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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청산에 대한 나의 생각  | 불로그 뉴스
09/23/2016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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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이러한 분들은 물론 일제 담배 마일드 세븐 담배를 핀 사람들 

그리고 우익 단체에 금전적 후원을 해준 사람도 모두 친일파이다 라고 한다.

진짜 이완용과 적당히 묶어가면서 싸잡아

모두를 친일파로 매도하고 있다는 말이다



친일파 청산에 대한 나의 생각

1948 년 5 월 10 일 소위 제헌국회 선거가 있었다. 그래서 7 월 17 일 제헌국회에서 헌법을 제정하고 그리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뽑고, 8.15 일 정부 수립이 반포되었다. 그런데 이 제헌국회 선거 소위 5.10 선거에서 가장 관심을 끈 곳이 서울 성북구이었다. 이곳에서 군정시절 경무국장을 지낸 조병옥 과 상해임시정부에서 활약했던 조소앙 두 후보가 대결했기 때문이었다. 군정의 경무국장이란 지금으로 보면 내무부장관, 경찰청장, 국정원장 3 곳을 합한 자리에 수장이라고 할 만큼 막강한 자리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 어른들은 조병옥씨가 당연히 당선 된다고 생각 했었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로 조소앙씨 의 당선 이었다. 이 사실은 5.10 선거에서 당선되려면 독립투사가 우선이었고, 사기범이던, 강도이던 감옥에 한번 들어가야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농담이 나 돌 정도로 독립투사 중에서도 특히 감옥에 갔었던 분들이 가장 지지를 받았고 또 대거 당선되었다. 독립 투쟁의 선봉에 선 분들을 뽑는 선거이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8.15 정부 수립 반포도 하기 전 8 월 5 일 국회 총회에서 우선적으로 발의 된 것이 소위 반민법(반민족행위처벌법)이었고. 9 월 22 일 법이 시행되었다. 그리고 이 반민특위에서 선별된 처벌 대상자가 599 명이었다. 나는 같은 시대에서 또 같은 공간에서 같이 숨을 쉬면서 보고, 만나고, 느끼고, 소문도 듣고 했던 제헌국회 의원들이 선별한 이들 599 명이 꽤나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로부터 60 년이 넘게 지나서 김대중 정권 때인(1991년)에 반민족연구소로 시작되고 노무현 정권(1995년) 때에 민족문제연구소로 개칭한 곳에서 이명박 정권이 시작되고, 광우병 파동으로 나라가 한창 혼란할 때인 2009년에 4,776 명에 달하는 친일파 명단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친일인사가 계속 들어나 거의 6,000 명이 넘는다.

내가 납득이 안 되는 것이 제헌국회에서 동시대를 살던 애국지사들이 선별한 599명에서 어느 정도 친일파 인물이 누락되어 보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기껏해야 100 명 200 명 정도라면 납득이 되겠지만 어찌 5,000 명이 넘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 엄청난 늘어난 숫자 때문에 나는 종북 좌파들이 대한민국 정부에 정통성을 부정하려고 ‘친일파 청산을 못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그래서 많은 인사들을 친일파로 매도하고 있다는 보수 진영의 항변에 귀를 기우리게 된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리고 특히 민족연구소에서 새롭게 추가된 친일파 명단을 보면 예술, 문학인들이 집중포화를 당했다. 물론 을사늑약부터 한일합방 당시에 나라를 팔아먹은 인물들을 위시하여 매국행위와 동포들을 못살게 악질적인 행동으로 지탄을 받을만한 사람도 있겠지만 친일파라고 매도된 문학, 예술, 학문 분양에 분들이 전쟁 말기에 발악적인 총독부로부터 강제로 동원된 분들이었다. 그것도 선전효과가 있는 꽤 알려진 인불들이 더 당했다. 미술계에서는 김경승, 김기창 같은 분들에게 포스타나 선전 조각상을 만들라고 했고, 김동진, 홍난파 같은 음악인에게는 군가, 행진곡을 작곡토록 했고, 이광수, 최남선 같은 분들은 글을 써라 또 학도병으로 나가라, 연설을 해라 했고, 김활란, 백락준 같은 교육계 분들에게 시국 강연과 징집에 응하라는 연설을 시켰다.

나는 반국가 친일분자라며 명단을 밝혀 어떤 의미에서 인격살인을 하고 있는 분들이 이 명단 발표에 앞서 최소한의 한 마디를 이야기 할 마음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과연 을사보호조약, 한일합방 등에서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들처럼 그 친일명단에 오른 분들이 호의호식 정도는 못되더라도 단 한 푼이라도 일제로부터 돈을 받거나 또는 어떤 반대급부를 받았는가 하는 것 말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민족연구소에서 발표한 문인들을 눈 겨워 보았다. 살펴보니 모두 40 명이었다. 대동아 전쟁 말기가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상록수의 심훈, 병석에 누어있다 해방 전에 세상을 떠난 한용운, 만주에서 살았던 윤백남, 한설야 등을 제외 한다면 현대 문학 초창기의 필명을 날리던 분들 거의 다가 망라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현대문학사를 부정하려는 것인가 하는 마음까지 생긴다.

나는 가장 나에게 관심의 대상인 문인들 중에서 춘원 이광수를 예를 들어 우리 모두 친일인사들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제는 그만 껴 안자라고 하면서 글을 끝낸다.

첫째 그분은 폐병을 앓고 있어 양주 시골에서 누어있었다. 어느 정도 기운이 회복되면 나가서 연설을 시켰다. 기진해서 돌아와 누어 있다가 좀 쉬었다 하면 다시 끌고 가고...
그분의 수입이란 것이 책 원고료, 인지세이었다. 그런데 그 연설을 하러 다니는 중에서도 그의 모든 책들은 판매금지 이었다. 그래서 단 한 푼의 수입도 없었다. 다행이 부인이 산부인과 의사이었지만....
반민특위에서 고소를 당해서 옥살이를 하면서 재판을 받았다. 당시 이 재판이 아주 뜨거운 감자이었다. 그래서 재판이 1 년 넘게 진행되다가 7 명의 판사들의 합의체로서 선고를 했다. 4 대 3 으로 무죄 판결이었다. 부끄러움을 알기에 춘원이 가만히 있었지만 일사부조리 원칙이라면 지금 친일파라고 지탄하는 것은 명예회손 죄일 것이다.

일제 말년에 영장 없이 집행되는 아주 혹독한 소위 ‘예비검속’이란 것이 있었다. 그리고 조선어학회 가입했던 인사들 전부가 예비검속으로 옥살이를 하며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소문에는 이것을 막으려고 춘원이 십자가를 졌다라고 들 한다. 진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춘원이 옥살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 왔을 때에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다 춘원의 집을 찾아 위로했다는 것 만 큼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거듭 이야기 하지만 이제 해방이 된지 70 년이 넘었다. 이제 화합해서 앞으로 나가야한다. 반민족 친일파를 599명에서 6,000명으로 늘리면서 무엇을 얻고 져 하는지 나는 이해도 안 되고, 납득도 안 된다. 민족정기? 이러한 반민족친일파 명단 늘리는 것은 민족정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어린 후손에게 자기모멸과 자괴감만 주는 행위이다. 대한민국을 정통 국가로 생각한다면 이제 모두들 그만 해야겠다.


반민법, 조병옥, 조소앙, 이광수, 5.10 선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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