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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새 일을 행하리라 ( 이사야 43:14-21)
01/19/2019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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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0일


                                           보라 새 일을 행하리라


   주전 721년 북 이스라엘이 앗수루에 사로잡혀 갔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지금 부터 2700 년 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1. 바벨론 멸망을 예언하신 하나님(14절)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장래를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4절 "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갈대아는 바벨론인데,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게 될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바벨론은 배를 가지고 세계 부를 거머 쥐었고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햇습니다. 그런 최 강대국이 붕괴되어 줄행랑을 친다는 것은 상상 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역대하 36:22,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무너뜨릴 사람으로 바사 곧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시니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5절 "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앙이니라" 


먼저,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거룩' 히브리어 '카도쉬'는 '구별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 또 죄와 구별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나 반드시 죄를 다루시는 거룩한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어미 태중에 있기전 부터 우리를 지으신  창조자 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을 소유하고 다스릴 권한이 있으신 왕이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왕을 왕으로 모시지 않았습니다. 몸은 예배를 드리는데 마음은 떠나 가식적으로 믿었습니다. 이처럼 예배가 타락하니 삶도 타락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자녀들의 죄악을 방치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했지만 죄를 묵과 할수 없어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주전 536년 나라가 바벨론에 망하고 70년간 포로 생활을 하고 이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포로생활을 끝내고 돌아오는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 이제 확실히 알겠느냐? 내가 너의 왕이다" " 이 고난의 의미를 알겠느냐? 너는 나를 진정한 왕으로 대해야 한다" 는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


2.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16-18)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회개하고 돌아오는 그들에게 어떤 놀랍고 새로운 약속을 하십니까? 16,17절 "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경꾼이 아니라 기적의 주인공이 되길 원하십니다. 16,17절은 출애급 사건 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홍해바다를 건너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된 병거와 말과 군대와 용사들은 몰살당한 애굽군대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기적을 언급하셧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당부하십니까? 18절 "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일을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이 말해놓고

기억하지 말하 하십니다. 이는 홍해사건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영광스러운 미래 축복을 기대하라는 말입니다 . 힘들때마다 그들은 홍해 기적을 떠올렷습니다. 그럼에도 설마 자기들 세대에 그것이 다시 재현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너희는 옛날일을 생각하지 말라" "홍해 환상만 젖어 있지 말라 왜 그것이 재현 될 것이란 생각은 못하느냐? ' 모세 당시 최강대국이 애굽이라면 이사야 당시 최강대국은 바벨론 입니다. 애굽이 무너졌다면 바벨론도 무너질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 시대에 그 기적의 재현을 다시 경험할 거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19-20)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 시키겠다고 하자 유다 백성들이 속으로 묻습니다. " 하나님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에 돌아오는 길에는 광야와 사막이 있는데, 그 어려운 길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나요?" 하나님의 답이 무엇입니까? 19-20절 "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리 이제 나타날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광야가 가로 막혀 있으면 하나님이 길을 내시고 사막이 펼쳐 있으면 거기에 강을 만들어 물을 마시게 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광야에서 살아 남으려면 길과 물이 필요하죠? 그런데 이 둘을 하나님이 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 지는 것을 볼때,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와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내신다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가 무엇일까요? 광야는 길을 찾을수 없는 곳입니다. 당시 유다는 남방정책을 쓰는 북 앗수르오 북방정책을 쓰는 남 유다 사이에 쌘드위치처럼 끼어 시련과 고통의 광야속을 걷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유다에 길을 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광야를 걸어 갑니까? 치명적인 질병이나, 시험에 낙방,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연 당함, 사업실패,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 당함 같은 사건을 만날때입니다. 그런 광야 시련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뭐죠? '아 재수 없네, 남들은 이런 고생 안하고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하필 내게 이런 시련이 오지?'

불평과 원망이 솟아납니다.


  우산을 쓰고 있어도 장마 비 속을 걸어가면 어느 정도 비에 젖게 마련아닙니까? 공중의 권세 잡은자 사단 마귀 가 활보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부딪히는 광야 시련은 그냥 인정하는게 필요합니다. 광야 시련앞에 낙담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고전 10:13절에 "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감당할 정도까지만 하나님이 시험을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광야를 만날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죠? 그 고난에서 끝나고 무너지는 사람들은 이 고난이 빨리 지나 가기만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심은 고난 밖으로 끄집어 내는데 있지 않고 우리가 고난을 잘 통과 하도록 도와 주시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바를 깨달으며 문제를 통과 하는 것입니다. 광야길에서 좀더 예수님과 가까운 사람이 되길 바라십니다. 견뎌 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광야를 통과 하며

더 정결해지고 더 성숙해지고 더 지혜롭고 더 예수님 닮은 모습이 되길 바라는 것이 하나님뜻입니다.


  하나님께 좀더 가까이 오게 하시려고 광야를 사용하시는 겁니다. 광야의 시련 만큼 우리를 절망하게 겸손 하게 하는게 있습니까? 광야에서 비로서 땅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게 됩니다. 자기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어 기도하게 됩니다. 광야의 특징은 내 지혜와 힘과 경험이 바닥 나는 곳입니다. 그때 뭘 깨닫죠? " 세상에는 내 뜻대로 안되는 것도 많구나"


  영육간 burn out 돼서 힘이 빠질때 누구와 이야기 해도 별 도움이 안됩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 나를 찾아 오십니다. 그리고 뭐라 말씀하십니까? 사43:1,2절 "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여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나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때에 물이 너를 침몰 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린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이것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약속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바닥을 치는 곳에 설때 거기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헤와 사랑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따라서 시련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가장 힘들때 얍복강 나루 터에 선 야곱이나 아둘람 굴에 선 다윗처럼 가장 뜨거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릴때 우리는 가장 진실한 기도를 쏟아냅니다. 그때 부르는 찬송을 우리는 평생 잊지 못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면에 눈뜨기 시작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광야를  비켜 가게 하지 않고 통과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갇히지 않고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지지 않게 바울이 탄 배가 유라굴라 폭풍에 휩쓸리지 않게 하실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죠?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간 '믿음의 거인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일어난 모든 뜻밖의 시련같은 사건들은 사고같지만 하나님의 계획안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롬 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하나님은 부서진 조각을 가지고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 가운데 고난 가운데  있는 분이 계십니까? 사 41:10절에 "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 손을 잡고 광야를 이겨 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내십니다. 이길은 우리가 모르는 길이나 하나님이 내시는 새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도 갑갑하다고 느끼는 것은 길이 안보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하나님께는 당신의 길이 계십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면서, 또 감옥에 갇히며 이것은 점점 더 고향으로 부터 멀어져 가는 길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이길과 저길을 연결시켜서 애굽 총리에 오르게 하시고 고향으로 직행하는 길을 만들고 계셨던 것입니다. 요셉 뿐 아니라 요셉의 가족이 만나는 축복의 길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나중에 깨닫고 창세기 45:7절에서 형들에게 고백합니다. "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인도하면 흰두교와 카스트 제도가 떠오릅니다. 불가촉 천민으로 태어나면 평생 종노릇만 하며 다른 계층하고는 결혼도 하지 못하는 굴레 운명속에 살아 갑니다. 이런 소식을 듣고 윌리엄 케리는 구두 수선공으로서 어학을 공부하고  기술을 연마하여 인도 선교사로 떠납니다. 그때 " 하나님으로 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계획하라 " 위대한 말을 남기고 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막상 선교지에 도착하니 거기는 영국처럼 선진 사회가 아닙니다. 무덥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아내와 자녀가 이질에 걸립니다. 광야 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꾸준히 인도어 성경을 번역하고 전도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오늘 날까지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웁니다. 작년 미국 국제수양회에 참석햇을때 인도에서 윌리암 선교사님이 참석해서 여행할때 아르헨티나 현지 리더인 그스따보와 함께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 대한 상한 심정이 충만했고 영어와 스패니쉬도 잘 구사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40이 넘었는데 아직 미혼이었습니다.  윌리암 선교사님 에게 인도에 믿음 좋은 자매 없느냐 물어 보았습니다. 그때 한국에서 온 선교사 룻 자매가 있는데 돌아가면 알아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번 2월 16일 인도에서 두 사람이 믿음으로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을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입니다.      " 나-의 가는 길- 주님 인도하시네- 그는 보이지 않아도- 날 위해 일 하시네- 주 나의 인도자-

항상 함께 하시네- 사랑과 힘- 베푸시며- 인도 하시네- 인도하시네-"


     지금 가는 길이 광야라고 생각하는 분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광야에 길을 만드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새 일을 행하실줄 믿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내신 새길이 무엇입니까? 사 43:25절에 "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발 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택한 백성의 허물을 탓하지 않고 용서 하실 것을 약속하신 길입니다.  그 길은  예수님이 보혈을 흘려 속죄를 완성하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들은 한번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허물을 기억하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베푸실 새일이 무엇입니까? 요 7:37,39절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보내주셔서 택한 백성에게 영원한 생수를 마시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죄 짓고 광야같은 세상에서 목마를수 밖에 없는

인생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입니다. 광야의 길과 같고 사막의 강물과 같은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려 드립시다.   


       우리는 인생 의 길을 갈때 저길이 이길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수도 이해도 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알수 없는 십자가 보혈의 길 성령의 길을 연결시켜 새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공야에 길을 내시는 최종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21절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 하게 하려 함이니라" 나를 위하여 for my self  라 함은 " 나의 영광을 위하여" 지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광야에 길을 내어 인도하시는 목적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광야에 들어갈때 우린 하나님께 원망합니다. "하나님 저는 망했어요, 조롱당하고 망신 거리가 되었어요. 저는 이제 끝났어요.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릴 자격도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라' 는 것입니다. "네가 내 손을 잡고 이 시련의 광야를 통과 하고 나면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을 돌리는 인생이 될 것이다. 너의 수치가 변하여 찬양이 되게 하고 영광이 되게 할 것이다" 이

말씀이 저와 우리에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길을 만드십니까?  16절에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낸다' 무서운 바닷길인데 그게 지름길입니다. 우리가 고난의 길 폭풍의 길로 들어가면 힘들긴 하나 나오고 보면 더 빨리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내시는 이길은 놀라운 십자가 보혈의 길, 성령의 길입니다. 사 55:9절에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 보다 높음이니라 ' 하나님이 내신 새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새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사시는 복된 백성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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