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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을 기다리는 복 " (이사야서 30:18-22 )
12/07/201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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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8

 

                                                          “ 하나님을 기다리는 복 "

 

말씀: 이사야서 30:18-22

 

       예수님께서 2000년전에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예수님과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죠? 따라서 성탄의 계절에는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 아직도 예수님을 마음 속에 모시지 못한 사람, 아직도 예수님 밖에 있는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심 성육신의 참된 의미를 알도록 기다려 주는 때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웃시야왕이 죽던 해 부터 요담왕, 아하스왕, 히스기야왕, 그리고 므낫세 왕 시대에 걸쳐 예언활동을 한 선지자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나라가 부강했으나 그들 신앙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앗수르가 강해져 여러 나라를 정벌하고, 이스라엘까지 쳐들어와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사야서는 1-35장까지는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이드러납니다. 36-39장까지는 히스기야 시대 역사적인 내용입니다. 앗수르 공격을 어떻게 물리쳤는가, 그리고 히스기야 병고침도 나타납니다. 40-66장까지는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납니다. 바벨론에 멸망당할 이스라엘이 어떻게 회복되는지 역사적 예언의 말씀과 함께 메시아께서 오실 때 이루어질 영광의 나라를 계시합니다. 이사야서에 하나님의 심판을 통한 하나님의 공의, 그리고 이스라엘의 해방과 메시아의 오심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 30:3절에 어려움에 처한 이스라엘이 애굽의 그늘에 피하나 수욕이 될것이라 하십니다. 13, 14절에 높은 담이 순식간에 무너짐 같이,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트림 같이 무너짐을 당할 것이며, 17절에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모두 도망가고 남은 자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18절에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죄악 속에 살며 세상을 의지했던 이스라엘을 향하신 심판이 은혜로 변화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시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분명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어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려 하신단 말인가요? 여기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의인을 한없는 사랑으로 감싸십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고,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원칙도 없는 편애가 아닙니다. 아무리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이라도 하나님을 떠나 배반하면 벌이 임하죠?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를 기초로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공의는 긍휼이 배제된 차거운 심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 안에는 세상 모두를 감싸는 사랑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로부터,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녀를 사랑하죠?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맹목적일 경우가 많습니다. 자식이 무슨 짓을 하든 못 본척 합니다. 공의가 없는 맹목적인 사랑이죠? 그러나 누군가 나에게 잘못 하면 그 사람을 미워하죠? 사랑이 없는 공의죠?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그렇게 애굽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떠났던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제 이스라엘을 향해 은혜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변덕쟁이 일까요? 아니죠. 죄에서 떠나 돌이킨 이스라엘에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면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들이 회개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스라엘이지만 하나님을 떠나면 가차없이 심판이 임합니다. 빨리 뉘우치고 돌이키라는 뜻 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18절에 기다림이 두번 나오죠? 먼저 기다리시나니는 하나님의 기다림이고, 나중 기다리는 자마다는 사람의 기다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기다리시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는 것을 기다린다 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뭐가 아쉬워 하나님께서 기다리실까요? 여기 놀라운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기 위해 기다리신다 라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도 기다리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기에 이방의 침략을 받고, 가뭄과 기근 속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당장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잠잠하십니다. 왜 기다리실까요? 하나님께서는 당장 은혜 베푸실 수 있습니다. 당장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스라엘이 고통 속에 있는 것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충분히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그대로 계신다 라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잠잠히 기다리십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은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은혜 베푸시기 위해’ ‘기다리시는지알게 되는 것입니다. 왜 기다리실까?

 

    누가복음 15장에 탕자 이야기가 나오죠? 거기에 참 아버지 하나님 마음이 잘 나타납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 먼 나라로 떠납니다. 허랑방탕하게 살다 재산 다 날립니다. 쥐엄나무 열매도 없어 주립니다. 그는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뼈만 앙상한 아들이 집에 당도합니다. 멀리서 아버지가 달려와 영접합니다. 새옷을 입히고, 잔치를 엽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아들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돌이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돌아왔을 때 아들의 자리를 회복시키고,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아    이 멀리 떠날 때 아버지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멀리서 들리는 소식에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그러나 아버지는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기 위해 기다리신다라는 뜻입니다.

 

     2000년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세상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냥 어쩌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다 일찍 보내실 수는 없었을까요? 죄와 죽음의 고통 속에서 방황하는 세상 사람들을 보다 빨리 구원하실 수는 없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 4000년이 지난 후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오래 기다리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가슴 아프게, 안타깝게, 마음을 저리며 기다리셨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사람들이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신다 라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사 세상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을 기다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가슴 아픈 기다리심을 알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의 기다림입니다. 18절에 "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라는 말씀이 나오죠?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믿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무엇을 기다리죠?  홍콩 북방으로 약 20km 가면 기묘한 바위가 서 있는데 망부석 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하루는 이 어부가 배를 타고 좀 멀리 나가서 고기를 많이 잡아오겠다고 약속하고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한번 간 그는 돌아오지를 않았습니다. 그 날부터 그의 아내는 아기를 등에 업고 산에 올라가 남편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 하였습니다. 하루도 아니요 이틀도 아니라 여러날 여러해가 지나도록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지쳐서 망부석이 되었다고 합니다, 바다로 떠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어부 아내처럼 인생은 기다리는 동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한 없이 기다리는 데 무엇을 기다리죠? ‘당면 문제 해결을 기다립니다.

 

     우리도 무엇을 기다립니까? 질병이 낫고 장사 잘되고, 자식이 출세해 떵떵거리고 살 때를 기다립니다. 세상 것을 기다립니다. 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이 곤고한 이유입니다. ‘다른 것을 기다리고 잘못기다리기 때문입니다.

 

    한 유명한 목사님이 영국 부흥회에 초청 받았습니다. 떠나기 전날 아들이 영국에 가면 빨간 모자와 군복을 입은 근위병 인형을 선물로 사달라 부탁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공항 상점에 찾던 인형을 구입하고, 아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현관 문에 들어서자 아들이 반갑다고 매달립니다. 그러더니 묻습니다. ’인형어디 있어? 인형을 꺼내주자 입이 딱 벌어져 인형을 껴안고 자기 방에 들어가서 아버지는 내다 보지도 않더랍니다. 아들은 누구를 기다린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기다리기보다는 세상 것만 기다립니다. 믿음이 좋다 하는 사람들도 비슷합니다. 아이들이 아버지를 기다려야 죠? 그런데 아버지의 손에 있는 과자 봉지 선물을 기다리죠?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는 것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신앙생활이 단지 "주시옵소서, " 그런 기다림의 연속일 뿐입니다. 세상 것을 얻기 위해 기다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이 만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가 현재는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나 다시는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요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은혜를 베푸시되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정 누구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2천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성탄의 계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때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기다립니까? 시장에서는 크리스마스 때 한몫 잡겠다 마켓마다 상품을 산더미 같이 쌓아 놓습니다. 또 젊은 이들은 한번 신나게 놀겠다 계획을 잡느라 들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것들을 위해 세상에 오셨나요?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다른 것을 잘못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며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진정 우리 심령 속에 예수님께서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삶을 인도하고 계십니까? 언제나 내 고집, 내 뜻대로 살려 하지는 않습니까? 내 이익과 내 영광을 얻기 위해 살아온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진정 내 심령에 임하길 기다려야 할줄 믿습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죠?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은 결국 죄악에 빠져 죽음의 노예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아무 소망이 없다 라는 뜻입니다. 그들에게도 예수님께서 임하셔야 합니다. 마태복음 24:14절입니다. ”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예수님께서는 세상 끝까지 복음이 전해질 때 세상에 다시 오시겠다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다릴 것은 오직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8절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은 다윗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시편 32:5절에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고백할 때 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시편 32:1,2절에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갈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왜 그럴까요? 51:17절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눅 10:20절에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의 하나님이시기에 언제나 은혜를 베푸실 수 있지만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진정한 은혜가 될 수 있도록 기다리십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하나님이 야속하다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이 날 버렸다 원망합니다.

 

     23녀의 막내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술과 노름으로 지새우고 어머니는 새벽 시장에 나가 행상으로 자녀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낮에 일하고 저녁 늦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폭행과 구타로 어머니를 괴롭혓습니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형은 중2때 가출해 온몸에 문신을 한 깡패가 되고 누나들은 아버지 노름 빚을 갚기 위해 남의 집 식모살이를 했는데 밤에는 베란다에 나가 엄마가 보고싶어 달을 보고 운 한과 운명을 안고 살았습니다. 자기는 도둑질하다 현행범으로 잡혀 경찰서에 끌려갔습니다. 다행히 어리고 초범이라 훈방조치를 받았는데 보호자의 진술서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노름하느라 못오고 어머니는 행상하느라 못오고 누나는 남 식모살이 하느라 못오고 형이 왔습니다. 그날 우물가로 끌려가 형에게 3시간동안 개패듯이 맞았답니다. 그러면서 불신자 형이 너 이 자식 교회 안다니면 패죽일겨 라는 위협에 무서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목사님이 성실하게 예수 잘 믿으면 본인 뿐 아니라 가족과 가문이 잘된다 설교하시는 말이 귀에 들리더랍니다. 아마 사도행전 16:31절 "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말씀을 전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에  결심하고 모든 교회 예배에 출석했습니다. 그래도 상황은 여전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교회에서 제일 충성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물었습니다. 당연히 김관성이지. 그런데 왜 우리 집은 하나님이 복 안주십니까?‘ 코너에 몰기 위해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한참 기도하시더니 얘 관성아! ‘다 하나님의 때가 있단다하시더래요.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가서도 교회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신학을 마치고 개척교회를 했는데 7년동안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사택 주는 교회로 옮겼는데 사택이 지하였습니다. 여름만 되면 홍수때 창문으로 흘러 내리는 물을 다라로 퍼내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또  단칸방에 화장실이 없어 16계단을 올라가 건물 밖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딸이 스트레스를 엄청 받더래요. 그래서 요강을 사용했답니다. 어느날 학교에서 글짓기 대회가 있었는데 아들이 고향 초교에서 1등 당선이 되었습니다. 이로 학교 대표로 도 대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우수한 학생이 많아서 기대도 못했답니다. 그런데 시험관이 이번에는 문법이나 글솜씨가 아니라 가장 감동을 많이 준 학생에게 장원을 준다고 하더래요. 그때 탁 떠오른 영감으로 글을 쓴 아들이 대상을 받았답니다. 아들에게 어떻게 시골출신인 네가 대상을 받았니? 물었더니, 씩 웃으며 글 제목이 홍수와 요강였다고 하더랍니다. 하나님은 그 목사님 가정에 죄사함의 은총을 주셨고, 온 가족이 하나님 자녀가 되는 복을 주셨으며, 아들을 통해 위로의 복을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김관성 목사님은 상황은 하나도 안 바뀌었는데 초라한 모습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존 파이퍼의 하나님을 기뻐하라는 책에 하나님을 억지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 안에서 초라한 삶일지라도 믿음으로 살아낼 때 기뻐하고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된다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사정을 모르시는 것도 아니고, 결코 나를 버리신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탕자가 돌아오길 기다리셨던 아버지 처럼 잠잠히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기다리시는데, 우리가 무엇을 기다린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죄악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하나님의 기다리심을 마음 속에 새기며,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20절입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기다려야 할 분은 그를 기다리는자 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성탄 절을 맞이하여 우리 마음 속에 진정 하나님이 통치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내가 왕이 아니라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성자 하나님 예수님이 다스려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우리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하나님이신 분이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신 예수님을 우리 맘 속에 모셔 들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복 죄사함의 은총이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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