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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涅槃(선열반)(zenilv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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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美 이민자들이 살았던 한 모습
10/10/201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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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5일에 쓰여진 글에 수북해진 먼지를 털어서...그러니까 11년 전이다. 당시에 윤 할머니는 내 다니던 New Jersey한인교회의 교인이었다. 얼마 전 까지도 어떤 장로님이 주일마다 윤할머니를 교회로 모셔오는 수고를 하셨다. 할머니를 따라다니던 손자가 장성하여 미국의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메릴린치'라는 인근에 위치한 굴지의 증권회사에 근무한 터라 대신해서 운전하게 되었다. 어느듯 할머니는 87세로... 제대로 돼가는 아름다운 한 가정의 모습이었다.


한 곳에 오래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이상하지 않게 보였겠지만 새 교인들에게는 이색적인 광경일 수도 있다. 할머니와 손주가 손을 잡고 교회를 다니는 경우가 그렇게 희귀한 것은 아니다만, 뭔가 그래야 할 사연이 거기에 있지 않을까 궁금하게 여기게 된다. 마침 성경공부로 모인 자리에서 부탁하지도 않은 자신의 과거를 상세히 회고하더군. 결코 평범하지가 않은 이야기였다.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윤할머니는 '뉴저지' 중부에 있는 어느 조그만 동네에 60세 갓 넘은 아들과 이 젊은 손주와 셋이서 살고 있었다. 그 늙은 아들은 '허드슨'강의 '뉴저지'쪽 건너에 위치한 옛 도시에서 여자 옷 가개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의 집은 침실 3개와 응접실 식당 부엌 그리고 작은 거실을 갖추고 있는 조그만 독채로써 4분의 1 '에이커' 땅에 지어져 있었다. 한 40년은 되지 않았나 짐작되는 후락한 집이었다.


그 친구를 만나 본지는 꽤 오래된다.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그는 홀애비로 살아왔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두번 결혼했다고 한다. 지금의 23살의 손주의 어머니되는 여자가 두번째 며누리로서, 이 젊은이가 두살 때 그 어린 것을 버리고 집을 나가 버렸다고 들었다. 이 두 부인들에게서 모두 5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들이 달아나고 난 후에 윤할머니가 이 아이들을 키워왔다고 한다. 


큰 손자는 '캘리포니아'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고 하며, 딸 하나는 출가를 하고 있는데 또 다른 한 아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왜 이 사람의 부인들이 번번히 가출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사람들 간에 억측이 구구하여 왔었다. 하지만 남의 불행한 부부 관계를 꼬집어 캐어 묻는 것도 점잖은 짓이 아닌 이상, 그냥 소문으로만 쉬쉬하여 지내왔던 것이다.


그 할머니의 아들은 아주 예의 바르고 착한 사람인 것 같이 보였다. 재주도 있어서 시도 쓰고 글도 신문사에 발표하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교회 생활은 멀리하면서 기독교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인 언사를 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할머니 말은 아들이 일요일에도 일해야 하기 때문이라 하였지만, 꼭 일요일에 일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가끔 그가 술을 즐겨 마신다는 그런 소문이 들려 왔다. 한번은 우리 교회에 어떤 신자의 딸에게 전화를 걸어서 무슨 수작을 했다고 해서 그 이혼녀의 어머니가 화를 내면서 윤 할머니를 닥아세웠던 적이 있었다.


이혼녀의 아버지는 한국의 어느 재벌의 친척으로서, 원양 어업에 종사하던 준재벌에 해당했다. 결혼의 정년기에 서울대학 출신과 결혼시켰으나, 소위 '돈을 보고 한 불행한 결혼'에 해당한다고 할까, 결국 이혼하고 아이 하나를 데리고 혼자 사는 여자였다. 당시에 아버지는 미국에서도 부자들만 산다는 L. A.의 '베벌리힐'에 집이 있었다고 그의 부인되는 권사가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교회를 오래 다닌 독실한 신자였고, 공중기도를 청산유수로 잘하는 그런 권사였다. 장로교에서는 여자장로를 권사라고 부른다. L.A. 지역의 한 교회에서 성경공부도 10여년 지도했다는 실력가(?)였지만, 겉으로는 보기에는 어딘가 거만한 인상을 풍기는 그런 흠이 있었다. 그녀는 미모였고 걸치는 모든 치장은 고급 중에도 고급으로써, 그녀의 재력을 가히 짐작케 하는 그런 것들이었다.


윤 할머니의 홀애비가 이런 분의 딸을 넘봤다는 사실에 왜 권사가 질색을 했는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했다. 교회를 안다니는 50대 중반의 늙은이가 30대 중반의 젊은 이혼녀에게 전화로 횡설수설했다는 사실은, 그것도 술에 취해서, 권사님은 가문의 수치로 받아들였다. 자기 딸에게 마음이 있으면 올바른 경로를 밟아서 혼사를 타진할 것이지, "누구를 어떻게 알고 누구를 희롱하는" 그런 짓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그런 것이었다.


여하튼 이 사람도 한 남자이다 보니, 어머니와 계속 홀아비로 살아야 하는 신세를 술로 달래게 되지 않았겠나?  세번째 부인으로서 한번 크게 용기를 내어 봤던 것인데, 그 접근 방법이 '시로도'라 할까 아니면 교양없는 짓이었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하지만 그 사람 자신은 그 재벌에 꿀리지 않는다는 그런 어떤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왔던 것만은 분명하다. 


우선 전주 이씨의 가문에 한 큰아들로서 한국의 어느 대학을 나와서 '현대 건설'에 취직하고서는 중동으로 파견되어 그곳의 공사 책임자로 여러 해 일하면서 기울어져 가는 가산을 다시 일으키는 능력을 보였었던 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미국으로 이민와서 흑인 동네에서 '슈퍼 마켙'을 시도했다가 완전히 들어먹었지만, 자기 아버지 같이 조상이 물려준 엄청난 재산을 술과 계집으로 날리면서 허송세월하지는 않아서 좋았다 할지.


윤할머니는 이런 시골 부잣집에 시집을 갔었다. 당시에는 부모들이 혼사를 정하던 시절이라, 외척으로 유명한 윤씨네 딸이 이씨 왕조의 후예와 연분을 맺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또 바람직한 결혼이었을 것이다. 시골 부자집의 딸과 아들이 결혼한다 하여 온 동네가 떠들석한 가운데서 윤 신부가 신랑과 맛절을 하는 순간 윤 신부는 어떤 신랑과 지금 결혼하는가를 알고 싶어서 들어 올린 두팔 사이로 그 남자의 얼굴을 살짝 보았다. 거기 마주 서있는 신랑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는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자기는 우락부락하게 생기고 힘쎄 보이는 남자를 남편으로 삼기를 염원해 왔는데, 거기 넘겨다 본 그 사람은 색시 처럼 예쁘게 생긴 남자가 아닌가?......


마침내 신혼방으로 안내되어 두 사람만의 시간에 이르자, 윤 할머니는 상상하지 못할 일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신랑을 남자로서 받아드리기를 거부하였단다. 이렇게 하기를 5년 동안 버티다가 드디어 어떤 계기에 결국 자기 몸을 허락하게 되었고, 이로써 이 옷장사 하는 아들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얘기가 본인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모두가 놀랠 수 밖에...


신랑되는 사람은 그 가문의 장손으로 꽤 큰 재산을 부모로 부터 물려받아서 평생을 일하지 않고 밖으로 나돌면서 가산을 탕진하는 인생을 살았단다. 결국 그 아들이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경지에 까지 가산이 기울었다. 있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흔한 사회상이라 하더라도, 왜 이 아들이 한 명도 아닌 두 부인들이 살다가  자식들을 버리고 달아나야 했는가?  그런 비운의 사연은 도대체 무었이었을까? 그 의문은 풀리지 않고 그냥 남아있었다.


윤할머니가 모임에 참가할 적에는 반드시 자기 몫을 챙겨야 하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였다. 교회지에도 자기의 글을 발표한 적도 있었고, 교회 운영에 관하여서도 할 말이 늘 많았다. 그렇다고 그녀의 견해가 교리상으로나 신학적으로 이치가 맞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어느 자리에서 든지 어떻던 간에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어떤 때는 나한테도 인신 공격성의 언사를 서슴치 않았기 때문에, 기분을 매우 상하게 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노인이 "뭐를 잘못 보고 그러는데 내가 타내서야 되겠는가"? 무시하고 지나쳤지만, 혼자 교회를 다니는 할머니를 너무 모르는 척 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지라 반기려고 노력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문론 아니다. 단지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것 뿐이었다.


자기의 고집을 위하여 남편과 자식들의 삶을 희생시켰다. 因果應報(인과응보)의 業報(업보)라... 즉 '칼마'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현실을 살피다 보면 숙연해 지지 않을 수 없다. 윤 할머니는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진 사람인지를 모르나, 그녀가 시집올때 가지고 온 어떤 無意識的(무의식적) 잘못된 사고방식이 이러한 罪를 짓게 하고 말았다. 罪를 뭐라고 보시요? 뭐 대단히 따로 있은 것이 아니고 바로 이런 거외다. 


그녀의 남편도 같은 罪가 지나쳐서 선친이 남긴 재산을 탕진했고, 그의 아들이 미국까지 와서 홀어미를 모셔야 했었고, 그리고 그 어머니는 며누리를 용납하지 못해서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견디다 못해 자식들을 버리고 달아나게 했다. 그 아들이 한갑이 넘도록 술로써 홀로 불행을 달래야 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할머니로서는 손주들를 키우는 재미로 살았다 하더라도, 그 애비되는 친 아들은 도대체 무슨 罪가 있다는 건가?


나는 묻는다. 신부가 5년 동안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데도, 그런 여자를 자기 부인으로 놔두고 밖에서 계집질과 술타령으로 한 인생을 사는 삶은 무었이며, 첫 부인을 구박하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아들 녀석이 자기 여편네를 두둔하여 어머니의 횡포를 막지 못했던 이유는 무었이며, 어머니의 문제라면 재혼할 때는 같은 불행한 일이 재현되지 않도록 왜 손을 쓰지 않았는가 말이다. 젊은 여성 둘이 자식과 남편들을 버려야 하는 정도라면, 아들된 효도만 중요하고 시집온 여자를 보호해야 할 책임은 누가 져야하는고?


사람들은 삶의 道를 통한 양 멋대로 살면서 팔자소관이니, 하나님의 장난이니, 짓굿은 운명이니, 속절없다고 제 운명을 한탄한다. 숙명적인 삶이라야 하는가, 아니면 개선의 여지가 있는가? 娑婆(사파)세계의 喜悲哀歡(희비애환)이 한 조각의 뜬 구름 같은 것... 미국의 철학자이며 교수였던 'Joseph Campbell'이 "사람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을 다시 상기시킨다. 追言(추언)하면, 문재인이 바로 윤할머니와 같은 그런 인간이다.


禪涅槃

10/1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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