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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걸어온 발자취와 그 현실 (제18편)
12/04/201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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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맨하탄' 의 Madison Ave.와 36th St.에는 The Morgan Library & Museum 란 건물이 있다. 이곳은 원래 1930년대의 은행가로서 당시의 '연방준비은형'(Federal Reserve Bank)의 역활을 했던 巨富(거부) J.P. Morgan의 사택이였었다. 강철왕 '카네기'로 부터 그의 사업을 사들여 US Steel로 만든 사람이었으나. Billionare였던 Standard Oil의 '록휄러'가 말하기를 "그는 부자 축에도 못 낀다"는 말을 들어야 했었다. 그러나 이 사람만큼 당대의 세계적 금융을 쥐고 흔든 사람이 당시에 없었다. 그의 영향력으로 말하면 '록휄러'가 뭐라고 했던지 간에 그를 능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John Piedpont Morgan의 아버지(1837?1913)는 18세기 말에 대단했던 미국의 은행가였다. 그의 아들 J.P. Morgan은 보스톤의 English private school, 스위스의 불란서 어학학교 그리고, 독일의 Univ. of Gottingen 등등에서 외국어를 익히고 전공으로 수학과 Art의 학위(Degree)로써 은행가로서의 수업을 마치자 런던에 위치한 아버지 은행의 지점장으로 취임했었다. 


당시에 세계의 금융시장은 영국에 있었다. 거기서 활동하던 시절에 수많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을 헐값에 사뫃았는데, 죽은 후에 뉴욕의 저택이 이들 예술품들을 전시하는 미술박물관이 되었다. 거기 만큼 인상파 작품이 많이 소장된 곳이 없다고 한다. 그것을 지금의 돈으로 환산한다면 '록훼러'가 무덤 속에서도 배가 아플 정도의 천문학적인 거액에 해당한다고 한다.


한 나라의 화페가치는 그 나라의 財力(재력)을 대변한다. 초토화한 유럽과 일본의 화폐가치가 높을 수가 없었다. IMF의 공식환률로써 金1온스 當 $35 딸라로 설정했다 하더라도, 금융시장에서의 金값은 IMF 公定時勢(공정시세)를 훨신 넘겨 거래되었다. 조만간 $100딸라를 홋가하는 형편에 이르렀고 딸라의 가치가 오르자 유럽의 골동품을 헐값에 구입할 수있었다. J.P Morgan이 그 중의 하나다. 물론 예술품의 안목을 가졌어야 했지만.


이와같은 맥락에서 큰 손의 환투기자들이 등장했다. 별볼일 없는 사람도 딸라화를 金으로 바꿔쳐서는 암시장에 풀면 2-3 배의 톡톡한 재미를 보게 되었다. IMF는 세계금융을 원활하게 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가맹국 여러 나라들의 金을 담보로 하여 딸라를 충분히 공급해야 했다. 이 때문에 IBRD의 장기융자로써, Marshal Plan으로, 西歐(서구)의 결속을 위한 AID로 冷戰(냉전)에 응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그들의 상품을 수입했고 딸라화가 기본통화로서의 기능을 강화해나갔다.


내일이면 늦으리...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유럽에 자회사를 설립하고 그곳의 산업건설에 적극 참여하여 딸라장사의 이득을 챙겼다. 이를 資本投資(자본투자)라 한다. 오늘날의 "국제적 환투기"가 이렇게 시작되었고, 미국의 대기업들이 Globalization의 자유무역 물결을 타고 세계적 대기업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이들을 통하여 유럽의 상품들이 미국으로 역수출되면서 美國籍(미국적)의 기업들이 전 세계의 생산과 소비를 장악할 수 있었다. IMF가 바랐던 가장 이상적인 "무역의 자유화"... 바로 그것이다. 低賃金(저임금)의 나라에서 생산해서 싼 제품을 돈 많은 소비자의 나라, 미국으로 들여온다... 거기서 생산된 이익은 그 수출국에 묻어두고, 수입해서 얻은 이익은 해외로 재투자 했다. 그로써 법인세를 기피했으니 꾕먹고 알먹고... Apple, Microsoft, GE, IBM, P&G, Johnson & Johnson, 3M, you name it.


미국의 기존 공업과 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새로운 미국자본시대가 도래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강철, 자동차, 공작기계, 섬유, 전자제품, 선박, 각종 소비재의 경우에서 이런 예를 찾아 볼 수 있게 된다. 미국의 2차산업이 사향화 했던 원인에는 이런 통상정책에 의한 영향 뿐만이 아니다.


1960년대의 월남전에도 기인한다. 식민지였다가 공산세력이 된 월맹에게 불란서가 패배하자, 미국이 동남아시아에서 쏘련과 중공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월남전에 뛰어들었었다. 이러한 냉전과 미국의 福祉政策(복지정책)으로 엄청난 재정적자가 요구되었다. 이를 메꾸기 위하여는 딸라화를 찍어댈 수밖에 없었다. 


지난 10여 성상에 작으만치 8년간의 이락전쟁(그것도 두번이나)이 소모한 국력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비용을 무슨 수로 감당한다는 거냐? 미국이 제아무리 부자나라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런 부질없는 '국제경찰'을 자청해서 사담 후세인의 화약고를 터트리고, 시리아로 쫒겨갔던 무리들이 ISIS테러로 중동과 유럽을 불안에 떨게한다. 


북한의 김정은이의 핵무기와 유도탄은 어떻고? 한국의 문재통은 세계가 전쟁의 난리통에 정신을 못차리는 이 마당에 평화를 위하여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Trump의 대북제재에 부레키를 걸고 있다. 평화를 위하여는 전쟁을 불사해야 하거늘......한국에는 어찌도 이리도 훌륭한 지도자福이 없는가?


이로써 미국의 金보유고가 급속도로 고갈됐던 1971년에 닠슨 대통령은 마침내 딸라화를 더 이상 金으로 보증하지 않겠다고 일방적 선언을 하고 말았다. 미국의 국제기업들에게는 '나라 사랑'이란 개념이 없다. 그들에게는 오직 딸라만 있을 뿐이다. 이로써 딸라의 가치가 그만큼 잠식되고 상실되어 갔어 갔던 것이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사정은 바로 세계무역의 기준통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딸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야만 했던 것을 빙자해서 독일,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이 자기네 화폐를 저평가해서 미국에 싼 가격으로 수출하게 만들게 했던 IMF의 구조적 병폐에 기인한다. 이를 위하여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필요한 만큼 딸라를 원하는대로 찍어내는 권한을 무여받았던 것이다. 


이런 이론적 근거는 '쉬카고'학파라 부르는 Milton Friedman의 자유경제에 기인한 Globalization 운동이었다. 이로써 J.M. Keynes시절에서 구축해온 모든 규제를 자유화했고, 그중에 전 세계에 가장 피해를 많이 준 시책이 "국제금융 자유화", "증권시장의 규제 축소화", "은행의 투자활동의 허용"이었다.


이 장단에 발을 잘 맞춘 환투자들의 이익추구가 동남아의 몇 국가들과 한국의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갔었던 1997년의 소위 "IMF사태"가 바로 아시아의 금융파탄의 배경이다. 실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멕시코와 남미의 여러나라들이 부채상환을 거부한 적이 있었고, 2008년에 미국 자신의 경제가 부실대여로 미국자본주의가 종말을 고하려는 지경까지 갔었다. 아직도 계속 그리 나가겠지만. "경기변동은 자본주의의 자연적 현상"의 어젯 글에 어떤 분이 "어떻게 자연적이냐, 인위적이지" 라는 댓글을 달아서 내가 이렇게 응답했고 마는. 


<人爲的(인위적)이란 사람이 일부러 하는 것을 말하고 自然的(자연적)이라는 것은 "저절로 일이 생겨먹은 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말합네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意圖(의도)해서 인플레나 디플레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치 운전을 함에 있어 左로 틀려했는데 자동차가 지나치게 비틀려가면 바로 잡으려고 다시 右로 틉니다. 그런데 너무 나가면 다시 左로 조금 움직여서 가고자 하는 방향을 결국 찾아내는 것과 같오.  국민 전체활동의 총수의 적정량을 모르다 보니 이리 해보고 저리해서 실물경제와 통화량이 어찌 됐나를 한참 후에야 나오는 통계로 알 수가 있다. 그 로써 방향을 짐작할 수가 있어서 바로 잡는다는 식의 통화정책이 적정하기가 매우 어렵지오. 


통화발행이 지나칠 경우도 있고 모자랄 수도 있읍니다. 지나치면 인플레, 부족하면 디플레가 되겠지요? 이런 교정은 한편 자기 나라의 것만 보아서는 않되고 교역하는 국가들과의 상호작용까지 고려한다면 시간적 내지 공간적인 간격을 둔 일이라서 절대로 균형을 한번에 이룰 수가 없읍니다. 시행착오가 따른다는 말씀이오. 따라서 자본주의 운동은 人爲的(인위적)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天然的(천연적)이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는 겁니다. 혹시 하나님이 계셔서 우리 모두가 새벽기도로 간절히 기도해주면 인위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사람이 한 일이 아니라 결국 天主(천주)님이 하신 일이니 자연적으로 될 수 밖에 없지요. 하나님은 곧 천지운행의 自然人(자연인)이시기 때문이오.>


참고: 

<경기변동은 자본주의의 자연적 현상>

국가가 어느 정도로 국가경제에 간여해야 하는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지나친 통화의 유통은 인풀레를 불러 일으켰다. 시중의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 갔고, 시중금리와 부동산세를 올려서 과도한 소비를 줄이는 난리를 처야 한다. 이로써 경제가 잡히는가 하면 다시 인풀레가 또 머리를 들곤 했다. 통화량을 너무 줄이면 불황이 닥쳐서 돈을 쓰지 않는지라 장사가 되질 않는다고 아우성을 첬다. 간단없이 오늘날에 까지 '경제의 널뛰기'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던 중에 모든 경제활동에 국가가 나서질 말고 원래의 "보이지 않는 손"의 자율조정에 맡겨야 한다는 이론이 1970년 대에 등장했다. '쉬카고' 대학의 Milton Friedman란 경제학자가 "자유경제이론"을 주창하면서 그동안 지켜온 FDR 이후의 Keynes的인 경제정책, 다시 말해서 국가가 적자를 짊어지고 투자에 나서게 했던 그간의  모든 경제규제를 풀게 하였다. 1770년의 Adam Smith의 원래의 이론으로 돌아가자는 이바구인데...... Chicago 학파의 Supply Side의 이론이라네. 이 새로운(?) 이론으로 해서 이 사람이 1976년의 경제학 노벨상을 받았다. 후에 Reagan대통령과 영국의 Thatcher수상에게 경제정책의 논리를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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