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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 리버크루스 1 화 레겐부르크 2019  | 블로그 뉴스
12/15/201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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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 리버 크루즈 (Danube River Cruise) 2019 초겨울

 


뮨헨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태어난 촌녀이다. 4 대가 그 시골에서 살고 있는데 자기 머리 색은 켈트족, 눈동자는 로마의 피가 남아있으며 그가 바로 켈트, 로마 그리고 게르만 피가 뒤 엉킨 바바리아 인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이 지역을 바이에른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바바리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1 화 레겐부르크 (Regenburg)에서

 

여행사에서 특별 세일 통보를 받았다. 통상 금액의 반값이 조금 안되었다. 이 추운 겨울에 여행이라니 하다가 값이 너무 싸서 마음이 흔들렸고 그래서 초겨울에 상품으로 이름인즉 크리스마스 특별 쇼핑 리버 쿠르즈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첫 스타트가 좋지 않았다. 2 년 비가 적게 와서 수심이 낮아 크루즈 배가 레겐부르크까지 못 들어와 빌쇼펜(Vilshofen) 이라는 곳에 배를 정박했으니 그리로 오라는 통보이었다. 하는 수 없어 뮨헨 비행장에서 장장 1 시 간 반이나 걸려서 그곳을 찾아가서 배에 도착 승선 할 수 있었다.

 

손님은 모두 109 명 승무원이 모두 70 명이었다 이겆 완전히 귀족 여행이었다



그러나 배에 오르자 기분이 좋아졌다. 승선한 손님이 모두 109 명에 승무원이 모두 70 명이라니 이건 귀족 여행이 아닌가? 그리고 방도 그런대로 넓었다. 환영만찬에서 승선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다 나이가 들었으나 모두 느긋하고 여유로운 표정들이라 꽤나 마음이 들었다. 오케이! 이제 크루즈를 즐겨보자 하면서 기분 좋을 만큼 포도주를 마신 후 첫 날밤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크루즈가 아니라 버스를 타고 거의 한 시간 반을 달려 드디어 레겐부르크에 도착 했다.

로마인 이야기, 십자군 이야기 등으로 잘 알려진 시오노 나나미의 글에서 쾰론(Colgne) 에 대해서 쓴 것이 기억난다. 로마는 독일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까지 영토를 넓혀갔다. 그러나 라인 강을 넘어 북쪽으로는 건너가지 못했다. 숲속에서 수염이 수북한 놈들이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 하는 것이 꼭 바 바하는 것 같아 그들을 바바리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래서 로마는 라인 강 바로 남쪽에 식민지를 두었으며 그것이 최북단이었다. 그곳이 오는 날의 콜로니의 로마어의 어원인 퀼론 이다.

 

그런데 이곳 레겐부르크에 오니 자기네가 바바리안의 원조란다. 독일의 남쪽 자치주 바이에른을 그들은 바바리아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다뉴브 강(이곳 사람들은 도나우 강이라 부른다) 의 북서부 유럽 다시 말하여 영국이나 스칸디나비아에서부터 흑해 즉 이스탄불(당시는 콘스탄티노플) 까지 의 연결의 교통수단으로 이 다뉴브 강이 중요 교통수단이었고 이곳이 교통의 중요 연결지점이었다. 그래서 이곳 북쪽에는 북유럽의 독일 원주민이 살았고, 남쪽엔 로마인들이 살았고 그리고 북유럽의 켈트족이 내려와서 그들이 섞여 살면서 탄생한 종족이 바바리안 이고 그래서 자기네가 원조란다. 가이드 아가씨가 자기는 이곳에서 최소한 4 대 째 살고 있는데 머리색은 스칸디나비아이고 눈동자 색은 로마인이고 어쩌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니 그런가 하며 얼굴만 열심히 쳐다보았다.

 

버스에서 내려서 도시를 바라보니 또 하나의 독일 옛 도시의 모습이었다. 실지로 레겐부르크의 역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당시의 유럽의 교통의 중심지로 그 위상이 높아서 소위 신성로마시대임에도 불구하고 1245 년 독립도시로 인정받았으며 30 면 뒤인 1275 년 성 피터 성당을 짓기 시작 했을 만큼 융성한 도시 국가이었다.



다뉴브 강은 교통의 중심이었고 레겐부르크도 그 강의 요충이었다

 

다뉴브 강은 무슨 숙명인지 2 차 대전 때에 다뉴브 강을 경계로 남쪽은 미군, 북쪽은 러시아 군이 진군 머물렀고, 종전 후 미국과 러시아가 대치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군 철수하고 이곳이 동독이라 러시아 군이 점령하고 있었는데 과장해서 말하자면 잡 기둥만 빼고 다 약탈해갔다 한다. 그래서 주민들은 지금도 러시아에 대해서 감정이 좋지 않다.

 

다뉴브 강 남쪽 지역이다  2 차 대전시 미군이 점령했었다


그리고 이 다뉴브강이 나타나고


로마 시대에 지은 이 다리를 건너면 소련군이 점령했던 지역이다

동독지역이었으므로  독일 통합전에는 계속 소련 영향안에 있었다.

 

15세기 독립된 자치 도시가 되고 융성할 때에 지은 두오모 


2 차 대전 중 폭격을 안 받아서 5 세기가 넘은 그라스코가 파손되지않고 남아있었다


비록 12-13 세기에는 융성했을지 몰라도 오늘날의 눈으로 보자니 시내 구경은 한 시간으로 출분할 정도로 이제는 작은 소도시이었다. 그래도 무엇을 보여주려고 시에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건물에 괴테에 이름과 작은 그의 조각이 붙어 있어 물어보니 괴테가 하루 밤 자고 간곳이라 한다. 미소가 지어진다. 또 이곳이 비교적 2 차 대전 때에 폭격이 심하지 않아 성 피터 성당의 색유리 창(stained glass) 잘 보관되어 500년이 넘은 진짜라는데 내 눈으로는 역사적 가치는 몰라도 예술성으로는 그저 그래 보였다.

 

이 지역 사람들은 무척 소세지를 즐긴다. 이 다리 공사때부터 공사장 안부들이 즐겨 찾았던 소세지 집이 아직도 있다  


괴테 표지가 있어 무언가 했더니 하루 밤 자고 간곳이라 해서 실소를 했다. 


이곳에는 집을 지을 돌이 귀했다고 한다. 다윗이 돌이 귀해서 골리앗을 죽일수 없었다는 회화조의 그림이다


부자들이 부를 자랑하는것이 창 모양을 여러가지로 하는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자들은 각각 자기의 성당을 지었다.  이런 현상을 베네치아에서 보았는데...이곳도..


크루즈 배로 돌아오기 전에 크리스마스 시장에 갔었다. 오랜 전통으로 이어온 크리스마스 마켙은 볼만 했다. 수백 개의 가게들이 늘어서서 온갖 크리스마스 장식물, 조각 선물 상품들이 즐비하게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 구경, 그리고 먹거리 가게들에서 이것저것 맛보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꼭 핫도그 식으로 이곳 소세이지 를 빵에 넣고 소스와 무채를 넣은 것이 맛이 있었다. 소세이지 종류가 하고 많아 반씩 나누어 먹어도 다 맛을 볼 수 없어 몇 개 먹어보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크리스마스 마켙 전경 


각 부스마다 각종 기념품들이 꽤나 많았다. 


다시 크루즈 배에 와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손님 109 명에 70 명 승무원이다, 식당에 웨이터만 해도 열댓 명이 되었다. 그리고 어제 하루 저녁이었는데 벌서 내가 적포도주 멀러(Red wine merlot) 를 좋아 하는지를 어떻게 알았는지 계속 잔을 채워주어서 좀 과하게 마셨나 하면서 푹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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