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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會長(회장)과 秘書(비서)
12/01/201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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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 가면  King's Cross 란 거리가 있었다. 이 거리는 여섯 갈래의 길이 이곳에서 맞났다.  몇 년전에 영국, 런던으로 관광을 갔었는데, 거기에 이같은 거리 이름이 눈에 띄어서 호주 사람들도 같은 이름을 시드니에도 붙혔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  


길들이 한군데로 모이다가 다시 퍼져 나가다 보면, 자연히 사람의 왕래가 많아지게 되고 이로써 그 길 주위로 상가가 발달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시드니의 "킹스 크로스"는 다른 상가들과 달라서 주위에 술집, 빠, 고-고 땐스 홀,  "디스코 텍", Sex Shop 등의 유흥가가 즐비한 동네였다.  최근에 시드니에서 살다가 온 분의 얘기로는, 요새는 그런 유흥업소들이 다른 곳으로 옯겨갔다고 들었다.  


내가 여러 달을 이미 시드니에서 지내다 보니 우연잖게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날 저녁에 가볼 기회를  만들었다.  그후로도 가끔 혼자서 그곳을 어정대다 돌아오곤 했었다. 시드니가 국제 항구이다 보니 자연히 별의별 국적의 사람들이 다 그곳을 방문한다.  여행객, 선원들, 미해군 장병들이 많이 눈에 띄웠다.  그들이 무슨 깃발을 들고 다니지 않으니 꼭 집어낼 수는 없었지만, 빠에 앉아서 옆의 친구들과 주고 받게된 대화로나 주위에서 들려오는 낯선 말로써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다.  나 같은 해외 주재원들, 특히 일본 청년들도 많았겠지만, 놀라운 것은 거기에 모여노는 대부분이  현지의 젊은 남녀들이란 사실이었다.


어느날은 어떤 미국 수병이던 사람과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녀석 말이 "여기서 어떤 호주 여자를 좋아하여, 그녀와 동거하며 이곳에 살아왔다" 고  내게 말했는데, 이제는 이곳에서 사는 것이  싫다는 거다.  자기 나라,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많다고 했다.  술기운에 젓어 그의 속맘을 처음 만난 나에게 실토하고 있었다.  그가 계속해서 "나는 매일 하루 세 때를 양고기로 먹어야 하는데 질리고 말았다.  병이 날 지경이다."  그와 만나자 곧 헤어졌으니 그가 과연 어떻게 자기의  운명을 처리했는지 나는 알길이 없다.


세상에는 좋은 것이 있으면 나뿐 것이 꼭 따라붙는다.  나는 호주에 지사원으로 간다고 뛸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막상 와 보니 이 미국 청년 마냥 "양고기를 매일 먹어야 하는"  나뿐 점이 있었다.  또 내가 우리 동창들의 웹페지를 발견하고 그곳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어떤 정어린 동창의 관계를 기대하고 좋아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원했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할 수있는 우리들 인생 행로에서 수없이 당하는 이  "입에 질려버리는 양고기"의 문제를 가지고 늘 씨름하며 살아간다.  우리들의 성현들이 진작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해왔다.  나는 과연 내 운명의 주인인가?  한번 생각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어느날 호주의 젊은이를 그곳에서 만났다.  호주사람은 그들 특유의 발음이 있다.  그래서 누가 본토인인가를 곧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호주 사람들은 미국에서 우편물을 "메일"이라 발음하는데 반하여, 이들은 "마일"이라고 말한다.  즉, 모든 "에이"를 "아이"라고 발음하기 때문에 쉽게 분간 할 수 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원통삘딩 근처에서 일하는 회사원이었다.  그 친구 말이 내일 자기가 여기서 만났던  여자 친구들과  다시 놀기로 돼있는데 같이 섞일 생각이 있느냐는 것이다.   문론 OK 였다.


아니나 다를까 퇴근 시간이 되자 내가 가르쳐 준 전화 번호로 나를 불러냈다.  그의 자동차를 타고 어둑해진 어느 길을 한참 달려서 드디어 어디에 도착했다.  아마도 1 시간도 넘어 달렸다.  거기서 두 처녀들을 태우고 다시 시드니 시내의  "왕의 십자로(King's Cross)"로 돌아왔다.  그 호주 처녀들은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한 여성은 좀 살집이 있어 보였고 초록색의 눈동자를 했으나 머리 색갈은 검정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 보다 키가 약간 작고 가랑가랑한 몸매의 여자는 안경을 썼는데 눈이 초롱초롱하게 똑똑해 보였다.


아무튼 우리 넷은 어느 "디스코 텍"으로 몰려 들어갔다.  입장료를 내니까 팔목에 형광의 도장을 찍어주었다.  안에서는 말을 나눌 수 없는 요란한 음악이  홀을 들썩였고, 수많은 젊은이들의 열기로 숨쉬기 조차 힘든 그런 광란의 몸짓 속으로 우리도 빨려들어 갔다.  춤을 배워본 적이 없었던 나는  눈치껏  남하는 대로 몸을 이렇게 저렇게 흔들어 댔다.  옆의 여자가 손을 위로 올리면서 몸을 비틀길래 나도 그래 해봤고, 또 어떤 여성이 팔을 아래로 내리면서 엉덩이와 다리를 부드럽게 휘져으면 나도 그렇게 했다.  또 어떤 친구가 펄쩍 펄쩍 뛰길래 나도 같이 뛰어봤다.


한참 이런 흉낸지 춤인지를 하고 우리 테이불에 와서는 맥주를 들여키다가,  그 초록색 눈의 처녀를 끌어내어 또 한바탕 뛰기를 여러 차례했다.  춤을 추자고 여기 왔으니  춤을 추기는 춘다 마는 나로서는 그렇게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조용한 대화를 나누면서 내 파트너가 어떤 처녀인가를 나는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다.  또 이 처녀가 얼마나 많이 술을 마셔대는지 얼마 않돼서 몸을 잘 가누지 못할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이런 상태의 그녀를 그 호주 녀석이 자꾸 끌어내어 춤을 추다 보니, 나는 다시 외톨이 되면서 그청년의 처음 파트너였던 안경재비 아가씨와  마주 앉는 시간이 많아져 버렸다.


그렇다고 그 안경 쓴 여성과 새로 춤바람을 일으키기도 그렇고 해서, 슬슬 흥이 빠져 버린지라  그런대로 시간을 끌다가 그 두 처녀 중에서  어느 한 여성과 무슨 일을 벌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게 그녀를 따로 끌어낼 수단이 없는 바라 그냥 집으로 가기로 작정하고 그 안경 쓴 처녀에게 내 뜻을 비치면서 문간으로 돌아서니 그녀가 내 볼에 키스를 하며  "굳 바이"를 했다.


기대가 컸던 외출이었으나 싱겁게 끝난 하룻밤의 나들이가 되고 말았다. 내 아파트에 돌아와 생각하니 이왕 굿판을 벌렸으면 줄타기 까지 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더군.  그러나 그런 유종의 미를 거둘려면 여러가지 조건이 맞아야 했다.  자동차가 있어야 한다든다, 용돈을 마음놓고 쓸 수 있어야 한다 든가, 그들 젊은이들의 노는 방식을 잘 알았어야 한다든지......하지만 이런 욋적의 어는 것 보다는 정작 나 자신안에 도사리고 있는 마음의 자세가  문제였다.  나는 호주의 백인 남녀들이 노는 그런 일에는 우선 자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요란한 음악도 그러하고, 춤을 관능적으로 추던가, 뭐 그런 환락가에서만 통하는 문화에 익숙하지가 않았다고 봐야 하겠지. 세상 것은 우선 자신을 믿는, 그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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