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님의 프로방스 여행-7
10/16/20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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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 마티스: 앙리 마티스의 생애, 1909-1954"(Matisse the Master: A Life of Henri Matisse, 1909-1954, 2005)

512쪽의 두꺼운 마티스의 전기로 영국의 힐러리 스퍼링(Hilary Spurling)이 썼다.

같은 분량(512쪽)의 1권은 제목이 "알려지기 전의 마티스: 앙리 마티스의 생애, 1869-1908"

(The Unknown Matisse: A Life of Henri Matisse, 1869-1909, 2005)이다. 



여행팀(대학교 동기들)의 주제가 남 프랑스 문화기행인지라 미술관을 많이들 가셨다.

마하쎄이(Marseille)에서 니스(Nice, France)로 뱅기를 타고 날라가서 마티스 미술관을 가셨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곳에서는 마침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마티스와 삐까소, 모델의 희극"(Matisse et Picasso, la comedie du modele, Matisse and Picasso,

the comedy of the model) 시기는 6월 23일~9월 29일, 2018. 

운이 좋게 간 날은 끝나기 며칠 전인 9월 22일이었다.

이 전시회는 꼭 100년 전(1918년)에 빠리에서 미술중개상 뽈 기욤(Paul Guillaume)이 빠리에 있던

자기의 화랑에서 열었던 "마티스와 삐까소"(Matisse et Picasso)작품 전시회를 

기념하기 위하여 열린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뽈 기욤은 모딜리아니(Modigliani)의 중개상이기도 했다.

미술관은 니스의 시미에(Cimiez)지역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지역에는 로마시대(1~4세기)의 도시 쎄메넬룸(Cemenelum)의 유적지가 많이 산재해 있다.



1930년 10월 20일 타임紙의 표지인물로 실린 마티스.

마티스는 1929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고 1930년에도 

뉴욕(New York, NY), 발티모어(Baltimore, MD), 메리온(Merion, PA)을 방문했었다.

그는 이때 이미 그의 작품에 빠진 미국인 애호가들을 갖고 있었다.



마티스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우연히.

1889년 20세의 나이에 맹장염을 앓고 요양중에 있던 마티스에게 어머니가 

"심심풀이 땅콩" 대신에 화구를 사다주었는데 그 다음 부터의 얘기는 우리가 다 아는대로이다.

"색채의 마술사"는 이렇게 태어나게 되었다.

그는 훗날 이렇게 썼다. "화구와 물감을 들은 순간 나는 그림그리기가 나의 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From the moment I held the box of colors in my hands, I knew this was my life...."

그리고 후에 만나게 되는 부인 아멜리(Amelie Parayre)에게도 "마드모아젤, 나는 당신을 정말로 사랑하오,

하지만 나는 항상 그림그리기를 더 사랑할꺼요...."(I love you dearly, mademoiselle; 

but I shall always love painting more.)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아멜리와는 결혼생활 31년에 이혼으로 끝이난다. 

러시아의 사이베리아(Siberia, Russia) 출신의 리디아 딜렉또르스까야(Lydia Delectorskaya)라는

여자때문에.

아멜리가 마티스에게 이렇게 요구했다고 한다. "저에요? 그녀에요?"(It's me or her?)

그리고 그녀는 떨려났다.("I was sacked.") 




마티스와 리디아.

화실 조수(studio assistant)-> 병든 아멜리의 말동무(companion)->

화실/마티스 메니져(manager of Matisse's studio and life)



리디아가 없이는 가위로 색종이를 오려서 만드는 말년의 작품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썰(說)이다.





리디아의 초상, 1946




자화상, 1935, 개인소장품





앙리 마티스(1869~1954)는 후반의 생애 37년(1917~1954)을 니스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했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였기 때문에 그의 미술관이 이곳에 있는것은 지극히 당연하리라.

당근 그의 무덤도 여기에 있다. 부인도 함께 묻혀있다.

마티스하면 누구나 얘기하는 것이 색채(color)이다.

내가 읽은 책에는 그를 "색채의 음유시인"(bard of colour)이라고 표현했다.

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하고 생략할 것은 과감히 생략해 가며 입체감을 평면에 나타낸다.



부인을 그린 아래의 그림은 그에게 야수파(포비즘, fauvism)란 별명을 붙게 만들었다.

마티스가 부인 아멜리를 그린 것이고 1905년 가을 살롱(Salon d'Automne, Autumn Salon)에

출품한 작품이었다. 비평가들이나 일반관객들로 부터 혹독한 비평을 받았다.

아멜리는 하루에 2번씩 3달 동안을 이 그림을 위해서 앉아 있었는데

완성된 작품을 본 순간 너무 실망하여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티스는 우는 부인에게

"당신을 울게 한 그림이지만 그림 속의 당신은 정말 예쁘게 보이는구려."(the one that made you cry,

but in which you look so pretty!)라고 했다는.



모자를 쓴 여인(Woman witha Hat, 유화, 1905)

현재 샌 프랜씨스코 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이다.












17세기에 지어진 빌라인데 여러 손을 거쳐 부동산 회사가 소유하고있던 것을

1950년 니스(Nice, France) 시정부가 매입했고 1963년 처음으로 미술관으로 사용되며

근처의 로마시대 유적지 박물관과 공용되었다가 1993년에 신관과 함께 재개장 되었다.


68점의 유화와 과시(gouache)수채화, 236점의 소묘, 218점의 판화, 95점의 사진,

57점의 조각, 마티스가 삽화를 그려넣은 14권의 서적등이 소장되어 있다.

 







로마시대(1~4세기)의 도시 쎄메네룸(Cemenelum)의 유적지.

미술관 바로 옆에 붙어있다.(사실은 유적지 옆에 빌라를 지는것이다)






창문의 셔터 가장자리는 건축물의 일부가 아니고

트롱프 뢰유(trompe-l'œil, 실물처럼 착각하도록 만든 벽그림이다.


















의 유화 대작 "춤"(Dance, 1909-10) 만큼이나 잘 알려져 있는 "청색 나체 II"(Blue Nude II, 1952)

과쉬(gouache)로 색칠한 종이를 가위로 오려서 붙힌 작품이다.
































마침 몇 달전 이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오신 블로거께서 마티스 미술관 방문기를

잘 쓰셨기 때문에 요기를 누르시고 보시기를 권해드린다.

끈이 짧은 본인 보다 미술을 전공으로 하신 분의 글이 훨씬 읽을거리가 있다. 

장선생님께서 쓰시는 "문화잡화상"이라는 방이다.

직접 발품팔아 가신 분들이 이곳의 여행기를 올리시는 중이라 신경이 쓰인다.

김빠지게 할것 같아서.  마님의 여행을 울거먹는 사람이 기다려야쥐.



마티스, 삐까소, 니스, 마티스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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