출발하라고 다들 권한다.


정원이 끝나는곳에서 드디어 정상으로 올라가는 돌 계단이 시작된다.

화산 분출시 흘러나온 용암이 식어져 형성된,이 거대한 암벽의 높이는 지상에서 약 200 m.


시기리야는 5세기 카사파 왕조 때의 수도로 고고학적으로 특히 가치 있는 유적지이다.

원래 BC 3세기경 부터,바위 주위 서,북쪽 언덕에 불교 신자들의 주거지가 있었고, 바위 동굴 은신처에도 불교 

신자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는데,시기리야 록 에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위키피디아 에서)


CE 477년, Dhatusena 왕의 궁녀의 맏아들로 태어난  Kashyapa 는 왕족 혈통이 아닌 이유로,왕족 혈통인 배다른

동생인 Moggallana 에게 왕권이 돌아갈까 두려워,자기를 지지하는 군인들과 쿠데타를 일으켜 부왕  Dhatusena 를 산채로 벽으로 둘러싼 감옥에 넣어 죽이고 왕권을 찬탈하게된다.

이에 암살을 두려워한 Moggallana 는 신병에 위협을 느껴,남인도로 도망을 가게된다.

이후 Moggallana 의 귀환을 두려워 한 카샤파 왕은 적들의 침입에 대비해 시기리야 바위 위에 요새와 같은 

궁전을 짓는다.그리고는 수도와 거처를 당시 수도이던 아누라다푸라 로부터 이곳 좀더 시기리야로 옮긴다.

이후 카샤파왕의 통치기간 동안 (477 to 495 CE) 시기리야는 요새 도시로 변화되면서,궁전,정원 등 대부분의 

바위 정상의 정교한 건축들은 이 시기에 지어지게 된다.

이후  남인도로 달아난 Moggallana 는,왕권을 탈환하기위해  위해 그곳에서 군대를 모으며 복수를 꿈꾸다가

마침내 495년,시기리야에 돌아와 카샤파 왕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전쟁 중 카샤파왕이 탄 코끼리는 좀더 싸우기 좋은곳으로 길을 바꾸게 되었는데,이것을 본 병사들은 왕이  퇴각 

하는줄 알고, 왕을 버리고 달아나게 된다.

너무 자존심이 세서,항복하기보다는 죽음을 택하기로 한 왕은,허리에서 단검을 꺼내,목을 찌르고,단검을 뽑아 

그 위에 엎드려 죽었다고 한다.

이후 왕권을 탈환한 Moggallana 왕은 수도를 다시 아누라다푸라로 옮기고,시기리야는 다시 불교 사원으로 

변경 시켜 14세기까지 유지 했는데,이후 역사는 기록이 없다고 한다.

1831년 스리랑카에 주둔했던 영국 군대가 폴로나루아로의 여행후 돌아오면서,숲에 덮여있는 시기리야 정상을

발견한 이후 1890년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었고,1982년 부터는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본격적인 

발굴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계속 이어지는,수직 절벽을 갂아 통로를 만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저 아래 정원이 발 밑에 보이고,

좁은 철제 통로를 따라 샛길로 올라가면,바위 서쪽 전면이 아마도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거대한

캔버스였을것으로 추정되는 벽화가 있는 화랑이 나오는데,지금은 관광객들에 의한 훼손을 막기위해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Goggle 의 힘을 빌어 벽화를 감상하기로 한다.


140 x 40 m 의 거대한 벽과,천장에  한때는 약 500 여명의 여인 그림이 있었다고 하는데,지금은 훼손 되어 

18명만 천장에 남아 있다.

아누라다푸라 시대의 기법이기는 하나,선과 형식이 좀 독특하다고 한다.

여인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나,왕의 시녀들의 시중을 받고 있는 압사라라는 요정들의 모습을 

그린 것 이라고도 하고,또 왕의 여인들 이라고도 하며,어떤 이는 종교형식에 참여하는 여인들이라고도 한다.

인도의 아잔타에 있는벽화와 많이 닮았다.


벽화동굴 아래에는 '미러 월(Mirror Wall)'이라 불리는 회랑 벽이 있다.

왕이 거닐면서 자신을 비추어 볼수있게.벽을 정교하게 갈고 닦은후,하얀 석고를 이겨 칠해 거울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후 '거울벽'에는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에 의해,역대 왕조의 흥망을 노래한 서사시와 시기리야 벽화의

여인을 칭송하는 시들로 가득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 시들은 싱할리어로 씌여진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벽의 일부분은 방문객들에 의해 낙서가 있어

현재는 관광객들에게 접근 금지..


계단 맨 위로 벽화 동굴과 그 아래 황토색으로 보이는 Mirror Wall 이 보인다.


중간에 테라스 정원이 만들어져 있다.

한참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중간 지점에서 드디어 시기리야 록 정상으로 올라가는 사자의 두 발톱 사이

중간에 Main Entrance 가 나온다

원래는 그곳에 사자의 입이 있었다는데 현재는 파괴되어 돌계단으로 만들어진 입구로,위로 이어지는 철제 

계단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정상에 이르게 된다. 

거대한 사자 발톱.

시기리야 라는 지명도 원래는 Lion rock 이라는 어원의 Sihagri 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올라가는 도중이나,정상에 올라가서도 적당히 쉴곳도 없이,뜨거운 태양열을 그대로 받아야 하기 때문에,자외선

차단재를 바르거나,양산을 지참 하는게 좋고,꼭 마실 물을 지참해야 한다.

위에서 본 시기리야 록(from google)


정상에 오르면,허물어진 왕궁터 밖에 없는 다소 황량하고 허탈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 지금부터 무려 1500년 전,평지도 아닌 이런 높은 바위산 언덕에 요새 궁전을 짓고,저수지 까지 만들어 

완벽한 소 도시를 만들어낸 창의적이고도 뛰어난 건축술에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넓지 않은 산 정상에  왕궁 건물을 지탱했던 벽돌들만이 발꿈치에 치이는데,우리는 그저 무심히 여기저기 

소요 하면서,멀리까지 보이는 시기리야 전경만 카메라에 담을 뿐이다..



서쪽으로,우리가 올라온 방향으로 눈을 들어보니,곧게 뻗은 대칭형 지상 정원 한가운데로 아직도 끊임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볼수있다. 




아마도 당시의 우물이었던 곳에,청초한 연꽃이 피어있고

1500 년 세월을 견뎌내고도 아직도 건재한 벽돌 틈사이로 자라는 생명력..

그리고 돌산 정상 위에서도,마치 아래 동네 어느 마당에나 있을 법한 나무들도 그대로 있다.






바위를 깎아,반질거리게 만든,왕이 앉았던 자리가 아직도 어제 만든 듯하다.

한참을 정상에서 거닐다가,다시 내려 가는길..

저 아래로 부터 점점 더 많은 관광객들이 올라오고 있다.

다시 중간 공원에 내려와 땀을 닦으면 올려다 본 전경..

구경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데,호객군이 가까이 있는 피두랑갈라(Pidurangala Rock) 까지 트레킹으로 안내할수

있다고 꼬드긴다.

하지만 이미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오느라고 좀 지친데다,해가 벌써 중천에 떠서 더워지는데,다시 또 그곳까지

걸어갈 용기가 안난다., 날씨만 선선하면 걸어서 갈수 있을것 같은데...

원래,나올때는 아침에 들어왔던  Musium 이 있는Entrance 로 나오지 말고,Foreigner's Exit 이라는 푯말이 

있는곳에서 빠져나오면 쉬운데,나는 가방을 Security Office 에 맡겨놓은 관계로 다시 들어오던 길로 나가려 

하니 안내원이 막는다.. 

설명을 한후 다시 아침에 들어왔던 곳으로 나오면서 다시 한번 정원을 둘러본다.

Water Garden:

운하처럼 물 줄기를 만들어 내고,댐과,개폐장치를 설치하여,지상과 지하에 Water Pump 시설까지 설치,분수까지 

만든 복합적인 기능을 가진 정원으로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 일것이라고 한다.


우기에는 이곳 모든 통로들이 물에 잠기면서,시기리야 전체의 물을 흘러 바뀌게 하는 기능을 한다



다시 아침에 들어왔던 입구에 도착,가방을 찾은후 근처에있는 릭샤를 불러 피두랑갈라 로 갔다.

가까이 있는 피두랑갈라 라는 비교적 높지 않은 산으로 올라가,저 멀리 시기리야 록을 보는 풍경이 압도적

이라고하여 여기까지 온 김에 덥고 힘들지만,다시한번 산을 올라 보기로 한것이다

올라갔다 내려올때까지 릭샤꾼은 대기를 하기로 하고,입구 절 마당을 지나 산을 오르기 시작 하였다.




덥긴 하지만,그래도 숲속으로 난 돌길을 오르기를 한 30분..


도중에 누어있는 부다상을 지나니,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고개가 완전히 커다란 바위 사이 사이로 이루어져 있어,겨우 한사람 정도만 지날수

있는 좁은 바위 틈새를 마치 암벽 등반하듯 올라간다.

길이 좁아 동행한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 손을 잡아주며,힘들게 올라가니 바로 이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광대하게 펼쳐진 수목의 운해속에 바로 한시간 전에 올라갔던 시기리야 록의 우뚝 솟은 모습이 보이고,

 

끊임 없이 줄을 이어 올라가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손에 잡힐듯이 보인다

이곳 피두랑갈라 산 정상의 큰 바위와,멀리 시기리야 록이 거리를 두고 어울어져 좋은 카메라 피사체를 

만들어 낸다.

일출과 일몰시에는 더욱 더 장관인 한 컷을 기대 할수 있을것 같다


그런데,이 바위 아래 그늘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또 다른 방문객들이 있으니..



넓지 않은 이곳 피두랑갈라 산 정상의 모습과


주위 풍경..



산에서 내려오니,바로 산 입구 학교에서 학예회 같은 모임으로,부모들과 학생들이 어울어져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다.

나는 다시 릭샤를 타고,아침에 내렸던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담블라로 돌아가는 릭샤를 만나,저렴한 가격으로

담블라 숙소까지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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