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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人, 당신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08/12/2019 11:11
조회  539   |  추천   9   |  스크랩   0
IP 108.xx.xx.59

언젠가 나의 어머니는 황해도 연백의 천석군의 딸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함경도 북청이란 곳의 그저 그런 농가의 아들이었고. 농가라 하지만 실상 농사짓는 집안이 아니었기에 할아버지, 증조 및 고조 할아버지들이 뭐를 했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가문들의 딸과 아들이 만나 나를 일제의 말기에 서울서 출생시켰다. 대동아 전쟁이 한창이던 내 어린 시절에 어렵게 살다가 해방을 맞이하기 바로 직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폭탄이 떨어짐을 보고 전 가족이 아버지의 고향으로 피난, 일본말로 '소까이'를 했다가 38선이 막히자 부랴부랴 서울로 되돌아왔다.


어머니가 친정인 연백의 한 곳, 걸렁의 외갓집을 들락거릴 적에 나 역시 같이 가서 그곳에서 부자로 사는 풍요한 생활을 즐겨 했었다. 아버지의 고향집은 덩그만히 집 한채, 그것도 방 두어개만 달랑있었던 것을 기억하나 어머니의 친가는 고라당 같은 축대위에 새로 지은 개와집에 동산의 집터를 돌담으로 둘러처놨다. 


내가 외손이라고 해서 저수지 바로 아래에 위치한 1천평의 논을 상속받았지만 개성의 송악산 뒤인지라 지금은 북한땅으로 돼있고, 그 땅문서조차 어디로 살아졌는지 알지 못한다. 1952년 1-4후퇴로 대구로 피난갔다가 돌아오니 도렴동이라고 광화문과 중앙청 사이에서 내 초등 및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가정형편은 좋지 않았다. 해방통에 2번이나 남과 북을 이사 다니느라고 전 재산을 손실했던 결과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중에는 민씨 姓을 가진 친구를 만났는데 그 집의 사정도 매우 흡사했다. 조선말기의 외척이었고, 아버지가 한국은행의 고위직에 있었다고 들었다만 어려운 살림살이는 마찬가지였으나 한가지 다른 것은 그 친구는 대단한 양반의 자존심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그의 어머니는 풍양 조씨라는 또 다른 외척의 딸이었다.


사실 나는 이 친구같은 조선왕조의 긍지같은..., "양반은 물에 빠져도 검부라리를 잡지 않는다의 자존심"이없었던 차라 그가 하는 행동이 어떤 점에서 매우 이질적인 것에 대하여 의구심이랄지, 이해하기 힘든 사례가 많이 있었다. 어라~ 이 친구는 뭔가 다른데? 그것이 무엇인가를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조선의 사회제도가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는 것을...... 아래의 동영상을 보시기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DCwHp1w9I9w


https://www.youtube.com/watch?v=O8A43PmTUbo


https://www.youtube.com/watch?v=lfBIp4WN5lU  (논쟁 3)


https://www.youtube.com/watch?v=8pxvJjVigFQ   (논쟁 결론)


禪涅槃

8/1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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