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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나(226) "너라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 (2020년 1월 9일)
01/08/202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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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019년 5월 12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경상북도 영천시 은해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에 참석했다.


너라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


소크라테스가 수업 첫날을 맞아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오늘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에 대해 배울 것입니다.

모두 두 팔을 최대한 앞으로 뻗었다가 다시 뒤로 뻗으세요.

오늘부터 자신의 건강을 위해 이 동작을 매일 열 번씩 하십시오.

스승의 명령이 아닌 자신과의 약속이라 여기고 꼭 지켜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뒤 확인해보니

이 약속을 지키고 있는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그 한 명의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라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

이 학생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수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었던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이었다.


일반적으로

약속에는 대상이 있다.

이는 보통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고, 또 하나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이 두 가지 약속 중

‘다른 사람과의 약속‘에 대한 이행 여부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알 수 있다.

그래서 약속을 잘 지키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약속의 이행은 강한 신념의 소산(所産)으로

삶의 유익함이 따르기도 한다.


또 하나인 ‘나 자신과의 약속’은 나만이 알 수 있다.

그래서 지키기가 더욱 어렵다.

앞서 글 머리에 소개한 '소크라테스의 수업 첫날' 이야기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하나의 삽화(Episode)이다.

이처럼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더욱 더 힘쓰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한층 높은 수준의 약속이 있다.

바로 내가 믿는 ‘신(神)과의 약속’이다.

이 약속은 앞서 두 가지 약속보다도 훨씬 더 지키기 어렵다.

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육신적 욕망의 절제와 인간적 불이익에 대한 감수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는 삶의 유익함을 기대하는 육신적 신념을 넘어

영혼의 축복까지 믿음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초월적(超越的) 신앙의 결단인 것이다.


이에 따른 한 가지 예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약 10년 전 교회에서 알게 된 ‘ㅈ’교우(敎友)의 체험담이다.

당시 그는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무역부장 이었다.

직함이 그렇다보니 외국 바이어(buyer) 접대를 위해 술자리에 앉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럴 때마다 신앙적 자괴감(自壞感)으로 고민해오던 중

교회에서 장로 임직을 받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며칠 후 미국에서 대단히 큰 물량을 수입하려는 바이어가 찾아왔다.

회사에서는 이 계약을 반드시 성사시키고자 하는 의욕으로

특별히 중역까지 함께하는 접대 술자리를 마련했고

역시 그는 또다시 그 자리에 호스트(host)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술잔을 엎어놓고 바이어가 권하는 술을 거절했다.

그러면서

“나는 크리스챤으로서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하나님과 약속을 했으니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거절 이유를 밝혔다.


당연히 술자리는 흥이 깨진 채

얼마 지나지 않아 파장(罷場)하게 됐

함께 참석했던 중역과 동료들도 언짢은 마음으로 각자 흩어졌다.

 

그 후 ‘ㅈ’부장은

상사(上司)들의 곱지 않은 시선(視線)을 의식하며

언제라도 사직서를 제출할 각오로 근무하던 중

며칠 후 어느 날

지난번 만났던 바이어로 부터

계약을 체결하자는 내용의 메일을 받게 되었다.

그 내용 중에는

“조직생활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크리스챤으로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ㅈ’부장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눈에 보이는 우리와의 약속도 성실히 지킬 것이라 확신되어

귀사와 계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했습니다.”라는 문구(文句)가 적혀있었다.

그 후 ‘ㅈ’부장은 계열사 상무로 영전(榮轉)되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지난해 5월 12일 경상북도 영천 은해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에 참석했으나

가슴에 두 손을 펴 모으는 합장(合掌),

불상에 허리를 숙이는 반배(半拜),

아기 부처를 목욕시키는 관불(灌佛) 등 종교의식을 모두 거절하므로

불교계와 일부 정치인으로부터

“공인으로서 타 종교를 존중하지 않는 예의 없는 행동”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종교란 사람과 사람 간 관계의 상위 개념인 사람과 신(神)과의 관계이다.

이 신과의 관계는 내가 믿고 섬기는 신의 명령에 대한 신종(信從)의 약속을 말한다.

기독교 교리에서 십계명(十誡命)

모든 계명에 우선하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 십계명 중에서 제1계명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이다.


따라서

황 대표의 행동에는 비난받을 이유를 찾을 수 없다.

황 대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자로서 자신이 신종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하는 것은

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신앙심의 발로(發露)이며 소신있는 종교적 행동이다.


또한 당 대표라는 공인으로서 타종교에 대한 존중이나 예의는

그 행사에 참석한 것만으로 충분히 지킨 것이다.

만약 황 대표가 공인이 아니었으면 그 자리에 참석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타종교에 대한 존중이란

타종교인이 자신의 종교를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법적으로 허락한

종교의 자유인 것이다.

지금까지

부처님오신날 공식행사에 참석한

수많은 기독교 신자 정치인들을 보아왔지만

아마도 불교의 종교의식을 모두 거절한 경우는

황 대표가 유일할 것이다.

 

흔히 정치는 ‘쪽수’라고 한다.

즉, 선거에서 나를 선택해줄 지지자(支持者)가 많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치인은 이 쪽수를 많이 확보하기 위해 별별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한다.

황 대표라고 불교계의 지지를 어찌 의식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형이하학적인 인간의 계산보다

기독교인으로서 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는

형이상학적 신앙의 결단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문득 과거 무명의 목사였던 나의 선친으로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설사 남보다 재능이 부족할지라도 약속만 잘 지키면 먹고 살 수는 있어!”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은 훌륭한 정치인이다.

아니, 리더십이란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더욱이 신앙인으로서 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은

그것만으로도 대통령 자격이 충분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자는

분명히 눈에 보이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필부(匹夫)에 불과하다.

더욱이 황 대표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요즘같이 국민에 대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패역한 시대에

사람도 아닌

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황대표의 모습을 보며

문득 그 옛날 플라톤을 향해

“너라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했던 소크라테스의 말이 떠올랐다.




강 인

문화예술평론가

미국 한미동맹협의회 자문위원











악속, 정치인, 종교, 기독교,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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