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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Friday는 또 다른 착취의 수단
04/19/2019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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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평일임에도 주식시장이 문을 닫는다. 예수가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는 공휴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는 사실을 다시 일캐운다고 할까... 그가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던 이유가 뭔가를 생각케 하는 날이다. 당시에 기득권자들이 정치적, 종교적 약탈체제에 매어놓고 無知(무지)한 者들을 착취했었다. 가난과 착취에서 헤어나지 못할 그 백성들을 그 굴레에서구해내고자 했던 것이 그罪(?)의 전부였다. 


그처럼 그가 혐오하던 지배층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인류의 구원자라며 또다시 무고한 백성들의 착취가 다른 체제로 여전히 계속되었다. 전에는 모세라는 선지자를 내세워 이스라엘의 백성을..., 이번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다른 종교 형태로... 이들 기독인들이 나쁜 짓들을 역사 속에서 약한 者들의 膏血(고혈)을 어떻게 전과 같이 계속 빨아왔는 가를...그 역사의 일면에서 상고하고자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Bay 남쪽으로 이사와 산지도 어언 5년이 넘는다. 이 대도시를 북쪽으로 연결하는 다리를 Golden Gate이라는 긴 suspension 다리의 동쪽 내륙에 Russian river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태평양의 30마일 북쪽 해안에는 Drake's Bay란 곳이 위도 38도 선상에 위치한다. 인근에 Point Reyes란 조그마하고 조용한 타운이 주말의 관광객을 부른다.


'샌프란시스코'Bay(灣)을 처음 발견한 Portola란 사람의 이름을 기념해서 만든 The Portola Redwoods State Park를 재작년에 다녀왔었다. 內海(내해) 쪽의 산은 거대한 나무들이 잘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자란 숲을 내려다 보면서 구불구불 아슬아슬하게... 오르내리면 원시림의 '빨간나무(red wood)'로 뒤덮힌 곳을 만나는데 거기를 서너시간 헤맸다.


남쪽으로 Thomales Bay라고, 굴밭(oyster farm)이 있어서 2시간정도 달려서 두어번 간 적도 있다. 그 바로 아래로 Drakes Bay Farm이 2014년 말까지 영업을 했는데, 지금은 인근의 목장에서 흘러나온 오염으로 문을 닫았다. Sir Francis Drake가 두번째의 세계일주를 하던 중에 그 곳에서 선박을 수리하고 캘리포니아를 영국땅으로 기념하는 표말을 박았던 곳이다. 그 때가 1579년이었다.


Russian River는 어째서 San Francisco 북쪽에 생겨났는가? 아다시피 제정러시아가 베어링해협을 건너서 알라스카 해안을 끼고 물개와 수달을 잡으면서 南進(남진)해서 캘리포니아 북쪽 해안까지 내려왔던 바라, 당시에 北上(북상)하던 '후란시스'派의 성당들 및 스페인 후예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내 짐작에 그런 배경에서 그 강의 이름이 그래 붙여진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정황에 있던 차에 1848년에 Mexican-American War가 終戰(종전)되고, 같은 해에 Gold Rush가 시작되면서 몇년 사이에 300,000만의 인구증가와 엄청난 金의 생산으로 1850년에 부랴부랴 주정부를 세우고 미연방의 하나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Oregon Trail의 마차행렬과 東部 13州의 인구가 대거 西部로 이동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나는 160년 뒤늦게 'California here I come' (캘리포니아여! 내가 여기 온다) 하게 되었다.


Francis Drake란 사람은 지구를 두바퀴 항해했던 항해사로서 南美에서 약탈한 금덩이와 은덩이를 Spain으로 나르던 도중에서 가로챈 에리자베스 1세의 영웅이었고, 스페인왕 Phillip 2세의 해적이었다. 


돗 3개 단 상선으로 영국과 불란서를 오가며 장사하는 사람에게 맡겨서 그를 맏겨서 항해사로 견습시켰는데, 그가 영리한 것을 아끼다가 선주가 자식없이 죽으면서 그 business를 상속하는 바람에 Drake는 급기야 선장이 되었다. 그가 23살 되던 해에 그의 두째 사촌인 Sir John Hawkins를 따라서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다가 카리비안에서 대대적 농사를 짓던 스페니쉬들에게 노예로 팔았다. 


이 사람은 폴투갈 사람들이 하던 짓을 영국으로서는 처음 시작한 사람으로 신대륙에 흑인 노예를 3번 나르고 나서 Sir란 작위까지 받았던 모양이다. 3번째 항해 끝에 멕시코에서 항해보급품을 사들이고 선박도 수리하던 중에 Spanish 함대의 급습을 받고 헤엄처서 겨우 목숨을 구했다. 그 날 이후로 복수를 결심하고 1572년에 사촌에게서 독립하여 카리비안 연안과 태평양의 동쪽 해안에서 여러 차례 스페인 정착지와 보물船들을 공략했으나, 그 와중에 부상을 입고 스페인 함대가 급박하게 뒤쪽는 상황에서 뺐었던 약탈품을 바닷가에 감추기를 두번이나 했다. 이로써 '해적들의 treasury maps(보물지도)와 애꾸눈 두목의 이야기들'이 생겨났다고 하고, 그것이 영화로 제작되어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전해진다. 


아무튼 그 수확의 반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받쳤는데 그 금액은 그녀가 1년 거두어들이는 수입금을 넘기는 金銀寶貨(금은보화)였다. 이로써 그도 작위를 받아서 Sir Francis Drake로 불리게 되었고, 덤으로 귀족의 The Coat of Arms 까지 누리는 영광에 이른다. 아프리카 노예를 팔아 작위, 그리고 해적질해서 귀족되고, 영국이란 나라...잘 들 해먹었지, 기독교와 이웃사랑의 정신에 입각해서리. 유럽인들만 사람이고 그 남어지는 동물로 여겼던 바가 이래 실행되었는 이바구 같은데, 글세요다.


나중에 인도를 빼았고, 인도에서 생산된 아편을 중국에 팔다 아편전쟁으로 홍콩을 조차하질 않나, 호주와 뉴질랜드를 자기네 영토로 만들고, 싱가폴 그리고 남아프리카의 땅을 빼았고, 그래 한 공적이 바로 이 사람, Sir Francis Drake로 부터 시작된다. 어디 그것 뿐이랴! 미국까지 잡수시려다가 결국 불란서의 도움으로 도중하차했고, 불란서의 Luis 16세와 그의 여편의 목이 잘리고, 결국 불란서 혁명 끝에 나포레온이 황제가 되고......


여하튼 스페인의 Phillips 2세가 이를 갈다가 1588년 8월에 Armada (Great and Most Fortunate Navy란 뜻) 130척의 함대로 영국을 공략하러 나섰다.  副(부)제독 Drake의 지휘로 대패하고 스페인이 후진국으로 살아남는 계기가 되었다. 뺐어온 보물 중에 상당량의 銀塊(은괴)가 전해 내려오다가 1800년대 초에 중국과 교역할 적에 잘 써먹었다. 청나라 사람들은 銀을 좋아해서 그것만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영국의 Drake 銀덩이가 동이 나자 인도의 아편으로 중국사람들을 중독시켰다. 


청나라 관리였던 Lin Zexu가 영국정부에 항의서한을 발송했어도 아무 소식이 없는지라 창고에 쌓였던 아편을 강물과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에 1839-42년의 제1-2차 아편전쟁에서 홍콩, Canton, Amoy, Shanghai, Ningpo, 대만의 문호를 여는 조약으로 중국이 현대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큰 댓가(?)를 지불했다. 그 100년 후인 1997년에 중국으로 되돌아갔고, 그 날의 원한을 잊지 못한 시진핑이 남지나海를 자기네 영토의 일부라고 미국, 일본 및 서방세력과 대치 중이다.


참고: 

1. The Golden Gate이라 명명한 이유가 뭘까? Sacramento 북쪽  씨에라네바다 산맥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냇물에서 금이 엄청 나왔던 關門 (관문)이라 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 좋은 항구가 200년동안 숨어있다가 발견돼서 금쪽같은 항구라서 그리 불렀나? 양쪽 다 그렇다고 봐야 하겠지. 이에 관하여 이미 글을 올렸기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2. 이 날은 '4-19학생의거"의 날이기도 하다. 내가 대학 초년생일 적에 참가했던 기념할 한국 역사에 해당한다. 이 날이 있음으로 해서 5-16군사 쿠테타가 가능했고, 한국이 현재의 경제번영을 시작한 계기도 된다. 자유당의 기득권자들을 뒤엎은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禪涅槃

4/19/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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