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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교회
06/30/20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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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신자가 보는 이민 교회                

- 교회는 진정 어떤 곳일까? -



15여년이 되도록 접해본 교회는,

정말로 지독하게도 변화를 거부하는 모양을 취하고 있다.

각 개인이 [믿음생활]을 통해 전혀 변화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와 신앙생활의 전반적인 측면에서 변화의 모습은 정말 눈씻고 찾아보기가 힘이 든다.

교회가 세상의 온갖 인간이 모이는 곳이어야한다는 점에는 추호도 이의가 없다.

교회는 오히려, 살인자, 사기꾼, 강간범, 도둑놈들 뿐아니라, 도박꾼, 술주정뱅이, 야바위꾼들 조차도,

기꺼이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역할을 감당할 수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만 언급한다면 분명,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병들어 있으며,

온갖 못된 짓거리가 만연된 사람들의 집단 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교회가 교회되는 것은,

자정 작용을 갖고 있는 집단이며, 변화를 추구하는 믿음의 공동체인 때문이다.

죄의 인식과 회개, 절대자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구원, 그리고 영적 변화를 통하여...


그런데,

교회가 자정작용을 상실했다면,

회개를 모르며, 구원과 영적 변화를 통한

[새사람]으로의 변모를 거부한다면 어찌하겠는가?  


1.  목사들,


목자의 역할보다는 교회에서의 자신의 포지션에 더 연연한다.

담임목사나 부목사로서, 사역하는 교회에서 뼈를 묻도록 충성하며,

자신의 입지를 지키는 데 우선한다.

섬기는 교회가 죽는 날까지 자신의 교회가 되기를 꿈꾼다.

말씀을 탐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는 열심이나,

실천하고 힘써 행하는 면이 너무 부족하다.

영안으로 성도를 바라보지 못할 뿐더러,

교회의 처해진 상황과 해결해야할 현실적 문제를,

개발원이나 사역원의 독립과 자치성 구실아래,

개발원장이나 사역원장에게 일임한다.

즉 사람에 의존한다는 말이다. 


대우받기 원한다. 

스스로를 낮추는 데 아주 인색하다.

교회의 가장 험하고 굳은 일에 팔걷어부치고

나서기를 주저한다.

영향력있는 시무장로나

자리잡힌 교회의 중진들에게

교회행정의 여러가지 결정을 맡긴다.

말씀과 영의 세계를 떠난,

세상사 전반에 관해 무소부지의 자세로 일관한다.

열린 귀도 없고 겸손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나그네]는 말 뿐이다.

본향이 따로 있는 [나그네 길]의 본을 보이지 못한다.

선교사나 전도자, 심지어 순교자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현재의 위치에 주저앉아, 지킬 생각만 하고 있는 모습이 애초롭기도 하다.

성도와 교회를 변화시키지 못함을 인식이나 하고 있을까?



2.  시무 장로들과 교회의 중진들 


제법 성도의 수가 많은 교회들의 장로들이나,

교회의 요소요소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그들 삶의 영역을 연장하는 수단처럼 보이는 면이 적지 않다.

교회 조직에 마련된 직분의 구조들이 갖고 있는 계급적인 모양새나,
그들이 이룩한 사회적 성공이나 부, 갖고있는 영향력을 이용하는 모습들은,

교회가 신앙의 토대위에 구현하는 영적인 세계라는 느낌을 갖기가 쉽지않다.

심지어는 교회의 인간관계가 나이순으로 공공연히 설정되어지는
표현이나 행동거지들을 자주 접할 때마다 실소를 금할 수없다.

(교회 문화에 깊이 뿌리박힌 [유교적 전통]은 별도로 다루어야할 것 같다.)


오히려 교회는,

그들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의 연장선상에 놓인 집단 회합 장소일 뿐이다.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는 외에 친교/사교를 하고,
골프를 치거나 특정운동에 땀을 흘리는 동아리를 만들고,

열심으로 여행이나 레크리에션 활동에 몰입한다.

건강을 챙기고 건전한 사회생활의 기틀을 세워간다는 측면에서

이와같은 비본질적 행위들이 어느정도 그 [타당성]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그러한 [교회 문화의 양상]을 뒷받치고 있는 정신적 구조와 나타나는 행위들이다.


그들의 삶속에서 그랬듯이 남달리 적극적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고

권위적이며 다분히 사무적인 태도로 교회일에 몰두한다.

적극적인 열정을 넘어 자신의 욕망을 들어낸다.

자기 이익을 챙기고 교회의 직분을 지키는 데 연연하며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 적으로나

다른 사람을 종업원이나 직장 하급자 보듯 취급한다.

평신도중 장로의 역할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장로교파의 경우 이러한 경향은 더 심한 듯하다.

도무지 용서와 관용,

겸허하게 양보하는 모습은 찾아보기가 쉼지않다.

웬 욕심들이 그리도 많은지,

시무장로들이 각각 몇가지 요직을 함께 겸임하고 있는 현상은

아무런 비판이나 재고없이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

비단 새신자나 새로운 전입자들이

할일과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빙빙 겉돌다가

또 이교회 저교회로 부유하는 현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자신들을 향할 수있음을 알고는 있을까?


문제는 이러한 과정의 연속을 통하여,

교회의 모든 면들이 세상을 닮아가는 것에 있다.

세상의 본이 되어 빛으로 세상을 이끌어가는 대신

오히려 세상을 쫒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찰은 마땅히

목사들과 장로들, 혹은 교회의 리더쉽 부문을 장악하고있는

사람들 가운데 [회개의 수준]으로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절박함]으로 이루어져야하지 않을까?


 

3.  일반성도


교회를 습관적으로 다닌다.

신앙의 연륜이 오래거나 모태신앙인 경우 이러한 경향은 더한 것으로 보인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한다.

교회는 선택적으로 다닌다.

자신의 삶, 직장/사업과 가정 다음에 놓인 것이 교회이다.

물리적으로만 이원화 된 뿐만이 아니고,

가치관과 행동양식이 이원화되어 있다.

하나님 사랑과 순종, 찬양과 경배는 교회에서만 행한다.

때로는 너무도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다.

신앙적 생활이 전혀 몸에 베어 있지 않다.


교회에서 [비둘기 파는일], [환전하는 일]에 몰두한다.

말씀 보다는 사역에 치중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나마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사역만을 골라한다.

특히 소위, [눈에 띄는 사역]에 경쟁적으로 달려 든다.


맹목적으로 높은 직분 (?) 을 추구한다.

때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 내에서의 친교와 사교, 골프와 운동에 전념한다.

심지어 어떤 성도는 골프와 친교, 여행활동과 취미생활을 위해 교회를 나가지만,

예배조차도 드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인간관계에 연연한다.  교회가 인본주의적으로 흐르는 가장 큰 이유가 될 지도 모르겟다.
(이는 말씀 사역자들이 무조건적으로 친교/성도의 교제를 강조하는 점에도 책임이 있다.)

수직적 관계가 미약한 가운데, 극도로 불거지는 지체들의 관계성은,

자칫 머리없는 그야말로 몸뚱아리만 활개치는 교회가 되기 쉽상일 것이다.


교회와 기독교의 미래을 생각지 않는다.

아직 학업에 열중인 자녀들이나

사회 초년병들, 그리고 30-40대의 믿음의 후배들에게 물려줄 신앙적 유산이 무엇일까?

심각하게 생각할 수있기를 바래본다.

특히 교회의 중진을 이루는 연령층(60대)이

후진들이나 차세대적인 비주류들에게

자발적으로 희생과 양보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평신도들에게 교회의 앞날을 모두 책임지울 수는 없겟지만,

[사람들의 모임을 나타내는 말 교회]의 몸을 이루는 것은 역시 성도들이다.

그들의 영적상태와 하나님과 예수를 추종하는 상태,

그리고 그와 관련한 믿음의 모든 행위가 나타내는 것이

어느 교회의, 나아가서는 개신교의 현주소가 될 것이다.

믿음의 선배들이 가는 [교회생활]의 길을

그대로 닮기를 원하고 추종하는 것은 문제의식을 갖고 대할 일이다.


변화를 거부한다.

그냥 내뱉기에는 너무도 쓰리고 아프며,

앞날에 짙은 안개와 먹구름을 드리우는 현상이다.

생각을 해보자.

남은 생애, 믿음의 경주를 어찌해야 할 것인지?

아무리 위만보고 간다한들,

날마다 접하는, 때로는 긴 시간 함께 사역에 몰두하는 시간시간마다

눈에 거슬리는 저들의 ...


변화를 원치 않는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겟다.

아니 어쩌면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거나,

깨달음은 있되, 그 절실함이 약한 탓일 수도 있겠다.

그것은 목회자들이나, 장로를 비롯한 리더들이

인도함과 본보이기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회, 어찌해야하나?

끝내 살아남기야 하겟지만,

날마다 반복 되는 쓰리고 아픈 모습들,

거저 무조건 삼키면서 가는 것이 장밀 믿는자의 최선이 될 것인가?



이민교회, 변화, 회개, 영성,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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