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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파악 않된 애비 딸을 노처녀로
11/10/201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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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온지 오래 되면서도, 생각하고 행동하는 짓이 한국에 있을 때나 조금도 다름이 없이 살고 있음을 깨닫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구태의연한 옛 생각과 관습에 따라 미국에서 접하는 모든 사물을 처리하고 있다. "로마에 가서는 로마사람이 되라" 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이 마침 주일날인 고로 마가복음 2장 21-22절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인용하련다. 가로되, <생 베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새것이 헌것을 당기어 곧 헤이질 것이며 (21절),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담는 자가 없나니 새 포도주가 부대를 곧 터트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느니라. 고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내가 자라난 한국의 얼은 동양적 낡은 옷이 될 것이고, 새 포도주는 미국이란 서양문명의 새 부대에 해당한다. 


중국 고전 중에 莊子(장자)라는 책이 우리들에게 전해져 있다. 실제 인물이다. 기원전 300년 경에 "道德經(도덕경)"의 저자, 老子의 道家사상을 이어 받아서 삶의 원리를 哲學的(철학적)으로 좀 더 깊이 탐구했다고 볼 수 있다. 그책은 外篇과 내편으로 구성돼 있는데, 외편은 제자나 후예들이 썼다 하고, 內篇은 장자 자신의 글이라 한다. 그 마지막 부분에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서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장자가 어느 여름 저녁 나절에 친구와 함께 호숫가를 걷고 있었다. 맑은 호수물 밑에 잉어 한 마리가 유유하게 헤엄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장자가, "야...저 물고기는 참 행복해 보인다"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 말을 들은 그의 친구가 "자네는 잉어가 아니면서 어떻게 저 잉어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말을 되받아서 장자는 "자네는 내가 아닌데, 내가 그 물고기를 그래 본 바를 어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계속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모를 것을 前提(전제)로 하고 질문했으니 결국 내가 물고기를 행복하게 본 사실을 자네는 알아차리지 못할 것은 당연하다."


이런 說往說來(설왕설래)에서 분명한 것은 사물의 주체를 파악하는 I 즉 나와, 그 대상인 YOU, 즉 너가 어떻게 다른 가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눈에 나타나는 현상의 객체 만을 보며 판단하고 살도록 훈련되어 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하나의 객체로서 성찰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하겠다. 자기본위로 세상사를 판단한다는 말이다.


몇일 전에 어떤 분이 40년 전에 미국에 이민와서, 딸 둘을 힘겹게 좋은 학벌과 직업을 가지도록 키웠는데... 한가지 불만스러운 것은 老처녀로 아직 시집을 보내지 못한 것이 마음 아프다는... 그런 글을 남겼다. 의사니, 변호사니, 하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건만 이처럼 홀로 살아야 하는 그 책임이 미국사회의 부조리에 있다는 푸념으로 내게 들렸다.


이 분 말씀이 자기 딸이 "한국 청년이여야 하고, 나아가서 기독교의 신자여야 한다고..." 문제는 한국청년 중에는 그런 조건을 갖춘 사위감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거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런 처지에 있는 청춘남녀가 맞날 수 있는 어떤 자리를 누군가가 만들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 글에는 의외로 많은 댓글이 올라와 있어서 읽어 보자 하니... 


어떤 이는 대학시절에 만나야 한다는 둥, 또 다른이는 높은 학력에는 인적이 드물다는 둥. 경력 쌓기에 몰두하다 보니 연애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라는 둥... 모두가 옳은 말씀들만 줏어세우는 이야기다. I have no problem with those comment, of course. 그러나 문제의 骨髓(골수)와는 너무나 먼 皮相的 論評(피상적 논평)임을 알 수 있다. You should have left them alone long time ago to live their lives as per an American individual, not a Korean, dude.


중매결혼 하던 조선사람이 자유분방의 미국결혼에 눈살을 찌프린다 할까... 미국땅에 와서 최고학벌의 한국청년을 사위로 삼아야 한다 거나, 더구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야 만을 신랑깜으로 구해서야 쓰겄오?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애비의 獨善(독선)이냐, 딸들의 행복이냐?그렇게 딸의 독립성을 무시하며 어릴 적부터 몰아세웠으니, 딸들이 평생 노처녀로 살도록 강요한 결과가 그래 나타났을 뿐이다. 결과는 싫고 원인은 상관없다, 그건가?


내 妻는 한국 드라마를 즐긴다.  지나치다 가끔 힐끗거리면 자식과 딸이 어머니, 또는 시어머니와 싸움판이 한창이다. 격본해서 어째서 그런 것만 보냐고 나무랄 적에, 들어오는 말이 그런 것 밖에 없다고. 부모가 자식을 자기의 소유물로 여기는 한국인들의 정서... 그것에서 해방되지 못한 이들이 미국까지 와서 같은 짓을 한다. 


당연히 불행한 결과를 면치 못하리. 모름지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거늘... 아이구 맙소사! 이 백성들을 누가 罪에서 구할 것인고... 스스로 자신을 굽어 살필 그 날이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文머저리서 부터 그 bingshin 똘마니들, 그리고 완고한 empty heads 애비들아, 覺省(각성)하라... 마라나타, 아멘.


禪涅槃

11/1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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