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아이들의 사회성
07/01/2017 04:00
조회  1041   |  추천   1   |  스크랩   0
IP 104.xx.xx.128


저희 목사님 글 입니다


사회성을 길러 주시기 원하십니까?

 

 

사회성은 가정 안에서 개발 시켜 주어야 합니다. 사회에서 배우기 전에 가정에서 가르쳐주고, 습관화 시켜주고, 그 후에 사회에 내보내야 “올바른 사회성”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사회성을 길러 주어야 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자녀를 집에서 키우지 않으시고 될 수 있으면 밖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게 만들어 주기 위하여 여기저기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아이를 다른 아이와 함께 지내게 해 주려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실 경우 기대한 것과는 달리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가르쳐 주는 사회성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요소들이 긍정적인 요소들보다 월등하게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성이라고 무조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회성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사회성이고; 다른 것은 부정적 사회성입니다. 긍정적인 사회성은 책임감, 협동심, 친절, 성실, 사랑, 그리고 신뢰 같은 것들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사회성은 차별화, 경쟁심, 투쟁심, 이기심, 판단, 조소, 편협, 또래 집단의식 같은 성향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성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즉 사회성에도 나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조건 일단 사회에 빨리 내 보내려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회에 나가면 같은 성별끼리, 즉 남자는 남자와 여자는 여자와 어울리게 되고, 같은 나이 또래끼리 어울리게 됩니다. 이것이 매우 좋아 보이지만, 사실은 또래 끼리 어울림으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사회적 접촉 범위가 좁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윗사람이나 아랫사람, 또는 이성을 대하는데 어려움과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실 일상적인 생활 안에서는 또래끼리 모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은 반면,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을 대해야 할 경우가 대부분인 것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이 이성과의 관계나 아래나 윗사람과의 관계를 편하고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면, 무조건 무방비 상태로 사회에 내보내어 또래끼리 어울리게 만들어 주는 것을 최상의 선물로 여기지는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회에는 생존경쟁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곳입니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인데, 이 경쟁적인 상황에 그대로 방치해 두면 건설적인 경쟁보다는 파괴적인 경쟁심이 개발되게 됩니다. 즉 일단 이기고 보자는 심리가 우선적으로 세차게 발동하게 되어 있고, 이와 같이 살아남아야 된다는 심리적인 압박을 받고 있는 환경 속에서는 지도력이나 협동이나 양보 같은 크고 넓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배운 경쟁심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만들어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남을 이기기 위해서 나를 발전시키기보다 남을 넘어뜨리려고 힘이 모자라면 파당을 짓고 모함하고 고자질하고 비열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방향으로 노력을 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입니다. 결국 이런 상태 속에서 생활을 하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무자비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게 되어 있고, 지도력이 개발될 가능성을 잃어버리고, 자기가 최고이어야만 되고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도록 키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아야 행복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랑은 부모님과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것이 정상적인 것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케 못해주고 부모의 사랑을 가르쳐 주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에 그냥 내보내면, 사회에서 인정받고, 사회에서 존경 받고, 사회에서 높임 받으면서, 사회의 뜻을 따라 섞여 살기를 바라게 되어 있습니다. 즉 사회 자체가 기준이 되어 하나님과 부모님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고, 사람은 사회가 만들어 주는 가치체계 속에서 사회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가도록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에 자녀를 맡겨서 사회가 자녀들에게 사회성을 키워주도록 맡긴다면 유행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 속에서 자랑하고, 눈치 보면서 사회의 지시를 무작정으로 따르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사회를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가기는 지도자가 되기는커녕 도리어 사회의 눈치를 보며 편승하고 아첨하는 졸장부로 성장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회에 자녀를 그냥 맡겨 놓으면 안 됩니다. 사회인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경쟁하면서 서로 키 재기를 할 때, 일부는 쓸데없이 착각 속에서 교만하게 되고 일부는 무관심 속에서 살고, 나머지는 열등감과 불만 속에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대신 사회가 내 자녀를 길러 주도록 맡겨 놓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회성을 길러 주어야 할까요?

가정에서 먼저 사회성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인간은 악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긍정적 사회성이 저절로 만들어 질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직접 인도해 주고 가르쳐주고 엄하게 훈련시켜 주는 과정을 통하여 긍정적 사회성을 배워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에 나가서 부정적 사회성을 배우기 전에, 먼저 가정에서 긍정적인 사회성을 배워주고 난 후, 그 다음에 사회에 내보내서 실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선 천국 시민으로 가져야 할 사회성은 오직 가정에서 배워야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사회에 들여 보내기 전에 가정에서 사회성을 배워 주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교회를 다스리려면 우선 가정부터 먼저 바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할을 하는 아빠, 예수님의 역할을 하는 엄마, 가정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성령님이 계신 곳이 바로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천국 시민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곳이 오로지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통하여 말씀의 지배와 인도를 받아서 말씀에 따라서 절제하며 행동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가정에서 지혜를 배우고 후에 사회에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와 순결을 함께 소유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지혜를 배우라고 사회에 내보내면 지혜대신 “술수”를 배워오기 쉽고, 사회가 순결함을 가르쳐주면 실질적으로는 순결함 대신 “고지식”을 배우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집단 농장인 키브스에서는 교육을 정말로 철저하게 잘 시키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6일 전쟁이 벌어졌을 때, 키브스 출신의 군인들이 일반 가정 출신의 군인들보다 약 30%가 더 많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전사자의 수에 있어서 상당히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조사했는데, 결론은 일반 가정 출신의 군인들과는 달리 키브스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키브스 출신의 군인들은 쓸데없이 불필요하게 죽은 경우가 훨씬 많았다는 것입니다. 즉 안 죽어도 되는 상황에서 의리와 같은 것 때문에 괜히 따라 들어가서, 스스로 불필요한 죽음을 자초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일반 가정에서 교육을 받은 자녀들은 피해야 할 상황에서는 냉철하게 피할 줄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즉 가정에서 사회성을 배우는 경우, 부모님이 하시는 실질적인 삶을 보면서 교과서적 사회성보다는 더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사회성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신뢰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면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신뢰를 받아 본적이 있고 해본 적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을 수 없는 우리들을 신뢰의 대상으로 여기시면서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만드시곤 하십니다. 이웃을 신뢰해줄 줄 알아야 인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신뢰를 받아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뢰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이 이웃을 신뢰해 주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신뢰관계가 아닌 이해득실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무리 신뢰할 만한 언행을 보여주어도 남을 의심하며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면서 닳고 닳아 약삭빠른 순진치 못한 생활태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믿을 수 없는 사람까지라도 신뢰해줄 줄 아는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불신으로 꽉 찬 사회에 나가서 불신을 배우기 전에, 가정에서 신뢰를 받으며 살아본 확실한 긍정적 사회성이 갖추어져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과를 먹어보지 못하고 말로만 들은 사람은 사과 맛을 알 수 없습니다. 아가페 사랑도 받아 보지 못한 사람은 아가페 사랑을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사회에서 배운다면 아가페 사랑이 아닌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고 감정에 지배를 받는 세상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감상적 사랑”만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정말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라”를 실천하기를 바라신다면, 사회에 내보내기 전에 가정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 주신 후에 사회에 내보내야 감상적 사랑이 아닌 아가페적 사랑을 행할 수 있는 긍정적 사회성을 갖출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궁극적 목적지가 아니라,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선교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선교의 대상인 사회가 도리어 우리 자녀들에게 사회성을 배워주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사회성을 배워서 세상에서 큰소리치면서 잘 낫다고 자랑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선택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우리를 선택해 주시고 은혜 주시고 축복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우리들의 자녀들을 그냥 세상에 내보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주고, 하나님의 속성을 가르쳐주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의 자세를 지니도록 만들어 주시고 실행할 능력을 키워주고, 사랑이나 신뢰나 협동 등등의 긍정적인 사회성을 배워줌으로 장차 자신들이 속한 사회가 긍정적이고 깨끗하고 공평하고 의로운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만드는 주역들이 되도록 키워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믿는 자들이 책임져야 할 선교지 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즉 신자들에게 사회는 사명의 영역에 불과하지 목표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자녀들에게 천국시민으로서의 사회성을 가질 수 있도록 천국과 같은 가정에서 먼저 가르쳐 주시고 훈련시켜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4/2/2005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육아,게임,중독,2세,교육,교회,기독교,청소년
이 블로그의 인기글
zephyr980
TAHADA(zephyr980)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3.15.2010

전체     30180
오늘방문     2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친구 새글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달력
 

믿는 아이들의 사회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