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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06/06/2017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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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설쳤다.

다행히도 이 모텔방은 꽤 넓직한데다가

두 침대가 나란히 있지 않고

하나는 저쪽 창 가로, 또 하나는 이쪽 켠 화장실 가는 쪽으로 있어서

화장실 켠 쪽에 있는 침대위에서 뒤척이는 내 소리가

수녀고모에게까지는 들리지 않아 방해가 되지 않은 듯 하다.

왜냐하면 수녀고모는 나의 날샘과 달리 고른 숨을 내쉬며 푹 잠에 빠졌으니까.


오늘로써 길 위로 나선지 나흘째.

그것도 한국에서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그 이튿날부터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조금이라도 더 미국의 자연을 보여 주고 싶은 나의 마음이었기때문에

'시차적응은 달리는 차 안에서 하셔요'....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36년동안 시뉘 올케 사이였지만,

그 긴 세월동안 우리의 만남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얼마 되지 않았기때문에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나흘동안 같이 밤낮으로 붙어 다니면서

긴 장거리 운전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은 방에서 자고,

그러면서 점점 더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만큼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있었다.


수녀고모는 내가 결혼을 해서 서울에 살 즈음에

예비수도자가 되어 수도원으로 들어갔던 막내 시누이이다.

그 뒤 미국 이민 오기전에 한 달전에 찾아가 만났을 때가 1984년 3월이었는데

그 때는 수녀가 되기 위한 수련기간이었다.


그 뒤로 내가 한국을 두 번 방문하였을때 만나본 것이 전부였다.

내가 가톨릭 신자가 된 것도 수녀고모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 때 이민 오기전에 수녀원으로 찾아 갔을 때

수녀 고모는 세례를 받지 않았던 우리 부부에게 미국 가면 꼭 세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시카고에 도착한 것이 1984년 4월.

그 해 성당에 찾아가 9월부터 시작하는 예비자 교리반에 들어 갔었고

그 이듬해 부활절에 우리부부와 두 딸이 세례를 받았다.(아들은 그 때는 태어나지 않았었고)


1992년 미국에 온 뒤로 처음으로 한국에 직장 연수 기회로 나가게 되었는데

수녀고모가 김포공항에 마중 나와서는

내 손에 봉투하나를 쥐어주고는 필요한 곳에 사용하라고 하였다.

받지 않으려고 뿌리치는 나에게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이라면서 받아 달라고 했다.

자기 오빠 때문에 미국에서 내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하고 있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 때 내 오빠도 공항에 마중 나와 있었는데

오빠가 같이 집에 가서 식사라도 함께 하자고 했지만

수녀원에 돌아가야 한다면서 돌아섰다.


오빠집에 와서 보니 그 봉투안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들어 있었다.

아니, 수녀가 웬 돈을!

하지만 후에 나는 알게 되었다.

결혼해서 살고 있는 다른 시뉘들이 준 용돈을 아껴 쓰면서 모아 두었던 것을 나에게 주었다는 것을.


머리속에서 이러저런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이끌어내어

결국 나는 밤을 하얗게 새우고는

새벽 다섯시쯤 그냥 침대에 누운 상태로 묵주기도를 10단 바쳤다.


여섯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니 수녀고모도 같이 일어난다.

아침식사를 적당히 하고

커피까지 내려 창 밖으로 보이는 태평양을 바라보며 마셨다.


오늘은 주일이라 이곳 샌 시몬에 있는 성당에서 아침미사를 참례한 다음에 길을 떠날려고 한다.

원래 계획은 어제 저녁 이곳의 성당에서 토요 특전 미사를 참례한 다음에

아침 일찍 길을 떠날려고 하였었다.

하지만 어제 계획에 없었던 카멜과 카멜 미션을 들렸었기에 약간 차질이 생겼지만,

뭐, 여행이란게 이런것 아닌가.


원형 테이블을 가운데 놓고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먼저 눈물을 쏟은 것은 내쪽이었다.

불현듯 북받치듯 쏟아지는 설움과 회한과

그 동안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이 혼자 삭여왔던 고통이 한꺼번에 터지는듯 했다.

나의 울음에 수녀고모도 덩달아 같이 울면서 내 손을 꽉 잡았다.

"언니, 저는 언니가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지금까지 잘 걸어왔다는 것이 대견하고요,

그런 언니가 내 언니라는게 자랑스뤄워요.

언니, 내 손에 묵주를 잡을 힘이 없어질때까지 언니와 언니 가정을 위해서 기도할께요.

나도 힘든 때가 참 많았어요.

내 아버지도 그렇고, 오빠도 그렇고...

또 어떤 때는 수도원에서 생기는 일도 그렇구요...

하지만 그 때마다 전 모든 일이 잘 지나가리라...하면서 열심히 기도하여왔어요.

믿고 구하는 기도는 언젠가는 꼭 이루어지니까요."












모텔에서 성당까지는 약 10 여분 거리에 있었고

여행 일정상 오늘 이후로는 태평양 바다를 보는 것이 마지막이라

모텔에서 나와 바닷가의 모래밭을 조금 걸은 후에 성당으로 향하였다.

9시에 미사가 시작인데 도착해보니 8시 30분경이었다.







우리는 오늘 처음으로 같이 미사참례를 하게 된다.

오늘은 <주님수난 성지주일>이라 제대는 붉은 제대포를 덮었고

커다란 종려나무잎으로 제대를 장식해 놓은 것이 특이했다.

시골의 작은 성당이라 음악봉사하는 사람들도 모두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도 화음이 참 듣기 좋았다.

주의깊게 보니 각자 악기를 연주하면서 성가를 연습하고 있었다.


수녀고모와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들려오는 성가속을 빠져 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앞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Good morning! I am Father Mike."

우리에게 말하나 싶어 눈을 뜨니

우리앞에 키가 큰 미국 사람이 환히 웃으면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엉겹결에 나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한 다음에 우리 소개를 하였다.

나는 애리조나 피닠스에서 살고 있고 이 분은 한국에서 잠시 미국을 방문했는데 지금 여행중이다.

지금 이 미사후에 다시 길을 떠날 것이다...등등.

아마도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먼저 다가와 인사했음이 분명했다.






성전을 찍으려고 들고 갔던 카메라를 차에 두려고 나왔을 때

본당 신부는 성전앞에서 걸어다니면서 신자들과 일일이 인사하며 악수를 하고 있었다.

굉장히 쾌활하고 다감한 본당신부인것 같다.

저 키 큰 분이 바로 본당 신부님.


맨 뒤에 앉아있는데 누군가 등뒤를 손가락으로 살짝 조심스럽게 신호를 해왔다.

뒤를 돌아보니 점잖게 생긴 남자분이었다.

우리 보고 예물봉헌을 해 줄 수 있느냐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아마도 전례를 담당하는 분인것 같았다.

"아, 우리는 지나가는 나그네인데요?" 했더니 괜찮다고 한다

나는 수녀고모를 바라보며 눈으로 물으니 괜찮다고 해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중 성찬 예식때에

경건한 마음으로 빵과 포도주를 들고 제단위까지 올라가서

제대위에 내려 놓고 우리 자리로 돌아왔다.

여행복 차림으로.

성당을 가득 채운 신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이런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때나,

여행을 돌아와서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이나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

하느님은 꼭 제 삼자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전달한다고.

그 날 아침 샌 시몬의 모텔방에서

내가 살아오면서 세파에 시달린 아픔과 고통을 눈물로 토해 냈을 때,

수녀고모가 같이 아파하며 내 손을 붙잡고 하나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를 하였을 때,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어

우리 마음 깊은 곳을 어루만지며 치유해주셨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여행중에 우연히 처음 찾아갔던 성당의 교중미사중에

빵과 포도주를 주님께 봉헌하도록 하지 않았을까싶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한 번 슬쩍 지나가는 낯선 여행자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겠느냔 말이다.





샌 시몬 성당 오른쪽 마당끝에 초라하게 서 있는 나무 십자가를 바라노는데

문득, 이 말씀이 떠올라졌었다.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2015년 3월 29일(일)

여행 다섯쨋 날 아침에

캘리포니아의 샌 시몬에서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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