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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 산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  | Journal
08/20/201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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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테이블 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가

고개를 돌려 패리오의 통유리문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 본다.

맑고 파아란 하늘, 하얀 뭉게 구름,

지금은 한 여름의 정점이 지나가고 있는 평화로운듯한 일요일 오후.


올 여름은 참으로 많이 뜨거웠다.

앞 뜰 한 켠에 심어 애지중지 키우고 있던 아기 선인장까지

용광로처럼 끓는 햇살을 견디지 못하고 줄기가 바싹 말라 죽었으니까.


그런데 뒤 뜰 텃밭의 저 연약한 식물들은

타들어가지 않고 그 불과 같은 열을 잘 견디면서 자라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달에 한 번씩 잘라주는 부추는 여전히 잘 자라고,

고추, 깻닢, 피망, 가지도 잘 크고 있으니까.


얼마전에는 담벼락 한 켠에 무성하게 크고 있는 알로베라를 잘라

애리조나에서 나온 꿀로 재워 놓았다.

변비 때문에 고생하는 언니에게 먹여볼까 하고.

아, 언니....







엊그제 금요일 아침에 언니 집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윌체어.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목요일에 왔던 소포가 저 윌체어였구나.


내가 처음 언니를 만났을 때인 올 1월부터 4월 중순까지는

그래도 거의 매일 나랑 같이 약 삼십분 정도 동네를 걸었었는데

그 이후부터 상태가 급격히 좋아지지 않아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집안에서 워커를 잡고 걷고 있는 언니는 

최근에는 그것마저 힘들정도로 몸의 발란스를 맞추지 못해 잘 걷지를 못한다.


 그래서 언니의 아들이 윌체어를 주문했을것이다.

그 윌체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착잡해졌다.

마음이 어둡게 가라앉는것을 참으며 평소와 같이 부엌일을 시작하려는 내게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던 언니가 내게 말했다.

잠깐 이야기 먼저 하자고.

언니는 점점 말을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로 진행되고 있는 중인데

자기가 지금 말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을 때 꼭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언니는 바로 전날에 진료약속을 몇 달 동안 기다리던 병원에 다녀왔는데

그 병원은 미국에서도 파킨슨 병 치료를 잘하는것으로 정평이 나 있고

한 때 무하마드 알리도 치료받던 곳이기도하다.


언니는, 어제 만난 의사의 말에 의하면

자기의 뇌를 공격하는 것은 머리속에서 한 군데가 아니고 여러군데서 공격하기때문에

뇌의 기능 손실진행이 빨리 되고 있다고한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앞으로 완전히 움직이지 못해서 어쩔수 없이 이 집을 떠나 요양원에 가게 되더라도

자기의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니까 사설 요양원에 가더라도,

그래서 그곳에서 24시간 돌봐주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내가 언니에게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였다.

 자기 옆에서 꼭 필요한 사람은

아들도 아니고, 며느리도 아니고 오로지 나라면서.


언니가 어떤 분이란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눈물부터 쏟아졌다.

언니. 언니 이제 가을이면 언니가 산 새 집으로 이사갈꺼잖아.

두 달전에 구십 만불 주고 산 큰 집말야.

언니가 혼자서도 화장실 가는데 편리하게 하기위해

 그 집안을 지금 완전히 뜯어 고치고 있잖아.

 리모델링비만도 사십만불이래며.


그 집에서 언니 손자들 자라는것 보면서 오랫동안 있어야지 왜 그런 말을 하는거야.

그리고 언니 뒤 뜰에 우리 둘이서 텃밭 만들어 같이 가꾸자고 했잖아.

언니가 씨 뿌리고, 곱고 연한 초록의 새싹이 나오는것 같이 보자고 했잖아.

나는 그 옆에서 언니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감독할꺼라고 했잖아.

그래...그렇게 해.

하지만 나는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꺼야.

사실 나이 칠십이면 많이 살았지. 젊은 나이에 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잖아.

나는 내게 오는 죽음에 그리 연연하지 않아.

그런데 현재 나의 유일한 대화상대는 클라우디아이니까 참 고마워.

그리고 내가 이렇게 아픈데도 클라우디아를 만날 수 있어서 하느님께 감사하고.


.

.

.


언니는 힘들게, 그러나 평소와 달리 또박또박 내게 말해 주었다.

어쩌면 내게 미리 유언을 말하여 주는 것처럼.







월요일인 내일부터

긴긴 3개월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로 가을학기가 시작된다.

나는 이번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한 과목만 신청했다.


그. 런. 데. 도....

다 뿌리치고 어디론가로 막 달려나가고 싶다.

사람들이 없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 한 없이 걷고 싶어진다.

아, 언니를 생각하면 너무너무 내 마음이 아파 견딜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을 언니를 생각하면

아무데도 갈 수가 없네.





2017. 8. 20 (일)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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