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교회와 돼지축구
02/17/2017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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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사님께서 쓰신 글 입니다

   2005년 여름 러시아 모스크바의 교외에서 돼지 축구대회가 열렸는데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 했다고 합니다. 한 팀이 다섯 마리 씩으로 구성된 양 팀의 돼지들은 축구에 대한 지식도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특정지역에 공을 넣음으로 이기겠다는 생각이나 욕구나 목표는 물론 갖고 있지 않았을 것이고, 골을 일정한 구역에 밀어 넣음으로 결정되는 승패의 개념이나 이기겠다는 의지나 의욕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했고, 지금도 매해마다 돼지들이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돼지들이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돼지들은 축구장이나 관객이나 축구공이나 승부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직 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축구 경기가 되도록 만들기 위하여 경기 운영자들은 돼지들이 좋아하는 으깬 당근을 잘 바른 공을 경기장에 가져다 놓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돼지들은 공의 표면에 발라 붙여진 맛있는 으깬 당근을 먹고 싶어서 공을 따라서 열심히 밀치고 넘어지고 소리 지르면서 뛴다고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축구 비슷한 경기가 펼쳐지게 되고 어쩌다 공이 정한 구역 안으로 들어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골인이 되는 것입니다. 골인이 될 때마다 편을 갈라서 열심이 응원하던 관객들은 한편에서는 이겼다고 좋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졌다고 안타까워하는데 정작 축구를 하고 있는 돼지들은 이기고 지는 데는 관심이 없고 여전히 오직 먹을 것이 붙어있는 공에만 정신이 팔려서 서로 밀치고 소리 지르며 굴러가는 공을 중심으로 얽혀서 몰려다닌다는 것입니다. 돼지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뛰었는데, 뜻밖에 그런 행동으로 인하여 축구 경기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상상만 해도 우습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와 비슷한 현상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신자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돼지축구 선수들의 수준으로 격하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교회에 출석하지만, 오직 유일한 관심사는 자기 자신의 권세와 명예와 재물과 쾌락추구의 욕구에 관계된 것들뿐인데도 불구하고 교회는 교회대로 잘 움직이고 성장하면 돼지 축구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하여 열정적으로 뛰고, 교회는 교인들의 심령상태가 어떻든 위로와 칭찬만 해 주면서 숫자가 늘어나고 활동적으로 되어 가는 것을 즐깁니다. 그 뿐만 아니라 잘난 교회인양 자랑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인구조사를 명령했던 다윗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기 전에 벌써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겸손히 돌이키기라도 했는데 요즈음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이런 기본조차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자랑할 수 없는 것을 자랑하면서도 아주 당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돼지들에게 축구를 시키면서 즐기는 사람들처럼, 교인들에게 무조건 복을 빌어주고, 잘못된 태도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덮어주고, 직분을 이용하여 명예도 올려주고, 권세도 주고, 프로그램들을 통하여 인간적 욕구를 적당히 충족시켜 주면서 잘한다고 박수쳐주고 입술로 아첨하듯이 칭찬하면서 적당한 구호도 외쳐주고 박자를 맞추어 줌으로 교회가 방대해지고 무섭게 성장하고 있지만, 올바른 승패의 개념도 없이, 축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로지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 뛰다가 본의 아니게 재미있는 축구경기를 만들어내는 돼지들처럼,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뛰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은 교인들 나름대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열심을 내고, 기도는 재물과 건강을 얻기 위해서, 찬양은 자신이 즐기고 위로받기 위해서, 성경공부 참여는 직분을 얻을 목적으로, 헌금은 체면 때문에, 봉사는 뽐내고 자랑하기 위해서, 헌신은 교우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오래 믿었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경쟁적으로 자랑하고, 금식을 몇 날이나 했는지 경쟁하듯 하고, 얼마나 많은 재물로 복을 받았는지 자랑함으로 경쟁하고, 사회적 명예를 자랑하고,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선교라는 미명하에 사업체를 광고 선전하고, 판로를 개척하고, 예배에는 꼭꼭 참석하여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하나님의 진노를 미연에 진정시키려 아양과 미련을 함께 떨고, 공공요금 내듯이 주일헌금 바치고, 더 큰 복을 얻기 위한 투자개념으로 십일조내고, 선심쓰듯 감사 헌금내고, 구역이나 모임에 열심히 참석함으로 높은 직분을 받는데 결격사항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고, 믿음 생활을 위한다는 구실로 다양한 온갖 오락들을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와 떳떳하게 즐기고, 선교기금을 마련한다는 구실로 다단계 판매망을 구축하고, ... 그런 가운데 교회는 교회 나름대로 숫자가 늘어남을 즐기고, 재정이 넘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건물 개축과 증축을 자랑하고, 첨단 시설을 자랑하고, 마치 천사같은 일꾼들과 능력충만한 인재들로 꽉 찬 것처럼 선전하고, 자기 교회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들은 무조건 최고의 프로그램들인 양 착각하게 만들고, 대형교회가 될수록 대형화 된 것 자체가 곧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것처럼 은근히 억지를 부리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대형화 시킨 것이 목회자와 교인들의 공로인 양 은근히 뽐냄으로 고의적이건 아니건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요 5:44) 스스로 자신들을 돼지 축구 선수의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있는 꼴이 된다는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위하여 뛰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한 열정이고 열심이고 재미입니까? 누구를 위한 선전이며 자랑입니까? 목표가 무엇입니까? 돼지 축구와 상당히 흡사하지 않습니까? 본능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움직이면 돼지 수준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본능 이상의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진실한 신자들은 본능적으로는 불쌍히 여겨야만 할 예수를 도리어 흠모(desire)하고 자랑합니다. 왜 고난 가운데 태어나서 고난 받다가 죽으셨는데 불쌍히 여기지 않고 도리어 흠모하고 자랑하고 사랑합니까? 왜냐하면 예수님은 단순히 고생만 하셨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는 고난의 의미와 과정과 결과를 아시고 자진해서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길을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로 인하여 우는 여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안 지려다 잡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달려 돌아 가셨다면 불쌍히 여겨져야 하겠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해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흠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자진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과 의미도 모르고 어쩔 수 없이 잡혀서 돌아가신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고생을 해도 의미도 모르고 고생하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불쌍한 존재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이나 신앙 선배들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도록 만들었던 사람들, 자기도 모르게 뜻 없이 축구를 하고 있는 돼지들, 자기도 모르게 뜻 없이 인류에게 공헌을 하고 있는 실험용 쥐들인 것입니다. 실험실에서 실험용으로 사육되고 있는 쥐는 아무리 먹을 것이 풍부하고 안락해 보여도 불쌍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험용 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희생당하고, 무슨 업적을 남겼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먹으며 살다가 왜 살이 찌는지, 왜 아픈지, 왜 정신이 혼미한지, 왜 기분이 좋은지, 왜 힘이 솟는지, 왜 죽는지도 모르고 사는 날까지 그냥 살다가 그냥 죽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아니면 장애인입니까? 아닙니다! 정말 불쌍한 사람은 돼지와 같이 본능적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어디로 향하여 가는지 모르고 끼리끼리 모여 욕구 충족을 위하여 미친 듯이 덩달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말입니다. 신앙적으로 말해서, 가난하고 병들고 못 배우고 못생긴 자들이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를 다니면서도 왜 참석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구원은 한번 받으면 무조건 보장되는 줄 착각하여 제 멋대로 살고, 구원에 대한 감사함도 없고,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책임도 모르고, 구원받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치도 모르고,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감상적인 수준으로만 생각하면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알기 이전과 똑 같이 인간적 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밤낮으로 뛰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교회를 세워주셨는지, 어떤 역할을 하라고 하시는지, 자기가 속한 교회에 주어진 특별한 사명이 무엇인지, 어떤 기능과 모습을 갖추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세상 기관들처럼 세력 불리기로 경쟁하고, 숫자 많음으로 과시하고, 잘나고 똑똑함으로 자랑이나 하는 것이 불쌍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생각하며 분별을 하며 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간절히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이 말씀은 곧, “너희들은 돼지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돼지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생각하며 살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 때, 하나님이 책임지고 너희들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고, 권세를 줄 것이고, 명예를 높여 줄 것이고, 기쁨과 보람을 줄 것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돼지처럼 대하지 않고 사람으로 대해주심을 무한한 영광으로 알아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들과 같은 치사하고 저급한 존재라면, 아마도 인간을 오락의 대상으로 삼으실 수도 있을 것이고, 노예처럼 부릴 수도 있을 것이고, 무지하고 미련한 인간들에게 인간들이 좋아 하는 것들을 조금씩 맛만 보여 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인간들을 오직 이용만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에게 재미있는 프로그램들과, 명예로운 직분과,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역할과, 신나는 사교모임도 준비해 주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교회에 재미를 붙이고 열심을 내도록 만들어 놓고, 그 재미와 열심을 이용하여 교회의 규모를 크게 확장시키실 수도 있고, 세력을 키우셔서 기독교가 명실 공히 세계를 지배하게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와 같이 잠시 이용하고 마는 시시하고 일시적이고 하찮은 존재로 인간과 교회를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겨주신 일들을 맡길 목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동물들이나 종을 오락이나 도구로 삼을 수는 있지만, 자녀를 오락의 대상으로 삼는 부모는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진짜 아버지가 아니거나 또는 정신병자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심지어 선악과를 따먹을 자유도 주시고, 이 땅에 오셔서는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 15:14-15) 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혹시 “우리는 복을 받고 교회는 성장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우리도 잘 되고 하나님도 잘 되고, 서로가 좋으면 된 것 아닌가요?”라고 질문을 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자신의 무식함을 깨달으시고 당장 겸손하게 무릎 꿇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의 결과를 바라신 것이라면 예수님이 왜 십자가를 지셨겠습니까? 하나님이 능력이 부족해서 세계의 모든 거리 모퉁이마다 교회들을 세우지 못하시겠습니까? 돼지들을 끌어 모으듯이 하셨다면 이 세상에는 오직 기독교인들 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떡 몇 조각과 생선 몇 마리를 얻어먹고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겠다고 그 많은 사람들이 싸움 싸우듯이 따라 다녔는데, 하나님이 사람들을 단순히 끌어 모으려면 어려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찾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과 보폭을 맞추어, 예수님의 목표를 향하여 함께 힘을 쏟으며 마음과 정성을 다하며 똑바로 전진하며 기쁨과 감사로 일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리 사람들이 많아도 돼지들의 집합체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비록 우리가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고 육신의 소욕을 따라 모여도 우리들이 출석하는 교회는 외형적으로는 활발하게 움직일 것이고 재미있을 것이고 성장하게 될 것이지만, 그렇게 되면, 실상은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돼지우리가 커지고 돼지 축구장이 커지는 결과를 얻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 (빌 2:13-14).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를 절대로 잊지 말 것을 명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모두 신앙의 경주를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경주를 하는 사람이 향방 없이 경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싸우는 경주는 경기를 하기 위한 경기도 아니고, 더구나 재미를 얻기 위한 경주는 더욱 아닙니다. 특히 경기에 우리를 출전시키신 주님은 경기를 즐기는 관객이 아니라 함께 싸우는 군대장관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에게서 우리들은 신앙인의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4).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맡겨진 사명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바울 사도께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신앙의 경주자로써 자신을 사명의 경주자로 부르신 하나님과 동일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영적인 싸움을 싸우며 앞을 향하여 최선을 다하여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하늘에 속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경주자로써, 신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과 우리가 속한 교회도 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사로잡혀 끌려 다니며 돼지들처럼 열정적으로 뛸 것이 아니라, 신앙의 경주자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보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보고, 자신을 점검하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믿고 순종하면서 땀과 눈물을 흘리며 기도로 함께 싸워 나가야 합니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스스로 살피면서 돼지와 같은 요소들이 없는지 조심스럽게 또 겸허하게 점검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면모를 갖추고 살아가도록 노력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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