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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복음 ( 고전 15:50-58 )
04/04/2013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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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1일


                                                             부활의 복음


말씀: 고린도 전서 15:50-58

 

 

바울이 어떻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 직접 계시로 받은 것입니다(갈 1:11,12). 따라서 우리도 바울이 전한 이 복음을 받을때 온전하게 서게 됩니다. 바울이 선포하는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3,4절을 보십시오. “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먼저,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5: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나를 위한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입은 자는 갈라디아서 2:20절 말씀처럼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피흘리심으로 율법의 모든 죄값을  다 치러주시고 속량해 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또 예수님의 장사 지내심입니다. 눅23:50-56절에 보면 아리마대 사람 의로운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달라’ 청했습니다. 그후 세마포에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역사적 실재입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구주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눅 9:22절에 “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바울도 증거했습니다. 행17:30,31절에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주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사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부활의 주 예수님이 만유의 주 만왕의 왕이십니다. 또 성령을 보내주사 우리도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주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사함을 위함이요 주의 부활하심은 그가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시며 선지자이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4-9절에 주 예수 부활의 증인이 나옵니다. 게바, 열두 제자, 5백여 형제들이 동시에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목격자중 바울이 고린도 전서를 쓸 당시 반 이상이나 살아 있었습니다. 따라서 부활의 역사성과 실제성은 거부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야고보와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으며 맨 나중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바울에게도 보이셨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죄인 중 괴수인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부활의 증인 사도 바울로 변화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낙담한 제자들의 믿음을 회복시키시고 다시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바울은 새 인생을 출발했습니다. 이는 완전한 은혜입니다. 그래서 그는 간증합니다. 10,11절에 "다른 사도보다 더 수고하고도 그조차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주님만 자랑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부활의 희망을 잃지 않고 고난을 이겨 나갔습니다. 누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변화를 받고 힘찬 사명인의 인생을 살수 있습니다.

 

12-17절에서 바울은 육체의 부활을 선포합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안에서 먼저 죽은 자들과 그리스도 때문에 죽은 자들도 다 멸망한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 걸고 살았던 사람은 가장 불쌍한 사람들요 거짓 증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부활 후 그 부활을 목격한 자들이 그리스도를 증언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23절에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첫열매 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십니다. 첫 열매는 추수의 첫 열매입니다. 이는 다른 모든 열매가 첫 열매와 같은 종류의 것입니다. 따라서 첫열매가 되신 예수님처럼 모든 믿는 성도들도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부활이 있다는 것은 각 성도들에게 주실 칭찬과 영광이 있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는 때가 올것입니다. 그때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여 영원히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만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바로 그때 그들 각자가 받을 영광과 칭찬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결정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현재 하루 하루의 삶은 주님 주실 영원한 영광과 친찬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활의 소망은 무엇보다 현재 삶에 진정한 삶의 동기를 부여합니다. 부활 소망이 없는 사람은 “내일 죽을 것이니 먹고 마시자‘ 방종과 방탕과 쾌락의 길을 갑니다. 그러나 예수 부활을 믿는 자는 어떻게 살아갑니까?  34절을 보십시오. ‘깨어 의를 행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면 이제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사망을 이기신 주님은 지금도 살아 계실 뿐 아니라 그날에 잠든 자들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따라서 부활 소망을 가진 사람은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며 복음을 전파하며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게 됩니다.

 

36-38절에서 바울은 부활의 특성로 설명합니다.


먼저, 꽃과 식물을 보면 씨를 뿌리고 그 씨가 썩어져 죽은 후 그 씨에 합당한 온갖 종류의 형체로 부활합니다. 각각 종자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 형체를 주셨습니다. 이때 씨와 꽃 열매는 누에고치가 나비로 바뀌듯이 그 존재 사이에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습니다. 변화된 몸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 부활 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음, 몸의 영광이 다릅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가 있고 땅에 속한 형체가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는 천사들이 가진 그런 몸을 의미하나 . 우리가 지금 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부활체도 하늘에 속한 형체입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의 영광과 땅에 속한 형체의 영광이 다릅니다. 해 달 별과 별들의 영광이 다른 것 처럼 부활체의 영광이 각각 다를 것입니다. 58절에 의하면 우리의 부활체의 영광은 이 땅에서의 우리의 수고와 관련하여 달라질 것입니다.

 

42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 말씀하십니다. 둘다 물리적인 육체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육체와 부활하여 얻게 될 육체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삽니다. 지금 육체는 죽음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다시 사는 육체는 죽지 않습니다. 지금 육체는 죄에 질때 많고 죽음을 향해 부패합니다. 이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 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부활체는 영광스럽습니다. 지금 육체는 병에 걸리고 쓰러지고 약합니다. 이런 약한 것으로 심고 이제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지금 이몸은 땅의 흙의 몸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몸입니다. 지금 우리 몸은 아담에게서 물려 받은 몸입니다. 그러나 부활체는 예수님께서 친히 예비하셔서 하늘로부터 주시는 몸입니다. 지금 이몸은 땅에서 흙으로 만들어진 몸이지만 부활체는 하늘에서 준비된 몸입니다. 지금 이몸은 흙에 속한 자 아담의 형상이요, 이제 주님 재림시 우리가 입게될 몸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이 될 것입니다.

 

50절 이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부활체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썩지 아니하는 나라 멸망하지 않는 나라 영원히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나라는 땅과 통치와 백성이 있는 실재하는 나라입니다. 요14: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처소를 예배하면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접하신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썩지 아니하는 몸을 반드시 소유해야 합니다. 지금 썩을 몸을 가지고 이 나라에서 영원히 살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필요한 것입니다. 즉 부활이 있다는 것은 그 부활체를 가지고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 재림시 우리가 부활을 입고 영생할때 온 우주가 하나님의 나라 입니다. 아담 창조할 때 시작된 에덴에서의 하나님 나라가 주님 재림으로 전 우주적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계 21:1-7절은 이 나라를 새 하늘과 새땅으로 보여줍니다.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1-57절에 바울이 비밀을 말합니다. “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치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 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주님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께로 부터 새로운 몸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실 때 이 땅에 있던 자들은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할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그때의 변화는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입고, 그 당시 땅에 살아 있는 자들은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때 '죽음'이라는 최후의 원수가 사라지게 됩니다. 주의 보혈을 믿어 죄사함 받은 우리는 반드시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의 주님이 믿는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먼저 소입니다. 예수 부활을 믿는 성도는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죽어도 다시 산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하였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절망 때문에 죽어가고 있고 살아 있어도 사망권세 아래 죽은듯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학교에서 꽤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살하였습니다. 그 아이가 남긴 유서가 참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더이상 버틸 힘이 없다’ 그 아이는 '절망의 덫'에 걸려 죽었습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 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 절망을 한방에 날려 버립니다. 정말로 부활신앙을 믿는 사람은 혹독한 지옥같은 세상에서도 그것을 능히 이겨냅니다. 사도 바울은 롬8:18절에서 고백합니다. “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수 없도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참 소망입니다.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면 소망은 생명에 이르는 약입니다.

 

다음, 용기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본래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믿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5:43절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하니 이 사람은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여기 당돌히 라는 말이 나오죠? 당시 제자들은 무서워 다 도망 갔습니다. 그런데 아리마대 요셉은 총독 빌라도에게 나와 당돌히 예수의 시체를 달라 청했습니다. 당돌히 라는 말은 '담대하게 '라는 뜻입니다. 진정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담대하게 용기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존재의 용기’ 라는 책을 쓴 폴 틸리히는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이 '용기' 라 햇습니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순간 순간 가장 필요했던 중 하나가 용기 였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죽음과 실패죠?  세상과 사탄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려 할때마다 ‘그러면 손해본다’ ‘그러면 망한다’ ‘그러면 죽는다’  위협합니다. 대학 졸업 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쓰고 개척에 나섰을때, 한평 반 지하 셋집에서 제자 양성 할때, 또 어느 정도 규모가 생긴 교회를 넘겨 주고, 다시 계승 하러 돌아올때, 오직 믿음으로 교회 예배당을 건축 할때, 50대때 개혁에 앞장 섰을 때, 다 키워 놓은 사람들을 주의 명령에 따라 선교사로 파송할 때, 끊임없이 그런 도전들이 밀려왔습니다. 그때마다 그것을 이겨내고 벗어내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용기였습니다. 사탄의 위협과 공갈은 현실이었습니다. 정말 그러면 죽고 망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게 우리가 살아 가는 세상이고 우리가 직면하는 현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그것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실제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내 삶에 종국적인 끝과 결국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실패와 죽음을 넘어선 영광과 승리와 생명을 믿음으로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선교현장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말씀의 실제를 체험해 보았습니다.  주님은 오늘 믿음의 여인을 술 많이 드시는 아버지로 인한 가난과 운명에서 건지셔서 시골 영어 선생님으로 외지에서 비오는날 심방갔다가 넘어져 무릅이 깨지기 까지 자매 한사람을 돕는 예비 선교사 훈련을 시키시고, 동생을  집에서 수년간 품고 섬기며 연단하사 이제 정식 선교사로 안수하여 C 국에 파송합니다.  주님께서 장차 이루실 놀라운 부흥과 영광을 봅니다. 할렐루야! 용기중 최고의 용기는 순교입니다. 세상에 많 은 순교자들이 믿음 때문에 죽었습니다. 피할수 잇는 죽음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였습니다. 저들은 정말 죽음을 무서워 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으로 저들은 세상이 사탄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바로 그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본문 55-57절에 바로 그런 믿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리고 지혜입니다. 요한복음 8:32절은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지혜란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들을 분별하고 판단하면서 살아 갑니다. 주님이 왜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롭고 비들기 같이 순결할 것을 말씀하셨겠습니까? 세상이 험하기 때문이죠? 이런 세상에서 순간순간 바른 판단과 바른 결정을 하면서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어긋난 판단과 결정을 할때마다 우리는 실패를 경험하고 죽음을 맛보게 됩니다. 어리석음은 정말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또 하나의 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이 지혜에 대해 치명적인 결함을 안게 되었습니다. 죄의 뿌리는 욕심인데 욕심은 항상 우리 눈을 멀게 합니다. 욕심에 눈이 멀면 우리 모두 어리석어 지죠. 지혜를 잃게 됩니다. 지혜는  욕심을 버려야 얻습니다. 그런데 욕심을 넘어 간다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죠? 그런데 부활신앙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아무리 성자라도 가끔 막 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죠?  때론 악인들의 형통이 부러울때도 있죠?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하며 타협하며 살고 싶죠? 그런데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을 믿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워도 세상이 끝인것 처럼 살 수 없습니다. 보물을 땅에만 쏟으며 살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믿는 하나님 나라에 보물을 쌓으며 살려 노력하게 됩니다. 절제하며 바르고 보람있고 가치있는 삶에 도전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58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복음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믿습니다. 따라서 주님 재림때 믿는 우리는 심판에서 구원 받는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 믿음이 성도들에게 진정한  소망과 용기와 지혜를 가져다 줍니다.  그것은 죽음 후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맛보게 하십니다.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이 너무나 좋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시고 더욱 부활 신앙이 가져다 주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맛보고 누리며 부활의 증인된 삶 사시길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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