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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뜻한 바 그 형상으로 나타난다
10/07/201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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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ld as Will and Representation> 해석하면 <세상은 뜻한 바 그 형상으로 나타난다> 이 제목은 Schopenhauer(1788-1860)란 독일 철학자가 세상에 내어놓은 책 (1844년 제2판)의 이름이다. 


Will은 뜻하는 바, 즉 욕망, 노력, 원함, 갈구 등등의 의미이고 形相이란 불교용어로 풀라톤의 '이데아'의 번역어로 外形(외형), 즉 겉에 보이는 것으로 간주한다. 풀라톤은 우리가 보는 물체는 이미 감지한 것에 비추어서 판단하는 형태라 본다고.


쉽게 말해서 "내가 보는 세계는 내가 원하는 것과 이미 알고 있는 경험에 따라 생성하고 소멸하는 시간과 공간의 현상이다"라고 풀이된다. 이러한 철학적 사고는 불교에 심취했던 그의 발상이기도 하고, 기독교 성경의 '희부리書 11장 1장에 나오는 서술과 맥을 같이 한다.


참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조가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희 11-1)


오래 전의 일이다. 뉴저지 프린스톤의 골푸장에서 어떤 젊은이와 회동하던 참에 뭣 하는 누구냐를 물었더니, 자기는 의사와 회사의 CEO를 가르치는 그런 직업을 가졌다고 했다. 내가 놀라지 않았겠는가? 심리학과 철학 등등의 지식인이 분명한지라, 권할 만한 책을 소개해달라고 했지를.


이 사람이 두책을 알려주었다. 'The Power of Force란 것과, 'The Biology of Belief'를 당장 사서 읽었다. 앞의 것은 약간 황당해서 읽다 말았으나 내 처는 수차례 읽더라. 내가 정작 좋아한 것은 뒤의 것이어서 몇번 읽었다. 부제로 'unleashing the power of consciousness, matter, and miracles'라 했는데 물리학의 '퀀탐'이론에 입각하여 생물학계를 새롭게 관찰했다는 이야기다.


'Quantum'이론은 기존의 물리이론이 뉴톤적인 논리성에서 해결할 수 없는 '熱力學(열역학)의 핵반응을 관찰자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리 보이는 비논리적 문제를 해명하는 設(설)이다. 다시 말해서 플라톤이 말하고 또한 쇼펜하우어가 창안한 세상의 현상은 각 관찰자의 의지에 따라 다르게 현상화한다는 주장에 부합하는 또 하나의 이론에 해당한다.


생물학 교수인 Bruce Lipton, Ph.D.은 '위스콘신 의과대학에서 Cell Biology를 가르치다가 휴가를 얻어서 '카리비안의 섬 Granada'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퀀탐이론'의 책을 심심풀이로 읽다가 세포의 분열이 결국 그 사람이 의도하는 대로 유전자가 변형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이치를 터득했던 것이다. 


학술지에 이 사실을 기고했으나 아무도 그의 이론을 믿으려 하지 않자 교직을 그만두고 그 발견을 책으로 출판하고 학계와 인연을 끝고 말았다. 어째서 생물학계와 의학방면에서 그 기적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새 발견을 받아드리지 않았던가? 


현재의 과학은 거의 전부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대로 '진리는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논제에 기반을 두고 있고, 뉴톤도 그러한 입장에서 만유인력을 설명했고 아인슈타인도 '상대성일반이론'을 전개했던 바다. 그러나 그의 말년에 비논리 즉 모순성의 진리도 진리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지라 퀀탐의 현상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가로 고심하다가 생을 마쳤던 것이다.


불치의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되는 경우를 기존의 의학이론으로는 해명이 되지 않는다. 완치된 환자들의 대부분이 기도로써 됐다는 또는 간절한 서원을 위하여 절을 찾고 무당의 굿판을 벌렸더니 뜻하던 바대로 병도 나았고 재물도 엄청 모우게 됐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이 여호와가 되던지 아니면 하나님 아바지가 되던지 "믿는대로 된다"는 어떤 영험한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나 아닐지?


내가 관심을 모두는 분야는 따로 있다. 사람들이 어째서 요모냥 요꼴로 자기만 옳다고 앙앙대는가 하는 답답함에 있다. 한번 잡았으면 놓지 않으려고 하는 그 근본이 뭐냐는 거지비. 마치 뉴톤적인 논리가 항상 진리가 아니듯이 세상의 만사가 어느 방향으로 확정된 것이 없다. 다~ 시간과 공간이 달라짐으로 해서 그 가치가 따라서 변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이들에 해당되지 않는가?


한번 예수쟁이가 됐으면 무당교회에서 배운 그것 하나만 옳다고 우기면서 자신들이 그 율법주의의 신봉자가 되어서 어떠한 새로운 생각을 죽을 힘을 다해서 거부하고 나선다. 성경에 뭐라고 했는고? "진리는 너희를 자유케 한다" 진리는 2,000년 전에 확립된 것만이 진리가 아니다. 기독교가 시작되었을 때에 율법주의에서 해방되려는 것이 진리였다. 


그런데 오늘날의 무당짓거리는 자기들 만의 독트린에 매달려 있음을 볼 적에 또 다른 율법에 얽매여서 10-1조니, 새벽기도니, 통성기도니, 성경책을 벌겋게 줄처놓고, 뭐니 뭐니 순한국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무당 앞에서 손바닥 비비면서 돈놓고 돈버는 것하고 뭐가 다른가? "축복 내려 주시옵소서"... 믿는 것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다 보니 하긴 돈만 보이시겠지. 불공에는 뜻이 없고 젯밥에만 맘이 있고, 아이구 맙소사.


禪涅槃


2018-10-07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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