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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다니는 이들여! '사마리아인'의 사랑을 바로 알라
02/11/201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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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 25절에서 37절에 기록되어 있는 "강도 맞나 죽게된 사람이 路上(노상)에서 신음하고 있었는데, 제사장 같은 신앙과 지체가 높은 제사장과 성전을 관리하는 '레위'지파사람은 피해 지나갔으나 역사적으로 천대를 받아온 '사마리아人' 정성을 다하여 그를 간호하고 심지어 여인숙에 투숙시켜서 병간호를 부탁했었다" 예수님의 說話(설화)였다.

25
절에서 "어떤 律法士(율법사)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었을 하여야 永生(영생) 얻으리이까"하니, 27절에서 자가 대답하되 "율법에 마음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 기록되어 있나이다. 28절에서 " 대답이 옳도다. 이를 실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셨다.

이런 대화 끝에, 30 부터 위에 언급한 강도 맞난 사람을 구해준 '사마리아'사람을 예들어 仁情(인정) 베푼 사건을 말씀하셨다. 이런 감동적인 경우를 '이웃사랑하기' 표본으로 이해하고, 교회에서 자주 듣는 說敎(설교) 제목으로 인용되며, 우리들로 하여금 이같은 사랑을 남에게 페풀어야 함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사랑의 교훈으로만 이해해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정작 전달하시고자 하신 전체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본다. 거기에는 훨씬 깊은 뜻이 있음을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되겠다. 우선 제사장이란 직책과 그런 세습적인 지위를 누리는 '레위'지파사람들은 누구길래 이런 가장 인간적인 동정을 필요로 하는 현장을 피해가야 하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다음엔 '사마리아'사람은 어떤 민족이길래 이런 사랑의 손길을 서슴없이 내밀수 있었는가를 고려하여야 한다.

유태인들이 에집트를 탈출하고 시나이 반도의 사막에서 생활하던 40 간의 세월 동안에 노예생활에서 물든 저질의 추종자들... (내가 말하는 식민지근성이란 잠재의식의 문제) 1세대가 사막에서 죽었다. 심지어 '모세' 젓과 꿀이 흐르는 요단강 건너편의 '팔레스타인'땅을 바라보는 산꼭대기에서 죽었었다. 2세들이 땅을 정복하기 직전에 '야곱' 12 아들의 후손을 12 지파로 정하고 進軍(진군) 시작했었다. 그런데 11 지파는 땅을 배정받았으나, 모세의 형님되는 '아론' 자손인 '레위'사람들에게는 11 지파사람들의 靈的(영적)관리의 책임을 맡겨서 세습적으로 여호와 聖殿(성전) 성직자로 정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11 지파에서 나오는 所出(소출) 제물로 받치게 하고 이런 봉헌물을 성전의 수입과 종사자들의 생활비로 충당하게 했던 것이다. (이런 관행이 예수님 생전인 당시에는 오늘날의 중앙은행이나 재벌들로 변질되고 말았다는 현지의 상황을 염두에 두시라.)

이런 제도를 예수님 당시에 이르는 1,500 동안 두번에 걸쳐서 구약을 대집성하는 과정 (1차는 BC640년경인 '요시아' , 2차는 BC444 '느헤미아'총독)에서 이런 성전을 중심한 종교 정치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던 것이다. 제도를 경제적이며 동시에 유태인들의 정신적 주축으로 삼기 위하여 "순결주의" (Puritan System) 개념을 도입했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더욱 재정비 강화했던 것이다. 근본의 의도가 바로 11 지파의 供出(공출) 반드시 성전에 헌납되도록 律法化(율법화)하려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체제를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은 聖潔한 順位(성결한 순위) 따라 等級(등급) 메겼다. 문론 자기네 성직자는 가장 순수한 계급이다. 그리고 병들고 피를 흘리는 사람은 下層(하층) 속했다. 밭에서 타작한 곡물은 순결하지 않아서 성전에 바쳐서 깨끗하게 축복을 받아야 했고, 성전에 바칠 도살될 양과 비둘기 조차 흠이 없어야 했다. 말하자면 고생한 사람들의 가장 좋은 알짜만 받아먹겠다는 심뽀라고 말하면 별로 틀리지 않는다. 사회에서 도태되고 경제력이 없는 사람은 이런 獻納(헌납) 수가 없었음으로 불결하게 취급받았다. 여자나 외국인들, 특히 '사마리아'인들은 가장 不潔(불결) 사람들이었다.

'사마리아'인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했나? 이것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역사를 들추어 보아야 한다. 12 지파 중에 북쪽의 땅을  '솔로몬' 아들이 '이스라엘' 왕국으로, 다른 아들이 남쪽의 나라를 이어받고 이를 '유대'라고 불렀다. 솔로몬이 기원전 1,000년경에 죽었는데, BC722년에 앗시라아가 침범하여 (Shalmaneser, 열왕기하 176) '이스라엘'왕국을 정복하고 북쪽 유태인주민의 대부분을 노예로 잡아갔었다. 그리고 빈땅에 다른 원근의 다른 종족으로 이주시켜서 다시는 한민족으로 반발하지 않도록 하였었다. 이렇게 되면서 북쪽사람들은 聖潔主義(성결주의) 관점에서 不潔(불결) 혼혈 유태인들이 되고 말았다.

기원전 539년에 페르샤의 Cyrus왕이 바빌론을 정복하고, BC586년과 BC582년에 바빌론사람들에게 끌려 갔던 유태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고 '느헤미아'총독 시절인 BC466년에 22년에 걸친 '예루살렘'() 재건을 완성하였다. 문론 聖殿(성전) 새단장을 했을 때였다. 이런 때에 북쪽 혼혈지파였던 '사마리아'사람들이 자기들도 이런 성전 대건축에 참가하게 해달라고 여러번 부탁했었다. 그러나 번번히 거절 당했다. 너무나 분격한 남어지 어느날 밤에 '사마리아' 사람 몇이 새성전에 들어가 똥물을 처부어 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랬을 같습니까?


율법에 매달려서 인간의情(인정)은 마다하고, (이것을 교회에서 사랑이라고 하지를 않오,) 원리원칙에 매달리다가 보니까 사람이 안보였다는 얘기가 되겠읍니다. 민족적인 차별을 별도로 하고 소위 자기 만의 곧은 信仰(신앙)이란 잣대로 정작 깨닯아야 사람들이 외면한 데에 분격한 것이란 말이요. 말이 됩니까? 여러분들... 이런 일이 있은 부터 민족은 철천지 원수로 살아오던 바였다. (마치, 한반도에서 공산인가 민주란 서양의 제국주의 정치이념을 두고 한민족이 서로 죽이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시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이런 不潔(불결) 버림받은 민족의 사람을 이런 () 일의 대표적인 ()로서 우리들에게 사랑의 정신을 설명하는가? 이것을 이해하는 숨은 뜻이 바로 여기에 숨어있다. 예수님은 사회정의를 바로 잡으려는 혁명가였으며,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의 공평과 사랑을 靈的(영적)으로 깨닯은 사람으로서 이런 사회의 不公平(불공평) 세상에서 바로 잡기 위하여 자기의 목슴조차 걸고 도전했던 사람이었다.

"
저희들이 가장 천시했던 사람에게 이런 인간적 휴머니즘을 발휘하고 있는데, 너희들 잘나간다는 기득권자들은 뭣들 하는 무슨 인간종자란 말이냐? "율법, 율법하면서 성경에 써져있는 字句(잣구)에나 매달려서 남들 위에 군림해서 거드럭 거리는 群像(군상)들아...! ~ 이런 얘기가 아니겠오." 무식하게 말해서.

그는 하나님의 萬人平等(만인평등) 博愛精神(박애정신) 당시의 권력자들과 기존체제에서 "저희들만 먹고 살자" 썩은 사회와 정치체제를 뒤집어 놓으려는 사상가였으며, 동시에 사회사업가였다. 문론 구태의연한 그들 세력가들의 생각까지 바꾸려 하다가 결국 십자가에서 죽는 利己主義( 이기주의: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하여 살려는 의지) 정신을 행동으로 실천하신 용기와 초지를 관철했던 분이다. 그는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적당한 변명을 대고 도망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잡혀가기 전날밤 '겟세마네'동산에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했었다. 그리고 물었다. 자기가 과연 죽음의 순간에 목숨을 구해서 좀더 오래도록 이런 혁명의 길을 가야할 것인지, 아니면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으면서 자기의 주장을 죽음으로써 관철할 것인지를...... 우리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늘의 뜻을 깨닫고 몸으로 실천에 옮기셨으니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누구겠는가?

우리가 성경을 읽고 교회에 다니면서 수없이 '사마리아'人의 善行의 얘기를 듣고 살지만, 근본정신은 이런 得勢(득세) 者들이 자기들 만의 利益(이익) 위하여 남어지 버림받고, 살기에 허덕이는 불쌍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그런 制度(제도) 썩은 사고방식을 깨우치려는 예수님의 가장 强力한 例話(강력한 예화)였음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禪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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