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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 방문] 젊은 시절의 추억이 살아 있는 계룡산 동학사를 가다. (국립공원 계룡산/공주)  | 블로그 뉴스
03/28/2017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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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만에 찾아 간 동학사 

 

동학의 최초창건은 남매탑 전설에 전해지는 상원조사로 부터 시작된다.
신라시대에 상원조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다가 입적한 후, 724년(신라 33대 성덕왕 23)

그곳에 그의 제자 회의화상이 쌍탑을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문수보살이 강림한

도량이라 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라 하였다.남매탑과 청량사를 답사하고 내려오니

동학사이다. 내려오는 길도 쉽지는 않았다. 그옛날 직장 시절에 서울서

당일치기로 갑사 동학사 남매탑을 답사한 추억이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 920년 경진 (고려태조 3)에 왕명을 받아 연기 도선국사가 중창하였다.
국사가 원당을 건립하고 국운융창을 기원했다해서 태조의 원당이라 불리웠는데,

이 원당은 조선초에 소각 되었고, 태조 19년 병신 (936년)에 신라가 망하자

신라의 유신으로서 고려 태조 때 대승관 벼슬을 한 유차달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동계사(東鷄士)를 짓고절을 확장한 뒤 절 이름도 지금의 동학사로 바뀌었다.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라고 했으며, 고려의충신이자

동방이학의 조종인정몽주를 이 절에 제향했으므로 동학사라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1394년(조선 태조 3)에 고려의 유신 길재가 동학사의승려 운선스님과

함께 단을 쌓아서 고려 태조를 비롯한 충정왕·공민왕의 초혼제와 충신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다.1457년(세조 3)에 김시습이 조상치·이축·조려등과 더불어 삼은단

옆에 단을쌓아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이어서 단종의 제단을 증설했다.
다음해 1458년 세조가 동학사에 와서 이곳을 들러 보고는 감동해서 단종을 비롯하여

정순왕후·안평대군·금성대군·김종서·황보인·정분등과, 사육신, 그리고 세조의 왕위 찬탈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280여명의 이름을 비단에 써서 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한 뒤 초혼각을

짓게 하고 동으로 만든 세조의 인신과 토지 등을 하사했으며, '동학사'라고 사액한 다음

절의 스님과 유생이 함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그 뒤 1728년 무신(영조 4)에

신천영이 형화하여 절과 초혼각이 전부 불타 없어졌고, 또한 1785년(정조 9)에는

정후겸이 토지를 팔아버려 제사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1814년 갑술(순조 14) 금봉 월인 스님이 예조에 상소하여 12차례의 소송 끝에 잃었던

토지를 되찾았으며, 옛 원당터에 실상암을 짓고 절을 중건하여 절 이름을 개칭하되

'진인출어동방(眞人出於東方)'이라 하여「東」자를 따고 '사판국청학귀소형

(寺版局靑鶴歸巢形)'이라 하여 「鶴」자를 따서 동학사라 명명했다는

 설이 있으며, 또한 그 밖의 전각과 혼록봉장각을 세우는 등 절을 대대적으로 중건하였다.

1827년 홍희익이 세조의 동인을 봉안하는 전각을 새로 지었으며, 충청좌도어사 유석이

300냥을 내고 정하영이 제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토지를 시주해 제사를 베풀었다.


45년전 추억이 깃든 동학사에서

고국의 건강한 하루를

보냈다.




계룡산 동학사, 공주 계룡산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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