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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기행 1 화 세비아에서  | 불로그 뉴스
05/28/201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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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안에 있는 컬럼버스 관  그의 유해 뼈 일부가 들어 있다. 



스페인 1 화 세비아 에서 (Sevilla) 

 나는 오페라 중에서 비제의 카르맨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당시의 오페라가 대부분 비극적으로 끝나는 것이 정석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오페라 카르맨 역시 스토리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카르맨은 처음부터 끝까지 분위기가 도저히 비극인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집시 카르맨의 춤과 노래는 압권이다. 바로 이 오페라는 세비아가 무대이다. 돈이 넘쳐 나는 번창하는 도시, 독점적인 담배 제조, 몰려든 집시들, 투우, 산적들....스페인이 식민지에서 걷어 들이는 모든 재화는 이 과달카비르(Guadalquivir) 강가에 있는 세비아 이었다. 콜럼버스가 미 대륙으로  산타 마리아 호를 타고 바로 이곳에서 떠난 이후 그 후 미 대륙 식민지에서 가져오는 모든 재화는 역시 이곳에서 하역을 하였다. 당시의 번영이 짐작이 간다. 

 첫 번째로 방문한곳이 아라곤 국가의 항구 (Puerta de Aragon)라고 이름이 부쳐진 커다란 건물이었다. 스페인에서 세비아의 영광이 마드리드로 옮겨지려는 기분이 들자 다시 번영을 찾고자 1929 년 만국박람회를 열었다. (사실은 스페인어 권의 지방 국가, 자치지방, 세계의 여러 도시들의 모임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세계가 대 공항 때이어서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각 지역마다 그 지역의 특성을 알리는 노천 전시 장치(booth)를 해 놓았는데 예를 들자면 바르셀로나 는 아메리칸 인디언이 곡물을 바치는 그림으로 세계의 무역을 했다고 알리는 벽화가 있는가 하면 카디스는 첫 의회를 진행하는 그림으로 최초로 의회를 시작한 곳임을 알리는 그러한 개념의 전시이었다. 1929년 일차 박람회로 재미를 못 봐서 1992 년에 미 대륙 각 나라 칠레,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보고 독립된 파빌리온(Pavilion)을 짓게 하면서 콜럼버스 미 대륙 발견 500 주년 행사로 다시 한 번 시도 했지만 그것 역시 결과는 그저 그랬다. 

 이 박람회장에서 나와서 콜럼버스 동상과 메이플라워 배가 조각되어 있는 콜럼버스 공원을 거쳐서 대성당( Holy Catherdral of Seville)으로 향했다. 이 성당은 처음 1184 년 이스람 모스크와 미나렛(Minaret)으로 시작 되었으나 그 후 성당으로 고치고 확장하였다. 길이 X 폭X 높이가 128X 83 X 37 미터로 면적이 총 23,500 제곱미터이고 고딕 스타일로 된 성당 중에서 세계에서 제일 크다. 300 키로의 금이 들어갔고, 우연이라고 할까 100 년 공사로 1502년 완공 되었는데 그 해가 콜럼버스가 사망한 해이었고, 그의 유해의 일부가 지구상에서 돌고 돌아서 지금 이 성당 안에 안치되어 있다. 하지만 이 콜럼버스 유해의 진위는 아직도 논란거리이다. 역사에서 밝히는 바로는 그는 발라돌리드에서 사망한 뒤 세비아로, 세비아에서 그의 유언에 따라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보네 졌다. 그 후 다시 도미니카에서 잠시 쿠바로 왔다 갔다 하다가 다시 도미니카로 왔다. 

그리고 이 와중에 도미니카의 주교가 뼈의 일부를 스페인 세비아로 보네 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래에 그의 유해가 진짜인가 확인 하고자 DNA 검사한 결과 그것이 콜럼버스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 복잡한 그의 유해가 잠든 관과 관을 떠받치는 조각상을 보았다. 엄청난 규모의 대성당이라 볼 것이 너무 많아 꽤나 시간을 보낸 후 바리오 산타 크르즈( Barrio Santa cruz) 라고 불리는 유태인 지역으로 갔다. 가는 길에 흥미로운 곳을 지나갔다. 그냥 보기에 직 사각형의 작은 공원으로 주변에 앉을 벤치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으로 치면 마당극장 같은 공연장이었다.

 중세기 담배제조는 돈을 쓸어 모으는 정부의 독점 장사이었다. 엄청난 부 ,그러한 생각을 하다가 머릿속에서 한 장면이 지나갔다. 돈이 흥청망청한 이곳에 뛰어든 집시들, 담배제조 공장에서 일하던 집시들 떼거리 중에 요염한 카르맨이 군인 호세를 꼬시려고 요염한 춤과 함께 그 유명한 곡 하바네라를 부르는 모습이 연상되었다는 말이다. 아마도 이 마당 극장 같은 이곳이 무대이었으리라 상상된다. 

 드디어 좁은 길로 된 유태인 지역에 도착 했다. 첫 눈에 커다란 건물이 보인다. 생의 마감을 평화스럽게 해주려고 운영했다는 호스피스 건물이다. 유태인들이 이곳 세비아에서 그 정도의 생의 여유가 있었다는 말이다. 사실 이곳 스페인에서는 독일, 프랑스, 이태리, 러시아 같은 곳에서는 학대 내지는 멸시를 받았던 유태인과는 달리 잘 인정받고 살았다. 그들 유태인들은 종교적 이유로 기독교인이나 이스람 교인들이 하지 않는 소위 돈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장사를 하였다. 그런데 지방정권은 이를 묵인하였다. 그들로부터 세금을 걷어드릴 세원 포착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었다. 또 무어인들을 몰아 낼 때에 군자금을 꾸어서 전쟁을 수행 할 수 있기도 했다. 그리고 스페인이 전 세계 식민지에서 여러 향료, 도자기, 비단 등 보화와 상품들을 들여 올 때에는 환전상으로 재미를 보았지만 서민들 주머니를 쥐어짠 것이 아니라 그리 미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세비아 방문 첫날 너무 무리하게 강행군을 해서 좀 피곤한 듯 했다. 그래서 다음날을 좀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겠다고 하면서 알카사 궁(Real Alcaza)를 찾았다. 무어인들이 세운 이스람 사원으로 시작되었으나 그 후 안달루샤의 왕궁으로 그리고 스페인 통합의 카스티안(Castillian) 왕국의 궁으로 이어 왔다. 통행이 금지된 왕궁 한쪽 구역에 아직도 왕손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유럽에서 잘 알려진 왕궁이다. 나는 잘 정돈된 된 정원에서 모처럼 아주 게을러지면서 휴식을 했다. 

 이어서 과달카비르 강 유람선을 탔다. 유럽의 새로운 역사는 이 강에서 미 대륙으로 그리고 아세아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왕래하는 배도 별로 없었고, 내가 탄 배 안에는 별로 사람도 없었고 그저 젊은 연인 몇이서 은밀히 사랑을 즐기는 듯 했고, 강에서 바라다 본 시가 또한 조용했다. 세비아는 확실히 과거를 먹고 사는 도시가 된 듯하다. 세비아여 안녕

                                     (사진 설명)

1929 년 박람회를 위하여 지은 박람회장이다


발세로나 전시 그림에는 인디안들이 선물을 받히는 그림이다. 전 세계 교역의 중심임을 자랑하고 있다.


카스티온 이사벨라 여왕과 아라곤 왕과 결혼으로 스페인이 통일되었다는 설명이다 


최초로 입법 군주국으로 틀을 잡은 캬디스 왕국의 회의 장면 


1952 년 콜럼버스 500 주년 기념 박람회를 위하여 지은 알젠틴 파빌리온 


칠레 파빌리온 


콜럼버스 기념 공원 탑 , 그가 미 대륙으로 갔을때의  배인 산타 마리아 호의  모형 


바리오 산타 크르즈 양노원 겸 호스피스 


야외 극장 ..한국의 마당극장이라고 할까?


대성당 고틱 스타일 성당으로는 세계에서 제일 크다 


정말로 아름다운 세공 


화려한 내부 


알카사 왕궁 입구 


알카사 왕궁 박물관 


전 세계 그리고 연대 별로 모든 엄청난 수자의 부채가 잘 정리 정돈 되어 있었다.


알카사 왕궁 정원에 있는 호수 


콜럼버스부터 전 세계를 항해하던 많은 배들이 드나들던 과달카비르 강 


강 포대의 지붕이 금으로 되어 있다. 당시의 부(富)를 느끼게 한다


인디안 박물관 ..시간이 안되어 못 들어 갔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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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카르맨, 콜럼버스 관, 과달카비르 강,알카사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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