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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의 입과 귀가 된 남자 "호통까지 성대모사하며 통역해요"
02/01/202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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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 전담 통역사 레 휘 콰 원장

박항서 감독의 전담 통역사인 레휘콰 원장이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사인이 담긴 태극기와 베트남 국기 앞에 섰다./호찌민=이미지 특파원
박항서 감독의 전담 통역사인 레휘콰 원장이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사인이 담긴 태극기와 베트남 국기 앞에 섰다./호찌민=이미지 특파원
베트남 박항서 신드롬의 숨은 공로자가 있다. 2017년 12월부터 박 감독과 선수들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는 박 감독의 전담 통역사 레 휘 콰 원장이다. 그는 호찌민시 3군(郡)에 있는 가나다 어학당 원장. 하노이와 호찌민에 10개 지점이 있는 베트남 최대 규모의 사설 한국어학당이다. 최근 베트남 23세 이하(U-23) 축구 대표팀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십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첫 좌절을 맛봤지만, 베트남의 박항서 지지는 절대적. 현지 언론들은 "탈락이 모두 박 감독의 책임은 아니다" "그를 대신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며 응원한다. 베트남 국민이 생각하는 박항서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어떻게 박 감독과 인연이 맺어진 걸까.

"내 이름보다 유명한 '박항쎄오 통역'"

-사람들이 알아보기도 하나.

"내 이름은 몰라도 '어?! 어?!' 하며 알아보더라. 이제 '박항서 통역'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더 많아서 술을 마실 때도, 오토바이를 운전할 때도 조심스럽다."

-박 감독을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나.

"2017년 말, 면접 볼 때 처음 봤다. 이력서는 쳐다보지도 않고, 어린 시절과 부모님 이야기 등 개인적인 성장 과정을 주로 물어보시더라. 매우 인상 깊었다. 이력서는 아직도 안 본 것 같다."

-어려운 점은.

"초기 6개월은 제법 힘들었다. 감독님 성격이 급해서 말도 빠른 데다가 사투리가 심하거든. 안 그래도 새로 23세 이하 대표팀 통역을 맡은 사람이 '사투리 못 알아듣겠다'고 전화를 했더라. 처음에는 코치들이 사투리를 표준어로 설명해주곤 했다."

어학당 곳곳에는 베트남 언론에 보도된 대표팀 축구 경기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진 속 박 감독과 레 원장은 거울로 비춘 것처럼 똑같은 손짓과 표정이었다.

-자신만의 통역 비결이 있나?

"축구 경기장은 매우 시끄럽고, 경기도 빠르게 진행된다. 감독이 소리를 지르면 나도 같이 소리를 지른다. 단순히 말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감독의 손짓, 표정, 목소리 크기, 톤까지 똑같이 베껴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역은 성대모사와 연기까지 해야 한다."

조선으로 시작된 한국과의 인연

레 원장이 처음 접한 코리아(KOREA)는 대한민국이 아닌 '조선'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김일성종합대학 유학생 출신으로 북한에서 8년간 공부하고, 1993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했다. 아들인 그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 아버지는 "한국에서 공부해보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1995년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들어갔다.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공기가 깨끗하고, 매우 추웠다. 추운 게 정말 힘들었다.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을 잘 모를 때인 데다가 제대로 된 베트남 식당도 없었다."

1997년 한국어학당을 졸업한 그는 베트남 노동부 산하 주재원과 주한 베트남 대사관 소속 노무관으로 2002년까지 근무했다. 그가 사회에 나왔을 때, 한국은 IMF 외환 위기로 휘청거리고 있었다.

-대한민국 전체가 힘들 때였다. 주한 베트남 사람들도 어려웠나.

"'공장이 사라졌다'는 베트남 노동자들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 공장에 가보면 강아지 한 마리랑 베트남 노동자 20~30명만 남아 있었다. 공장 사장들이 트럭에 기계와 집기 싣는 것까지 시켜놓고는 '버리고' 간 거다. 3~4개월치 월급을 못 받은 이가 대부분이었다. 25평짜리 내 집에서 베트남 노동자 수십 명이 숙식을 해결했다. 결국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해 베트남에 돌아간 이가 허다했다."

-한국이 싫거나 미워지기도 했을 텐데.

"나도 20대 중반 젊은 나이라 당장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했다. 노동자들은 원망도 많이 했을 거다. 그때 한국은 기업 친화적 정책을 많이 폈던 것 같다. 한국 살 때 종로나 광화문에서 데모하는 걸 많이 봤다. 베트남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라 한참 서서 구경하곤 했다."

-요즘은 베트남에서도 파업을 많이 하지 않나.

"한국 기업에 근무하는 베트남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기업들이 현지화가 덜 돼서 분쟁이 많다. 아직까지 한국 고용주들은 베트남 사람들의 성향을 이해 못 하고 한국 방식대로 일해주길 바라는 측면이 크다."

박항서 감독과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레휘콰 원장. 그는 “단순히 말을 번역해 전달하는 게 아니라 감정과 행동까지 전달하는 게 통역가의 임무”라고 말했다./호찌민=이미지 특파원
박항서 감독과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레휘콰 원장. 그는 “단순히 말을 번역해 전달하는 게 아니라 감정과 행동까지 전달하는 게 통역가의 임무”라고 말했다./호찌민=이미지 특파원
한국 통해 두 번 산 내 인생

작년 경제성장률 7%대를 달성한 베트남이 포스트 차이나로 떠오르면서 우리 기업의 투자도 활발하다. 베트남 투자청에 따르면 1988년 이후 대(對)베트남 외국인직접투자(FDI) 누적 금액이 가장 많았던 국가는 한국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물론, 건설·금융·IT 등 다양한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하고 있다. 레 원장은 "한국 기업들의 강연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베트남 문화가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두 민족 다 정(情)이 많지 않나.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내 사람'에게만 정이 많다. '우리' '한민족' 등의 단어에서 오는 한국 특유의 정서와 연결돼 있는 것 같다. 베트남은 미국, 프랑스 등 외세(外勢)의 지배를 오랜 기간 받아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누가 와도 정을 나눠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두 문화의 어떤 점이 갈등을 빚나.

"한국 기업이 '우리 문화'를 내세워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람들은 '베트남 사람들은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다'며 화낸다. 맞는다. 그런데 이건 문화가 다른 거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 기업들은 직원이 잘못할 경우 그 자리에서 '죄송하다' '다음에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자존심이 세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혼을 내고, 사과를 들으려 하면 자존심이 상한다.

박 감독님은 선수들의 이런 특성을 잘 파악하고 이용한다. 선수가 실수해도 절대 그 자리에서 혼내지 않는다. '선수가 가장 마음 아플 텐데 혼내서 뭐하냐'고 한다. 대신 따로 불러 '이런 부분을 고치면 좋겠다'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이 실수한 걸 모르는 게 아니다. 체면을 중시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불러서 말하면 수긍한다. 베트남 사람의 체면을 무시하면 그 관계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특성을 이해해야 발전적인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는 베트남에 진출한 한 한국 기업에서 근무하다가 2005년 한국어학당을 열었다. 당시만 해도 베트남 내 한류 열풍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1년간 학생이 없던 이 학원의 수강생은 현재 1700여명으로 늘었다. 그는 한국어 교재, 사전, 드라마 번역 등을 통해 한국과 연을 맺어왔다.

-한류 열풍이 시작된 건 언제부터인가.

"약 10년 전부터다. 드라마, K팝 순으로 인기를 얻더니 최근에는 한식(韓食) 등 음식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2001년인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책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번역해 내겠다고 하니 아무도 안 받아줬다. 아는 출판사에 '책이 안 팔리면 번역료를 안 받겠다'고 해 펴냈는데, 지금은 스테디셀러가 됐다. 나중에 번역료 800만동(약 40만원)을 받았다. 2009년 출간한 한국어-베트남어 대사전은 네이버가 베트남어 사전을 만들 때 인용됐다. 베트남은 한국을 필요로 하고, 한국도 베트남이 필요하니 두 나라의 관계는 더 좋아질 거다."

-최근 베트남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높은데.

"축구 열풍 이후 베트남을 궁금해하는 건 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베트남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아는 게 있어도 절반 이상은 잘못된 거다. 여행을 많이 오지만 그게 관심은 아니다. 맨날 베트콩이라 하고, 못산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긴 시간 동안 관심을 갖고 연구해줬으면 좋겠다."

그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그의 어학당에 걸린 표어(標語)가 눈에 띄었다. '외국어 하나가 인생을 바꾼다.' 그는 오는 3월, 첫 월드컵 진출을 노리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훈련에 다시 합류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31/20200131023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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