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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스페인 6 화 휘게라스 와 발세로나 에서  | 불로그 뉴스
08/23/201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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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가 꿈을 안고 지었던 타운이다 그러나 실패작이다.입주가가 없어서..지금은 구웰공원이 되었다



북 스페인 6 화 휘게라스(Figueras) 와 발세로나(Barcelona)에서 발세로나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휘게라스 방문은 오직 달리(Dali) 박물관 한곳을 방문하기 위함이었다. 박물관 주차장으로 버스가 들어서니 이른 아침인대도 벌서 많은 버스들이 정차해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관찰을 하니 프랑스에서 온 버스가 반을 넘는 듯 했다. 역시를 예술을 사랑하는 프랑스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박물관 앞에 섰다. 

역시 달리(Dali) 답게 건물 외양이 요상하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그는 1904 년 이곳 휘가라스 에서 태어났다. 환상적 사실주의 또는 초현실주의라고 불리는 풍의 화가이며 판화가 이기도 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가극, 발레리나 출연자들을 위한 의상을 만들기도 하고, 디즈니와 함께 드라마도 제작 하는 등 다재다능한 천재이다. 스페인의 3 명의 천재 화가하면 피카소, 후안 미로와 그가 꼽힌다. 

그런가 하면 그와 그의 부인 관계는 설명이 안 된다. 관음증 환자인지, 그냥 같이 산 것인지 모르겠다. 천재에다 이상한 사생활 그래서 그런지 그의 박물관에 들어서면 그 작품세계가 어지럽다. 내가 미술로서 이해하기가 쉬운 그림이 있는가 하면, 눈의 착시를 유발하는 그림, 3 차원으로 보이는 그림, 설치 미술 같은 맛이 나는 방, 그런가 하면 세공 금속 공예 등 한참 보았는데 또 보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머리가 잘 저리가 안 되었다. 내가 천재를 알아보지 못했는지....

피곤한 몸으로 발세로나로 돌아 왔다. 바닷가에서 해물 빠에야 에다가 홍합이 저녁 메뉴이었다. 물론 와인도 있었고. 발세로나에서 나는 몇 년 전 이곳에 와서 3 일 동안을 돌아 다녔었다. 그런데 워낙 볼 것이 많아 모든 것을 주마간산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성가족 성당(Sagrada Famillia Cathedral) 한만이라도 좀 집중적으로 보기를 원했는데 다행히 스케줄을 그리 잡아 주어 다행이었다. 

 성가족 성당 하면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를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발세로나 하면 곧 가우디이고 그리고 그가 바로 발세로나이다. 그는 1852 년 카탈루냐 레우스에서 태어났다. 레우스는 본래 로마 시대에 항구로서 번창 했다고 하며 어린 시절 허물어진 유적지에서 자라면서 어린 시절부터 어떤 영감을 얻은 듯하다. 그러나 그는 일생을 1926 년 죽을 때까지 발세로나에서 활동 하였으며 발세로나를 오늘에 발세로나로 탈바꿈 시킨 건축가이다. 그리고 그 중에 그의 필생의 작품이 바로 성가족 성당이다. 

 “곡선은 신의 선이며 직선은 인간의 선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것처럼 성가족 성당은 이곳 발세로나 주변의 자연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건물이 모두 곡선이다. 또 이 건물의 제일 높은 탑이 예수 크리스토 탑인데 높이가 172.5 미터이다. 가장 높이는 짓되 발세로나의 몬주익 산 높이보다 낮아야 한다는 그의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의 발로이다. 

성가족 성당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사람이 누어있는 형상이다, 그리고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동쪽 왼팔은 ‘탄생의 문’이고, 서쪽 오른팔은 ‘수난의 문’ 남쪽 발은 ‘영광의 문’이다. 심장부분에 높은 예수의 탑이 솟아 있고, 머리 부분에 제단이 있다. 사실 가우디가 끝낸 작품은 왼 팔인 탄생의 문뿐이다. 그리고 오른 팔 수난의 문은 그 후대에 이루어 진 것이다 그래서 작품의 맛이 아주 다르다. 이 건물이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는 사암으로 50 년을 숙성시킨 재료로 쌓아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가우디 자신도 자기 생애에 못 끈 날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나의 감상은 탄생의 문의 외벽의 조각을 보면서 시작 되었는데 감탄의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오히려 내부의 조각, 장식, 창문 유리 등은 이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특히 조명으로 이용한 햇살에 비쳐지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나는 그만 입을 닫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비극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 어떤 초라한(?) 복색의 노인이 길을 걷다가 차에 치여 길가에 버려 졌다. 길 가던 행인이 택시를 세우고 응급실로 가자고 했으나 2 대의 택시가 승차 거부를 했다. 결국 그 행인이 고생을 해 가며 병원으로 옮겼으나 누구 하나 눈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구질구질한 모습의 노인, 그 노인의 친구이자 전문 변호사의 아들인 의사가 지나가다가 마침 그를 알아보고 응급 조취를 하였으나 결국 세상을 등졌다. 그 노인이 바로 성당 건축에 몰두하며 작업복 차림으로 출근하던 가우디이었다. 지금 그는 성당 안에 안치되어 있고, 교황이 복자에서 성인으로 추대하려고 하다고 했으나 그의 최후는 그런 것이었다. 

 저녁은 해변에서 바다가제를 넣고 빠에아를 죽처럼 좀 묽게 요리한 것이었다. 합격이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중심 거리인 람브란스 길가 카페에 앉아 모처럼 포도주가 아니라 맥주를 한잔 하면서 북 스페인의 여행을 정리 해 보았다. 어떠했냐고? 이렇게 설명해야 겠다. 스페인은 한번도 안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간 사람은 없다. 왜냐고? 한번 가본 사람은 또 가보니까...나도 이번 여행까지 3 번 왔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와 볼것이다. 그때까지 스페인이여 안녕......

                              (휘게라스 달리 박물관에서) 

박물관 전경 건물 디자인 자체도 특이하다


입구 조각도 잘리 답다


보는각도마다 달리 보인다 그러한 기법도 특이하다


작품 설명을 할 자신이 없다 다만 나에게 강열한 메세지를 준것 몇 개를 소개한다 








금 보석 세공도 쀠어 났고...


이것정도가 아니라 


이러한 설치 미술도 많이 있었다. 


그래도 이 괴짜인지 천재인지하고 사진을 찍겠단다


                   (발세로나 성가족 성당에서) 


 탐방은 탄생의 문으로 시작 했다 


성서를 조각으로 설명하는데 밑 부분에 로마 병사가 아기들을 죽이는 장면도 보인다 


모두 예수 12 제자를 의미하는 12 개의 탑 중 4 개가 탄생의 문에 있다,


성당 내부에 이 신비로움을 주는 빛을 디자인 하다니.....


성단쪽으로 성가족의 중심인 예수 조각이 있다 


그리고 4 개의 복음서의 저자 중 마가의 사자,누가의 황소가 보인다 (참고로...요한은 독수리,마태는 천사)


수난의 문으로 나왔다. 이 문은 가우디의 작품이 아니다 


수난을 조각화 한 그 조각에서 현대적인 맛이 난다


앞으로 지어질 발에 해당하는 영광의 문은 누가 어떤 작품을 만들지 궁금하다


                         (구웰 공원에서)

가우디가 그의 후원자의 도움으로 꿈의 집 단지를 지었으나 입주자가 없어 실패했다. 지금은 공원이 됐다



                                     공원 정면 모습 


지금이야 아름다운 전경이겠으나 이 높은곳이 팔릴수가 없었다. 너무 앞서 갔나? 

 

공원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구웰공원을 둘러보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또 하나의 이정표 물 정수처리 장치이다 모든것을 작품화 하려고 애를 쓴듯 하다


그래서 거리가 온통 가우디 작품이고....



람브란스 거리에서 맥주를 한잔 하면서 여행을 정리 하려는데....


어 그런데 왠 성 박물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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