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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좀 쌓지
07/11/2018 08:41
조회  355   |  추천   10   |  스크랩   0
IP 71.xx.xx.143




'이 전화 좀 받아봐라, 뭔 말을 하는지.. 대체 밖에서 뭔 짓을 하고 다니기에.. '
이상한 전화가 집으로 걸려오게 하느냐며 말끝을 흐리시는 언니의 표정이 마땅찮으시다.
넓은 마루에 공장오빠들이 전부 모여 앉아 점심식사들을 하고 있는 중에 대문을 열고
들어서다 멈짓하며 못할 짓하다 들킨 양 눈치를 보면서 전화기를 건네 받는다.




수 십개의 눈들이 동시에 내 등뒤로 와 꼿히고 저 쪽 전화기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를 안놓치기라도 하겠다는 듯 동시에들 밥 넘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꼴꺼덕거린다.
당사자가 전화기를 건네받은 줄 알았던지 담박에 욕부터 고막을 뚫고 들어온다.
‘야, 이 X같은 X아!’ 잠시 정신이 몽롱해지고 ‘꿈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어딜 들어가도 꾸준하게 한 달을 못 채우고 그만두는 나 때문에 속앓이하는
가족들 눈치가 보여 이력서 들고 신문광고에 나온 곳을 찾아갔더니 영화에나 나오는
중국집 이층계단과 지저분한 공중 화장실을 지나 삼층 당구장옆 간판도 한쪽이
떨어져 덜렁거리는 ‘OO물산’ 이라는 문을 밀자 고약한 냄새부터 맞는다.




사십대는 넘었을 남자가 등박이 회전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있고 이쁘장하게
생긴 스무살 남짓한 아가씨가 껌을 쫙쫙 찰지게도 씹으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따라 부르다가 또 껌을 씹는다 '재주도 좋네’ 웃음이 나오는 걸 참으며
머뭇거리자 눈으로 남자를 가르킨다. ‘아, 전화한? 이리로 와 앉아요.




자기 소개를 간단히 하며 가져온 이력서부터 보잔다. 사실 그 속의 내용이야
나부터도 나같은 애 안뽑을 것 같다. 긴 얼굴형에 코만 뽀족하고 특기사항은 ‘없을 무’
하얗고 긴 손가락으로는 타자기도 못치고 영어 일어 중국어.. 벙어리, 몸매는 그냥
앞뒷판 구분이 갈 정도.. ‘외국어가 안되네~ 타자도~ 말 수도 적은 것 같고’




더운데 지들 앞에만 선풍기 하나씩들 놓고.. 흐르는 땀이 브라우스를 먹는다.
빙글거리면서 자꾸 이상한 것만 물어대는데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용어들이다.
‘미스 김 있으니 커피 심부름은 됐고..’ 이리저리 뱀같은 눈으로 다 흝고 지나며
혼자 궁시렁거리던 남자는 일단 이력서를 두고 가서 연락을 기다리란다.




아무래도 팔려온 느낌으로 아닌 것 같아 내가 일어서고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저어기 이력서는..’ 하고 입을 떼자 ‘아, 두고 가요~ 곧 우리 미스 김이 연락할 테니’
‘아니요, 가져 갈께요’ 갑자기 남자의 동공이 커지면서 눈알이 눈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더니 ‘뭐 이런..’ 자기 발밑의 휴지통에 꾸겨 쳐넣어 버린다.




국민학교때 담임샘은 통신표 맨뒤쪽에 글을 써서 가정 통신으로 보내셨는데
‘있는 줄 모르게 조용한 아이나 맡은바 임무는 참 잘함’ 이라고~ 공부도 쌈도 일뜽인
작은오빠는 공부도 못하고 목소리도 작은 여동생이 못마땅해 강하게 키우려고
엄청 쥐박으면서 가르쳤는데.. 그날 나는 그 남자의 다리를 회전의자와 함께
밀쳐내고 책상밑으로 기들어가 휴지통에 박힌 내 이력서를 들고 나왔다.


* 40 년 전쯤의 아직은 천지구분 못 할때 얘기입니다.
더워서 맨붕이 왔던지 뜬금없이 그 더웠던 어느 여름이 생각났습니다. *

비말 飛沫


스펙 좀 쌓지, 이력서, 커튼 너머로, 석류, 호랑나비, 김밥과 계란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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