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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 19시대에 재취업하다
05/11/20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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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전에 은퇴한 지 거의 4년만에 재취업을 하였다.

 그리고 엊그제  2주 동안 일한 첫 급료가 내 은행구좌에 들어온것을 보고

4년 만에 받아 본 첫 월급에 감격하였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내가 참으로 힘들게 육체노동을 해서 번 돈이기 때문이었다.


지난 4월 중순에 미국 정부에서 코로나 19 재해 지원금으로 보내준 1200불이

IRS 에서부터 내 은행구좌에 들어온 것을 보았을때는, "어 들어왔네" 하고 말았지만

이번에 받은 소액의 첫 월급은 나에게 뿌듯한 기쁨을 주었다.


일을 시작하였던 첫 날부터 

바로 어제까지 약 3주 동안 하였던 일은 정말 힘이 들었으며 

내 평생에 한 번도 이렇게 허리가 휘도록 열심히 청소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입술까지 다 부르터서 지금은 아물려고 까맣게 딱지가 앉아 있다.


 평소에도 청소하기를 게을리하여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장만할 때도 새 집을 짓고 대강대강 치우며 살아왔었는데

그 동안 제대로 하지 않았던 청소를 이번에 다 한 것 같았고,

또 이번 기회에 단단히 청소하는 법을 배웠으니

앞으로 내 집도 이런 식으로 닦아내며 청소를 한다면 사방에서 반들반들 윤기가 흐를것만 같았다.





- 약 63,000 스퀘어 피트 매장안의 진열장들을 수건으로 닦고 또 닦았다 -



 마스크를 쓰고 하루 4시간 반 동안 젖은 수건과 마른 수건으로 

진열장과 냉장고들을  땀을 흘려가며 닦다가 집에 돌아오면 

그 넓은 매장안에 우리들만 있었지만 그래도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혹시나 싶어 입었던 옷들은  

모두 뒤 뜰 빨래줄에 널어 햇살을 쏘이고 난 뒤 빨래통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다음에 

거의 한 시간 동안  거실에 있는 맛사지 의자에 앉아 온 몸을 맛사지 받아야만 했었는데

그러고나면 온 몸이 풀려져 견딜만하였다.


지금도 열 손가락이 다 아릴 정도로 아퍼와서

제대로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기가 힘이 들 정도이지만

지금까지 매장안의 진열장과 냉장고들을 청소 하던 일들은 어제 날짜로 끝이 났다.


나보다 한 달전부터 남자 두 사람이 입사하여 청소를 시작하였고

나는 3주전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6월 초에 매장을 오픈할 계획으로 있는데

오늘 월요일부터는 그들과 또 본사에서 나온 지원군 일곱 사람들이 

 잘 청소해 놓은 매장안의 진열장에 상품들을 진열하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매니저를 도와 새로 뽑을 일꾼들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다른 서류 정리 일을 시작하면된다.

이렇게하여 내 인생 3막이 시작되는가보다.


.

.

.



대부분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은퇴할 시기가 되면 은퇴를 하지만 

나의 경우는 잘 다니고 있던 회사가 갑자기 파산되어 

생각지도 않았던 은퇴를 2016년 9월말로 하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이 회사가 고마웠다.

왜냐하면 이 회사에 다니면서 저금을 꼬박꼬박 하여 지금의 내 집도 내 힘으로 지을 수 있었고

이 회사에 다녔던 16년동안 401K에 매달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금액을 입금하였기때문에

지금의 노후 생활에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도 401K에 열심히 저금을 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내가 지금 퀄리티가 좋은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는것은 모두 이 회사의 덕분이다.

따라서 나는 현재 나의 SSA를 신청하지 않고 있는데

내 나이 70.5세가 될 때 신청을 하면 최대한의 풀 금액을 매달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암튼 조금 빠른 은퇴를 하게 되어서

은퇴를 하던 해인 2016년 11월부터는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니면서 영어도 배우고

또 우연한 기회에 파킨슨 병에 걸려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간병인 일을 

2016년 11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일 년 동안 하였었다.




- 그리스의 산토리니에서 -




- 그리스의 미코노스에서 -



그리고 두해 째인 2018년에는 

약 100일간의 대륙횡단을 끝냈고,

큰 딸래미 가족과 그리스 여행도 하였었고

또 안드레아 가족과 함께 약 한 달간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을 하는 등 

 2018년에는 여행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었다.




-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 있는 잔지바르 섬에서 일출을 보러가면서 -




그리고 세번째 해인 2019년에는

다시 교회로 돌아와서 열심히 성당에서 전례를 보면서 얼마전까지 봉사생활을 하여 왔었다.

지금은 코비드 19라서 지난 3월 16일부터 성당에서 미사를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러던중 은퇴한지 넷째 해가 되는 2020년인 올해 1월초에

우연히 한인 로칼 신문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읽게 되었다.


사람을 구하는 곳은 미국에만에도 70 여개의 지점이 있다는 대형 한인 마켓이지만

이곳 애리조나에는 첫 지점이 생기는거였는데

이곳에서 파트 타임 캐쉬어로 일하는것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국에서 30여년이 넘도록 직장생활을 하였는데

 회전의자 굴려가면서 컴퓨터로만 편하게 일을 하다가 은퇴를 하였었고

은퇴 한 후 지난 3 년동안 아주 편하게 잘 지내다보니

언제부터인가 남은 내 인생을 이렇게 편하게만 있다가 

어느 날 홀연히 하늘나라로 떠난다는 것에 대해서는 좀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던때였다.


이제 나의 인생 3막에서는 좀 힘든 일을 하더라도, 

열심히 남은 내 열정을 쏟아 부으면서 일을 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나는 건강하니까.


그리고 이제껏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가고 싶은 곳 다 가보았으며

걷고 싶은 곳 다 찾아가 걸었으니 

그만하면 충분하고 감사한 삶이었다.


새로 시작하는 한인 대형 마켓에서

비록 험한 일을 하게 될지라도 

뛰면서 일을 하여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스며들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파트타임 캐쉬어를 원한다면서 레즈메를 이메일로 보냈더니

1월 말 경에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뉴저지주와 캘리포니아주에 본사가 있다는데

어느 주에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본사에서 왔다는 남자들과 인터뷰를 하였는데

한 명은 중년쯤으로 보이고 다른 한 명은 젊은 청년이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들이 나에게 매우 호의적인것을 느끼게되었고,

"사모님은 캐쉬어보다는 customer service에서 일하시면 적격이겠습니다" 하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리고 자기네들의 계획에는 4월초엔 오픈할 예정이니 그 안에 연락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난 3월 초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지구를 휩쓸기 시작하여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를 써야만 생활할 수 있는 사상 초유의 지구 생활이 시작되었고,

부득이 새로 시작하는 마켓의 오픈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조금 늦어지게 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었는데

마침내 회사로부터 4월 중순에 일을 시작하니 매장에 와보라는 전화를 받았다.


마침 안드레아집에 같이 있을 때 그 전화를 받고 한참을 고민하였다.

과연 이 코비드 19 상황에서 일을 하여야만 할까? 해서였다.

그런데 나에게 용기를 준 이가 바로 안드레아였다.

하루에 파트타임으로 적당하게 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여주면 생활에도 활기가 있지 않겠냐면서.

어차피 코비드 19는 쉽게 끝나지 않을것이라

앞으로 일 이년 동안은 여행을 떠나는것은 어려울것이니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있다가 때가 되면 다시 장거리 여행을 하자면서.

그리고 매장안에서는 항상 마스크를 쓰고 언제든지 조심하라고 말해주었다.


그리하여 지난 4월 20일부터 일을 나가기 시작하였다.

보수는 이곳이 내가 전에 다니던 회사만큼 많이 줄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서도

 내 경력을 인정하여 자기네 회사 사정에 맞추어 조금은 생각하여 주겠다고 하였는데 

그래도 나로서는 만족스러웠다.

오히려 늙은이 뽑아준것만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나의 직책은 캐쉬어가 아니라

9개의 계산대에서 일하게 될 캐쉬어들을 가르치면서 관리하고 

지점의 매니저를 서포트하는

Operation Supporter이다.

물론 급한 상황을 맞게 되면 나도 캐쉬어및 기타 험한 일들도 할 것이겠지만,

이렇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펜스 부통령 다음으로

실력자인 미국 하원의원장인 낸시 펠로시의 나이가 지금 80세이고,

미국의 하원의원장은 여차해서 두 사람에게 일이 생기면 

하원의원장이 대통령직을 맡는 중요한 자리라고 알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될 일은 거의 없겠지만은 그렇다는 것인데

80세의 똑똑한 낸시 펠로시는 그 나이에도 지금 난다긴다하면서 

팔팔하게 정치를 잘 하고 있지 않은가!




- 2018년 3월 대륙횡단시, White Sand National Park 에서 -



오늘부터 사흘만 지나면 만 67세가 되는 나는

 그 녀에 비하면 아직 한참 어리고

나는 앞으로 식료품 매장의 일선에서 팔팔하게 뛰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 받은 내 삶과 건강이 고맙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일이 안겨다 주는 축복이 많다. 

나는 지금도 "적당한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 건강은 일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누구보다도 젊게 살고 있다.

- 김형석의 100세 일기중에서 -




2020. 5. 11 (월)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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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읽은 신문에서 미국은 지금 진행중인 코로나 팬더믹 상황속에

급기야로 미국의 실업률이 

1948년의 대공황 이후 사상 최고치인 14.7%를 기록하여 

코로나 바이러스 직격탄을 맞은지 한 달만에 지난 4월에 약 2050만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하는데

평소에 주급을 받아 생활하여 오던 수많은 소시민들의 고통이 어떠할지 내 가슴이 저려오도록 아퍼왔다.

아무리 코로나 팬더믹이 끝나간다 해도

절대로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가기는 힘든 세상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김형석의 100세일기] 

, 여행, 사랑… 내가 늙지 않는 세 가지 방법



일러스트= 김영석



예로부터 불가에서는 인생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이라고 했다. 생과 사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이고 병은 의학에 속한다. 남는 것은 '불로(不老)'의 문제다. '늙지 않는 삶이 행복이다'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내 친구 안병욱은 80이 되었을 때 늙지 않는 방법 세 가지를 권하곤 했다. 공부하라, 여행을 즐기라, 열심히 연애하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안 선생보다 10년이 더 지난 뒤부터 안 선생의 일상적인 가르침을 철학적인 관념으로 보충해 보곤 한다.

공부도 정신적인 일이다. 공부하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다면 누가 늙지 않는가.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내 나이 100을 넘었다. 그래도 일하고 싶다. 일이 없으면 사는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내 주변에서도 100세까지 젊게 행복한 삶을 누린 사람들은 모두가 일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게으른 사람이 빨리 늙는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일이 안겨다 주는 축복이 많다. 나는 지금도 "적당한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 건강은 일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누구보다도 젊게 살고 있다.

여행은 새로운 삶을 위한 호기심과 도전이다. 신체는 늙어가지만 정신은 계속 성숙하게 마련이고 그 성숙이 곧 성장을 동반하기 때문에 젊음을 뒷받침해 준다. 나는 교회에서 자랐다. 교회가 나를 젊게 해주었다. 인간적 성장을 주었으니까. 그러나 교회 생활에 안주하면 안 된다. 교리에 붙잡혀 예수가 가르쳐 준 진리를 깨닫지 못하거나 신앙적 삶을 교회를 거쳐 사회적 책임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면 성장에서 오는 젊음을 잃어버린다. 그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신앙을 진리와 역사적 사명으로 받아들이면서 한없는 희망과 창조력으로 터득하며 산다. 신앙은 사명감과 더불어 항상 새로 태어나게 해준다. 참신앙인은 늙을 수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안 선생에게 그때 했던 얘기가 떠오른다. 내가 "그런데 왜 늙었느냐?" 물었더니 "80이 되니까 연애 상대가 없어졌다"고 답해서 함께 웃었다. 내 생각은 안 선생과 조금 다르다. 사랑은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고 생각한다. 돈이나 물건, 권력이나 명예를 사랑하는 것은 쉬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이나 학문을 사랑하는 열정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임종을 앞둔 사람의 가장 큰 소원은 사랑하는 가족이나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작별이다사랑의 끝이 인생의 종말이기 때문이다. 남녀간의 사랑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우정이 될 수도 있다. 이웃과 민족을 위한 사랑도 좋다. 그들을 위하는 사랑이 있는 동안은 행복과 젊음이 남는다고 생각한다.

 

가장 고귀하고 영원한 것을 사랑한 사람은 누구보다도 값있는 인생을 산다.  ‘사랑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진실을 깨닫는다면 좋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17/20200417022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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