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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욕이 빚은 참사
08/14/201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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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욕이 빚은 참사

 

조선조 최고의 성군인 세종은 말년에 근심이 많았다. 세자인 문종이 효심은 강하나 너무나 병약했기 때문이었다. 세종은 소헌왕후(昭憲王后)를 비롯하여 6명의 부인을 두었고 22명의 자녀를 얻었는데 아들이 18명이나 되었다. 헌데 하필이면 세자인 문종이 매우 병약하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자 이향(李珦)8세 때 세자에 책봉되어 약 30년간 있다가 37세 때 세종이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왕위에 오른지 23개월 만에 어린세자 단종을 걱정하며 세상을 버린다. 이때는 수양대군(首陽大君)과 안평대군(安平大君)등 강력한 사병을 거느린 왕자들의 세력이 강해질 대로 강해진 시기여서 숨을 거두면서까지 이를 걱정하여 신하들에게 세자를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뜬 것이다.

 

단종은 12세 때 왕위에 오른다. 미성년 국왕이여서 수렴청정을 받아야 했으나 이때 궁궐에는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없었고 왕비도 없어 단종의 정사를 섭정해 줄 이가 한명도 없었다. 이렇게 되자 문종이 숨을 거두며 후사를 부탁한 영의정 황보인, 우의정 김종서, 좌의정 남지 등 3정승이 합의하의 결정된 내용을 단종에게 재가를 받아 시행하는 식으로 정사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단종이 어려 판단할 능력이 없으므로 단종이 결정해야 할 곳에다 노란표시를 해서 단종이 그 표시에 따라 결정하는 형식을 취했는바 이를 황표정사(黃票政事)라 불리었다. 따라서 단종은 형식상 왕이지 왕권은 실제로 3정승이 휘두른 것이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반기를 든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수양대군이다.

 

삼정승 중 가장 발언권이 강한이가 백두산 호랑이라는 별명의 김종서였다. 김종서와 수양대군은 대립각을 세우고 다투기 시작한다. 결국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 권신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아 조카인 단종을 몰아낸 뒤 왕위에 오른다. 수양대군은 어릴 때부터 호방하고 기가 쎈 사내였다. 또한 권력에 대한 욕심이 강했다. 어릴 때부터 창기 집을 드나들었는데 열 네살 때 이런 일이 있었다. 한참 창기와 희롱하고 있었는데 깊은 야밤에 그 창기의 기둥서방이 와서 문을 두드렸다. 창기의 기둥서방은 근방에 유명한 성질 사나운 왈짜패여서 모두가 감히 그 창기를 희롱하지 못했는데 성정이 담대한 수양대군이 이를 무시하고 이 창기와 동침에 들었다가 한밤중에 황망한 일을 당하게 된 것이다.

 

칼을 뽑아들고 설치는 기둥서방에게 잡혔다가는 요절이 날판이어서 당황스러웠으나 용맹하게 갑자기 뛰쳐나가 기습적으로 발로차 꼬꾸라트린 뒤 냅다 도망을 쳤다. 몸을 날려 담을 뛰어넘자 기둥서방도 당한 것이 분하여 담을 넘어 쫓아왔다. 수양대군이 삼중으로 된 성을 뛰어넘자 기둥서방도 계속 성을 넘어 쫓아왔다. 끈질긴 자였다. 수양대군이 숨을 헐떡이며 일리정도를 더 달리다 아무래도 잡힐 듯하여 길 옆에 오래된 버드나무가 있어 우선 급한 대로 그 속에 숨었다. 조금 있으니 기둥서방이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며 쫓아와서 주위를 둘러보다 찾지를 못하자 한참을 더 찾다가 투덜거리며 가버렸다. 그제야 안도를 하고 나무에서 내려오려는데 술 취한 한 사내가 비틀거리며 나무 아래로 오더니 오줌을 누었다.

 

그리고서 고개를 들어 별을 쳐다보더니 괴이하다는 듯 혼잣말로 자미성이 유수를 지나니, 필히 인군이 버드나무에 기대어 있는 상이로다. 심히 괴이하구나하고 중얼거리며 한참을 서 있다가 지나갔다. 수양대군이 집에 돌아온 뒤 다음날 그 사람이 누구인지 은밀히 알아보니 관상감에서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는 자였다. 수양대군은 매우 기뻐하며 그자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이때부터 수양대군은 마음속으로 왕권을 차지하려는 야심을 지니게 되었다. 가뜩이나 야심찬 수양에게 이 역술가의 한마디는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훗날 왕위에 오른 뒤 관상감에 근무했던 이이를 찾아 후사하려 했으나 그는 이미 죽은 뒤여서 그 자식들에게 상을 내렸다한다. 무력으로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 즉 세조는 사육신을 죽이고 자신의 동생인 금성대군을 단종복위 음모를 꾸민 혐의로 사사하고 난 뒤 노산군으로 강등하여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 유배한 단종을 살려두면 이런 일이 또 일어날까 염려하여 고심하던 중 조정대신들이 세조의 신임을 얻기 위해 노산군을 처형해야 세상이 조용해진다고 주장하자 단종이 영월로 유배될 때 따라간 금부도사 왕방연을 다시 불러 노산군에게 사약을 내려 사사하라고 왕명을 내리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사약을 들고 영월에 내려갔으나 단종의 처소에는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약사발을 뒤로 숨긴 채 뜰 앞에 엎드려 어쩔 줄 몰라했다. 단종은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한양에서 내려온 금부도사를 맞기 위해 곤룡포를 입고 익선관을 쓴 다음 정좌해 있었다. 왕방연은 고개도 들지 못한 채 흐느껴 울기만 했다. 이때 단종의 초가에서 잡일을 거들던 어린사내 종놈이 이 사정을 알고 공을 세워볼 기회를 노리고 슬며시 단종이 앉은 뒤편에서 활시위를 올가미처럼 만들어 그것을 창문 구멍으로 넣어 단종의 목에 건 뒤 힘껏 잡아당겼다. 왕방연을 내려다보던 단종은 버둥거리다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이날이 14571024일로 단종의 나이 겨우 17세 때였다. 단종은 파란만장한 운명을 힘겹게 지탱해 오다가 후사도 없이 한많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시신은 단종을 죽인 어린 종놈이 강물에 던져버렸다. 단종을 모시던 몇몇의 궁녀들도 강물에 몸을 던졌다. 궁녀들과 단종의 시신이 물위에 떠있는데도 수습해 주려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엄홍도라는 호장이 소문을 듣고 관을 준비하여 한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동편 산으로 올라가 산소를 마련해 주었다. 이곳이 지금의 장릉이다. 단종의 혼령은 너무도 큰 한()을 품고 구천을 헤맨다. 그런데 세조의 큰아들 의경세자가 매일 밤 단종의 모친인 현덕왕후 권씨의 혼령에 시달리다가 20세의 나이로 급사했는데 세조는 현덕왕후 권씨의 무덤을 파내 시체를 토막내 버리는 패륜적인 죄를 또 범하고 만다. 세조는 말년에 이 죄 값을 철저히 치룬다. 온몸에 종기가 곪아터져 앉지도 눕지도 못하며 괴로워하다 죽어간다. 말년에 죄를 씻기 위해 숭유억불 국가 시책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께 자비를 구하지만 결국 고통 속에 죽어간다. 단종과 단종의 모친 현덕왕후 권씨의 원혼이 복수를 한 것이다. 이래서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무서운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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